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6)
새로운 해의 시작과 함께 처음으로 열린 구호위원회의 분위기는 3개월 전과는 사뭇 달랐다. 당시만 하더라도 회의장에 들어온 사람들의 얼굴에서 여유를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회의가 시작되기 이전에 옆자리의 사람들과 간단한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로 분위기가 여유로웠다.
전국 각지에서 들어오는 보고의 내용이 좋아짐에 따라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책임자들의 마음과 태도에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 모스크바 공보에 톨스토이 백작이 기고한 사설을 봤습니까? 그 양반이 어쩐 일인지 우리에 대한 좋은 말만 써놨더군요.”
“말은 바로 합시다. 우리가 아닌 전하에 대한 찬사가 대부분 아니었습니까. 특히 그 ‘니콜라이 황태자 전하는 이 시대의 최후의 계몽 군주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을 분이시다.’라는 문장은 보는 제가 다 부끄럽더군요. 전하께서 그런 찬사를 부담스러워하신다는 것을 모르는 건지 원.”
5개월에 가까운 시간 동안 거의 매일같이 그들의 황태자와 일하다 보니 구호위원회의 구성원들도 황태자의 성향을 대략적이나마 파악한 상태였다.
시도 때도 없이 일거리 및 과제를 주는 악덕 상사라고도 할 수 있지만, 황태자 스스로가 항상 솔선수범 및 모범을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그들로서도 별다른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황태자로서도 그들에게 불가능한 과제를 던져주고는 왜 완수를 하지 못했냐며 비난하는 경우는 없었고 그가 보기에 미흡한 점이나 아니면 관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보완점을 마련하라는 등의 정당한 지적이 대다수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물론 철저한 계급 사회에 익숙해진 자들이기에 그런 점도 없잖아 있겠지만.
“다만 올해 신년행사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황태자 전하께서 마음이 쓰이실까 걱정입니다.”
“아, 그 알릭스 공주와 관련된 이야기 말입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전하께서 폐하와 황후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이번 황실 신년식에서 벌어진 일로 넘어갔다. 황실 일가만이 참석한 만찬에서 벌어진 일이었지만 황궁 내에는 귀가 많았다.
게다가 그다지 비밀로 여겨지던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 신년행사에서 벌어진 황태자와 황제 부부와의 충돌이라고까지 표현하긴 뭐한 의견 차이는 최근 러시아 귀족 사회에서 가장 많이 회자 되는 주제이기도 했다.
“저는 경과는 의견이 좀 다릅니다. 알릭스 공주야말로 전하께서 그리는 청사진에 가장 걸맞는 인물입니다. 게다가 두 분 사이는 이미 유명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귀천상혼¹ 문제도 고려해보면 그 분만한 신붓감은 찾기 힘들지요.”
그가 말한 대로 현재 니콜라이가 구상하는 미래를 만드는데 있어서는 알릭스 공주와의 결혼이 가장 쉬운 길이었다.
영국과의 관계개선을 통한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그레이트 게임’의 조기 종식, 그로 인해서 보존할 수 있는 국력을 철도 사업에 투입함으로서 시베리아 횡단 철도 조기 완공 및 미래에 극동지방에서 벌어질 수 있는 충돌에 대한 대비가 황태자의 장기적인 목표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영국이 최근 일본을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챔피언으로서 육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최근 러시아의 수뇌부에서 나오고 있었다.
비록 아직은 교토 조약으로 일본에게 목줄을 채워놨다고 해도 영국의 지원을 등에 업은 그들이 언제 자신들의 족쇄를 끊고 이빨을 우리에게 드러낼지 모르니까.
