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73)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73화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했다는 소식은 한양에도 채 하루도 안 걸리지 않고 도착했다.
과거 임란 때는 사람이 직접 소식을 전하는 파발과 단순한 정보만 전달 가능한 봉화와 같은 통신수단밖에 없어 며칠이 걸렸던 것과는 달리 발달한 과학 기술의 산물이었다.
사실 조선인들에게 일본이 자신들에게 이를 드러내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그다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자그마치 발발한 지 300년이나 넘은 임진왜란은 둘째로 치더라도 당장 일본의 군함이 강화도에 쳐들어와 초지진을 함락시키고 약탈과 방화를 했던 것이 단 25년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서해에서 조선을 두고 청나라와 일전을 벌였다는 사실도 이미 전해진 지 오래였다.
다행히 그 싸움은 무승부로 끝나 청나라와 일본 두 나라 모두 조선에 개입할 수는 없게 되었지만, 그럼 에도 그들이 자신들을 기회만 된다면 노릴 거라는 인식은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건가. 우리가 일본을 이길 수는 있겠지?”
“아니, 당장 일본 군함 하나에 강화도가 쑥대밭이 된 게 언젠데 과연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정 안 되면 저치들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겠어?”
한양에서 일본이 부산을 침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스레 이야기를 나누던 두 사내가 바라본 것은 몇 년 전부터 한양에 들어와 있는 보기에는 자신들과 비슷하지만, 국적은 러시아인 조선계 러시아인들이었다.
타국에 파견하는 만큼 종무원장이 선정하는 데 직접 공을 들인 만큼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장비나 의복 등은 다른 열강의 군대와 비교하더라도 그다지 꿀리는 게 아니었다.
“그나저나 난리가 난 것 치고는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나. 사실은 일본 놈들이 부산에 쳐들어왔다는 게 별일도 아닌 건 아니겠지?”
“예끼, 이 사람. 말하는 것만 들어보면 꼭 별일이었으면 좋겠다는 말 같구만. 별일 아니면 좋은 거지 만약 그렇게 심각하다면 전하께서 저리 조용히 계시겠나?”
다만 일본이 쳐들어왔다는 소식이 들어왔음에도 군사들의 대규모 이동이나 물자 공출 등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 상황은 한양의 백성들이 사태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주었다.
국가와 국가 사이의 전쟁이 터졌는데 이렇게 평화로울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부산이 위험에 빠졌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 하루가 지나자 시내에는 이상한 말들이 떠돌기 시작했다.
[왕이 한양을 버리고 도망갔다더라!]말은 빠르게 퍼져 나갔다.
정체불명의 소문을 들은 양반 나리들이 무슨 말도 안 되는 헛소문을 지껄이느냐며 하인들을 치도곤 해도 말은 자신이 생명이라도 가진 양 빠르게, 빠르게 퍼져 나갔다.
어느 하나의 입을 막으면 저 멀리서 두 개의 입을 통해서 나왔으며 두 개의 입을 막으면 다음 날은 열 개의 입이 같은 말을 퍼트리곤 했다.
사람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말은 전신이나 전화를 통해 전해져오는 소식보다도 속도가 빨랐다.
마치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이렇게 퍼뜨리는 것처럼 한양 시내 곳곳에서는 왕이 일본군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저 혼자 살기 위해 최소한의 수행원만 데리고 가마에 타 얼굴을 숨긴 채 도망갔다는 말들이 두더지처럼 아무리 때려잡아도 머리를 불쑥불쑥 내밀어댔다.
