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69)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69화
“드디어!”
하늘이 조선을 도우시는구나. 고종은 뒷말을 목구멍 뒤로 삼켰다.
민영환의 생각과는 달리 고종도 현재 궁 안에 노서아 놈들이 심어놓은 눈과 귀가 많다는 걸 이미 느끼고 있었다.
야심한 밤, 창호지 뒤로 시립해 있는 몇몇 궁녀와 내관들밖에 없어 보이는 지금이라도 그는 자신이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지난번 민영환과의 독대 자리에서 나온 터무니없는 소리는 저들이 자신이 천지 구분도 하지 못하는 멍청한 왕으로 여기도록 하기 위해 고의적으로 한 말이었다.
‘민영환 그놈도 신뢰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지 가족 등에 칼까지 꽂는 놈을 무얼 보고 믿는단 말인가!’
정작 그가 믿지 못하는 민영환의 속마음은 고종에게 실망을 품었을 지언정 본인이 어느 나라의 신하인지는 잊지 않고 있었건만, 고종에게 주변 인물들은 딱 2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었다.
자신의 보위에 위협이 되는 자와 위협이 되지 않는 자.
간단한 이분법이었지만, 전제국가의 군주가 가지기에는 모범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분법이었다. 시대가 이러한 분류 방법만으로 자리를 지키기에는 너무나도 복잡해진 지 오래였다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대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능력만큼은 천부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고종이었다.
그가 가진 능력이 일국의 군주보다는 차라리 상인이나 벼락 출세를 노리는 평민에게 어울린다는 점이 바로 조선의 불행이었다.
그런 고종이라도 방금 전 들어온 소식을 듣고는 순간적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꿈에서도 염원해왔던 제국주의 열강으로의 도약이 실현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청나라 전역에서 난리가 나 서양인들의 머리가 꿰어진 창대가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여성, 아이 가릴 것 없이 서양인이라면 모조리 죽여대는 바람에 강이 붉은색으로 변했다는 흉흉한 말들이었다.
거기에 인명뿐만 아니라 서양인들이 지은 건물이라면 병원, 성당, 교회, 철도 등을 가리지 않고 파괴하는 바람에 열강들이 경제적으로도 손해를 보고 있다는 소식을 읽었을 때는 고종의 입가에 미소마저 감돌았다.
마지막으로 일반적인 서양인들뿐만 곤경에 처한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외교관들이 모여 있는 공사관 도시마저 폭도들에게 포위당해 청나라의 고의적인 방관 속에서 풍전등화와도 같은 상황이라는 문장을 읽자마자 나온 탄성이 바로 아까의 것이었다.
‘수정궁 태후가 아무래도 노망이 난 모양이군.’
고종이 보기에 이번 일은 아무리 다 쓰러져가는 청나라라고 할지라도 충분히 자력으로 예방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폭발한 것을 보면 적극적으로 부추기지는 않았어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등의 행동을 취했던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당장 태평천국의 난을 겪은 지 100년도 되지 않은 나라가 수상쩍은 종교집단이 활보하고 다니는 것을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였다. 현재 청나라의 실권을 잡고 있는 서태후가 이번 난리를 이용해 어떻게든 열강들을 몰아내거나 아니면 최소한 지금까지 맺은 불평등 조약들을 개선할 궁리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고종의 머릿속 주판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결론이 도출되었지만 말이다.
‘아무래도 지난 청일 전쟁에서 패배의 책임을 한족 관료들에게 전가하긴 했지만, 태후도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만큼 광서제가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본인을 숙청하기 전에 마지막 도박을 하려는 모양인데.’
그게 마음먹은 대로 될 리가 있나.
고종은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도 머리가 있는 이상 지금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자력으로 열강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저 거대한 덩치를 가진 청나라도 실패하였으며 동아시아 삼국 중 가장 앞서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일본마저 날개가 꺾여 추락한 마당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청나라에서 난리가 난 이상 자국민이 학살당하고 본인들의 자본이 들어간 건축물들이 파괴되어 눈이 돌아간 열강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든 이번 사태에서 피해를 본 나라들이 뭉쳐 청나라가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끔 할 텐데 고종은 바로 이 점을 노렸다.
