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48)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48화
이 세상에서 중재라는 단어와 가장 동떨어진 국가를 말하라고 한다면 열 명 중 아홉은 아마 러시아 제국이라는 나라를 입에 담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원하는 게 있다면 주먹을 쥐고 그 주먹을 눈앞에서 흔들어줘라’라는 말이 러시아 제국의 기본 외교 이념이라는 우스갯소리는, 러시아 제국이 다른 나라들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었다.
지금 차르의 자리에 올라 있는 니콜라이 2세가 실권을 잡을 때부터는 그러한 성향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진 이미지가 단 몇 년 만에 바뀔 수는 없었으니까.
그것도 유럽인들이 가까이에서 접할 수 없는 머나먼 동토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인식이 강한 러시아이기에 더욱 그랬다.
“이건 말도 안 된다! 프랑스와 방위 협약을 맺지 않은 상태여도 신뢰가 가지 않는 상대가 러시아인데 심지어 프랑스와 동맹을 맺은 상태로 중재를 하겠다고 나서다니! 이건 들을 가치도 없는 제안이다!”
사실 독일과 러시아 사이의 양호했던 관계를 먼저 배신한 건 독일이었지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거기에 빌헬름 2세에게도 러시아의 중재를 섣불리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삼제동맹이 깨진 이후에도 러시아와 독일 사이를 얇게나마 연결해 주었던 끈이라 할 수 있는 불가침 협정인 재보장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게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를 쫓아내고도 그의 외교원칙이라 할 수 있는 프랑스를 유럽에서 왕따로 만든다는 대명제는 계속 이어나가려 했지만, 러시아와 친하게 지낸다는 명제는 지키지 않은 황제의 실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어째서 중재에 나선다고 하는가? 그냥 우리와 함께 독일을 양쪽에서 박살 낼 준비만 하면 될 것을 왜 평상시에 하지도 않던 행동을 하려고 드는 것인가? 설마 러시아는 본인이 제2의 영국이 되는 것을 바란단 말인가?”
독일이 러시아가 나선다는 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만큼, 단순히 보면 동맹국인 프랑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할 수도 있었겠지만, 프랑스 측의 반응도 뜨뜻미지근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니, 어떻게 보면 독일에 버금갈 정도로 거부감을 느낀다고도 볼 수 있었다.
중재란 무엇인가? 당사자 사이에서 직접 이루어지는 대화가 아니라 중재자라는 제삼자를 포함해서 대화가 진행되는 만큼 소위 말하는 중개비를 지불해야 하는 행위였다.
“러시아는 본인들이 철도를 깔고 기계를 수입하고 공장을 설립하는 등의 돈이 어디서 왔는지 벌써 잊어버렸나? 그 재화는 우리 프랑스가 제공한 차관에서 비롯된 것을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데 이제는 중개비용까지 뜯어내려고 한다는 말인가?”
프랑스가 러시아와의 방위조약을 맺기 위해 들인 공 중 하나가 막대한 양의 차관 제공이었던 만큼, ‘러시아가 우리를 동맹이 아닌 단순한 물주이자 지갑으로 여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의 발로였다.
이렇듯 양측 모두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지 못한 중개인의 등장이었지만, 막상 이번 일에 뛰어든 러시아 또한 두 나라에 할 말이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 * *
혹자는 말할지도 모른다.
러시아가 전쟁 대신 중재를 외치는 날이 찾아오다니 이거야말로 런던에 걸려있던 유니언 잭이 짓밟히고 적기가 올라갔던 일 이상으로 신기한 일이라고 말이다.
신문기사를 살펴보던 누군가는 ‘본인이 어제 너무 과음을 해서 헛것을 보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품을 수도 있겠고, 다른 사람은 러시아의 차르가 아편이라도 한 게 분명하다고 얘기하겠지.
“폐하, 말씀하신 대로 양측 모두에게 우리 측의 중재 의사를 밝히긴 했습니다만…….”
