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40)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40화
아버지에게 자신이 니콜라이를 보고 느꼈던 점을 짧게 말한 뒤 페르디난트는 성수가 언제 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방을 나섰다.
카를 대공이 현대 한국에 태어났다면 그 누구보다 독실한 건강식품 신봉자가 되었겠지만, 그에게 불행한 점은 이곳은 근대 유럽이었고 그나마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되어 있는 건강식품과는 달리 그가 매일같이 들이켜는 성수에는 몸에 좋지 않은 성분들이 득시글거린다는 점이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니콜라이와 프리드리히 가문 간에 혼사가 오고 갔다고 했었나?’
영국에서 저 난리가 일어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유럽 상류층 사이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는 바로 러시아의 차르가 오-헝 제국의 귀족 가문에게 혼담을 넣었다는 것이었다.
당장에라도 전쟁을 할 것만 같았던 과거에 비해 두 나라 사이가 나아진 건 사실이었지만, 이런 식으로 나올 거라 예상한 이들은 적었기 때문이었다.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하더라도 러시아와 오-헝 제국이 친해졌다기보다는 ‘서로 어지간하면 주먹은 날리지 맙시다’ 정도로 유지되고 있던 상태였으니까.
‘그런데 프리드리히 공작 장녀의 나이가 어떻게 되더라 두 사람 간에 나이 차이가 꽤 됐던 걸로 기억하는데.’
프리드리히 가문의 안주인인 이자벨라 대공비의 야망이 어마어마하다는 건 익히 알려져 있었기에 두 나라 사이의 불편한 분위기와 여러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혼담이 진행됐다는 점은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대공비에게 아쉬운 일은 영국에서의 일로 인해 당장 결혼식을 올리기는 부담스럽다는 러시아 측의 요청에 따라 현재는 일시 중지된 상태라는 점이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이 본인의 혈육들이 유럽 곳곳에 뿌리내리도록 한 결과 러시아 황실 또한 영국에서 일어난 비극에 애도를 표할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동토의 야만인 두목이 본인들이 타타르에게 지배당하던 시절의 풍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비꼬았다.
자신이 결혼 상대를 정하는 것보다 가문이나 국가의 이익에 따라 이루어지는 정략결혼이 많은 시대였기에 두 사람 사이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결혼이 드물지는 않았다
하지만, 별다른 접점도 없던 가문에게 혼담을 신청했다는 건 아무래도 차르의 취향이 반영된 게 아니겠냐는 얘기였다.
‘그래도 직접 만났던 입장으로서는 차르가 그런 취향을 가졌다고 생각하기가 어렵군.’
다만 페르디난트는 세간에 떠도는 소문에 쉽사리 동조하기 어려웠다.
그가 러시아에 갔을 당시, 짧은 만남이긴 했어도 직접 눈으로 확인했던 차르의 모습과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차르의 모습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차르가 공개적으로 연애를 하던 연인이었던 알릭스 또한 그런 취향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기에, 페르디난트는 아마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려면 나이가 어릴수록 좋다고 믿는 차르의 어머니가 나선 결과가 아닐까 하고 추측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배한다고 일컬어지는 차르였지만, 그 또한 어머니의 등쌀에 시달리는 어쩔 수 없는 아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니 페르디난트는 더욱 친근함을 느낄 것 같았다.
대제국의 황제라는 위치보다는 어머니에게 등 떠밀려 결혼을 하게 되는 아들이라는 위치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건 당연한 얘기였으니까.
‘아차차, 성수. 아버지께서 더 늦어지면 화내시겠군.’
시종을 찾아 발걸음을 옮기는 페르디난트의 속도가 빨라졌다.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은 채로.
* * *
“가폰 일행이 드디어 극동에 도착한 모양이군. 다행이야.”
나는 모처럼 들어온 희소식에 미소 지었다.
영국에서 멋지게 본인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한 이들이 드디어 러시아 땅에 도착한 것이다.