청나라가 아무리 종이호랑이라고는 해도 덩치만큼은 여전히 세계에서 수위에 들어갈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 말인즉슨 아무리 열강이라고 할지라도 이번 난리를 평정하는 데는 시일이 걸린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고종은 그들의 눈이 청나라 본토로 쏠렸을 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챙기기로 마음먹었다.
이번 의화단 운동이 실패로 돌아갈 것은 확실한 만큼 이후 지금보다 더 만신창이가 된 청나라라면 조선이 만주로 진출하더라도 별 대응을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다면.
‘이미 만주는 노서아 놈들이 꽉 쥐고 있다는 게 문제인데.’
지난 청일 전쟁 이후 맺은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만주 전역에 철도를 건설하고 이를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잇는 등 만주를 사실상 본인의 입맛대로 주물럭거리고 있었다.
행정 구역상 만주는 엄연히 청나라의 땅이며 봉금령이 해제된 이후로 파견된 관료들과 청나라 주민이 살고 있는 건 맞았지만, 만주에서 나오는 재원들을 집어삼키고 있는 건 러시아였다.
그리고 고종은 지금의 조선이라면 반병신이 된 청나라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도 러시아마저 그럴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거기에 동아시아를 제외한 국제 정세를 잘 모르는 그조차도 러시아가 최근 들어 가장 잘나가는 열강이라는 점 정도는 알고 있었으니까.
사실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당장 지난 민란 때 러시아가 가진 힘의 편린이나마 목격했던 사람으로서 고종은 조선의 힘만으로는 러시아를 밀어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 조선의 힘만으로는 말이다.
‘이이제이라고 하였다. 서양 오랑캐라면 마땅히 같은 서양 오랑캐로 상대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면 남은 문제는 과연 어느 나라를 끌어들일 것인가였다.
전통의 강자이자 거문도 사건만 봐도 러시아와 사건이 좋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는 영국? 아니면 듣기로는 구라파의 패권을 두고 으르렁거리고 있다는 말이 들려오는 독일? 거기도 아니라면 불과 얼마 전에도 청나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프랑스?
‘아니지, 아니야.’
이 세 나라도 구미가 당겼지만, 정작 고종의 ‘간택’을 받은 나라는 다른 곳이었다. 돈이면 모든 게 되는 나라, 러시아와 별다른 관계도 없는 나라-고종이 생각하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 언급된 다른 나라들에 비해 영토에 대한 욕심이 없어 보이는 나라.
‘미리견을 돈으로 구워삶아야겠군.’
고종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앞서 말한 민란에서 본인들의 힘을 보여준 러시아의 인물, 쿠투조프가 조선을 떠난 지금이 아니면 도저히 만주를 집어삼킬, 아니면 발이라도 내디뎌볼 기회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듣기로 미리견이 최근 돈이 나올 구석을 찾아 헤맨다고 하는데 그 점을 노려서 매수하면 충분히 미리견을 이용해 러시아를 몰아낼 수 있겠지. 그 후로는 러시아가 차지하고 있던 철도 회사를 미리견에 넘긴다는 조건을 제시하면 그들도 혹할 수밖에 없을 거야.’
고종이 생각하기에 이번 계책은 서태후의 어설프기 짝이 없는 도박과 비교하자면 성공 가능성이 월등히 높아 보였다.
국제 정세에 대한 부족한 지식과 본인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그리고 조선과 러시아의 국제사회에서의 위치 차이를 간과한 서태후와 비교했을 때 용호상박이라는 건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 * *
꺄아아아아악~!
어디선가 여성의 비명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왔다. 소리의 크기로 예상해보건대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었다.
한 사람의 신사로서 파울리너는 마땅히 여성을 돕기 위해 그곳으로 가야 했지만, 그는 지금 그럴 수 없었다.
“놈들이 점점 가까워져요!”