빈에 있는 게르 외무장관과 혹시라도 일이 더 틀어진다면 발령될 총동원령을 준비하기 위해 전쟁성에서 일하고 있는 비테를 대신해 내 곁을 지키고 있는 사람은 스톨리핀이었다.
두 사람에 비교하더라도 능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없는 그였지만, 아직 감정을 숨기는 데는 미숙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말끝이 흐려짐과 동시에 표정에서 현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의 감정이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두 나라 모두 우리를 미친놈으로 보고 있겠지. 그렇지 않나?”
“……예.”
전쟁이 끝나고 난 뒤, 가장 미움을 받는 국가는 전쟁을 진행한 양 국가나 그들과 함께 싸운 동맹국이 아닌 ‘중립국’이라고 한다.
이긴 측에서는 중립을 선언한 쪽이 본인들에게 합류했다면 싸움을 더 일찍 적은 피해로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패배한 측에서는 중립국이 자신들과 함께 싸웠다면 이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하려는 일은 바로 이 혼돈의 도가니 속에서 중립을 선언하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실제로는 프랑스와 방위조약을 맺은 이상 중립이 아니었지만, 전쟁 준비를 하는 대신 협상장을 만들겠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그렇게 느껴질 수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현명하지 않게만 보이는 선택을 내렸느냐, 그에 대한 이유는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자네도 이번 선택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예. 그렇습니다, 폐하. 본래 우리 러시아가 외교협상장에서 그다지 높은 신뢰도를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이번 행위는 그야말로 그나마 있던 신뢰도 잃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스톨리핀의 말은 현재 러시아 외무성을 포함해 관료들의 시각을 대변한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래, 그럴 수 있겠지. 표트르 대제부터 시작해 유럽 내에서 동맹을 찾기 위해 무던히 많은 시간을 쏟았던 선제분들의 노력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수도 있는 일이야. 나폴레옹을 대조국전쟁을 통해 암초로 집어넣었던, 그리고 이를 위해 지불했었던 무수히 많은 피 값으로 계산한 외교적 신뢰를 이번 일로 모조리 잃어버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말이네.”
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매우 민감한 주제였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내가 황태자 시절부터 해온 일들이 무의미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만약 지금 당장 전쟁이 발발하고 우리가 프랑스와의 조약에 따라 프로이센 지역과 갈리치아 전선으로 진격한다면 과연 얼마나 전투력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은가? 병사들을 전선으로 실어나르는 수송력은 얼마나 확보되어 있지? 병사들은 둘째로 치더라도 탄약이나 하다못해 포탄이라도 한 달 분량이 있나? 내가 장담하건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전쟁이 펼쳐진다면 우리는 상대편이 보유하고 있는 총알과 포탄이 우리 병사들의 숫자보다 적기만을 바라야 할 거야.”
이는 러시아의 고질적인 문제인 부족한 공업력과 열악한 교통수단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다는 걸 의미했다.
황태자 시절부터 러시아의 재벌가는 물론이고 미국과 같은 외국 자본을 끌어들이면서까지 러시아군이 소모할 탄약과 같은 소모품의 자체 생산과 철도로 대표되는 수송력의 확보를 위해 노력했건만, 여전히 이놈의 빌어먹을 정도로 넓은 나라는 시간을 필요로 했다.
“물론 지금까지의 시간이 무의미했다는 건 아니네. 3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러시아 육군 병사들에게 지급될 모신 소총의 절반 이상이 미국과 같은 외국에서 생산됐지만, 지금은 연 필요 분의 70%까지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으니 말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포탄과 같은 전쟁을 위한 핵심 물품은 해외로부터 수입하는 양이 더 많다는 게 문제네. 앞으로의 미래 전장에서 적과 얼굴을 맞대고 있을 병사들에게 신이라고 불릴 존재는 드높은 천상에 계신 하느님이 아닌 포병이 될 게 분명하니까.”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보병 개개인에게 신형 총기를 지급하는 사업 대신 포와 포탄을 국산화하는 걸 우선시했겠지만, 나도 신이 아닌 이상 이런 착오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외에도 막 연구 단계에 들어간 전선을 돌파하기 위한 장갑차나 처음으로 인류의 전장이 땅과 바다만이 아닌 하늘로 넓어질 미래를 위한 연구 등도 이유로 들 수 있었다.
