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74)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74화
[조선을 정벌한다!]단순한 한 문장이었지만, 이 문장 속에 담긴 것은 가볍지 않았다.
약 300년 전 일본의 전국시대를 종식하고 천하를 통일했다고 자부하던 히데요시가 대륙을 정벌하기에 앞서 조선을 친다고 선언할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말이었다.
결국 히데요시는 그의 허황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죽은 뒤 본인 가문의 멸문이라는 결말로 과욕의 대가를 치렀지만, 그 후로도 일본 내에서는 주기적으로 조선으로 진출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오곤 했다.
일본이 이 섬을 벗어나 저 드넓은 중원 대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조선을 집어삼킨다는 선택지는 이름은 선택지이되 선택이 아닌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지 않는다면 중국 정벌을 위한 안정적인 보급은커녕 시작부터 중원의 광활함에 파묻혀 죽어갈 게 뻔했다.
섬나라라는 특성상 조선보다 앞선 서구의 문명을 받아들이는 게 빨랐던 일본은 지난 16세기 이후 조선 진출이라는 대업에 가장 가까워진 듯했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비롯한 근대화의 눈부신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 동안 조선은 임오군란과 같은 내홍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
그래, 그때는 일본 내의 정한론자들이 오매불망 꿈꾸던 조선 정벌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블라디보스토크로 가기 위한 여정 도중이었던 러시아의 황태자가 일본을 방문하자마자 웬 정신이상자의 습격을 받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서둘러라!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
“군장은 최소한으로만 꾸려야 한다! 모자란 물품들은 현지에서 징발해서 충당하는 것으로 한다!”
“대일본제국의 앞날이 앞으로 있을 단 2주, 2주 안에 결판이 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귀관들의 어깨, 귀관들의 다리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선전포고도 없던 이번 원정-침략에 더 가까운- 도중 일본군이 들은 말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단어는 ‘빨리’라는 말이었다.
출병식과 같은 행사마저도 모조리 생략한 채 변변찮은 배웅마저도 받지 못하고 수송함에 실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부산이었다.
사실 이렇게 속도가 중요하다면 차라리 부산보다 한양에 가까운 서해안 쪽으로 상륙을 하는 것이 더 나았겠지만, 지금의 황해는 열강 해군들의 놀이터였다.
서양 열강들이 그다지 탐탁잖게 생각하지 않을 이번 원정이 채 시작도 하기 전에 바닷속으로 가라앉을 위험성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이대로만 간다면 이번 원정이 성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각하.”
피곤에 절다 못해 찌들어있는 몰골인 채로 걷고 있는 병사들 사이로 말을 타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내 중 하나가 자신의 옆에서 가고 있는 장년의 사내에게 짐짓 밝은 어투로 말했다.
“글쎄, 본관도 자네가 말한 대로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네만…….”
자신의 부관인 청년의 말을 들은 사내는 그다지 밝은 얼굴은 아니었다.
그는 처음부터 이번 원정에 회의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
다만 현재 총리이자 자신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이토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병사들이 많이 상했군.”
현재 조선 정벌군의 사령관을 맡고 있는 노기 마레스케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이들이 조선에 상륙한 이후 별다른 전투다운 전투를 겪지 않았음에도 현재 일본군의 모습은 마치 매일같이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 듯한 몰골이었다.
이대로면 예정대로 한양에 도착하더라도 제대로 공성전을 진행할 수 있을지조차 걱정되는 상황이었다.
하늘이 도우셨는지 부산성을 제외하고는 조선군의 조직적인 반격을 마주하지 않았지만, 휴식 시간은 물론 식사 시간이나 잠자는 시간까지도 줄여가며 행군한 일본군의 체력은 이제 한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천혜의 요새라는 문경새재 또한 함락 자체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문경새재를 넘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병사들은 힘에 겨워했다.
“어쩌면 시작부터 잘못된 원정이었는지도 모르네, 최대한 빠르게 행군하기 위해서 병사 1인당 소지하는 물품을 최소한으로 하되 부족한 물자는 현지에서 충당한다니. 이 제안을 한 게 누군지는 몰라도 이번 원정이 성공한다면 군사 교본을 다시 써야겠구먼.”
