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58)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58화
반노프스키의 은퇴식은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선황인 알렉산드르 3세가 크림반도로 요양을 떠난 이후로 실권을 잡은 니콜라이 2세가 여태껏 이런 식의 행사를 되도록 검소하게 치른 것을 생각해 보면 의외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폐하께서 전쟁 장관을 무척 각별하게 생각하신 모양이군.”
“아무래도 그렇지 않겠나. 최근 들어 군과 관련해서 신경을 많이 쓰시는 것 같던데 아무래도 관련 일을 진행하시면서 전쟁 장관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실 수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네.”
“음음, 반노프스키 장관께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나. 러시아 제국에 있는 동맹이라곤 단 두 곳밖에 없다고 말이네. 육군과 해군. 폐하께서도 말만 번지르르한 외교관 놈들보다 우리 군에 더 믿음이 가셨겠지.”
자리에 참석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군관구 사령관을 비롯해 각종 군 인사들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표정이 나타났다.
그들 중 몇몇은 황태자 시절부터 지금까지 군사적 행동보다 외교적 해결방안을 더욱 선호하는 차르를 보며, 혹시 황태자 시절 안디잔 반란을 빠른 속도로 진압했던 그 당당한 모습이 사라진 건 아닌가 걱정하기도 했었다.
거기에 군대보다 외무성을 더 신뢰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던 이들도 많았다.
이는 단순히 정부 부서 간에 자존심 싸움이 아니었다.
전제군주정에서는 군주의 총애가 이전보다 훨씬 많은 예산, 사회적 위치, 받는 대접 등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니까.
반대로 외무성을 대표해 참석한 게르 외무장관을 비롯한 휘하 관료들은 표정이 조금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과장을 보태자면 이번 은퇴식은 니콜라이가 정식으로 차르 자리에 즉위했다는 것을 선포한 대관식 바로 다음으로 화려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 외의 다른 부서의 관료들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는 반노프스키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80을 바라보는 나이에 겨우 은퇴를 하는 거라고는 해도 어찌 됐건 은퇴는 은퇴였으니까.
방금 반노프스키와 짧은 인사를 나누고 본인 자리에 앉은 비테는 그야말로 사람이 표정으로도 단어를 말할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라도 지금 그의 얼굴을 본다면 ‘부러움’이라는 글자가 떠오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행사의 당사자나 아니면 참석자들이 이런 다양한 생각들을 하고 있는 사이 오늘의 또 다른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니콜라이 2세의 입장을 알리는 행진곡이 울려 퍼졌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입장한 니콜라이 2세는 웃는 얼굴로 반노프스키를 향해 다가갔다.
무려 190㎝라는 키와 그에 걸맞은 풍채를 가지고 있던 아버지 알렉산드르 3세와는 달리 170㎝라는 크다고 하기에 어려운 키의 니콜라이였지만, 당당한 태도와 그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육체보다 더 크게 보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그와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눴던 사람들이 하는 말 중 하나가 과연 로마노프의 헤라클레스라고 불리었던 사내의 아들다운 풍채였다는 말이었으니까.
반노프스키와 웃는 얼굴로 악수하며 그의 귓가에 무언가 속삭인 니콜라이는 이내 단상 위로 올라갔다.
차르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대본 없는 연설은 러시아 내에서는 이미 유명했다.
초창기에는 준비한 대본을 보지 않고 말하다가 나중에는 쇼맨십을 발휘한 건지는 모르지만 미리 쓴 대본을 찢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 후로 지금은 아예 처음부터 대본처럼 보이는 종이들을 들고 올라가지를 않았다.
오늘도 단상 위에 오르는 차르의 손은 비어 있었다.
“오늘 우리는 한평생을 러시아 제국에 헌신한 한 사내의 퇴임을 축하하고 그의 앞날에 축복을 기원해 주기 위해 모였습니다.”
차르에 즉위한 이후로는 기본적으로 당당한 어조만을 사용해온 니콜라이였지만, 오늘은 자리가 자리인 만큼 정중한 어조로 말을 하는 모습이었다.
