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39)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39화
짧은 시간이나마 런던을 장악했던 코뮌의 손아귀 안에서도 버킹엄 궁은 살아남았다.
비록 그 궁전 안에서 생활하던 이들은 어디로 갔는지 아직도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지만, 버킹엄이라는 건물 자체는 별다른 훼손 없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디까지나 건물 외형의 이야기였지 내부에 있던 화려한 장식품이나 예술품들은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아니면 남아 있는 몇몇 부분만으로 파손되었다고 짐작할 수 있을 뿐.
대영제국의 심장은 이번에 발생한 위기에서도 살아남은 것이다.
런던 시내에 잔존해 있던 경찰 병력들과의 싸움만으로도 바빴던 코뮌 수뇌부가 버킹엄이나 웨스트민스터와 같은 구시대의 잔재들을 없애기 위해 폭약을 모은다는 게 불가능하지 않았냐는 현실적인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대다수의 인식은 차마 그들조차도 대영제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건물을 없애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아직 새로운 선거가 이루어지지 않아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평상시와 같은 열띤 토론을 빙자한 말다툼이 벌어지는 대신 고요함만이 감돌고 있었지만, 버킹엄은 과거와 비슷한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찌 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과거보다 훨씬 이전의 과거 다시 말해 존 왕이 마그나카르타를 받아들이기 전의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었다.
웨스트민스터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국가 권력은 버킹엄으로 집중되고 있었으니까.
의회정치의 정신과 신념이 영국 사회에 뿌리를 내린 지 오래된 이상 언젠가는 이와 관련된 말들이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 당장은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와장창!
“전하!”
어디까지나 그럭저럭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지금 뭐라고 했소? 아일랜드 지방이 소집령에 거부 의사를 밝혔다고?”
손에 쥐고 있던 물잔을 집어 던진 것은 현재 대영제국의 섭정 직위에 올라있는 조지 왕자였다.
런던을 탈환하고 나서 가라앉는 것처럼 보였던 그의 편집증적인 성향은 지방에서의 소요와 식민지 총독부로부터의 지원이 어려울 것 같다는 연락이 이어지자 다시금 폭발하고 있었다.
“그, 그렇습니다. 자신들이 지금껏 연합왕국의 일원으로써 신의와 의무를 다해왔음에도 잉글랜드 정부는 아일랜드 민족 법안 하나 통과시켜주지 않지 않았냐며 새로운 내각과 의회가 구성된 후 관련 법안들이 처리된다면 그때 본인들의 의무를 다하겠다며…….”
“지금 그들은 대영제국이 어떤 상황인지 알지 못해서 그러는 건가!”
조지 왕자가 목소리를 높여 소리치지 않더라도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영제국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는 다들 알고 있었다.
세계를 향해 포효하던 사자는 상처 입고 피를 흘리고 있었다.
“아니지, 오히려 그놈들은 지금이기에 그런 태도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 연합왕국을 탈퇴해 본인들만의 나라를 설립하는 것은 아일랜드 놈들의 숙원사업이지 않던가? 가까운 시일 내에 선거를 진행할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텐데 새로운 내각과 의회가 구성이 되어야지만, 도움을 주겠다니 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태도란 말인가. 본인들을 보호하고 도움을 주던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틈을 타서 이렇게 비열하게 나오다니.”
지금껏 영국이 해온 행동을 살펴보면 아일랜드를 보호하고 도움만을 줬다기엔 어폐가 있었지만, 그건 지금 조지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일랜드를 응징하기 위한 실력 행사에 나서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맨체스터와 같은 런던 인근의 공업 도시에서의 소요는 진압이 완료된 상태이지만, 북부나 서부에 위치한 탄광촌들에서의 소요는 아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전하께서 관련 진압을 러시아군에 맡기지 않으시겠다고 하신 결정은 저도 동의합니다만, 그들을 이용하지 않고 현재 잔존 병력만으로 모든 소요를 진압하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식민지에서 지원 인력을 보내주지 않는다면 더 오래 걸리겠지요.”
“그건 나도 알고 있소! 이런 망할! 진작부터 니키 말대로 놈들에게 자비를 보였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오늘도 사촌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조지를 보는 주변인들의 시선에 의구심이 잠깐 맴돌았지만 이어지는 말은 그들이 다시금 현재 상황에 집중하게끔 만들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을지언정 현재 이곳에 모인 이들이 무너져 가는 대영제국을 지탱하고 있는 마지막 인물들이었으니까.
“우선 아일랜드와 관련된 사항은 내부 문제가 해결된 이후 다시 얘기하도록 합시다. 저들의 오만한 태도가 우리 대영제국이 무너질 거라는 생각에서 오는 것으로 보이는 바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금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 이후 지금의 태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더라도 늦지 않을 거요. 내년 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의사에는 변함이 없다는 사실은 그리스 정부에 전달했소?”
“말씀하신 대로 전하기는 했습니다. 그리스 정부에서도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참하지 않고 참가해 준다는 것에 감사 인사와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안함을 표시했습니다. 그런데 전하, 진정으로 올림픽에 참가하겠다는 생각에 변함이 없으신 겁니까? 여전히 군정에 가까운 상황에 놓여 있는 런던 시민들 가운데 선수단을 보낼 비용으로 배급을 늘리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올림픽 참가는 대외적으로 우리 대영제국이 변함없이 그리고 흔들림 없이 서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행동이오. 이미 내가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던가?”
