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42)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42화
53장 위화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누가 봐도 대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대에도 그랬지만, 이 시대에도 대도시라는 말은 이곳에 살고 있는 구성원들이 저마다 생계를 위해 바쁘게 움직인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게 걸인이든 아니면 노동자이든 그것도 아니라 귀족이나 관료라고 해도 말이다.
남들보다 반 발자국이라도 앞서 움직여야만 대도시라는 이름의 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이런 말이 해당하지 않는-적어도 조금이나마 덜 적용되는-것으로 보이는 사람들 또한 과거 늪지대였던 지역에 농노들의 뼈로 지어진 도시에서 드물게나마 찾아볼 수 있었다.
“오늘 수업도 미뤄졌대! 쿠차말라¹ 할 사람!”
“스톨리핀 선생님 얼굴 본 게 언제인지 까마득해질 지경이야. 이러다가 얼굴까지 까먹는 건 아니겠지?”
“야! 스톨리핀 선생님 얼굴을 까먹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얘기냐? 멀리서 걸어오실 때 이마에 반사되는 빛만 봐도 바로 선생님인 걸 알 수 있는데?”
“그건 그래. 킥킥킥.”
“주가슈빌리! 너도 쿠차말라 안 할래? 벌써 10명이나 모였는데.”
지금의 차르가 황태자 시절 각지에서 모은 아이들만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한 발자국 벗어난 듯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본래라면 이들 또한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과제와 수업들로 인해 이런 놀이를 즐길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몇 주 전부터 수업을 담당하던 이들이 저마다의 업무로 인해 수업을 진행할 수 없게 되자 아카데미는 잠정 휴업과 다름없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아냐, 나는 괜찮아. 권유해 줘서 고맙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좀 이따 봐!”
오늘도 휴가 아닌 휴가를 즐기러 밖으로 뛰쳐나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주가슈빌리의 눈은 차게 식어있었다.
분명 저 친구들 또한 처음에는 자신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거나 다름없는 기회를 잡겠다는 열망으로 불타오르고 있었건만, 시간이라는 마취제는 저들의 의욕을 어느샌가 잠재운 모양이었다.
‘뭐, 그럴수록 나한테는 좋은 일이지만.’
이제는 3년이 되어가는 저들과의 인연을 생각하면 뭐라고 한마디 정도 충고를 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는 그런 행동 대신 오늘도 재수 없는 안경잡이가 있을, 자신들끼리는 서재라고 부르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쟁자는 줄어들수록 좋은 거였으니까.
“야! 범생이! 오늘도 여기에 있냐?”
“뭐야, 너밖에 없어? 다른 애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살고 있는 귀족들이 본다면 이게 서재냐고 코웃음칠 정도의 공간이었지만, 이들에게는 지식의 보고와도 같은 장소였다.
서적의 숫자는 다른 귀족들의 서재에 비해 모자를 지 몰라도 새로운 책들이 나올 때마다 최신화 작업은 바로바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니가 말하는 다른 애들이 우리하고 같은 기수를 말하는 거라면 오늘도 수업이 없다는 걸 알자마자 환호성을 지르면서 밖으로 뛰쳐나가던데?”
“하아, 수업이 미뤄졌다고 해서 평가도 같이 미뤄지는 게 아닐 텐데. 저러다가 퇴교라도 당하면 어쩌려고 하는 건지.”
오늘도 여전히 서재에서 책들 사이에 묻혀 공부하고 있는 브론시테인의 말대로 그들을 교육하는 이들은 주기적으로 테스트를 보게 한 다음 미리 설정한 기준에 미달하는 학생들은 가차 없이 집으로 보내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낙제로 인해 퇴교 조치를 당한 학생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차르의 자비로 만들어진 학교에서 처음으로 제 발이 아닌 타의로 인해 내쫓기는 사람이 본인의 기수에서 나올 수도 있다는 생각은 브론시테인의 미간이 찌푸려지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교육 프로그램이 원활하게 운영되는 걸 본 차르가 추가적으로 학생들을 모집함에 따라 학교라고 칭할 수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커진 지금 자신이 속한 기수에서 낙오자가 나온다는 게 달가울 리가 없었으니까.