[왕이 조정 관료도 종묘도 내팽개치고 심지어 중전마마와 세자저하까지 버리고 혼자서 도망갔다더라!]처음에는 그저 뜬소문처럼 세부적인 모습도 없이 마치 도깨비라도 묘사하는 양 두루뭉술하던 이야기는 시간을 잡아먹더니 점차 뼈가 생기고 살이 붙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난리통에 으레 나오고는 하는 유언비어라 생각했던 사람들도 차츰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오늘만 하더라도 부산이 결국 함락되었고 일본군들이 빠른 속도로 북쪽을 향해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음에도 조정은 그저 대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한양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들이 하나둘 인천을 통해 급히 빠져나가고 있다는 것 또한 그들의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한양을 빠져나가는 그들 사이에 다른 나라들의 공사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얘기가 들려오자 그 불안감에는 신빙성이라는 요소가 더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불안감에 불을 지핀 것은 자신의 친척이 한양의 북동쪽 문인 혜화문에서 일본군이 부산에 나타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날 밤 의문의 가마와 열댓 명의 수행원들이 은밀하게 빠져나가는 걸 봤다는 소문이었다.
본래라면 야심한 밤 문이 폐쇄되고 난 뒤 도성을 빠져나가는 가마에 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마땅히 확인을 해봤어야 했음에도 별다른 확인 없이 통과해 주었다는 말을 듣자 ‘설마’는 ‘혹시’가 되었고 다른 정황 증거들마저 더해지자 ‘혹시’는 ‘진짜?’가 되었다.
가장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한양의 선비들이었다.
“전하! 외적이 지난 13년(1875년) 강화도에 쳐들어와 우리의 군사와 백성들을 학살하고 관청에 불을 지르며 약탈을 일삼은 이래로 계속해서 걱정해왔던 일이 일어났사옵니다! 북방과 청나라가 혼란한 와중에 남에서는 왜놈들이 쳐들어오고 있는 이때 전하께서 만백성들을 보듬어주시지 아니하고 침묵만을 지키고 계심에 따라 한양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감돌고 있사옵니다! 부디 저 유언비어를 믿는 자들에게 전하의 건재함을 보여주시옵고 저런 기괴한 말에 휘둘려 이런 무례를 저지르는 소인의 목을 치시옵소서. 전하! 부디 이 한미한 자의 말을 들어주시옵소서!”
“들어주시옵소서, 전하!”
선비들이 나아가 궁 앞에서 엎드려 절하며 읍소하였으나 굳게 닫힌 궁궐의 문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사실 지금까지 조정이 별다른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실제로 고종이 어디로 갔는지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일본의 침공이라는 위기를 앞두고 국가의 사령탑이 사라졌다는 것은 즉 조선이라는 나라의 뇌가 한순간에 없어져 버렸다는 것과도 같은 말이었다.
대통령이 사라져도 부통령이나 총리가 일을 대행해서 국정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한다는 법안 등이 존재하는 현대와는 달리 전제군주정에는 이런 안전장치가 없었고 존재할 수도 없었으니까.
관련된 얘기를 입 밖으로 꺼내기만 해도 반역죄로 처벌받을 수 있는 얘기를 꺼낼 수가 있겠는가?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전하께서 사라지신 걸 아무도 알지 못했다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란 말입니까! 대체 금위영이나 수어청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길래 전하가 도성 한복판에서 사라지신 것도 모르고 있었단 겁니까!”
“그래서 소문의 당사자인 혜화문에서 당일 근무했던 이들은 도대체 누구라고 합니까? 당장 의금사로 압송해 추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 그것이 폐하께서 마지막으로 모습을 보이신 당일 혜화문에서 근무한 이들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만…….”
“했습니다만?”
“그날 근무했다고 하는 이들 모두 행방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허, 허어. 설마 당시 경복궁을 호위하던 이들도 모조리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요?”
“그들 중 몇몇은 이미 추포되어 의금사에서 국문에 들어간 상황이지만, 자신들은 모른다고 일관되게 말할 뿐 전하의 행방을 아는 이들은 없는 모양입니다.”
“일부라니요. 설마 금위영에서도 모습을 감춘 이들이 있단 말입니까?”
“유감스럽습니다만, 현재로써는 그렇다고밖에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누구보다도 엄중한 호위를 받는 국왕이 자신의 나라 한복판에서,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닌 본인이 기거하는 궁궐에서 사라지다니 말이다.
