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70)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70화
61장 극동 정리
모든 서양인이 파울리너 만큼 운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공사관으로 도망치면서 무수히 많은 비명을 들은 것처럼 행운의 도움을 받아 서양 군대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된 사람보다는 그들의 손아귀에 붙잡힌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죽은 자들의 머리를 잘라내어 창이나 깃발 끝에 매달아라! 감히 청나라를 침범한 자들의 말로가 어떤지 다른 놈들도 똑똑히 볼 수 있도록!”
“남자, 여자, 성인, 아이, 노인 가릴 것 없다. 저들이 우리가 청나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수탈했기에 우리도 저들을 서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일 것이다. 마침 서양인들도 과거 이교도라는 것 하나만으로 무수히 많은 학살을 자행하지 않았던가? 모조리 죽여라.”
“부청멸양(扶淸滅洋: 청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서양을 멸망시키자)! 살양멸교(殺洋滅敎: 서양인들을 죽이고 기독교를 멸망시키자)!”
오히려 단칼에 목이 달아나거나 총에 맞고 목숨을 잃은 자들은 다행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었다.
수천 년에 달하는 시간 동안 축적되어 온 중화의 지식 중에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고문하고 오랫동안 고통을 주면서 목숨을 붙여놓을 수 있는지도 들어가 있었으니까.
차마 묘사하기 어려울 정도의 끔찍한 행위들이 각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문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야만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있자면 누군가 얘기했던 서양이 아직도 문명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다른 미개한 세계를 계몽해야 한다고 말했던 ‘백인의 짐’이 맞는 말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백인의 짐’이라는 말 자체가 좋게 말해 계몽이지 수탈을 포장한 말이라는 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제국주의자들에게는 이번 일이야말로 그들의 말이 옳지 않았냐고 기세를 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보아라! 저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광경을! 본인이 차마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감히 입으로 묘사할 수도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동안 도덕이며 양심을 들먹이며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이행하는데 비판을 가해오던 사람에게 물어보라. 저런 일을 거리낌 없이 행하는 야만인들에게도 인권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지금이야말로 쓸데없이 온정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적을 몰아내고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 시간이다! 정부는 무엇을 하는가? 청나라에서 고통받고 있는 우리 시민들의 살려달라는 외침이 들리지 않는 것인가?”
이번 의화단 운동으로 피해를 입은 국가의 본토에서는 연일 단호한 대응을 촉구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는 열강 정부들에게도 나쁜 말이 아니었다.
이번 의화단 운동은 확실히 한몫 챙길 수 있는 기회와도 같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 전쟁은 마치 성전과도 같은 당위성마저 가질 수 있었다.
자국민들이 청나라 정부가 방치한 혹은 인위적으로 조장한 폭도들에게 학살당했다는 것만큼 확실한 선전포고용 명목이 있겠는가?
이는 과거 마약을 팔지 못하게 했다는 이유로 전쟁을 선포한, 자국 내에서도 ‘더러운 전쟁’이라고 불렸던 아편전쟁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으니까.
아직도 런던 코뮌이 남긴 상처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영국이나 보어 전쟁으로 피로감이 누적되어 있는 프랑스와 독일마저도 전쟁을 부르짖는 이들이 넘쳐났다.
이제 청나라가 상대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열강 하나, 아니면 자국 내에 주둔하고 있는 열강들의 군대가 아니었다.
과장을 섞어서 얘기하자면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해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각 열강들은 신속하게 파병을 위한 준비단계에 들어갔고 이제 남은 건 단 하나뿐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번 연합군을 지휘할 것인가?
* * *
“아마도 이번 청나라에서 일어난 난리를 진압하기 위해 조직된 서양 열강들의 연합군은 러시아 제국에서 지휘권을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됩니다.”
최근 옆 나라인 청나라에서 벌어지고 일은 당연하겠지만, 일본에서도 뜨거운 감자 중의 하나였다.
사건이 발생하고 초기에는 서양 열강들의 불의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난 청나라 신민들과 연계해 우리 또한 서양놈들을 몰아내는 데 한몫 거들어야 한다는 진심으로 ‘아시아주의’를 믿는 이들의 목소리가 제법 컸다.
그러나 이내 청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의 상세한 내용들이 전해지고 그 야만성이 드러나자 이러한 이상주의자들의 목소리는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글로 묘사하기도 불쾌한 일들을 즐겁게 저지르는 이들과 힘을 합치자니.
의화단 운동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항거한 사람들의 고귀한 혁명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은 이번에도 이상과 현실 사이의 벽을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상주의자들이 세력을 잃자 남은 건 일본도 의화단 운동을 통해 어떻게든 이득을 챙길 방법이 없겠냐는 논의였다.
일이 잘만 풀린다면 이번 기회에 본인들 목에 걸려 있는 목줄을 청나라에 떠넘길 수도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였을까.
도쿄 총리관저에서 이루어지는 내각 회의는 평상시의 무기력한 분위기와는 달리 활력을 띄고 있었다.
정작 회의 주최자인 총리, 이토 히로부미는 활력보다는 비장한 분위기를 보이고 있었지만 말이다.
“사태 초기 다른 열강들이 본인들이 비용을 투자한 자산인 교회나 철도, 병원 등은 물론이고 자국민마저 보호하는 데 실패한 반면에 러시아 제국은 조선반도와 연해주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을 동원하여 전역은 아니더라도 각국의 공사관이나 서양인 밀집 구역만큼은 보호하는 데 성공한 만큼 이후 연합군 조직 과정에서 발언권이 가장 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 청나라와 국경을 직접적으로 맞대고 있는 만큼 자신들이 가장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고 주장할 테니 말입니다.”
외무대신은 일리가 있었다.