이토의 선언 이후 내각회의는 물론 군 내부의 인재들까지 달라붙어 내놓은 작전 계획의 골자는 이러했다.
1. 일본은 현재 지극히 제한된 시간과 물자를 가지고 있다.
2. 이 중 물자는 어떻게든 확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시간은 추가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3. 따라서 유일하게 일본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최대한 빨리 한양을 함락시켜 조선의 왕을 붙잡는 것이다.
4. 무슨 수를 써서든!
일본의 두뇌들이 모여 내놓았다기엔 너무나도 초라한 작전 계획이었지만, 이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떻게든 청나라에 열강들의 시선이 쏠려있는 동안 해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판돈은 일본 그 자체이며 성공할 시 낮은 확률로 다른 열강들의 힘도 빌려 조선반도를 확보 혹은 지금 일본이 처한 상황을 개선할 수 있으며 실패할 시 일본 또한 청나라나 다름없는 상태로 굴러떨어질 수 있는 도박.
평상시라면 눈도 기울이지 않았을 도박이었으나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다.
뒤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든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수밖에는.
“거기에 이대로 가면 이번 일이 성공한다고 해도 당분간은 각지에서 일어날 반란군이나 도적 떼들을 때려잡는데 최소 몇 년은 써야겠어.”
만약 이번 원정이 성공한다 해도 물자를 징발-사실상의 약탈-당한 조선인들이 앞으로 자신들에게 협력적으로 나올 거란 기대도 하기 힘들었다.
그나마 임진왜란 당시 초반에는 점령지의 민심을 다독이겠답시고 본인들에게는 관대하기 짝이 없는 수확의 절반만 가져가겠다는 등의 민심 안정을 위한 정책이라도 펼쳤던 것에 비해 이번에는 시작부터 물자를 빼앗아가지 않았던가.
가뜩이나 연이은 난리로 인해 궁핍해진 조선의 농촌에 이번 징발은 결정타나 다름없었다.
지금이야 잠잠하지만, 이대로면 자신들이 겨울을 날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농민들이 가만히 앉아만 있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 그래도 각하! 이제 곧 한양입니다! 저희가 여기까지 오는 데 변변찮은 반격도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 저들은 우리가 이곳에 당도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있을 게 분명합니다!”
지금이 인력으로만 소식을 전달하는 시대도 아니건만, 그의 부관은 이런 낙관적인 얘기나 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도 진심으로 방금 말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런 헛소리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무너져내릴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래, 본관도 그랬으면 좋겠군.”
그래야만 했다.
혹시라도 조선 정부가 지방에서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한양으로 모든 방어병력을 집중한 거라면 아무리 장비 상으로는 일본군이 우위에 있다고 하더라도 이번 원정은 실패로 끝날 거라는 건 다들 마음속으로 느끼고 있었다.
전투도 없이 전략적 목표를 달성해나가고 적지에서 행군하면서도 반격조차 받지 않는 말만 들어서는 성공한 군사작전이었지만, 행군을 이어나가는 일본군의 숫자는 계속해서 줄어나갔다.
짧은 휴식 시간이 지나면 소대장들은 자신의 소대원들 중 모습이 보이지 않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입을 다물었으며 때로는 행군 도중 길옆으로 쓰러지는 인원이 나오더라도 다들 모른 척 묵묵히 앞만 보고 나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길을 나아가는 이들의 눈에는 한 가지 단어만이 새겨져 있었다.
‘한양.’
분명 목표는 가까워져 오건만, 병사들의 발걸음은 점점 무거워져 가는 기묘한 행군이 마침내 끝을 보이고 이들이 오매불망 기다려만 왔던 한양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기쁨의 환호성은 들리지 않았다.
“…….”
“결국, 이렇게 됐군.”
그들이 도착한 한성에는 조선 국기와 함께 한 가지 깃발이 함께 펄럭이고 있었다.
“러시아 제국이 이번에도 우리보다 한발 빨랐어.”
노기 중장이 중얼거린 말이 부관인 아카시 모토지로의 귀에 들려왔다.