“반노프스키 장관은 1854년 우리 러시아 제국의 오랜 적인 튀르크 놈들과의 전투에서 두각을 드러낸 이후로 항상 제국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왔습니다. 저의 아버지뿐만 아니라 할아버지이신 알렉산드르 2세 시절부터 말입니다. 그는 항상 주어진 임무를 기대되는 것보다 훨씬 우수하게 끝마쳤으며 언제나 제국의 가장 강력한 검이자 제일 든든한 방패였습니다.”
니콜라이가 말을 마치며 반노프스키를 손으로 가리키자 참석자들로부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는 이러한 찬사를 들을 자격이 충분했으니까.
막상 찬사와 칭송을 듣는 반노프스키의 얼굴은 아까에 비해 어두워져 있었지만.
그런 모습에 좌중들이 의아함을 느끼기 전에 니콜라이가 다시 말을 시작하자 그들은 박수를 멈추고 다시금 차르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대공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음속으로 전쟁 장관에게 애도의 마음을 표시했지만 말이다.
“그의 업적은 단순히 전투나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반노프스키는 처음으로 군대에 보급되는 음식을 상하기 쉬운 빵에서 비스킷으로 바꾼 선구자였으며 그의 개혁 덕분에 러시아 제국의 자랑스러운 군인들이 툭하면 상한 음식을 먹고 생긴 위장병들로 인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그는 쓸데없이 복잡해 행정 업무가 처리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도록 만들었던 지방 군사 행정들을 과감하게 정리하는 등 자신이 단순 군사 업무만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었습니다. 생각 같아선 그가 행한 업적들을 이 자리에서 다 말하고 싶습니다만, 만약 그런다면 은퇴식이 오늘 안에 끝나지 못할 테니 이쯤에서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정 궁금한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후 출간될지도 모를 반노프스키 장관의 회고록을 보도록 하는 게 좋겠군요.”
니콜라이가 가벼운 농담으로 말을 끝마치자 좌중들 사이로 웃음이 번져 나갔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 가운데 전쟁 장관이 군대에서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일이 무엇인지 하나도 모르는 사람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반노프스키가 러시아 제국군의 리모델링을 이끌었다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이윽고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차르는 단상을 한 번 가볍게 두드리며 연설을 재개했다.
다만 그의 어조는 방금보다 강해져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이 자리에서 장관에게 러시아 제국에서 가장 큰 영예 중 하나이자 반노프스키, 바로 그이기에 합당한 명예를 수여하고자 합니다. 그는 앞으로 전쟁 장관에서는 물러나지만 세나트(차르에게 조언을 해주는 원로원, 러시아 제국 최고 명예직)의원으로서 활동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바로 나, 니콜라이 2세가 임명한 첫 번째 세나트 의원이며 이번 세기에서 마지막으로 임명될 세나트 의원이 될 것입니다. 반노프스키, 앞으로 나오게.”
차르의 말이 끝나자 좌중의 시선은 전쟁 장관, 아니 이제는 세나트 의원이 된 반노프스키를 향했다.
러시아 제국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명예를 허락받은 사람이라기엔 기운이 없어 보이는 발걸음으로 그는 차르 앞으로 향했다.
이윽고 차르 앞에 서게 된 반노프스키의 얼굴은 그의 뒷모습만을 볼 수 있는 좌중들의 위치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차르가 인자한 웃음을 띠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그도 이런 명예를 자신에게 준 니콜라이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을 거라 예상되었다.
“반노프스키, 그대는 이제 러시아 제국을 다스리는 아직은 미숙한 나에게 아낌없는 조언과 내가 그릇된 길로 나아갈 때마다 옆에서 회초리를 들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게 될 겁니다. 앞으로는 전쟁 장관이 아닌 세나트 의원으로서 단순히 군대와 관련된 업무가 아니라 국정 운영 전반을 다룰 수 있게 된 만큼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에 뒤처지지 않을 정도의 능력을 기대 하겠습니다.”
“……이런 명예를 저에게 주실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폐하.”
