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59)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59화
“폐하! 이건, 오늘 일은 저와 약속해 주셨던 것과 다르지 않습니까! 세나트라니요! 분명 저에게 다른 직책이나 어떤 명예직이라도 맡기지 않겠다고 저에게 말씀해 주시지 않았습니까!”
은퇴식을 빙자한 임명식이 끝나고 집무실에서 나와 독대한 반노프스키는 여태껏 봐왔던 그 어떤 모습보다도 흥분한 모습이었다.
전장에서 활약했던 시기의 젊은 자신을 불러온 것처럼 느껴졌다. 튀르크 놈들의 머리를 깨부수던 용맹했던 군인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도 할 말은 있었다.
“그래, 분명히 나와 그대 사이에 그런 약속이 있었지. 그대가 원하는 대로 은퇴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었던 약속 말이야.”
나의 말투는 차르에 즉위한 후 평상시에 이용하던 말투로 돌아가 있었다.
은퇴식은 끝났으니까.
“그런데 어찌!”
“하지만 나와의 약속을 어긴 건 자네가 먼저 아니었던가? 차르의 가장 충실한 신하라고 자부하면서 감히 나를 기만하고 속인 건 벌써 잊어버렸나?”
사실 당시 반노프스키가 관련 서류들을 떠넘기고 도망갔을 때 그렇게 분노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충실하게 믿던 신하로부터 배반당한 비운의 군주라는 역할을 연기했다.
‘할아버지 시절부터 로마노프 황가에 충성을 바치던 사람마저 나에게 거짓말을 하는데 내가 어떻게 신하들을 믿고 신뢰할 수 있겠느냐’, ‘원래 군주를 기만한 죄는 반역죄에 버금가는 중죄라는 걸 알지 못했냐’는 등의 말들이 이어졌다.
“본래라면 시베리아로 떠난 삼촌의 뒤나 아니면 캄차카 반도에서 본인들이 주장한 슬라브 민족을 위한 땅을 넓히고 있는 개척단의 뒤를 따르게 되었겠지만, 그대가 지난 세월 러시아 제국을 위해 세운 공과 지금까지 보여준 헌신 덕분에 그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것인가?”
이내 내가 역사에 남을 만한 혼신의 연기를 마치며 그를 바라보자 반노프스키는 처음과는 다른 감정을 띤 얼굴이었다.
아까의 얼굴이 분노와 배신감이 맴도는 표정이었다면, 이제는 무언가 자신이 팬이었던 가수도 화장실에 가고 트림을 하는 보통사람과 똑같다는 걸 깨달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음, 아무래도 연기가 너무 과장되었던 모양이군.
“정말로 그때 그 일 때문이란 말씀이십니까?”
“좋아, 장난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 이걸 한번 봐보게나.”
그가 나에게 가지고 있던 환상이 지금보다 더 깨지기 전에 본론을 얘기해야 할 것 같았기에 나는 준비한 서류를 그에게 전했다.
“폐하, 제가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전 더 이상 명예도, 봉급도 필요가…….”
“일단 보고 나서 얘기하도록 하지. 한 번만 읽어보도록 하게.”
“하아, 우선 알겠습니다.”
그가 서류를 처음의 몇 장을 넘길 때만 하더라도 어디 얼마나 대단한 문서길래 이렇게 나오는지 한번 보기라도 해보자와 같은 태도였다.
하지만, 이내 표정이 점점 굳어지더니 이내 서류를 다 읽어갈 때쯤에는 집무실로 들어왔을 때의 모습. 바로 전쟁의 최일선에 서 있던 그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방금은 분노의 방향이 그의 앞에 서 있는 나를 향해있었다면 지금은 내가 건네준 서류로 향해 있다는 점이었지만.
“그래, 이제 내가 자네를 왜 세나트에 임명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나?”
“……정말로 여기에 쓰여 있는 내용들이 사실입니까? 어디서 나온 정보입니까?”
“비록 군대와 오흐라나가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관계라고는 해도 신뢰감까지 가지지 못할 정도는 아니겠지. 거기에 적혀있는 것들은 모두 오흐라나가 수집한 것들이네.”
“이 망할 놈들이!”
그는 이내 손에 쥐고 있던 서류를 구기려다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깨달은 듯했다.
