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7)
비테는 지금부터 내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짐작한 듯한 기색이었다. 그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유능한 관료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전하께서는 이후 우리 러시아 제국이 극동 쪽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시는 모양이군요.”
“비슷하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우리의 미래가 극동지방에 있다고 여기고 있다는 점이지. 현재 우리가 섬나라 친구와 중앙아시아부터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무대로 춤추고 있는 무도회를 멈출 수 있다면 더더욱 좋고.”
1813년부터 1907년 영·러 협상이 체결되기 이전까지 영국과 러시아 간 전 세계를 배경으로 펼쳐진 총성 없는 전쟁, 때로는 직접적으로 총알을 주고받진 않았지만 서로 간 대리인을 내세우는 등의 대리전 양상까지 펼쳐진 형식의 힘 싸움은 제정 러시아에게 있어서 큰 부담이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아제르바이잔 같은 산유 지대를 차지하는 등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빈약한 재정과 망가진 경제를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러시아에게 이런 식의 힘 싸움은 사람으로 치면 지속적인 출혈을 안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고 보니 소련도 미국과의 체제경쟁에서 비롯된 군비경쟁이 붕괴의 한 원인이 되기도 했는데 이런걸 보면 세계 1위와의 자본싸움으로 인해 무너지는 건 러시아의 전통인 건가?’
내가 속으로 이런 식의 불경한 농담을 떠올리는 순간 비테가 조용한 목소리로 내가 한 말에 대답했다.
“아무래도 전하께서는 지금 앞에 놓인 현실보다 훨씬 더 먼 곳을 바라보고 계시는 것 같군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빙그레 웃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저를 비롯한 관료들이 기근에 대한 구호만을 생각하고 있을 때 전하께서는 기근 이후의 10년 앞을 내다보시는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이런 톨스토이 백작에 이어서 국장까지 내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들 셈인가? 그렇다면 그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를 말해보게나.”
내가 그에게 장난기가 섞인 그러나 진지한 질문을 던지자 비테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대답해나갔다.
“먼저 첫 번째로 전하께서 이번 곡물 수출 금지령으로 인해 손해를 보게 된 외국 상인 중 영국 국적의 상인들에게 유난히 신경을 쓰셨기 때문입니다. 다른 국가 같은 경우에는 대사가 직접 피해구제안을 발표하거나 아니면 그 나라의 외무장관에게 직접적인 친서를 보내지 않으셨으니까요.”
“흥미로운 추측이군. 계속하게.”
“예, 두 번째로 전하께서 이번 극동 순방 당시 참석하신 기공식에서 하신 연설 내용 때문입니다. 분명 폐하께서 전하를 저 먼 곳까지 보내실 만큼 시베리아 횡단 철도 사업이 중요시 여겨지기는 하나 올해 예산안에서 전하가 아니셨더라면 철도 건설 관련 예산이 삭감되었을 테니까요. 횡단 철도 사업 예산에 대한 관심과 전하께서 당시 하신 연설 내용에 비추어본다면 감히 추측 하건데 전하는 시베리아 개척이 러시아의 미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짓했다. 마지막으로 어떤 점에서 내 생각을 파악했는지 알고 싶었다.
“마지막으로는 전하가 방금 말씀하신 것과 최근 전하가 정인인 알릭스 공주에게 보이는 태도로 추측했습니다. 예전과는 달리 그녀에게 보이시는 모습이 사랑하는 연인이 아닌 정략의 대상을 대하는 태도 셨으니까요. 현재 우리 러시아 제국이 벌이고 있는 영국과의 신경전을 해소할 방법을 찾고 계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내 수양이 부족한 것 같구만. 국장에게 죄다 파악되어 버렸으니 원. 맞는 말이오. ”
나는 감탄했다. 과연 러시아 후기를 지탱한 명재상답게 파편화된 정보만으로 내 생각을 파악해냈기 때문이었다.
“그대가 말한 대로 나는 우리가 영국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네. 지금과 같은 관계가 지속된다면 괜히 사용하지도 않아도 되는 돈만 날리는 셈이니까.”
“다만 그렇게 된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저희와 프랑스 간 협상에 악영향을 주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그것 또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거야. 그건 우리의 친애하는 빌헬름 2세 그 친구가 해결해 줄 테니까.”
