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60)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60화
58장 마요네즈
러시아 제국군 내부에 감돌고 있는 인명 경시 사상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현대에서도 유명한 광고문구로 표현할 수 있었다.
와! 러시아 육군! 사람이 총알, 포탄보다 싸다!
러시아 제국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가진 장점이 거대한 땅에 어울리는 풍부한 인적자원인 건 맞았다.
실제로 지금까지 러시아를 침략했던 정복자들의 대다수는 지나치게 넓은 땅과 없애고 없애도 끊임없이 나오는 병력에 질식해서 패배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전시가 아닌 평시부터 일반 병사들을 자신의 하인으로 여기거나 심한 경우에는 사람도 아닌 소모품으로 여기는 풍토는 어느 정도 손을 볼 필요가 있었다.
러시아 공산 혁명 당시 병사들이 인민주의자들이 아닌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장교들에게 총부리를 돌린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비인간적인 대우였으니까.
이는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신분의 차이에서 기인한 문제이기도 했다.
아직도 농노를 부리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부모로부터 교육받은 장교들에게 병사들은 자신이 보호하고 이끌어야 할 대상이 아닌 본인을 떠받들고 봉사해야 하는 존재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다가올 전쟁에서는 인간의 목숨이 말 그대로 탄환처럼 쓰인다고는 하지만, 부하들과 함께 지내고 돌격해야 하는 소대장급의 장교들 사이에서도 이런 인식이 팽배하다는 건 문제의 소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걸 조금이나마 완화를 시켜야 하겠지만.’
하지만 말이야 쉽지.
귀족 출신의 장교들과 평민 출신 병사, 부사관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든다는 것은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을 하나로 섞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나 다름없을 게 분명했다. 난이도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말이다.
하지만 불가능이란 없다고 했던가.
서로의 성질이 달라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도 계란과 같은 계면활성제가 있다면 서로 섞여 마요네즈가 되듯 얼핏 보기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귀족과 평민의 융합도 하기에 따라 하나로 뭉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사회였다면 훨씬 난이도가 높았겠지만, 여기는 군대였으니까.
그리고 모름지기 군대를 하나로 뭉치게 만드는 가장 쉬운 방법은 바로 외부의 적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비록 군사 분야에 사용되는 공업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현대인으로서의 기억이나 경험이 도움이 되지 못했을지라도 이번만큼은 한국인이었을 때의 기억이 도움이 될 예정이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특수상황으로 인한 징병제 즉 국방의 의무를 다한 사람이라면 평상시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던 사람들도 한마음으로 뭉치는 훈련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평소 불편한 관계였던 맞선임 둘이 서로 담배를 나눠 피며 속마음을 털어놓고 훈련이 끝난 이후 이전보다는 원활해진 관계를 유지하는 것을 직접 본 입장으로는 육체적인 고난이야말로 정답으로 여겨졌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생각한 훈련을 구체화할 방법과 어느 부대에서부터 시작할지에 대한 내용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기에 내가 아들에게 당한 굴욕을 비웃은 동생에 대한 가벼운 처벌도 포함해서 말이다.
* * *
보로딘은 요즘 따라 러시아 제국군에 몸담게 된 게 점점 불만족스러워지고 있었다.
지방 귀족 가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도와 영지를 관리하는 첫째 형이나 처음부터 자신은 다른 길로 가고 싶다며 서유럽으로 유학을 떠난 둘째 형과는 달리 가문의 넉넉하지는 않은 재정을 갉아먹으며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내 너의 이런 태만한 모습을 더 이상은 봐줄 수가 없구나! 선택해라! 군에 입대하든지, 아니면 알거지로 집에서 내쫓기든지!
그러던 어느 날, 평상시처럼 훈계나 몇 분간 듣겠거니 했던 것과는 달리 흉흉한 얼굴을 한 아버지와 옆에서 냉정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첫째 형의 기세에 밀려 차르를 보위하는 육군에 지원하게 된 것이 그가 오늘 이 자리에 있게 된 배경이었다.
처음에야 괜찮았다.
오히려 군에 몸을 담게 된 후로 집에서 눈칫밥 아닌 눈칫밥을 먹던 때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었으니까.
첫째 형이나 아버지의 명령으로 자신의 말은 수행하지만, 눈치를 보던 가문의 하인들과는 달리, 국가에서 지급해 주는 보조금으로 고용한 시종들은 빠릿빠릿하기 그지없었다.
거기에 시종이 자리를 비웠을 때는 휘하에 배정된 부하들을 이용하면 되니 이 얼마나 편리하단 말인가!
“에이, 썅. 왜 보조금을 없애고 지랄이야, 지랄은.”
그것도 이제는 옛날얘기가 되었지만, 작년부터 공표된 군 관련 예산 개혁안에 따라 시종 고용에 지급되던 보조금이 사라진 이후로 그는 시종을 고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의 일들은 병사들에게 시키고 있었지만, 지금처럼 아침에 군화를 신는 데 도움을 준다든지 아니면 숙소를 청소한다는 등의 일은 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상관이라 할 수 있는 중대장이 다름 아닌 평민 출신이었기에 그런 일에까지 병사들을 동원하는 걸 그다지 곱게 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여튼 미천한 출신인 놈들은 남들의 위에 군림하는 법도 모른다니까. 그놈들에겐 주기적으로 자신이 위라는 걸 보여줘야지 순순히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순응한다는 걸 모르는 건가?”
그렇다 해도 중대장에게 대놓고 불만을 표시할 정도의 배짱은 보로딘에게 없었기에 그는 오늘도 숙소에서 홀로 불평불만을 내뱉을 뿐이었다.
