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43)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43화
군주의 자리는 흔히들 고독하다고 한다.
사실 군주가 아니라 남의 위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독감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조금의 권력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대의 근처에는 꿀을 찾아 몰려든 파리들처럼 사람들이 들끓겠지만, 마치 군중 속의 고독처럼 그들이 외치는 말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 가슴에 뚫려 있는 구멍은 메꿔지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때 느껴지는 고독감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책임감이 크면 클수록 더 심하게 느껴질 것이다.
트루먼이 그랬던가? ‘공은 여기에서 멈춘다’고.
그래, 공이 멈추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본인의 선택으로 개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앞날까지 결정지어야 하니 말이다.
멀게는 기업이나 단체의 장부터 가까이는 대학 시절 한 번쯤은 경험해봤을 팀플 조장에게도 각자의 ‘공’이 있다.
‘물론 나에게도 말이지.’
지금쯤이면 얼핏 보기에는 별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주제의 보고서들이 한창 재무부의 보고 계통을 따라 올라가고 있을 것이다. 다양한 분야에 누군가는 이런 게 왜 필요하냐고 물을지도 모를 그 보고서들의 목적은 단 하나였다.
다가올 대전쟁(Great War),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을 대비하기 위함이었으니까.
황태자 시절부터 나는 제1차 세계대전-과연 이 세계에서도 1차라는 명칭이 붙을지는 잘 모르겠지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 왔다.
아무리 지정학적, 민족적, 각 국가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른다고 할지라도 러시아 제국의 후계자 그리고 차르라는 내 입장에서는 다르지 않겠냐는 희망 또한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내 위치에서 보면 볼수록 다가오는 전쟁을 막을 방법은 없어 보였다.
21세기까지도 세계의 화약고라 불리던 발칸 반도는 둘째 치더라도 19세기에도 연이어 일어났던 전쟁들로 인한 각 나라의 국민들 사이에 팽배한 적대감과 팽창에 팽창을 거듭하는 열강들은 사라예보에서의 그 저주받을 총성이 없었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어떤 계기로든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나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거기에 오히려 러시아 제국의 황제라는 내 위치 또한 전쟁을 막는 데 도움으로만 작용하지 않았다.
러시아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만 하더라도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부어야만 했으니까.
나는 세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집안의 문제를 소홀히 할 정도의 위인이 되지 못했다.
내가 주도적으로 러시아라는 겉만 화려한 건물 안에 쌓여 있는 온갖 쓰레기와 균열, 망가진 부분들을 수리하지 않았다면 당장 얼마 지나지 않아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들이 불행한 최후를 맞이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다가올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지를 세계에서 유일하게 알고 있는 나로서는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시기 유럽은 전쟁에 대한 낭만주의와 아직까지 기사도라는 형편 좋은 물건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곳이었으니까.
전쟁이라고 해봐야 민간인들에게는 별다른 희생이나 고통을 주지 않으며 젊은이들에게는 단숨에 신분을 상승할 수 있는 사다리이자 본인의 명예와 용기를 증명할 수 있는 스포츠 경기로 여겨지고 있었다.
거기에 조만간 어떠한 형태로든 전쟁이 터질 거라 예상하는 사람들도 드물게나마 있긴 했지만, 그들조차도 다가올 전쟁이 각 나라 사이에 복잡하게 얽힌 동맹과 협약, 밀실 조약과 비밀 계약 등이 온 유럽 아니 세계를 전쟁으로 밀어 넣을 거라고까지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앞으로 유럽 대륙애서 대규모의 전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은행에 예금되어 있는 재산과 금괴, 프랑스의 기업이 독일에 공장을 설립하고 독일의 귀족이 프랑스의 주식 시장에 자본을 투자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전쟁은 그야말로 비이성적이며 경제학적으로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으며 그런 사람들에게 전쟁이라는 선택지는 본인들의 재산을 늘리거나 돈을 버는 기회가 아닌 오히려 돈을 없애는 선택으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말하고 다니는 다음과 같은 논리는 이런 시각에 한층 신빙성을 더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라는 존재를 너무나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개인이라면 그들의 말대로 항상은 아니더라도 대부분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을 내릴지도 모르겠다.
본인이 어떠한 선택을 함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것과 잃게 될 것 등을 따져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개인과 대중은 달랐다.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본인의 이득을 따지던 사람도 대중에 속하게 된다면 광기에 휩쓸리는 건 특이하다고 볼 수도 없는 현상이었으니까.
거기에 이 시기는 대중들의 여론이라는 돛이 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정할 수 있는 시대였다.
여전히 군주라는 존재가 나라 위에 군림하고 귀족이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대중들의 여론을 무작정 무시할 수 없는 시대였다.
그렇기에 위에서는 전쟁을 원하지 않더라도 아래에서부터 전쟁을 외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이를 무작정 무시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최근 영국에서 벌어진 일을 지켜본 대다수의 유럽 군주들이 지금은 특정한 분야에서만큼이라도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지만, 무언가 하나의 계기만 생긴다면 지금과 같은 분위기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가능성이 컸다.