비록 러시아 제국이 초반에 파병한 병력의 숫자가 몇천 명에 불과하다고는 해도 러시아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민간인은 물론이고 공사관까지 보호해 준 이상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일본 제국 또한 청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만적인 행태에 분노를 느끼며 이를 진압하기 위한 서양 열강들의 단호한 대처를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해야 합니다. 거기에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제공할 준비가 되어있다고도 말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도움에는 군사적인 지원이 물론 포함되어 있어야 하겠지요.”
“우리 자랑스러운 천황 폐하의 육군은 이미 청나라 폭도들과의 만남에 대한 준비를 끝마친 상태입니다. 군대라고도 볼 수 없는 폭도들 정도면 우리만으로도 충분할 거라고 자신합니다. 천황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즉시 상해와 톈진으로 가 폭도들을 몰아내고 서양인들을 구출할 수 있을 겁니다. 지난 시절 해군이 보였던 아쉬운 모습과는 다르게 말입니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아쉬운 모습? 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육군은 바다에서도 호흡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 대륙까지 헤엄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된 모양입니다? 우리의 도움이 없으면 대륙으로 건너가지도 못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겁니까?”
“자, 자. 두 분 모두 진정하십시오. 지난 오쓰 사건 이후로 계속해서 꼬이기만 한 일본 제국에게 모처럼 찾아온 천재일우의 기회 앞에서 싸움이라니요. 총리대신. 앞서 외무대신이 말한 대로 한시라도 빨리 관련된 성명을 발표하고 각국 공사들에게 우리도 이번 진압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야 합니다. 더 늦는다면 우리가 낄 자리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육군대신과 해군대신 사이의 언쟁을 중재한 사법대신이 이토에게 한 말을 끝으로 내각 회의 참석자들의 눈은 이토에게로 쏠렸다.
사실 그들은 이번 일과 관련해 한 가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여느 때 같았으면 이런 말이 나오기도 전에 먼저 일본 내 각국 공사들을 불러 일본 제국 또한 문명의 빛을 중국 대륙에 가져다주는 것에 일조하겠다고 나섰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총리대신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회의장의 시선이 본인에게 모인 것을 느꼈는지 이토는 책상 위 서류를 바라보던 시선을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는데 그가 말한 내용은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이 탄식의 한숨을 내뱉도록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사실 이미 각 열강들에 일본도 이번 일에 참여하겠다는 식의 의사를 전달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일본까지 나설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거절표시였소.”
그의 말은 들은 누군가는 앞서 말한 대로 시선을 떨구며 탄식의 의미가 담긴 한숨을 내뱉었고 다른 누군가는 주먹을 그러모으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토는 대신들이 그러한 반응을 보일 것을 예상했다는 듯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표면상으로는 이번 일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은 일본이 참여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거나 어려운 것도 아니며 만약 사태가 더 악화할 경우 지금 말한 도움을 받아들이겠다고 말했지만, 한 나라도 아니고 내 제안을 들은 모든 공사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는 의미는 하나밖에 없지.”
“……러시아군요.”
외무대신은 방금까지 열정적으로 말하던 것과는 대조되게 침울한 어조로 이토의 말을 받았다.
오랜만에, 참으로 오랜만에 다시금 일본 제국이 날아오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건만, 자신들이 목줄을 휘어잡고 있는 주인은 본인들보다 한 발 먼저 움직인 모양이었다.
아까까지의 분위기가 무색하도록 다시금 평상시의 무기력함이 감도는 회의장이었지만, 이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는 방금 폐하께 한 가지 계획에 대해 재가를 받아왔소. 의화단처럼 서양 열강들의 동의가 필요하지 않은 계획이지.”
총리는 앉은 자리에서 대신들을 한 번 훑어보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
“현 시간부로 모든 대신들은 조선 진출과 관련해 매진하도록 하시오. 이는 저 간악한 러시아와 여타 다른 서양 세력들이 우리 일본을 서서히 교살시키려고 하는 이 시점에 유일하게 우리가 목줄을 끊고 다시금 드높은 천상을 향해 날아오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니 말이오.”
이토의 말은 폭탄과도 같았다. 충격과 당황에 빠져 있는 대신들 속에서 가장 먼저 질문을 한 것은 외무 대신이었다.
“하, 하지만 총리대신! 의화단 운동을 진압하겠다는 것도 거부하는 열강들이 우리가 조선 반도로 진출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겠습니까? 거기에 별다른 명분도 없지 않습니까!”
“거기에 이미 조선반도는 러시아의 앞마당이나 다름없는 곳 아닙니까! 그런데 조선 진출이라니요. 러시아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이런 반응들이 터져 나올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이토의 대답에는 거침이 없었다.
“우리 일본 제국은 다른 나라들처럼 식민지가 아닌 독립 주권을 유지하고 있는 엄연한 주권 국가요. 그런 우리가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에 일일이 허락을 구해야만 하오? 그리고 러시아가 조선의 앞마당이라고 해도 이번 의화단 사건에 집중하고 있는 동안 조선에 진출한 뒤 그동안 러시아가 가지고 있던 이권을 보장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후 더 많은 이권을 제공하겠다고 하면 그들도 별로 불만을 가지지는 않을 거요.”
“아니, 이게 대체 무슨…….”
이토의 말을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린 대신의 말은 다른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열 살짜리 아이도 반박할 수 있을 정도의 근거만으로 조선 진출을 외치고 있는 총리가 과연 자신들이 알고 있던 이토가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거기에 천황께서도 이 어설프기 짝이 없는 계획을 승인하셨다니 일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좌중들 사이로 당황이라는 감정이 눈에 보일 정도로 퍼져나가자 이토는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조용하지만 비장함이 감돌고 있는 어조였다.
“나도 알고 있소. 내가 말한 계획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말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