“하하, 이런 걸 요새는 깜짝 선물이라고 한다더군요. 자세한 사항은 이 행사가 끝나고 얘기하도록 합시다.”
“저 같은 시대에 뒤처져 가는 노인에게는 너무나도 버거운 짐이 아닐까 싶습니다, 폐하.”
하지만 반노프스키의 겸손은 뒤에서 터져 나온 환호에 묻혀 버리고 말았다.
“축하드립니다, 장관님! 아니, 의원님!”
“반노프스키 만세! 황제 폐하 만세! 러시아 제국 만세!”
이러한 환호는 자리에 앉아 있던 군 인사들로부터 터져 나왔다.
세나트가 어떤 자리이던가.
비록 알렉산드르 2세 시절 이루어진 행정 개혁으로 인해 과거 표트르 대제가 설립했을 때만큼의 실권은 없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명목상으로는 입법과 행정상 최고 기관이었으며 제국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고 있는 자리였다.
그런 만큼 니콜라이가 반노프스키를 세나트 의원으로 임명했다는 사실은 군 인사들에게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니콜라이가 차르가 된 이후 처음으로 임명한 것 아니던가.
군 인사들로부터 시작된 환호는 이윽고 은퇴식에 참석한 이들에게로 퍼져 나갔고 부서를 가릴 것 없이 쏟아지는 함성은 반노프스키가 차르의 말을 감히 거절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차르와 전 전쟁 장관을 제외하고 환호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도 몇 명 있었다.
그들은 특이하게도 미하일 대공을 제외하자면 한 부서의 장관을 맡고 있는 고위직이었다.
단순히 생각하자면 질투심으로 인해 환호를 보내지 않는 거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그들의 표정은 질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두려움과 탄식이라는 감정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재무장관인 비테의 안색은 거의 창백하다 못해 푸르죽죽해지고 있었으며 외무장관인 게르의 표정은 무언가 불길하지만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겠던 일이 실제로 닥쳐왔을 때의 얼굴을 연상케 했다.
이외에도 다른 부서의 장관들 또한 환호를 보내고 있는 자신들의 부하들 사이에서 홀로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미하일 대공은 이내 고개를 흔들며 그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을 내뱉었다.
“분게나 비슈넷그라스키는 전생에 나라라도 구했던 모양이군.”
지금의 상황으로 비추어봤을 때 진정한 의미로의 은퇴를 실현한 사람은 그 두 사람이 유일할 것으로 보였으니까.
* * *
음, 정말이지 상쾌하기 그지없군.
이주 전의 반노프스키의 은퇴식-이자 새로운 시작-이후 나는 앓던 이가 쏙 빠진 기분이었다.
감히 나에게 거짓말을 한 데다가 서류 폭탄까지 안겨준 발칙한 반역자에게 응당한 처벌을 내림과 동시에 그를 이용해 중앙아시아에서 폭주할 기미를 보이던 군 내부의 분위기도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나트 의원으로 취임하게 된 반노프스키의 첫 번째 업무는 자신이 군 생활을 시작한 거나 다름없는 장소이자 본인의 명성을 쌓기 시작한 중앙아시아로의 파견이었다.
전쟁 장관이던 시절에는 그가 맡고 있던 다른 업무나 직책상 위치 때문에 파견 보내는 것이 조심스러웠지만, 이제는 달랐으니까.
중앙아시아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들은 바로 자신들이 발을 내디디고 서 있는 장소에서 신화를 써내려갔던 노장의 방문 이후로 함부로 입을 놀리는 일이 없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군대라는 피라미드 꼭대기에 위치한 반노프스키가 최고의 명예직이라는 대접을 받는 걸 보면서 군 고위직들 사이에서 피어오르던 불만도 어느 정도는 사그라든 것 같았다.
군대라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던 사람이 최고의 명예직을 받는 것만큼 내가 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잘 드러낼 수 있는 일은 없을 테니까.
나는 이주 전 그의 은퇴식이 끝난 뒤 집무실에서 이루어졌던 반노프스키와의 대화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