조금만, 어떻게든 조금만 시간을 확보해야만 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어떤 의미인지 저도 알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폐하, 이런 이유로 중재를 요청하더라도 독일과 프랑스 양쪽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들이 우리의 사정을 이해해 줄 리가 없으니까요.”
“그래, 맞는 말이지.”
스톨리핀의 말이 옳았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건 우리가 당장 전쟁에 돌입할 수 없는 이유였으니까.
독일과 프랑스에 이런 말을 한다면, 독일은 얼싸 좋구나 하며 우리가 제대로 참전하기 전에 프랑스를 정리하자며 날뛸 게 분명했고, 프랑스는 ‘아니, 그래서 님들 병사가 없는 것도 아니잖음?’이라고 말하며 총알받이로나마 본인들과 맺은 조약을 이행하라고 나올 게 분명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들에게 이유를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나. 당장 전쟁을 할 수 없는 이유 말이야. 우리에게는 다행이게도 조금의 소란도 나라가 뒤집힐 수 있다고 여길 만한 사례가 있지 않은가?”
“사례라니요?”
“우리 러시아 제국의 가장 우수한 수출품이 뭐라고 생각하나?”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스톨리핀은 방금 본인이 한 말에 대한 해답을 얻고 싶은 눈치였지만, 내 말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잠시 생각을 하는 듯했다.
“아마도, 곡물이지 않겠습니까? 폐하께서 방금 말씀하셨다시피 아직 우리 러시아 제국의 공업력은 부족한 면이 많으니까요.”
그의 대답은 지극히 합리적인 이유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직도 제국의 1년 수출액 중 40% 이상이 곡물인 걸 생각한다면 정답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에 러시아의 가장 우수한 수출품은 상품이나 물건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사람이었다.
지난 시절 자발적으로나 아니면 타의적으로 러시아 제국을 떠나 외국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사람들이야말로 우리가 유럽으로 내보낸 가장 뛰어난 수출품이었다.
바로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하겠다는 신념에 가득 찬 혁명가들은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으니까.
지난번 런던에서와 같은 대규모 봉기는 필요하지도 않았다.
여느 때와 같은 상황에서 발견된 조그마한 불씨는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되겠지만, 런던에서의 그 일이 있고 난 뒤 눈에 들어온 작은 위험요소는 외부의 적에게 총부리를 겨누기 이전에 내부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할 거라고 예상되었으니까.
문제가 있다면 그들에게 불을 붙일 도화선이었지만, 이것도 해결할 방법은 있었다.
런던 코뮌 이후로 전설이라는 수식어로도 부족할 정도의 명성을 얻은 혁명가 가폰과 그의 동료들이 있었으니까.
내가 사람이라는 해답을 말한 이후로도 스톨리핀은 감을 잡지 못한 얼굴이었다.
인민주의자들을 유럽으로 수출한다는 작전은 그가 개입하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영국에 있는 2만 명의 우리 군대도 충분히 협상 카드가 될 수 있겠지. 독일이 아무리 최근 해군력을 증강했다고 하더라도 프랑스 해군과 함대 결전을 준비하면서 본토 해안선을 모두 방어할 수는 없을 테니까.”
이와 관련된 정보는 최소한의 인원이 아는 게 나았다.
제국의 황제가 다른 군주들에게 인민주의자들을 선물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온 유럽 공공의 적이라는 타이틀이 내 것이 될 게 분명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