“뭐, 우리가 이 정도인데 다른 놈들은 어떻겠어.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반면 주가슈빌리의 얼굴은 브론시테인에 비해 태연했다.
그는 어차피 같은 기수의 속한 아이들을 경쟁상대로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화가 끝나고 잠시 동안의 침묵이 흐른 뒤 먼저 입을 연 쪽은 주가슈빌리였다.
“그래서 어떻게 생각해?”
“뭘.”
브론시테인의 대답은 퉁명스러웠다. 그로서는 도저히 자신의 앞에 앉아있는 조지아 소년을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성격으로 보나, 민족으로 보나-물론 차르의 말씀대로 민족이라는 단위로 사람을 구분해서는 안 되지만-배경으로 보나, 이 정도면 신기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과 맞는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건지-브론시테인은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보고 있었다-주가슈빌리는 능청스럽게 입을 열었다.
“계속해서 수업이 밀리는 이유 말이야. 표면상으로는 영국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 거기에 파병을 간 군대에 대한 행정 작업 그리고 다가올 빈 회의에 대한 사전 작업으로 인해 시간적인 여유가 나지 않아서라고는 하지만, 뭔가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냐는 말이야.”
주가슈빌리는 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어도 이번에 계속해서 수업이 미뤄지는 이유에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큰 무언가가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심지어 그에 대한 서류 작업을 진행하는 관료 개개인조차도 자신이 뭐에 대해서 일하고 있는지 알고 있지 않은 무언가 말이다.
“그런 음모론이나 말할 거라면 여기 있는 너하고 밖에서 신나게 쿠차말라나 하고 있는 애들하고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네. 시험준비는 다 끝나고 말하는 거 맞지?”
반면 브론시테인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만 했다.
사실 그도 어렴풋이 무언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느끼고는 있었다.
수업이 이렇게 길게 미뤄진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앙아시아 지역에서의 소요나 대관식, 극동에서 벌어졌던 민족주의자들의 준동이 벌어지던 시기에도 수업은 정상적으로 이루어졌었으니까.
다만 그걸 지금의 자신이 알더라도 어떻게 행동할 만한 방향이 보이지 않았기에 관심을 끊었을 뿐, 지금 상황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건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브론시테인이 이렇게 나오자 주가슈빌리 또한 흥이 끊겼다는 듯 착 가라앉은 어투로 대답했다.
“물론 예전에 다 끝낸 게 당연하지. 너야말로 지금 읽고 있는 책 이번 시험 범위와는 상관없는 내용 아니야? 그러다가 이번에 나한테 1등 뺏기고 나서 분해해도 소용없는 거 알지?”
“하하하, 정말이지 지금까지 네가 했던 말 중에 가장 웃긴 말이었어. 그래, 제발 이번에는 날 제치고 1등을 해줬으면 좋겠네.”
자신의 말을 브론시테인이 이런 식으로 넘기자 주가슈빌리는 조지아에서 골목대장으로 살 때의 버릇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안경잡이가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보고는 다시금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그를 추궁했다.
“이야, 이 자식 뭘 읽나 했더니 ‘메테르니히와 빈 체제에 대하여’? 너도 이미 알고 있는 게 맞지? 이번 빈 회의에서 모든 게 해결될 거라고 보지 않는 거야. 그렇지?”
“그래 이 자식아! 그러니까 그만 귀찮게 굴지그래? 응? 제발 부탁이다!”
“이야, 괜히 찔리니까 자기가 화내는 것 좀 봐. 진짜 음흉 그 자체구나? 너.”
아무래도 오늘도 서재 안에서는 독서 대신 다른 행동들이 주가 될 것처럼 보였다.
* * *
주가슈빌리와 브론시테인이 오늘도 변함없이 말다툼에 이은 육체의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같은 도시에 있는 관료들의 하루는 그들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관료들에 대한 혹사는 이제는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할 만큼 만성화되고 일상화된 지 오래였다.