“가, 각하. 이제는 어찌하는 게 좋겠습니까. 이대로 부산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겁니까?”
“오늘은 날도 늦은 데다 병사들이 지쳐있으니 이곳에서 숙영을 할 준비를 한다. 다만 적지가 바로 코앞이니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라 이르고. 내일 날이 동이 트기 직전에 한양을 공략한다.”
“하오나 각하! 행군 속도를 높이느라 가지고 왔던 대포의 대부분도 유실된 데다 포탄은 고작해야 두세 번 사격할 분량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진지를 구축한 뒤 후속 병력과 지원을 기다리는 것이…….”
“자네가 받은 명령 중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후퇴나 대기하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던가?”
“……아닙니다.”
“나 또한 그렇네. 사나이라면 때로는 결말이 어떨지 알면서도 달려나가야 하는 법. 병사들을 배불리 먹일 수는 없으니 잠이라도 일찍 재우도록 하게.”
노기 중장의 명령이 하달되자 병사들은 동요했지만, 자신의 몸에 새겨진 훈련은 자연스럽게 명령을 수행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어찌 되었건 잠은 잘 수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차라리 여기서 지체하지 않고 부산으로 다시금 돌아간다는 등의 말을 했다면 오히려 반란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밥은 없어도 얼마 만에 얻은 휴식인지도 모르는 밤이 지나가고 날이 밝아왔지만, 예정된 공격명령은 하달되지 않았다.
날이 밝아옴에도 노기 중장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에 의아함을 가진 장교들이 무례를 무릅쓰고 사령관의 천막으로 들어가자 그들은 어째서 명령이 내려오지 않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천막 안에 있는 것은 차마 병사들을 개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없으니 후퇴하라는 노기 중장의 서신과 함께 할복한 그의 시신뿐이었다.
* * *
일본군이 한양 앞에서 눈물을 흩뿌리며 후퇴를 결정한 그때 고종은 연해주에 있었다.
처음 이들에게 납치되었을 때만 하더라도 불안감에 몸을 떨던 그였지만, 지금은 마치 자신이 연해주의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들이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까 아니면 겁박하지는 않을까 겁이 났지만, 이내 극진한 대접과 함께 연해주의 관찰사-고종이 생각하기에-가 차르의 서신과 함께 공손한 태도를 보이자 자신감을 얻은 것이었다.
먼저 함부로 이곳에 자신을 모시고 온 것에 대한 사과의 말과 함께 자칫 불미스러운 일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라 하며 간악한 일본군을 몰아내고 나면 그 즉시 아무 조건 없는 지원과 함께 되돌려 보내주겠다는 말은 고종의 구미에 딱 맞는 말이었다.
거기에 현재 본인의 지위는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는 말은 덤이었고.
그도 마냥 멍청하지만은 않았기에 이번 일이 끝나면 조선은 사실상 러시아의 괴뢰국이나 다름없는 신세가 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이 틈바구니 안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왕이면 좋은 줄을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점에서 러시아는 고종이 잡기에 충분히 튼튼해 보이면서도 화려한 줄이었다.
“크으, 좋구나. 이 보드카라는 것이 가베(커피)보다 더 나은 것 같소! 하하하.”
“입맛에 맞으시다니 다행입니다. 지금 드시고 계신 것은 로마노프 황가에 납품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서 현재 차르이신 니콜라이 2세께서도 즐기시는 물건입니다. 역시 전하께서도 고귀한 분답게 취향이 고급스러우시군요.”
“아, 그렇소? 하하하하. 어디 종무원장도 한 잔 받아보시오.”
“감사합니다, 전하.”
종무원장은 고종을 직접 대접하면서도 회의감을 느끼고 있었다.
자국도 아닌 외국에 그것도 잡혀 온 일국의 왕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태평한 모습에 한 번, 그리고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불안정한지 아는지 모르는지 이렇게 상전인 척하는 것에 또 한 번.
그에겐 슬프게도 이런 나날은 당분간 더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래서 차르께서는 언제쯤 이 몸을 만나러 오신다고 하시오?”
종무원장이 차르에게서 받은 전문에는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고종을 최대한으로 대접하며 비위를 맞춰주라는 말이 적혀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