그들이 왔다고 전문을 보낸 종무원장도 정확하게 가폰 일행이 무슨 일을 하고 온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저 내가 중요한 인물들이 조만간 도착할 테니 그들이 오는 대로 연락을 달라는 명령에 따라 전문을 보내왔을 뿐이었으니까.
종무원장이 관련 정보를 알더라도 배신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비밀을 아는 사람은 적을수록 좋았기 때문이다.
“폐하, 그렇다면 이들에게 비슷한 임무를 맡기려던 계획은 잠정 중단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가폰 일행이 수행한 임무를 아는 사람은 그 정도로 적었다.
기껏해야 내 앞에서 관련 보고를 직접 가져온 게르 외무장관 정도가 이 일에 깊숙하다고 할 정도로 연관되어 있는 관료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도록. 애국자들에게도 휴식이 필요하지 않겠나. 종무원장에게 그들이 생활하는 데 불편함이 없게끔 신경을 써달라고 하게.”
가폰 일행이 영국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이후 그들을 이용해 미국에서의 혼란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졌지만, 나는 그 계획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렸다.
미래의 초강대국이 될 미국의 힘을 지금 빼놓는다는 것에 대한 매력을 느끼기도 했지만, 지금의 미국은 우리의 사업 파트너와 가까운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당장 미국과 연계해서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며 앞으로 진행될 프로젝트에서도 미국의 힘을 빌릴 사항이 많았다.
‘어찌 보면 미국이 영국보다 사회적 혼란을 일으키기 더 쉬운 환경이라고 할 수 있지만, 괜히 미국을 내전으로 밀어 넣었다가 자칫 인민주의 진영이 승리하기라도 한다면 신대륙의 그 어마어마한 힘을 구대륙인 유럽을 해방시키는 데 쓸지도 모를 테니.’
몇 명의 요원을 보낸다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예상에는 과장이 섞여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여길 만한 근거도 충분했다.
당장 미국이 경제 위기를 이유로 우리와 알래스카와 관련된 조약을 맺은 게 몇 달 전이었으며, 노동자들이 준 정규군 수준으로 무장할 수 있는 나라도 미국이었으니 말이다.
차라리 어설프게 손을 댔다가 나중에 된통 코가 깨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미국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으로 나아가는 와중에 챙길 수 있는 이득을 챙기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영국에서는 우리가 한 공작이 다행히 발각되지 않았지만, 미국에서는 혹시라도 모를 일이기도 하였고.
“이외에는 클리블랜드 대통령으로부터 폐하가 지난번에 체결해준 협약 덕분에 미국의 노동자들이 한숨 돌릴 수 있게 되었다며 고맙다는 의사와 함께 앞으로도 두 나라 사이의 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내용이 담긴 친서도 도착했습니다.”
“나 또한 이번 기회에 미국과의 관계가 한 걸음 나아간 것에 대해 기쁨을 느끼고 있으며 대통령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전하면 되겠군. 외무장관, 자네도 이번 협약에서 우리 러시아가 손해만 봤다고 생각하나?”
알래스카에 매장되어 있는 석유를 생각하면 러시아에 이득인 협약이었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러시아 내부에서도 우리가 손해를 본 게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알래스카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금과 같은 귀금속이나 질 좋은 나무도 아닌 얼마나 있는지 확인조차 되지 않은 석유를 대가로 받았으니 말이다.
지금도 브라노벨이 파견한 탐사대가 열심히 유정을 찾고 있었지만, 알래스카 지역의 환경적 특성으로 인해 아직까지 눈에 띄는 소득이 없었기에 더더욱 그랬다.
협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이 들렸을 당시 미국 신문들에서 나를 비웃던 기사들이 쏟아져나왔듯, 이번 일은 러시아의 차르가 본인이 미숙하다는 걸 드러냈다는 게 세간의 인식이었다.
“폐하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본인의 길을 개척해나가셨지요. 저는 이번 일 또한 폐하께서 충분한 근거와 확신을 가지고 행하셨다고 믿을 뿐입니다.”
