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77)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77화
“끝났군.”
내 입에서는 짧은 감상이 흘러나왔다. 길다면 길다고 할 수 있는 시간 동안의 인연이었다.
이미 세상을 떠난 그에게는 지긋지긋하다 못해 끔찍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인연 말이다.
[긴급전문 일본의 총리대신이자 거물 정치가인 이토 히로부미가 이번 조선 정벌과 관련해 천황을 속이고 본인의 독단으로 일을 진행한 것에 대해 사죄를 외치며 황궁 앞에서 배를 갈라 자살, 현재 그의 시신은 반역자에 대한 처우로서 효수당해 저잣거리에 걸려 있는 상태, 메이지 천황은 공식 발표를 통해 이번 일은 모두 이토가 단독으로 행한 일이며 러시아와 일본 양국은 서로 간에 얽힌 오해를 풀고 평화의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힘과 동시에 지금 상황을 수습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의사를 전해옴.]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분투를 이어나가던 일본군이었으나 급한 진군으로 인한 후방 안정화 작업의 미흡함과 제대로 된 진지도 구축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방어전은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 못했다.
한양을 목전에 두고 후퇴를 한 그들은 이후로 끝도 없이 남으로, 남으로 밀려 나갔으며 마침내 부산을 포함한 낙동강 지역에서의 최후 방어전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러시아군 또한 쉴 새 없이 진격함에 따른 공세 종말점의 도래와 낙동강이라는 자연 방어물을 끼고 농성에 들어간 일본군을 때려 부수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했기에 조선에서의 전쟁은 잠시 소강상태를 띄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일본군이 남은 투지를 불태우며 결사 항전을 다짐했어도 이미 싸움의 결과를 뒤집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상태라는 건 별다른 전략적 식견이 없는 사람이라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이토가 모를 리가 없었다.
비록 그가 타고난 국력 차와 당시만 해도 미래를 알고 있다는 사기에 가까운 능력을 통해 한발 먼저 움직이던 나로 인해 계속해서 실패를 했다고는 하지만, 걸출한 인물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이토가 이런 식으로 나왔으니 앞으로 전쟁을 이어나가기가 한층 힘들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군.’
지금까지는 일본 내에서 가장 미움받는 사람이 누구냐고 설문조사를 했을 경우 나를 이어 2위를 기록했을 이토였겠지만, 그가 황궁 앞에서 모든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며 할복한 이상 앞으로의 얘기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죽은 자는 산 자에 비해 미화되게 마련이다, 라는 케케묵은 격언을 꺼내 들지 않더라도, 주군에게 돌아갈 수 있는 화살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목숨으로 책임진 이토는 앞으로 일본 내에서 신격화될 것이 분명했다.
‘지금에야 감히 천황을 속이고 전쟁을 일으킨 반역자라는 게 공식적인 입장인 데다 그에 따라서 그의 목을 전시하고 있다고는 하더라도 나중에 가면 그가 세운 거나 다름없는 야스쿠니 신사에 안치시키겠지.’
“전쟁 장관과 외무 장관을 부르게.”
“예, 폐하.”
어찌 되었건 일이 이렇게 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천황이 저렇게 나오는 판국에 이후로도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말하는 건, 앞으로 일본어는 지옥에서나 들을 수 있는 언어로 만들어주겠다고 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이제는 강자의 관용을 보여줄 시간이 된 것 같았다.
아직 낙동강 이남에 남아 있는 잔존 일본군 병력에 대한 안전을 보장하면서 무장해제를 진행하겠다는 조건으로 평화협상을 시작할 순간인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없는 살림에 전쟁을 준비하느라 팍팍한 삶을 견뎌내야 했던 일본 국민들이 충격과 피로에서 벗어나 이토에 대한 애도와 추모 그로 인한 분노를 느끼기 전에 전쟁을 마무리하는 게 좋아 보였다.
그리고 평화협상이 이루어지는 동안에도 아직 조선 내에 머무르고 있는 일본군은 좋은 협상 패와 동시에 인질이 되어줄 것이다.
‘일본으로의 원정이 부담스러웠었는데 차라리 잘됐다고도 할 수 있겠어.’
조선 내에 있는 일본군을 소탕하는 것과 바다 건너 일본 본토를 치는 것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었다.
우선 아무리 제해권을 우리가 잡는다고 해도 바다 건너로 보급을 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다.
거기에 적대적인 주변 환경에 시달리는 건 이제 일본군이 아니라 우리 러시아군이 될 것이라는 건 뻔히 보이는 미래였다.
지금에야 가뜩이나 살기도 어려운데 무슨 놈의 대외 확장이냐며 전쟁 자체에 부정적인 일본인들도 자신의 집 앞을 러시아군이 지나간다고 한다면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먼저 도착한 것은 게르 외무 장관이었다. 그도 이토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만큼 앞으로 내가 할 말이 무엇인지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눈치였다.
“곧 전쟁 장관이 올 테니 그와 함께 지금과 같은 전략적 상황에서 앞으로 진행될 평화협상에서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것과 상대측에게 이것만은 꼭 받아내야 하는 조건들을 정리해 보도록 하시오. 천황이 직접 본인 입으로 자신은 이번 일을 해결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한 만큼 철저하게 해야 할 거요.”
“먼저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전략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내가 승리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긴 했어도 나는 내심 불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본인의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 상황을 주도하는 게 아닌 상황을 따라간다는 느낌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이토가 자신의 목숨을 통해 처음으로 나에게 승리를 따낸 것 같았다.
그것이 비록 국가 간의 이득을 좌우하는 승리도 아닌 데다, 내가 나아가려고 했던 방향을 바꾸지도 못하는 승리이긴 했어도 승리는 승리니까.
