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63)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63화
“폐하! 한 번만 생각을 다시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이건, 너무 갑작스럽습니다.”
“맞습니다, 폐하. 과거 폐하께서 선언하신 개혁과 관련된 약속을 생각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서두르다간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그 당시 약속의 당사자인 젬스트보들도 잠잠하지 않습니까. 굳이 이렇게 발걸음을 재촉하실 필요가 있으신 겁니까?”
장관 회의.
러시아 제국이라는 아시아와 유럽 양쪽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을 정도로 거대한 나라를 움직이는 정책들을 입안하고 결정한 뒤 실행까지 하는 행정기관.
루스 차르국에서 러시아 제국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도 국정을 운영하는 주체 중 차르를 제외한다면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는 기관.
비록 세나트라는 현대 의회로 따지자면 상원에 해당하는 상급기관이 있긴 했어도 명목상의 권한만이 남고 실질적으로는 명예직으로 전락한 지금에 와서는 차르와 더불어 러시아 제국의 앞날을 결정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곳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 회의실에서 열리고 있는 게 장관 회의인 만큼 나와 함께 여기에 있는 이들은 지방 총독과 비교하더라도 훨씬 큰 권한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지방 총독이 자기가 부임한 지역에서는 왕이나 다름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권한이 지역에 한정된 반면에 장관 회의에 소속된 장관들은 러시아 제국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 강력한 권한을 쥐고 있는 사내들 가운데 몇몇은 방금 내가 한 말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영국이나 프랑스의 상황을 보십시오, 폐하. 권력이란 나누면 나눌수록 복잡해지고 거기에 달라붙은 승냥이 떼만 많아지는 법입니다. 비단 그들뿐만이 아닙니다. 과거 우리보다 강성했던 폴란드-리투아니아 왕국이 왜 무너졌는지 폐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저는 폐하가 말씀하신 내용에는 동의하는 바이나 이런 급격한 방식의 시행에는 우려를 나타내지 않을 수가 없군요. 폐하, 외람되지만, 이렇게 서두르시는 이유를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들이 우려를 나타내거나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일은 바로 두마 설립, 즉 의회를 만들겠다는 내 선언이었다.
‘생각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 두마티(думать)에서 유래한 러시아 의회의 역사는 의외로 중세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
당시만 하더라도 통합된 국가가 아닌 공국들이 난립하던 시기였기에 과거 고대 그리스가 그랬듯 마을 광장에 성인 남성들이 모여 중요한 일들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논의하고 결정하던 행사가 ‘두마’라는 단어의 시작이었으니까.
그 후로 루스 차르국을 거치며 유럽 내 어느 나라보다 전제주의적인 면을 충실히 갖추었던 러시아 제국의 특성상 차르에게 집중된 국가 권력의 분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여겨졌기에 두마는 과거 그런 행사도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데만 사용되었었다.
나폴레옹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파리를 점령하는 데 성공한 알렉산드르 1세를 따라 젊은 장교들이 프랑스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러시아보다 몇 단계는 앞선 문화와 사회 분위기, 산업 등을 가지고 있던 프랑스에 매료된 그들은 본인들의 조국보다 프랑스가 이런 발전된 모습을 가질 수 있는 이유를 바로 의회로 대표되는 입헌정치라고 생각했다.
농노제가 유지되는 러시아를 개혁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는다면 머지않아 러시아에도 프랑스 대혁명에 버금가는, 아니, 그보다 더 많은 피가 흐를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 예상한 그들은 그전에 더 적은 피가 필요할 위로부터의 개혁을 실행하기로 했고 그것이 바로 ‘데카브리스트의 난’이라 불리는 사건이었다.
1816년 니콜라이 1세가 즉위하자마자 발생한 이 사건은 내 증조부의 정치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고 오히려 그들이 의도한 개혁이 아닌 증조부에게 ‘유럽의 헌병’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보수주의적인 정치를 펼치도록 만들었지만, 그들이 남긴 유산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다.
내 할아버지, 알렉산드르 2세가 암살당하던 날 마지막으로 서명한 헌법이 바로 두마를 설립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던 ‘로리스 멜리코프 헌법’이었으니까.
비록 자신의 아버지가 폭탄으로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걸 목격한 아버지, 알렉산드르 3세의 분노로 인해 로리스 멜리코프 헌법은 그 효력을 잃었지만, 그 후로도 두마를 설치해야 한다는 말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내가 너무 서두른다라, 그렇다면 경들에게 먼저 묻고 싶소. 내 조부이신 알렉산드르 2세께서 로리스 멜리코프 법에 서명하신 후로 벌써 몇 년이나 흘렀는지 혹시 아는 장관들이 있는가?”
“물론 알렉산드르 2세께서 당시 농노 개혁을 비롯해 다양한 개혁정책을 추진하시는 과정에서 두마를 설립하겠다는 말씀도 하셨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 않습니까, 폐하.”
“다르다니?”
“폐하께서 황태자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국정을 운영하신 시간이 얼마입니까? 벌써 9년이 넘었습니다. 9년 말입니다. 그동안 별다른 문제도 없이 제국을 잘 이끌어오셨으면서 갑자기 이리 서두르시는 이유를 저는 잘 알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폐하의 통치 아래서 하나로 뭉친 러시아 제국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런데 이런 시기에, 지금과 같은 중요한 시기에 권력 배분이라니요. 민중과 젬스트보 모두 잠잠한 지금 폐하께서 스스로 권력을 나눠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지금 러시아 제국의 정치 상황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황태자 시절부터 연달아 성공을 거둬온-여러 행운과 미래 지식이 합쳐진 결과이지만-결과 이전만큼 정치 개혁을 외치는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자신이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정치에 별로 관심을 둘 시간도 여유도 없는 노동자나 농민 계층은 물론이고 여태까지 정치나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오던 젬스트보를 위시한 온건 개혁파도 젬스트보 권한 확대나 젬스키 나찰니크 제도의 폐지 등과 같은 부분적인 개혁에 만족하는 이들의 숫자가 제법 되었다.