‘그 계기가 아프리카가 될 확률이 높다고 내가 예상 중이라고 해도 내 생각과는 달리 동남아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원래 역사처럼 발칸이 될 수도 있지만 말이지.’
그랬기에 내가 전쟁을 막을 수가 없다면 차라리 전쟁에 뛰어들지 말고 한발 물러나서 미래와 현재의 경쟁자들이 자기들끼리 서로 쏘고 죽이고 하는 걸 구경만 한다는 선택지 또한 떠올랐었다.
하지만 이 또한 이루어지지 못했다.
러시아가 벨기에처럼 중립을 선언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힘이 넘쳐났기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타타르의 멍에 이후 유럽 질서로의 편입을 간절히 바랐던 러시아가 지금껏 해온 일들을 나 혼자만의 힘으로 되돌린다는 건 처음부터 무리가 있는 얘기였다.
만약 내가 모든 걸 뒤로한 채 고립주의를 택하기 위해서 온 힘을 쏟아부었다면 어쩌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러시아에 남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는 고립주의를 외치고 있는 미국처럼 바다라는 천연 장애물이 양쪽으로 있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육로로 이어진 기나긴 국경선만을 가지고 있었다.
미국만큼의 공업력도 가지고 있지 못했으며 기술력이나 식량 생산량 또한 미국처럼 풍족하지 못했다.
처음부터 문을 걸어 잠글 수 없었던 러시아로서는 좋으나 싫으나 유럽 내에서의 동맹을 찾아야 하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내가 니콜라이의 몸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러시아는 자신에게 배신을 안겨준 독일 제국과 오-헝 제국이 구성한 삼국협상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국을 찾아다녔으며 프랑스와의 협상은 내가 실권을 얻기 오래전부터 이미 이루어지고 있던 거래였다.
결국, 나에게 남은 선택지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미래에 다가올 대전쟁을 철저하게 대비함으로써 전쟁 도중에 발생할지도 모를 혁명에 대비하고 전장에서 희생될 사람의 숫자를 최대한 줄이는 것. 그리고 되도록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전쟁이 끝난 후 전후 처리를 공들여서 하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한 준비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철모라는 존재는 중세시대 이후로 자취를 감추고 구시대의 유물로 여겨지고 있었지만, 새로이 보급될 철모는 참호에서 발생할 부상자의 숫자를 줄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을 게 분명했다.
거기에 기동력이 화력을 압도하지 못해 발생한 1㎞를 전진하기 위해 수많은 생명을 갈아 넣는 참호전의 그 지옥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차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이동하면서 화력 제공과 함께 엄폐물을 제공할 수 있는 토치카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의 개발 또한 추진되고 있었다.
‘독일과 프랑스가 맞붙었던 서부전선보다는 기동전이 중심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기관총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는 문제에 대한 해답은 준비를 해야만 할 테니까.’
이렇듯 러시아라는 국가는 알게 모르게 다가올 전쟁에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 또한 한 가지 마음의 준비를 더 해야만 했다.
지금까지 내가 내린 결정과 시행한 정책들은 대체로 사람을 어떻게 덜 죽게 만드느냐가 아닌 어떻게 하면 더욱 사람을 많이 살리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서 나는 선택을 해야만 할 것이다.
수천 명을 희생시켜 수만 명을 구할 선택을 해야 할 것이고, 전략적 중요성이 떨어지는 곳에 대한 지원 대신 요충지나 전장의 방향을 결정지을 장소에 대한 지원을 명령해야 할 것이다.
내가 하는 서명, 서명마다 최소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죽어 나갈 것이고 이는 모두 내가 짊어져야만 하는 책임이 될 것이다.
이제 와서 그런 결정을 못 하겠다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 왔다.
당장 최근에 내가 영국에 시행했던 공작만 하더라도 수많은 사람들의 피가 흐를 걸 알면서도 내린 명령이었으니까.
다만 포기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나도 사람인 이상, 사람이기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속에 차오르는 것만은 막을 수가 없었다.
부들부들.
“……허.”
이와 관련된 생각을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손이 떨리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머리로는 수백 번 생각하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나라와 나라 사이에 벌어지는 게 아닌 세계를 통째로 바꿔놓을 전쟁을 앞에 두고는 본능적으로 몸이 긴장을 떨칠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미 후회하거나 되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한 지 오래다. 이제 와서 손에 묻을 피를 걱정해서야 러시아 제국의 차르라고 할 수 없겠지.”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피를 뒤집어쓰겠다고 다짐했던 날 이후로 몇 번이고 되내었던 말이었다.
그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
러시아 제국이 흘릴 피는 최소한으로 줄이고 우리의 적이 흘릴 피는 최대한으로 늘리는 것은 지금껏 내가 해왔던 일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다시금 유럽 대륙에 평화를 가져다줄 거라 생각하고, 다른 누군가는 또다시 몇 년 가지 못하고 무너져내릴 반동주의적 움직임이라고 생각하는 빈 회의가, 지금은 나 혼자만이 품고 있는 생각이 차츰 표면 위로 드러나는 무대가 될 것이다.
“…….”
어느새 손의 떨림은 멎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