그리고 알릭스 공주와의 결혼은 이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었다. 아무리 군주의 영향력이 이전보다는 작아졌다고 해도 현재 영국을 다스리는 빅토리아 여왕이 알릭스 공주를 아낀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리 결혼 동맹의 가치가 이전보다는 떨어졌다고는 하나 ‘고귀한 피’끼리의 결합은 그 자체로 상징하는 바가 컸다.다만 일본에 대해서는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도 많았다. 아니 동방의 구석에 위치한 황인종들 그것도 섬에 살고 있는 놈들이 감히 우리 대러시아 제국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저는 가끔 전하께서 일본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기껏해야 극동 섬나라의 촌놈들인데 말입니다.”
“전하께서 일본에 가셔서 직접 보시고 그 경험에서 느끼신 게 있지 않으시겠습니까. 저는 이번 기근도 전하가 아니었으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때때로 오한이 들더군요.”
다만 지금까지 황태자가 보여준 능력과 결과 덕분에 그들 중 몇몇의 시각은 이전과는 달라지고 있었다. 전하께서 경계한다면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문을 경비하던 위병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각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의 상사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옷 매무새를 다듬는 자, 보고서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검토하는 자 등, 오늘 있을 회의에서 다뤄질 주제는 이전과 별다를 게 없었지만, 가끔 깜짝 과제를 준비하는 황태자의 특성상 오늘도 별일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리고 그들의 군주가 될 운명을 짊어진 사내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자리에 앉은 뒤 관료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도 회의를 시작합시다.”
—현시점에서 구호위원회의 위상은 이전에 장관 회의가 가진 것과 비슷했다. 비록 임시기구이긴 했지만, 아버지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내가 위원장으로 있는데다가 장관 회의의 구성원들 대부분이 소속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치 비변사와도 비슷한 상황이군.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기근이 수습되면 내가 앞장서서 위원회를 해산시킬 거지만.’
비상대책을 위해 수립된 임시기구가 상설기구 화 되었을 때의 폐단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주의해야 하는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구호위원회에 소속되지 못한 장관들이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보고도 들어온 만큼 그들을 달래줄 방안도 생각해야 했다.
‘물론 아직은 먼 이야기다. 지금은 회의에 집중해야지.’
나는 평상시처럼 보고를 이어나가는 각료들을 지켜보았다. 다행히 오늘 회의에서 보고된 내용에 따르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구호 과정에서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은 듯했다.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의 장점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초기 대응 및 관련 방침을 수립할 때 제대로 만들어 놓는다면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제대로 굴러간다는 점이 여실히 나타났다.
“…이상으로 보고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보고를 끝낸 각료의 말이 끝나자 탁자에 앉아있는 이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몰렸다. 나는 그들의 눈빛을 일일이 마주 보며 그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그대들의 헌신과 노력 덕분에 이번 기근을 최소한의 피해로 수습할 수 있을 것 같소. 물론 하나님의 은총도 있겠지만 주님도 스스로를 돕지 않는 자는 도우시지 않는 법. 그대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고맙소.”
나는 그들에게 최대한의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전하, 함부로 고개를 숙이지 마셔야 합니다. 전하의 행동에는 그만한 무게가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저 전하께서 하신 말씀을 수행했을 뿐입니다.”
“맞습니다, 전하. 톨스토이 백작도 저희가 아닌 전하의 지침이 이번 사태를 수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아는 듯합니다. 혹시 이번 모스크바 공보에 기재된 사설을 보셨는지요?”
테이블 위로 가벼운 웃음이 번져나갔다. 몇 개월 전 만 해도 웃음은 커녕 여유조차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이제는 이런 농담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도 나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미샤 그 녀석이 오늘 나를 계속 놀리더군. 아무래도 내가 톨스토이 백작을 구호위원회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임명시켰어야 했어. 안 그런가?”
“하하하 맞습니다, 전하. 백작도 비록 나이가 있다고는 하나 나라를 위해 헌신할 자격이 충분하지 않습니까.”
“맞는 말이야. 내가 백작이 얼마나 강건한 육체와 정신을 가졌는지 아는데도 그대들의 옆자리에 앉히지 못한 게 한이네.”