금방이라도 종이를 찢어버릴 것처럼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지만,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가 새하얗게 변했음에도 표정은 관리하려고 애쓰는 게 눈에 보였으니까.
내가 그에게 전한 서류에 적혀있는 내용은 최근 군과 관련된 업무를 위탁받거나 민간으로 운영을 이전한 사업들에서 벌어진 비리들이었다.
작게는 군인들이 먹을 식자재에 가벼운 장난을 친 것부터 크게는 신형 탄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탄약 재료로 저질 재료들을 쓴 것까지 사례도 다양했고 죄의 크기도 다양했다.
“이번에도 그대가 제국의 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줘야겠네. 이전과 다른 게 있다면 과거에는 망치나 대검처럼 제국 외부의 적을 때려 부수는 역할을 해주었다면 이번에는 제국 내부에서 우리를 갉아먹고 병들게 만드는 이들을 도려내는 작지만 예리하고 잘 드는 검이 되어주어야겠어.”
“하지만 그런 일이라면 제가 전쟁 장관으로서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일이지 않습니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자네가 전쟁 장관에 부임하면서 군제 개혁과 함께 내부에 만연한 비리를 없애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이처럼 수많은 파리 떼가 남아 있는 이유가 뭐겠나. 전쟁 장관은 가지고 있는 권한이 거대한 만큼 덩치도 거대하기에 자신의 움직임을 숨길 수가 없지. 생각해 보게. 자네가 장관 시절 부정부패를 없애려고 할 때마다 생각보다 송사리들만 잡힌 이유가 뭐겠냔 말이야.”
“…….”
“그리고 이 일을 오흐라나나 아니면 다른 부서에 맡기는 것도 말이 안 되지. 당장 양심적이며 업무에만 충실한 이들도 군 내부의 일에 다른 이들이 끼어드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제대로 협력하지 않을 게 분명한데 무슨 수로 그렇게 한단 말인가. 그럼 남은 방법은 단 하나뿐이지. 군 내부에 있는 쓰레기들의 연락망에 잡히지 않는 외부인이면서.”
“동시에 군 내부에서 발생할 수도 있는 반발을 억누르기에 충분한 인물, 저 말씀이시군요, 폐하.”
“그래.”
반노프스키는 나의 말이 끝나가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염원하던 은퇴가 바로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있겠지만, 그가 전쟁 장관에 취임한 이후로 가장 공을 들였던 사항 중 하나가 바로 부정부패 척결이었기 때문이다.
고민이 될 수밖에 없겠지.
나는 그가 번뇌하는 걸 지켜보다 결정타를 하나 날리기로 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그대가 정 원하지 않는다면 좋네. 세나트 의원직은 이미 수여한 이상 다시 되돌려 받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니 의원직을 유지한 채로 고향으로 돌아가게나. 가서 명예와 여유 둘 다 가진 채로 유유자적하게 살게나. 다만 나중에 들려올 러시아 제국의 자랑스러운 육군이 외부의 손길로 인해 갈가리 찢겼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절망할지도 모르니 신문은 앞으로 보지 말도록 하게나. 이번 일은 오흐라나에게 맡기도록 할 테니.”
내 말이 끝나자 반노프스키는 고민을 끝낸 모양이었다.
“아닙니다, 폐하. 비록 제가 늙어서 예전만 못하다고는 하지만, 제가 원래 끝냈어야 하는 일을 끝마치지 못했는데도 새로운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뭐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따르겠습니다.”
본인의 여유로운 은퇴 생활과 자신이 한평생 몸담고 있었던 조직에 대한 책임감 사이에서 아무래도 책임감이 이긴 모양이었다.
나는 결심을 굳힌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마지막 당근 하나를 건넸다.
“그래, 모름지기 러시아 사내라면 책임감을 빼면 시체이지 않겠나. 은퇴했음에도 자네가 이렇게 ‘자발적으로’ 나를 도와주겠다고 나서니 정말이지 든든하구만. 그래도 걱정하지 말게나. 자네가 관련 비리 사건을 잡아낼 때마다 진정한 의미의 은퇴가 가까워질 테니까. 내 정말 약속하지. 아니면 여기서 서약서라도 써주는 게 좋겠나?”