“선비들이 저렇게 나선 이상 계속해서 궁궐 문을 닫고 침묵으로 일관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일단 급한 대로 세자 저하께서 나셔 서서 민심을 다독이고 북상하고 있는 일본군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요! 전하께서 어디 계신지, 안전하게 계신지 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세자저하가 국정을 맡아야 한다니! 혹시라도 나중에 일이 잘못된다면 대감께서 책임지실 수 있다는 얘기요?”
“아,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지 않소. 내가 저하께서 보위를 이으셔야 한다는 얘기를 한 것도 아니고 우선 급한 불을 꺼야 하지 않겠냐고 했을 뿐인데.”
이럴 때 조정의 방향을 잡아줘야 할 중전은 지난날 자신의 친가가 러시아 장군인 쿠투조프를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아 풍비박산이 난 이후 교태전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고,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은 이미 세상을 떠난 후였다.
다행히 적통인 세자는 궁 안에 있었지만, 27살의 세자는 이번 일을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하기엔 부족했다.
만약 자신이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주도적으로 나선다면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는 양위 소동을 벌이고 했던 조선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몰랐다.
“대감! 대감! 전하께서, 전하께서!”
그런 와중에 들려온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고종이 모습을 감춘 지, 혹은 감추어진 지 3일이 되어가던 때 이미 일본군은 경상도를 거의 통과하고 있다는 말이 전해져 오던 순간, 드디어 고종으로부터 소식이 전해져 왔다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다들 기쁜 마음으로 혹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전해온 교지(敎旨)를 읽은 대소신료들은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이게 정말 전하께서 보내오신 교지가 맞는 겁니까? 이, 이게 대체 무슨!”
“말도 안 됩니다. 전하가 이런, 이런 말도 안 되는 교지를 내리시다니요!”
하지만 그들의 경악과는 달리 문서에 찍혀있는 옥새는 이 문서가 사실이라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거기에 고종이 친히 친필로 적어 내려갔기에 필체로도 이 문서가 진품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들이 이게 사실이라 생각하는지, 아니면 반대로 거짓이라고 여기는 것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이미 전하는 청진에 계시며 종묘에 모셔져 있는 위패와 중전과 세자를 비롯해 대소신료들은 전부 청진으로 오라니요. 아니, 왜적들이 아직 채 문경새재에도 당도하지 않았거늘, 전하께서는 어인 일로 그 먼 북쪽까지 가셨단 말씀입니까.”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전하께서 이런 말을 하셨다는 게 밖으로 새어나가기라도 한다면 당장 저 앞에 모인 백성들이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조정에서는 이 일을 두고 어찌하면 좋겠냐며 갑론을박이 벌어졌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우선은 전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도록 합시다.”
“대감!”
“그렇다면 대감에게는 뭐 좋은 수라도 있소? 전하께서 말씀하신 내용을 따르지 않을 셈이오!”
다음날 다시금 궁궐 앞에 모여든 백성들은 그동안 굳게 닫혀만 있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드디어 나라님이 무언가 말씀을 하시려고 하시나 보다 하고 기다려도 보았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
문이 닫힌 채로 침묵하느냐 아니면 문이 열린 채로 침묵하느냐만 달라져 있었을 뿐이었으니까.
결국, 기다리다 지쳐 용기를 발휘한 한 사람에 의해 궁궐 내부가 텅텅 비었다는 걸 알게 되자 ‘진짜?’는 ‘역시’가 되었고 ‘역시’는 분노로 변했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금 적이 아닌 분노한 백성들에 의해 경복궁이 불탈 위기에 처했을 때 그들 앞에 나선 이들은 뜻밖의 사람들이었다.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절대로 여러분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저 간악한 왜놈들을 몰아내고 한양을 지켜냅시다!”
멋들어진 제복에 광이 나는 신식 소총, 가슴팍에 달린 반짝거리는 훈장까지.
조선계 러시아인들이 한양 내의 질서를 잡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