비테는 내가 한 말을 바로 이해하지는 못한 듯했다. 비스마르크를 파면시킨 후 빌헬름 2세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당시까지 철혈재상이 쌓아올려 놓았던 외교적 성과를 무너뜨리는 쾌거를 달성한다는 사실은 현재로서는 나만이 알고 있었으니까.
대표적으로 우리와 맺은 독일과 러시아 둘 중 하나가 제3국과 전쟁 시 중립을 지킨다는 내용의 재보장 조약을 자신이 즉위하고 나서 연장을 거부함으로서 러시아와의 관계를 망쳤다.
이 위업은 베를린 회의로 인해 독일에 대한 배신감으로 치를 떨던 러시아를 다시금 설득시켜 동맹 관계를 유지 시킨 비스마르크의 업적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잘 풀어나갈 수 있었던 영국과의 관계도 본인의 영국 국왕인 에드워드 7세를 비난하는 등의 돌출행동으로 동맹을 찾던 영국이 영·불 협상에 이은 영·러 협상으로 삼국협상을 형성하게 만드는 등의 결과를 가져왔다.
‘아직까지는 영국과 독일 간의 관계가 양호하다고 할 수 있지만, 시간문제일 뿐이다.’
나는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나는 우리가 제3의 로마라는 허울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하네. 물론 콘스탄티노플을 차지한다면 흑해 연안에 갖혀 있는 우리의 함대를 자유롭게 이동시킬 수 있겠지만 그보다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부터 얻어낼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는 게 낫지 않겠나?”
러시아가 가지고 있는 제3의 로마라는 타이틀과 민족주의적 성향으로 인한 콘스탄티노플에 대한 집착은 유명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니콜라이 2세가 1차 세계대전 참전을 결정하면서 받아낸 조건 중에는 콘스탄티노플 확보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1905년 피의 일요일 사건 당시 민중들이 외쳤던 구호 중에 ‘콘스탄티노플은 해결책이 아니다!’라는 구호가 있을 정도로 일반 민중과는 동떨어져있는 목표였지만.
“전하께서 가지고 계신 생각은 알겠습니다. 그럼 그 생각을 실현시키기 위해 저에게 하명하실 일은 무엇인지요?”
“경도 알다시피 우리가 추진하려는 대륙 횡단 열차를 실현하는 데는 매우 많은 어려움이 생길거요. 철도를 세우는데 들어가는 자본과 인력뿐만이 아니라 건설할 토지에 존재하는 무수한 자연적 장애물도 극복해야 하지.”
나는 그 수많은 문제 중 내가 해답을 줄 수 있는 것을 말해주기로 했다.
“공사가 시작되는 블라디보스토크부터 이르쿠츠크까지 연결되는 노선 중 이르쿠츠크 앞에 존재하는 바이칼 호가 그중 하나지. 그대도 이미 파악한 바 아닌가?”
“맞습니다, 전하. 저를 비롯한 실무진이 초기 공사에서 가장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부분도 바이칼 호 노선이었습니다.”
비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도 골치가 아팠을 것이다.
“그럼 여기서 우리에겐 2가지의 선택지가 존재하겠지. 하나는 바이칼 호 남쪽을 둘러싸고 있는 산맥을 뚫고 가느냐 아니면 페리를 통해 바이칼 호를 극복하느냐. 그렇지 않은가?”
“맞습니다.”
“그리고 그대를 비롯한 실무진들의 판단으로는 산맥에 터널을 뚫는 것보다는 페리를 이용한 공사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을 테지.”
비테는 내가 이정도로 극동 지방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하긴 지금 러시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블라디보스토크가 위치한 러시아 동부지방은 깡촌이라는 인식이 대다수였으니까.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군요. 다만 그렇게 하자면 현재 저희의 기술력으로 자체 제작하는 것보다는 영국에게 발주를 넣어서 페리를 제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됩니다.”
국장의 말은 합리적이었다. 현재 기술로 산맥을 뚫는 터널을 공사한다는 것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과업이었으니까.
하지만 당시 벌어진 일을 아는 나로서는 그들이 준비한 방법 대신 무모해 보이는 방법을 선택 해야했다.
“아니, 내 생각은 다르네. 우리는 터널을 만들어야 해.”
내 선언을 들은 비테는 깜짝 놀란 듯했다. 그는 내가 젊음에서 나온 혈기로 무모한 일을 벌이려고 한다는 생각이 든 것 같았다.