오늘의 이 짜증은 쓸데없이 고된 작업을 병사들에게 시키고 그걸 구경하면서 풀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보로딘에게 그나마 행운으로 작용한 것은 그가 보급품이나 휘하 부하들에게 지급될 봉급에는 장난을 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는 보로딘에게 차마 그런 일은 하지 못하겠다는 양심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건 그저 그가 그런 일을 남들에게 들키지 않고 할 정도로 치밀하거나 배짱이 있지 않아서였으니까.
거기에 보로딘이 오늘날까지 사지 멀쩡하게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해준 주변의 분위기를 살피는 능력도 한몫했다.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동료 장교가 보로딘에게도 탄환이나 피복을 빼돌려 돈 좀 벌자고 했을 때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함이 그 제안을 거부하도록 만들었었다.
그리고 그날의 선택은 오늘날 보로딘은 휘하 병사들에게 곱지 않은 눈초리를 받고 있을지언정 여전히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에 남아 있는 반면에 제안을 건넸던 동료는 수형지로 끌려가는 결과를 가져왔다.
‘멍청한 놈, 그러길래 적당히 좀 해 처먹으라니까.’
오늘은 어떤 식으로 병사들로 스트레스를 해소할지 고민하며 숙소를 나선 보로딘은 병영 내에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가 기억하기로 이런 분위기가 의미하는 것은 단 한 가지밖에 없었다.
‘훈련! 그것도 꽤 규모가 큰 훈련이 예정되었을 때의 분위기인데.’
보통이라면 훈련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 게 자연스러운 군인의 모습이겠지만, 보로딘은 오히려 훈련이 다가올수록 신이 나는 인물이었다.
그가 훈련이야말로 미래에 다가올 실전에서 피해를 줄이고 살아남을 수 있는 중요한 행사라고 여기는 훌륭한 군인이어서가 아니라 훈련은 보로딘이 합법적으로 부하들을 굴릴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훈련이 진행되는 도중에는 사사건건 자신이 귀족이라는 이유로-어디까지나 보로딘이 생각하기에-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중대장도 어지간하면 간섭을 하지 않았으니까.
아까보다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보로딘은 자신의 소대가 지내고 있는 막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악!”
“목소리가 그것밖에 안 나오나! 갓 태어난 망아지도 네놈보다는 목소리가 더 클 거다! 더 크게 대답안 해!”
“악!!!”
“어어, 목소리 크게 내느라 발 점점 내려가지. 처음부터 다시 하고 싶어? 어? 처음부터 다시 하게 해줘?”
“아닙니다아악!!”
“그럼 똑바로 들라고 똑바로. 다리가 쭉 펴지게 일자로 하고 발은 위로 올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보로딘은 생각했다.
부하들을 평상시보다 심하게 굴릴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고 싱글벙글했던 것도 잠시, 지금 받고 있는 훈련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훈련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부대가 짐을 꾸려 훈련장으로 행군할 때부터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원래라면 자신의 군장을 부하에게 대신 짊어지게 했겠지만, 평상시 하던 대로 하려고 하자 어디선가 튀어나온 통제관이 이게 무슨 짓이냐면서 제재했을 때만 해도 중대장이 자신에게 또 지랄하는구나 싶었다.
통제관이 시작부터 꾀를 부리는 걸 보니 정신머리를 고쳐야겠다면서 원래보다 1.5배는 무겁게 느껴지는 군장을 짊어지게 했을 때부터 무언가 잘못됐다는 게 느껴졌다.
상대방에게 자신은 귀족 출신이라고 말했을 때도 돌아오는 건 코웃음밖에 없었으니까.
재차 항의를 하려 했지만, 그때 울려 퍼진 출발을 알리는 호각소리는 보로딘이 난생처음으로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겨우겨우 군장을 짊어지고-그가 군장을 메고 있는 것을 본 부하들의 눈이 휘둥그레졌었다- 훈련장에 도착해 이제는 조금 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돌아오는 건 빨리빨리 안 움직이냐는 호통 소리였다.
원래라면 무시하거나 부하를 대신 보내 무슨 상황인지 알아보라고 했겠지만, 탈진과 처음 겪는 상황이라는 점이 겹쳐 호통 소리에 따라 넓은 모랫바닥이 펼쳐진 곳에 모이자 앞에 있는 이들은 덥지도 않은지 아직 쓰기에는 이른 코사크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 후로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떻게 하면 인간의 몸에 최대한의 고통과 힘겨움을 안겨줄 수 있는지 악마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듯한 고문이 이어졌다.
누워서 온몸을 비튼다든가 아니면 기마 자세를 유지하면서 팔은 11자로 빳빳하게 세우고 있으라고 하는 등의 체조를 빙자한 고문이 이어지자 보로딘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도저히 못 하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이번 훈련의 책임자로 보이는 이에게 ‘자신은 귀족 출신이며 이런 의미도 없고 힘들기만 한 훈련은 더 이상 받지 못하겠다’고 말하자 그는 말없이 지금도 고통의 신음이 터져 나오고 있는 훈련장의 한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보로딘은 거기에서 이 자리에서 보리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볼 수 있었다.
다름 아닌 러시아 제국을 지배하고 있는 차르의 남동생이자 자신과 비교가 되지 못할 정도로 고귀한 미하일 대공이 방금까지 자신이 하고 있던 자세를 똑같이 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아까 뭐라고 하셨소? 이런 일을 하기에는 본인이 너무 고귀하다고 하셨던가? 그럼 대공저하 앞에 가서도 똑같이 한번 말씀해 보시겠소? 아니면.
그는 한 차례 숨을 고르더니 기차에 버금가는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이라도 네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서 아까 하던 자세나 유지해! 이 애새끼 같은 놈아!
보로딘은 조용히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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