본래라면 톨스토이라는 자의 이름만 들어도 불쾌하다는 듯한 기색을 풍기던 이들이었지만 백작도 자신들처럼 일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가 구호위원회에 들어오지 않은 게 아쉬운 모양이었다.
원래 자신이 하는 고생을 자기가 싫어하던 이도 같이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같은 고생을 하는 동료로서 친밀하게 여기게 되기 마련이니까.
“자, 농담은 이정도로 하고 오늘 회의는 이만 마치기로 하지. 모두들 고생 많았네. 다만 아직 사태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닌 만큼 너무 긴장감을 풀지는 않도록 하게. 이 일은 장기전이라는 것을 명심하도록.”
“여부가 있겠습니까.”
내가 회의를 종료한다는 것을 알리자 각 관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부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아, 말하는 걸 깜빡했군. 철도국장 세르게이 비테는 잠시 남아있게나.”
나의 말이 끝나자 세르게이 비테의 곁에 있던 관료들은 그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본 뒤 격려라도 하는 듯 어깨를 두드려주고 서둘러 회의실을 나섰다. 격려의 당사자가 된 비테는 얼굴이 10배는 어두워진 듯했다.
아니, 내가 잡아먹는 것도 아닌데 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거지?
나는 분위기도 환기할 겸 가벼운 농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경과의 인연은 참 독특한 것 같군. 4년 전 그대가 아버지께서 휴가를 가시기 위해 탑승한 기차를 멈춰 세웠을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당시 아버지가 노발대발 하셨는데 말이야.”
1888년 9월 당시 가족끼리 휴가를 가기 위해 알렉산드르 3세는 자신의 전용 기차를 타고 크림반도를 향해 떠났지만, 오데사에서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규정 위반을 문제 삼은 용감한 철도원이 정지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그 용감한 철도원의 이름은 세르게이 비테, 내 앞에 앉아있는 사내이자 러시아 제국 후기를 지탱한 명재상 중 하나였다.
그가 황제의 기차를 세운 이유는 2가지였다.
하나, 빠른 속도를 즐기시던 아버지는 증기기관차 두 대를 연결해 고속 주행을 했는데, 기관차를 연결해 운행하는 것은 간섭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탈선할 우려가 있어 금지되어 있었다.
둘, 명색이 황제의 기차인 만큼 다른 기차들과는 다르게 기차의 크기가 웅장했으며 그만큼 차륜도 다른 기차에 비해 많았다. 당시 차륜의 개수 규정은 42개였지만 아버지의 기차는 64개로 규정을 초과했었기 때문이었다.
“저는 단지 규정에 따른 행동을 취했을 뿐입니다, 전하.”
“겸손할 필요 없네. 나 또한 그대의 행동이 옳았다고 생각하네. 그대의 말을 따랐다면 열차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을 테니 말이야.”
당시엔 화가 난 아버지가 맹랑한 철도원의 징계를 명령하고 운행을 강행했지만, 그의 경고를 귀담아듣지 않은 결과는 혹독했다.
불과 한 달 후인 1888년 10월 휴가를 마치고 돌아오던 황제의 기차가 비테의 경고대로 과속으로 인한 탈선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당시 사망자만 21명에 수십 명이 부상을 당했지만 황실 일가는 다행히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다만 알렉산드르 3세의 사망원인이 되는 신장 질환이 이 사고로 인해 생겼고 나의 자매 중 한 명인 크세냐가 이로 인해 곱추로 살게 되었지만.
‘아버지에게 건강 관리에 신경쓰시라는 말을 주기적으로 드리고는 있지만…’
현재의 의학기술로는 신장 질환에 대해 요양을 하는 것 외에 뚜렷한 치료방법이 없었다.
“그 후 아버지는 그대를 철도국장으로 임명하셨지.”
“과분한 직책일 뿐입니다.”
비테는 내가 본론은 얘기하지 않고 빙빙 돌리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이제 우리도 기근 이후의 방침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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