“허나 전하, 그리된다면 공사비용이 최소 6배는 들어갈 겁니다. 또 공사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릅니다.”
“예산에 관련해서는 걱정하지 말게. 우리 일본 친구들이 한 몫 거들어줄테니까. 게다가 지금 당장 공사에 착수하라는 것도 아니고 이번 사태가 수습된 후의 이야기를 하고있지 않은가. 또 이미 알프스 산맥을 관통하는 철도 터널을 완공시킨 사례도 존재하고.”
실제로 1882년 고트하르트 철도 터널을 개통한 사례가 존재했으므로 바이칼 호 남쪽에 터널을 건설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과거였다면 흑색화약으로 발파작업을 진행해야 했기에 작업 속도나 안전성 면에서 매우 위험했겠지만, 지금은 다이너마이트라는 만능 폭약이 존재했으니까.
게다가 원래 역사에서 페리를 이용해 철도를 건설하려던 일의 말로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영국에 페리를 발주 넣고 제작을 기다리는 데 사용한 시간이 1년이었고 영국에서 제작된 배가 도착하는 걸 기다리는데 또다시 1년이 소모되었다.
게다가 배를 완성품인 상태로 보낸 것이 아닌 기차로 운송하기 위해 부품별로 분해해서 보냈는데 몇몇 부품은 기차에 실리지 않을 만큼 거대해서 다시 만드는데 시간과 예산이 또 소모되었다.
이외에도 부품을 분실하는 등 여러 어려움이 존재했지만, 러시아는 근성으로 바이칼 호에서 페리를 운행하는 것에 성공했다.
다만 겨울에는 바이칼 호의 얼음이 예상보다 두꺼웠기 때문에 그리고 봄과 여름에는 호수의 기후가 페리를 운행하지 못할 정도로 거칠었기 때문에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결과를 맞이해야 했지만.
이런 미래를 아는 만큼 페리를 이용한 바이칼 노선 건설은 나의 선택 옵션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지금 보기에는 돌아가는 길로 보이지만 사실은 이게 가장 빨리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길이었으니까.
비테는 나의 눈에서 느껴지는 의지를 느낀 듯했다. 또 내가 단순히 혈기로 이 일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그렇다면 당시 스위스 산맥을 통과하는 공사를 진행한 경험이 있는 자들을 초청해야겠군요. 게다가 전하께서 충분한 시간과 예산만 지원해주신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인력 수급 면에서도 생각해놓으신 방안이 있으십니까?”
“우리 러시아 제국에는 이미 무수한 노동력을 가진 이들이 있지 않은가. 아버지의 은혜를 저버린 이들에게 그들이 지은 죄를 속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겠군.”
시베리아 유형은 이미 예전부터 광범위하게 사용된 러시아의 형벌 중 하나였다. 국가에 죄를 지은 이들이라면 자신들의 노동력을 국가에 제공함으로서 속죄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단 그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이들은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야겠지.”
소련 시대의 체포 할당량과 같은 일이 발생하는 일은 방지해야 했다. 내가 직접적으로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과잉 충성을 하는 몇몇 관료들이 폭주할 수 있었으니까.
“나는 경을 단순히 철도 업무에 국한된 인물로 생각하지 않네. 이번 일은 우리 러시아 제국의 앞으로 미래가 걸린 일이라고도 할 수 있어.”
아직은 비슈넷그라스키가 재무장관직을 역임하고 있었지만 본래 역사에서 기록된 그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나는 미리 후임자를 정해놔야 했다. 그의 건강을 고려했을 때 이번 기근이 끝나고 나면 고향으로 내려가 은퇴 생활을 즐길 수 있게 해줘야 했으니까.
“나는 앞으로 경이야말로 우리 러시아 제국의 핵심적인 인물이라 생각하고 있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잘 알 거라 믿겠네.”
내 말을 들은 비테는 영광스럽다는 얼굴이었다. 그의 미래에 닥쳐올 일을 지금은 미처 떠올리지 못하는 듯했다. 러시아 제국에 충성하는 그로서는 미래의 황제에게 인정받은 순간이었으니까.
“전하께서 저를 이리 높게 평가해주신다니 감사드릴 뿐입니다.”
고개를 숙인 그를 바라보는 내 얼굴에 걸린 미소가 점점 짙어져만 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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