거기에 차르 본인이 즉위식을 앞두고 두마를 자신의 치세 동안 설립하겠다고 선언까지 했으니 굳이 아직 차르가 40대도 되지 않은 젊은 나이인 지금 서두를 필요가 있겠냐는 얘기였다.
지배계층이 제시하는 개혁책은 궁극적으로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기만책에 불과하므로 이에 현혹되지 말고 혁명을 통해 완전히 사회, 정치체계를 뒤집어엎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급진파들은 인민주의자들이 쓸려나가던 시절에 함께 사이좋게 손을 잡고 굴라그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해외로 쫓겨났기에 별말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었고.
다시 말해 현재 상황에 만족하는 이들의 숫자가 많았기에 개혁에 대한 열망이 그다지 뜨겁지 않다고도 할 수 있었다.
모름지기 개혁이나 혁명은 현재 자신이 처한 처지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많아야 일어나게 마련이었으니까.
“오히려 지금과 같은 조용한 때이기에 내가 먼저 권력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거네.”
하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지금이야말로 두마를 설립할 최적의 상황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럼 지금이 때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순간이 적절한 때란 말인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개혁을 외치는 이들이 모여 시위를 하는 상황이 적절한 때인가? 아니면 참다참다 도저히 못 참게 된 이들이 총과 폭탄을 들고 일어난 상황이 적절한 때인가? 그럴 바에야 차라리 조금 이르다고 할 수 있지만, 별다른 반발도, 흐르는 피도 없이 할 수 있는 지금이야말로 적절한 때라고 할 수 있지 않겠나?”
내 말에도 반대 의사를 밝혔던 장관들은 그다지 납득하는 태도가 아니었다.
“하오나 폐하, 폐하께서도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분열된 국론은 나라가 가진 잠재성을 깎아 먹기만 한다고 말입니다. 자신들이 의회정치의 선두주자라며 뻐기던 영국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저희보다 폐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영국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일어난 일조차 수습하지 못해 여태까지 싸워온 저희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심지어 아직도 저들의 수도에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프랑스는 또 어떻습니까? 지난 프랑스 대반란 이후로 툭하면 쿠테타에 봉기에 혼란스럽기 그지없지 않았습니까? 프랑스의 의회보다 세르기예프 산업단지가 더 조용했을 겁니다.”
장관들의 말의 논지는 다음과 같았다.
권력의 배분이 가져올 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지금 이 시점에 두마를 설립하려고 하는 이유가 있는가?
거기에 대한 내 답은 ‘그렇다’였다.
“여기 이 자리에 모인 자네들이라면 모두 느끼고 있을 걸세.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서류에 피곤을 호소하는 부하 관료들, 뽑는 숫자를 늘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턱없이 모자란 관료 숫자.”
그들의 질문을 들은 내가 한 첫마디가 다음과 같자 장관들은 궁금한 기색을 보였다.
지금까지 얘기해 온 두마의 설립에 대한 타당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다양한 정책들로 과로에 시달리는 관료들의 피로감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했네. 급료를 올려주거나 그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관료에 대한 인식을 상승시키려 노력했지. 거기에 심지어 내 사재를 들여 재무부를 시작으로 각 부서에 커피기계까지 들여다 주지 않았나. 그곳에서 사용되는 커피와 같은 재료 비용까지 계속해서 대가면서 말이네.”
커피라는 단어를 듣자 몇몇 장관들 사이에서는 그게 과연 복지인지는 모르겠다는 등의 뜻이 담긴 표정이 보였지만, 나는 모른 척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자네들이 느꼈듯 나도 느끼고 있네. 지난번 삼촌의 미수로 그친 반동주의적 시도에서도 과로에 지친 관료들이 본인에게 협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을 정도로 행정부에 소속된 관료들의 피로 누적은 위험한 단계에 이르렀지. 앞서 말한 방식으로도 풀어줄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9년, 본격적인 개혁이 시작된 시점으로 따져도 거의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행정 관료들은 헌신을 다해왔다.
공장 노동자와 비교하더라도 꿀리지 않는, 오히려 개정된 노동법이 실시된 이후로는 가끔씩 그들보다 더 오래 일하는 관료들도 있을 정도로 말이다.
“나뭇가지의 양쪽을 잡고 힘주어 당겨본 적이 있나? 처음에야 구부러지지만, 점점 힘이 강해지고 나뭇가지가 가지고 있는 탄력성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부러지고 말지. 지금 행정 관료들은 바로 부러지기 직전의 상태라고 할 수 있네. 그렇다면 다시 나뭇가지로 돌아가 보도록 하지. 어떻게 하면 이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나뭇가지 자체의 강도를 올릴 수 없으니 여러 개를 함께 묶는 수밖에 없지 않겠나?”
여기에 추가해서 나는 장관들이 하고 있는 걸로 생각되는 오해도 해소하기로 마음먹었다.
“거기에 나는 그대들이 걱정하는 것만큼 급진적인 의회정치를 할 생각이 없네. 내가 시행하고자 하는 건 어디까지나 로리스 멜리코프 법안에 기초한 두마 개설이니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