자발적이라는 단어를 꺼낼 때 반노프스키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 후 마지막에 서약서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모양처럼 입술을 달싹거렸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폐하. 장관직에 있으면서도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제가 어찌 폐하께 무언가를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저에게 지난 시절의 미숙함을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말이지 장관은, 아니, 의원은 항상 나를 기쁘게 해주는군. 앞으로도 기대하겠네.”
* * *
다른 건 몰라도 내가 그에게 말한 것 중 그가 비리를 잡아낼 때마다 은퇴가 가까워진다는 말만큼은 진실이었다.
반노프스키를 붙잡은 이유가 바로 그거였으니까.
솜씨 좋으면서 군대에서의 불만이 나오지 않을 칼잡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정말로 그가 나에게 서류를 떠넘기고 도망가려고 했기 때문이 아니라. 진짜다.
이번 일에서 나는 자비를 보이지 않을 예정이었다.
설사 나에게 협력을 약속한 재벌가라 할지라도 내가 세워놓은 기준을 넘는다면 세상에는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떡을 만지다 보면 떡고물이 손에 묻는 건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떡 자체를 먹어치우려고 드는 놈들이 워낙 많다는 게 문제지.’
아무래도 그놈들은 과거 내가 황태자 시절 기근으로 인해 곡물 수출 금지령을 내렸을 때 어떤 태도를 보여주었는지 까먹은 모양이었다. 이번에 다시금 알게 되겠지만.
‘그럼 군 내부의 비리 문제는 일단 반노프스키가 잡아낸다고 하고 다음으로 처리해야 할 문제가…….’
군대에 성능이 개선된 소총과 기관총 등을 배급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전투력이 올라가기를 바라는 건 양심이 없는 행동이었다.
군대의 전투력은 가지고 있는 장비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군 전투력의 중추 역할을 맡고 있는 부사관은 둘째 치더라도 장교들을 육성하는 과정에서 쓸데없는 교육들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물론 알고 있다면 교양도 늘고 무언가 느끼는 점도 있겠지만, 머지않아 탱크가 굴러다니고 전투기가 날아다닐 시점인 지금 사관학교에서 고대 그리스에서 사용된 그리스어나 라틴어 아니면 트로이 전쟁 등이 쓰여 있는 호메로스를 배울 시간에 참호는 어떻게 파는 게 좋은지, 부하들의 전투력을 어떻게 유지시킬지에 대해 배우는 게 낫지 않겠는가?
‘그것도 아니라면 기관총을 어떻게 사용해야 상대방을 퇴비로 빠르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에 대해 교육을 받는 게 100배는 낫겠지.’
거기에 얼마 전 새로 설립된 교리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가진다면 미래의 장교들이 가질 능력을 훨씬 낫게 만들 수 있으리라.
‘그리고 현재 우리 군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인 장교 계층과 병사 계층 사이에 만연한 적대감도 이번 기회에 뜯어고쳐야만 한다.’
사관학교의 구시대적 교육과목과 방식들을 고치는 것과 동시에 군 내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장교들의 병사들을 향한 무분별한 구타 등도 손 볼 필요가 있었다.
러시아군 특유의 인명 경시 사상과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존재했던 농노제 등으로 인한 폭력은 행위 당사자들에게는 범죄로 느껴지지도 않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는 원래 역사에서 인민주의자들이 생각보다 쉽게 차르를 무너뜨리는 데도 일조했다.
자신에게 툭하면 폭행을 일삼는 사람을 위해 만인이 평등한 사회를 외치는 이들에게 총부리를 돌릴 병사들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까지는 볼셰비키 내부에 있던 광기들이 터져 나오기 전이었으므로 그들이 외치는 건 말 그대로 이상향이었으니까.
지금은 인민주의자들의 위협이 많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대전쟁이 닥쳤을 때 장교들은 앞에서 날아오는 총알뿐만 아니라 뒤에서 날아올지도 모르는 총알도 걱정해야만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유기적인 움직임이 중요해질 미래 전장에서 이런 식으로 장교와 병사 계층이 유리되어 있다면 아무리 무기를 개선하고 교리를 바꾼다 할지라도 박살이 날 게 분명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