그나마 비테나 게르 같은 최고위층 인사들은 별다른 이견을 나타내지 않았지만, 가장 큰 의구심을 보이고 있는 건 러시아에 있는 재벌 가문들이었다.
이번 협약으로 인해 본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파이를 미국 기업들에 나누어줘야 했으니까.
과거 폴란드라는 나라로 불렸던 지역에 주어지던 관세 혜택과 무역 관련 특약을 줄이는 걸로 그들을 달래기는 했지만, 그들로서는 충분히 보일 만한 태도였다.
“고맙군, 다른 이들도 조만간 알게 될 걸세. 저들이 니콜라이의 냉동고라며 비웃던 협약이 사실은 미국이 그동안 맺어온 그 어떤 국제 협약보다 자신들에게 큰 손해를 가져온 실패작이라는 걸 말이야.”
그때가 됐을 때 미국 신문들의 헤드라인이 어떻게 장식될지가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자, 그러면 들어온 보고들에 관한 처리가 어느 정도 끝난 것 같으니 이제는 다가올 일들에 대한 얘기를 나누어야겠군. 뭐니뭐니해도 2차 빈 회의를 준비하는 데 신경을 써야겠지?”
아직 공식 명칭도 정해지지 않은 회의였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번에 열릴 회담을 2차 빈 회의라고 칭하고 있었다.
당시 나폴레옹이 뿌려놓은 씨앗에서 발아한 사상인 유럽 각국으로 퍼져나가던 자유주의를 막기 위해 모였듯 이번에 모이는 이유 또한 비슷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1차 빈 회의에서 만들어진 빈 체제가 실패했듯 이번에 각 나라들이 모여 만들어질 2차 빈 체제 또한 실패할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건 내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러시아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개혁 작업들이 본궤도에 오를 때까지의 시간만 벌면 되는 입장이었으니까.
다만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이번 빈 회의도 실패할 테니 준비하지 말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온 유럽이 인민주의라는 사상에 공포에 떨며 대비책을 마련하자고 목소리를 높이는 순간에 혼자서 찬물을 끼얹는 건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렇습니다, 폐하. 우선 제 생각으로 이번에 열릴 회담에서 가장 크게 다루어질 문제는 바로 영국에서 일어난 사태의 배후에 있는 인민주의와 관련된 주제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애시당초 빈에서 회담이 열리는 이유가 바로 영국에 설립됐던 코뮌이니까요.”
“이번에 시베리아로 위문을 떠난 삼촌인 세르게이 대공의 부인이신 엘리자베타 대공비뿐만 아니라 온 유럽의 비극이었으니 말이네. 다만 그것과 관련해서는 나올 얘기가 좀 뻔하지 않겠나? 각국에서 활동하는 인민주의자들을 때려잡자, 이를 위해서 서로 간에 협력을 증진시키자, 혹시라도 허튼소리에 매혹되는 노동자나 빈민들이 생기지 않도록 신경 쓰자 등등등.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리에 모인 이들끼리 악수를 몇 번 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뒤 서명이나 도장을 찍겠지.”
사실 인민주의와 관련해서는 그것 외에 별로 나올 얘기가 없기도 했다.
영국이 완전히 무너졌다면 모를까 조지가 러시아의 힘을 빌렸다고는 해도 다시금 런던을 탈환했으며, 겉으로는 지방에서의 소요도 차츰 진압하고 있는 걸로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지가 나에게 보내오는 편지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과는 꽤 차이가 있는 내용들이 담겨 있었지만, 최소한 다른 국가들이 보기에는 그랬으니까.
내가 이번 회담에서 인민주의와 관련된 얘기보다 더 집중해야 할 주제는 따로 있었다.
아니, 상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빌헬름, 그 외팔이 황제는 이번에 어떻게 나올 거라고 생각하나?”
지금도 호시탐탐 독일 제국의 영토를 넓힐 기회만 찾고 있을 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