자신의 사비를 들여 재무부 건물의 일부를 증축하고 커피 기계를 들여놓을 정도의 상사를 두고 있는 그들로서는 억울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 미수로 그친 세르게이 대공을 위시한 보수파 귀족들도 연이은 혹사로 인해 누적된 관료계층의 불만을 이용할 생각을 했을 정도였으니 이 정도면 말 다했지 않은가?
그래도 그들이 생각한 것만큼 관료들에게 누적된 불만의 크기가 거대하지는 않았다.
지금의 차르가 황태자 시절부터 올려주기 위해 애썼던 그들의 봉급은 어느새 생계를 유지하는 것을 넘어 생활 수준을 높일 수 있을 정도로 상승했다.
비록 자신들이 그것을 마음껏 영위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마누라나 자식들이 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날이 갈수록 존경심에 가득 차는 걸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에 있는 그 어떤 국가보다도 가부장적인 마인드가 깊게 박혀 있는 러시아의 사내들에게 그보다 뿌듯한 건 없었다.
자신이 가정을 책임질 수 있는 데다 구성원들이 자신에게 존경을 보낸다는 얘기였으니까.
귀족 출신이 아닌 평민 출신의 관료들에게는 봉급이야말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는 유일한 수입이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지방 관료뿐만 아니라 중앙 관료들도 적당히 뇌물을 받거나 예산 부스러기를 자신의 주머니에 집어넣을 수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날카로워져 가는 감사반의 눈길을 피한다는 도박을 할 이유가 적어지고 있었으니까.
이는 오늘도 책상 앞에서 자신과 책상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고 있는 말단 관료인 빅토르에게도 동일하게 해당하는 얘기였다.
여느 때처럼 서류를 검토하던 그는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 문장들로 이루어진 문서를 발견했다.
‘……급변하는 전장 환경에 맞춰 포탄 파편이나 폭발로 인해 날아들 돌멩이들로부터 병사들의 머리를 보호할 장구류에 대한 연구를 위한 예산 배정? 이게 뭐지?’
재무부의 말단 관료인 그로서는 업무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보게 된 주제와 관련된 문서였다.
지금까지 그가 본 대부분의 서류는 농업 개혁과 관련된 주제거나 아니면 새로 신설된 산업, 공업 관련 부서에 대한 주제 그것도 아니라면 극히 드물게 올라오곤 하는 캄차카 지역의 원정대와 관련된 서류였으니까.
‘흠, 말은 거창한데 이거 결국 옛날에 사용되던 투구와 비슷한 걸 만들어야 한다는 거 아닌가? 별로 쓸모는 없을 거 같은데.’
그의 생각과는 달리 빅토르는 자신의 상사에게 올라갈 필요가 있는 문서로 그 서류를 분류했다.
이미 전쟁성에서 이런 물건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첨부되어 있는 서류에 대한 판단은 그가 내릴 게 아니었으니까.
오늘이 평상시와 같았다면 일하다 보니 이런 주제의 문서도 보는구나 정도의 감상만을 남기고 그의 뇌리 한구석으로 넘어갔을 경험이었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무슨 날인 듯싶었다.
그가 집어 든 다음 서류도 빅토르가 흔히 접하지 못한 주제가 담겨 있었으니까.
‘참호와 같은 곳에서 발을 보호하기 위해 물이 새지 않는 군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아니, 그걸 위해서 연구비용을 달라고 할 정도라고? 거기에 다음 서류는 다가올 전장 환경에서 비행기라는 물건의 유용성에 관한 검토? 허, 이건 발안자가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회원인 콘스탄틴 치올콥스키라고?’
이어지는 서류들 또한 그의 상사에게 넘어갈 목록에 추가됐지만, 빅토르는 오늘이 무슨 날인 것 같았다.
그가 듣도 보도 못한 주제들에 관한 문서들이 넘쳐나는 그런 날 말이다.
‘오! 그래도 이번 건 좀 익숙하네. 그래, 뭐 이런 특이한 날도 있는 거겠지.’
그가 특이한 서류들의 연속 이후에 찾아온 그나마 익숙하다고 느낀 서류의 제목은 다음과 같았다.
[트랙터의 수입과 더불어 진흙탕과 같은 환경 속에서도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을 정도의 성능 향상을 위한 연구의 필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