“쉬이, 쉿. 듣지 마렴. 귀를 막거라 아가. 우리는 괜찮을 거야.”
그의 곁에서 달리고 있는 한 여성과 자신이 안고 있는 아이가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파울리너는 두려웠다.
“우리는 괜찮겠죠?”
여성이 용케도 달리는 와중에 숨도 차지 않은지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으로 그에게 물었다. 방금 아이에게 아무 일도 없을 거라고 안심시킨 것과는 달리 아이가 귀를 막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불안을 드러낸 모양이었다.
베이징 인근에서 청나라인들의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여기는 상관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베이징에 주둔하고 있는 청나라군은 둘째로 치더라도 감히 폭도들이 이곳에 들어올 수 없을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며칠 전 베이징의 성문을 당당히 통과해 들어오던 그 미치광이들을 보게되었을 때 파울리너는 마치 꿈이라도 꾸는 것 같았다. 악몽이라고 하기에도 말이 안 되는 말 그대로 저급한 꿈.
“그, 그럼요. 허억! 허억! 우리느, 는 괜찮을, 겁, 니다.”
이내 그의 입에서도 아까 그녀가 아이를 안심시킬 때 했던 말과 동일한 말이 나왔지만, 그는 자신이 한 말을 믿지 않았다.
지금도 만약의 사태가 일어났을 때 그녀와 아이를 희생양으로 버리고 도망간다면 자신의 목숨을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거리 곳곳에서는 연기와 불길 그리고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어딘가 건물에 들어가 몸을 숨기려 해도 돌아오는 것은 ‘여기 서양인이 있다!’라는 외침뿐.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에서 버려진 것 같았다.
시시각각 조여오는 저들의 손길이 금방이라도 본인들의 뒷덜미를 낚아챌 것 같은 불안감을 헤치며 그들이 달려가고 있는 곳은 지금 노아의 방주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고, 공사관 거리까지만 간다면 허읍! 헉! 살 수 있을 겁니다!”
파울리너는 믿을 수 없는 청나라 병사들이 아니라 서양 열강에서 파견한 병력들이 주둔하고 있는 공사관까지만 가면 살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이것도 사실 그의 일행을 안심시키기 위한 말이 아닌 본인 자신에게 되내이는 것에 가까웠지만.
복잡하기 짝이 없는 거리를 심장이 터지라 달린 지 몇 분이 흘렀을까. 시간의 흐름도 무의미해지고 자신의 다리가 몸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던 그때. 점점 느려지는 그녀에게 속도를 자기도 모르게 맞추는 본인의 몸에 새겨진 신사로서의 마음가짐에 혀를 차던 그때.
지금까지 피해왔던 사신이 마침내 그들을 따라잡은 걸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조금만, 조금만 더 갔으면 됐을 텐데!’
파울리너는 오히려 결말이 눈앞에 오자 머릿속의 절규와는 반대로 차분해지는 걸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여차하면 일행을 던져주고 본인은 도망가겠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누군가의 머리를 빙빙 돌리며 다가오는 폭도들을 등지고 그녀에게 속삭였다.
“내가 달려들면 바로 아이와 함께 도망가요.”
“네, 네?”
“두 번 말할 시간 없어요. 그럼.”
맨손으로 의화단원들에게 달려들며 파울리너는 지금이 본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이야기에 나오는 기사와도 같은 상황 아닌가. 레이디를 위해 희생한다니.
‘그래, 신사답게.’
“엎드려!”
어디선가 들려온 러시아어에 자기도 모르게 무릎이 꺾여 넘어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타타타타탕!
귀를 찢는듯한 소음이 지나간 후 파울리너는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뒤를 쳐다보았다. 다행히 그녀와 아이 또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긴 해도 무사한 것처럼 보였다.
방금까지 자신의 앞에 있던 폭도들이 한 줌 핏물과 고깃덩이로 변한 걸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일렁이는 연기 너머로 절도 있는 동작을 취한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파울리너는 맥이 풀리는 걸 느꼈다. 그는 살아남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