조지가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그에게 관련된 사항을 말하던 귀족은 자신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하나, 전하. 대외적으로 대영제국이 굳건하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에는 차라리 현재 행방불명인 여왕 폐하의 뒤를 이어 전하께서 황제 자리에 오르시는 것이…….”
“아직 황실 일가의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했는데 대관식이라니! 그게 지금 할 소리인가!”
조지 왕자가 황제가 아닌 섭정 자리에 머무르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빅토리아 여왕을 비롯한 그의 아버지인 에드워드 왕자의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에 자신이 황위에 오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논리였다.
사실 그들이 코뮌의 손길을 피해 안전한 곳에 피신했다면 이 정도 시간이 지난 후에도 등장하지 않을 리가 없었기에 조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서서히 그들의 실종, 다른 말로는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그만큼은 여전히 자신의 가족들이 살아 있다고 믿는 듯했다.
“여왕 폐하와 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확실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대영제국의 황좌는 여전히 그분들의 것이오. 알겠소?”
“……예, 전하.”
“이와 관련해서는 앞으로 더 얘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군. 그건 그렇고 앞으로 다가올 빈회의는 어떻게 준비해 가고 있소?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이 계기가 되어 이루어지는 만큼 철저히 대비해야 할거요.”
“예, 현재 저희가 파악한 바로 회의에서 다루어질 내용은 아마도…….”
대영제국에 드리워져 있는 니콜라이의 그림자가 걷히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처럼 보였다.
* * *
“내년 중순 말이요?”
“그래, 국제 정세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너라도 이번에 영국에서 벌어진 일은 들어봤을 거 아니냐. 그와 관련된 회의를 빈에서 한다더구나.”
“아, 그렇군요.”
자신의 아버지로 보이는 인물과 대화를 나누던 청년은 이내 흥미를 잃었다는 양 다른 짓을 하기 시작했다.
국제회의니 국가와 국가 간의 거래니 하는 일들은 본인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가 그렇게 여기는 것도 당연했다.
오-헝 제국을 지배하는 가문의 일원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자리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었으며 그의 후계자로 여겨지는 이가 본인의 아버지이기는 했으나 본인이 황제 자리를 물려받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나 말고 내 동생인 오토가 황제 자리에 오른다면 모를까.’
정치라는 일에 어렸을 때부터 흥미를 느끼지 못한 페르디난트로서는 지금 보이는 태도가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했다.
“그럼 아버지께서 황제 폐하를 수행하시겠네요. 축하드립니다. 막중한 임무를 껴안게 되셨군요. 그래도 아버지라면 능히 잘해내시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들로서 아버지에 대한 예의를 지킨다는 듯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는 태도만 보일 뿐이었다.
그것도 본인의 아버지인 루트비히 대공에게는 뻔히 보이는 연기였지만.
“애써 관심 있다는 척해줘서 정말 고맙구나, 아들아. 그건 그렇고 오늘 자 성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거냐? 그 물을 마시지 않으면 하루 종일 불편하니 신경 써달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건만.”
“아버지, 제가 개인적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성소에서 떠온 물이라고 해서 그렇게 드시는 건 별로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은데요.”
본인의 말로는 성스러운 기운이 서려 있는 물을 찾는다는 아버지에게 몇 번이고 건넸던 조언을 오늘도 여전히 다시 하는 페르디난트였지만, 돌아오는 말 또한 한결같았다.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 모양인데. 성소에서 떠온 물을 마시면 속이 깨끗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영혼까지 정화된단다. 성수를 마신 뒤 기도를 올리면 주님과 직접 연결되는 느낌마저 받을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니? 이런 좋은 물을 왜 안 마시겠다고 하는 건지 원.”
말하는 것과는 달리 요즘 따라 화장실에 가는 횟수와 시간이 늘어나는 아버지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페르디난트였지만, 이내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애시당초 본인이 좋다고 마시는 데다가 겉으로 보기에는 별다른 이상이 생기는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제가 또 실수했네요, 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성수가 준비됐는지 직접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만지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방을 나서려던 페르디난트였지만, 이내 무언가 떠올랐는지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인물은 다름 아닌 얼마 전 러시아에서 온 초청장을 받고 갔던 흥미로운 공업단지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이번 회담에 얼마 전에 즉위한 러시아의 차르도 오겠네요. 이런 일이라면 빠지지 않는 나라이니까요.”
“아마 그렇겠지. 그러고 보니 네가 그와 한 번 만나지 않았느냐? 왜 지난번 그치들이 만들고 있다던 수공업 단지인지 뭔지에서 말이다. 그래, 느낌이 어떻던?”
아버지의 질문을 들은 페르디난트는 그때의 그 짧은 만남을 회상했다.
사실 자신보다 5살은 어린 차르와의 만남은 생각보다 가벼운 분위기였다.
서로 오-헝 제국의 황족과 러시아 제국의 황제라는 직위로 만났다기보다는 그냥 귀족 자제끼리 연회장에서 만났다는 느낌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때의 만남이 페르디난트의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 있는 이유 또한 한 가지 있었다.
“뭐랄까, 눈이 매우 인상적이던데요?”
“눈이?”
아버지의 의문 섞인 대답을 들은 페르디난트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예, 뭐랄까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빛을 가지고 있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