이토가 처음으로 나에게 승리를 따냈어도 앞으로 일본이라는 나라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못했다.
이번 전쟁에서도 본토가 유린당하는 것만큼은 피할지 몰라도 결국 현대의 바나나 공화국, 즉 자원 수출에만 의존하며 자체적인 발전에는 제약이 걸린 반쪽짜리 국가가 될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당장은 그렇지 않더라도 청나라에 버금가는 맛집으로 전락한 일본이 당분간 열강들의 손아귀를 얼마나 잘 피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폐, 폐하! 큰일 났습니다!”
이토에 대한 내 상념은 다급한 기색이 역력한 스톨리핀의 외침으로 깨지기 전까지 이어졌다.
* * *
“아니, 그런 식으로 호들갑을 떨면 어떻게 하나. 나는 자네가 그렇게 난리를 치는 정도라면 최소한 청나라에서 의화단이 연합군을 격파했다거나 아니면 유럽 내에 또 다른 코뮌이라도 설립된 줄 알았어!”
“지금 제가 가져온 소식이 큰일이 아니면 도대체 어떤 일이 큰일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재무장관님. 지금 설마 황후께서 출산하시는 일이 별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하시는 겁니까? 허허, 이것 참. 폐하께서 방금 재무장관님이 하신 말씀을 들으신다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궁금해지는군요.”
“방금 내가 한 말이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게 무슨 소린가. 정말 이렇게 나오긴가? 자네가 그 자리까지 올라가는 데 내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을 생각이야?”
“은혜라니요. 처음에야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재무장관님께서 저를 그렇게 신경 써주신 건 저라는 사람을 아껴서가 아니라 그저 서류 만드는 기계, 그것도 제법 우수한 기계를 하나 장만했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는 걸 알고 난 후로는 다르게만 느껴지더군요.”
“크흠, 자네들 다 들리네.”
“헛.”
스톨리핀이 가져온 소식은 다름 아닌 내 아내, 예카테리나가 진통을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얘기를 듣고 정신을 차려보니 예카테리나가 출산을 하고 있는 방 앞에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앞서 스톨리핀과 비테가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있는 게 가능할 정도로 출산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래도.
“폐하.”
“응? 왜 그러나.”
“손이…….”
“음?”
게르 외무장관이 옆에서 조심스레 한 말에 내 손을 내려다보니, 하도 강하게 주먹을 쥐고 있는 바람에 주먹이 하얗게 질린 것을 알 수 있었다.
후우.
“고맙네. 이것 참. 아무리 침착하려고 노력을 해도 이건 도저히 익숙해 지지가 않는군.”
출산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문밖으로 들려오는 아내의 힘겨운 신음을 듣고 있자면 저절로 주먹에 힘이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사실 출산이라는 게 의학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지극히 위험한 육체적 행위였기에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도대체 마리아 테레지아나 빅토리아 여왕은 어떻게 16명, 9명이나 되는 아이들을 낳을 수 있었던 거지. 거기에 그들의 남편들은 도대체 어떤 강철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런 순간을 그렇게나 많이 견딜 수 있었던 건지 궁금해질 지경이군.’
스톨리핀이 황후가 진통을 시작했다고 알려온 지 6시간이 되어가는 시점이었지만, 여전히 방안에서 들려오는 신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처음에는 나와 함께 자리를 지켰던 관료들도 업무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돌려보냈기에 이제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은 몇 명의 근위병뿐이었다.
“정말로 별문제 없는 것이 확실한가? 벌써 6시간이나 지났는데.”
“폐하, 황후께서 황태자 저하를 출산하셨을 때를 떠올리시옵소서. 당시에는 무려 10시간이 넘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까. 이번이 두 번째 출산이신 만큼 그때보다야 짧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8시간은 걸리는 게 일반적이옵니다.”
“허, 알겠네. 내 좀 더 노력해 보지.”
“예, 폐하.”
마음 같아서는 출산이 이루어지고 있는 방으로 들어가 확인이라도 해보고 싶었지만, 출산에 꼭 필요한 인원이 아니라면 분만실에 출입을 금한다고 명령을 내린 게 나였던 만큼 참는 수밖에 없었다.
출산 후 면역력이 약해지는 산모와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적은 수의 사람들과 철저한 위생이 필수라는 걸 대략적이나마 알고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문 앞에서 이렇게 초조하게 기다리는 수밖에는.
지금의 나는 유럽과 러시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의 차르도 유서 깊은 황가인 로마노프 가문의 가주도 아닌 그저 아이와 아내를 기다리는 남편이자 아버지에 불과했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올 무렵.
‘응애! 응애! 응애!’
마치 새로운 하루가 시작됨과 동시에 하나의 생명이 태어났다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방안에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느라 피곤했던 것도 단숨에 사라지는 울음소리였다.
나야 도중에 앉는 등의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내 곁을 지키는 근위병은 밤새도록 서 있었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어도 속으로는 피곤이 쌓여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의 어깨를 두드리자 덩치가 무색하게 앞으로 비틀거렸기 때문이다.
“축하드립니다, 폐하. 공주께서 태어나셨습니다. 산모와 아기 모두 건강합니다.”
근위병들의 체력과 관련된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한 산파의 말을 듣자 나는 기쁨의 기도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황태자 시절부터 최소 몇 시간인 미사에 질려 갖은 핑계를 대며 교회를 안 가고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러시아 제국의 문화에 나도 동화된 모양이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뒤 처음으로 내 딸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아들을 처음으로 만났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아직 조막만 한데다 쭈글쭈글한 얼굴에서 부모의 유전적 특성을 찾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딸의 얼굴에서 나와 아내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눈매와 코는 그녀를 닮았으며 입매나 귀는 나를 닮은 것 같았다.
이게 설마 딸바보의 첫걸음인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