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78)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78화
“보세요, 폐하. 알렉세이와는 다른 느낌이지 않나요? 저와 폐하의 딸이랍니다.”
“정말, 정말 고생 많았어요.”
딸아이를 안고 나에게 미소를 보내고 있는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었다.
어제 장장 9시간이 넘는 산고 끝에 아이를 낳았던 만큼 그녀의 얼굴은 초췌하기 그지없었지만, 표정에서 묻어나오는 감정은 기쁨이었다.
처음 이 먼 곳, 겨울의 제국으로 시집을 왔던 당시만 하더라도 숙녀라기보다는 갓 소녀에서 벗어나 여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강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에게서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러시아 제국의 황후라는 데서 오는 자애로움과 위엄이 느껴지는 듯했다.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말이다.
……물론 앞서 말한 두 가지보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더 잘 어울렸지만.
“고생이라, 후후. 물론 고생은 했지요.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몰라도 첫째를 낳은 지 얼마나 됐다고 그렇게 저에게 열렬하게 매달리시던지 참. 이러다가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셋째가 아니라 넷째를 낳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서도 출산하는 도중에 제 곁을 지켜주지도 않고.”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당신의 건강을 위해서 그랬던 거예요. 흠, 흠! 다음 출산부터는 꼭 당신의 곁을 지키도록 하겠…….”
“보세요. 또 당장 어제 둘째를 낳았는데 벌써 다음 아이를 말하고 있지 않나요?”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처음 그녀와 결혼을 생각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 둘 사이의 관계가 이렇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때 내가 그녀를 선택한 것은 철저하게 정략적인 이유 때문이었으니까.
거기에 그녀와의 첫 만남 또한 그다지 원활하지만은 않았다. 난생처음으로 고향을 떠나 정착해야 하는 곳이 이렇게 먼 데다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라고 자부하는 오-헝 제국의 귀족들에게 러시아 제국은 유럽 주류에서 벗어난 촌구석이라는 인식도 강했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가끔은 이곳으로 오는 도중 입맛이 없어 식사를 별로 하지 않아서 수척해진 데다 도착하기 직전이 되니 감정이 북받쳤는지 눈물로 인해 화장이 다 번진 상태였던 그녀의 첫 모습이 떠오르곤 했다.
“그런데 무언가 고민이라도 있으신가요, 폐하?”
“네?”
“아뇨, 알렉세이를 처음으로 안으셨을 때보다는 뭔가 표정이 안 좋으셔서요.”
“하하, 부인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요. 보세요. 제가 지금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웃으며 얼버무리려 했지만, 그녀의 눈을 속일 수는 없는 모양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차츰 차가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경험상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면 솔직해지는 게 나중을 생각하면 오히려 편했다.
지금이야 내가 말하는 것에 대해 더 추궁을 하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피곤해질 것이 분명했으니까.
나는 그녀의 눈빛을 마주 보다 이내 가볍게 한숨을 쉬고 솔직해지기로 했다.
“후, 맞아요. 그래도 오해는 하지 말아줬으면 해요. 당신이 아들이 아닌 딸을 낳았다는 것에 대해 실망을 했다거나 아니면 내가 알렉세이보다 이 아이를 덜 사랑한다는 건 아니니까요. 그저…….”
이후로 나는 여기로 달려오기 전에 들었던 소식과 그로 인한 내 감정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족들을 지켜내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 등을 얘기했다.
얘기가 이어지는 동안 그녀는 딸아이를 조심히 안은 채 별다른 말 없이 그냥 조용히 내 말들을 들어주고 있었다.
“……크흠. 조금 창피하네요. 지금까지 당신 앞에서 뭐든지 아는 척한 데다가 문제 같은 건 다 해결해 주겠다고 큰소리를 쳤었으니 말이에요.”
지금도 앞으로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거나 아니면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쉬고 싶다는 감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극동에서 보내져 온 소식과 아내의 출산이라는 일이 겹치자 아무래도 잠시 감정이 불안정해졌던 것 같았다.
“힘든 사람을 붙잡고 너무 무거운 얘기만 했던 것 같네요. 우선은 휴식을 취해야 할 사람한테 이게 무슨 배려심 없는 행동이람. 하하. 푹 쉬어요. 오늘 얘기는 신경 쓰지 말아요.”
예카테리나에게 멋쩍은 웃음을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던 내 등 뒤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처음 폐하를 만났을 때를 기억하시나요?”
내가 예카테리나를 다시 돌아봤지만, 그녀는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게 아닌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처음에는 폐하를 많이 원망도 했답니다. 생각해 보세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장거리 여행이 고향을 떠나 듣도 보도 못한 거기에 주변에서 좋은 소리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는 나라로 가는 거였다니. 게다가 폐하에 대한 소문은 어찌나 무서웠던지. 피도 눈물도 없는 데다 일본에서의 사고 이후로는 감정을 잃어버렸는지 그동안 서로 열렬히 사랑을 하던 연인마저도 한순간에 차버리는 냉혈한. 거기에 저하고의 나이 차이는 11살이나 난다니. 갓 성인이 된 소녀에게는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답니다.”
그녀는 말이 끝나자 고개를 들어서 내 눈을 바라보며 싱긋 웃더니 다시금 얘기를 이어나갔다.
“폐하와의 결혼을 주선한 어머니를 어찌나 원망했던지. 그래서였을지도 몰라요.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폐하와의 만남을 앞두고 화장을 망쳤던 것도 당시 가지고 있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의 발로였을지도요. 딸의 행복보다 야망을 택한 어머니에 대한 반항이라고 해야 할까요. 거기에 ‘이렇게 첫 인상을 망치면 어쩌면 결혼이 무효가 될지도 몰라!’라는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생각도 포함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 지금도 후회하시오?”
예카테리나가 처음부터 나와의 결혼을 그다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건 느끼고 있었어도 이런 식으로 직접 당사자의 입으로 듣는 건 다른 얘기였다. 저절로 내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녀는 내 말을 듣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웃으며 고개를 저으면서 대답했다.
“그때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아요. 하지만 지금의 제 마음을 물으시는 거라면 제 대답은 절대 아니라는 거랍니다. 폐하는 울어서 화장이 엉망이 된 저를 보시고는 걸치고 계시던 망토를 벗어 제 얼굴을 가려주셨지요. 당시 폐하께서 하신 말씀이 아마 ‘미안합니다.’였던가요?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폐하에 대해 ‘나를 힘들고 불행하게 하는 사람’이나 ‘러시아 제국의 냉혈한 차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한 사내’로 보게 된 게 말이에요. 그 후로는 뭐, 참 많은 일들을 통해 이날까지 오게 되었네요.”
“…….”
예카테리나는 여전히 침울한 내 얼굴을 보고는 장난스러운 기색이 역력하게 서려 있는 태도로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지금도 폐하 때문에 가지고 있는 심각한 고민이 한 가지 있답니다.”
“그게 무엇인지 물어도 되겠소?”
“그게…….”
그녀는 말꼬리를 흐리더니 장난스러운 어투로 대답했다.
“우리의 알렉세이가 미래에는 당신 같은 이마를 가지게 된다는 게 고민이에요. 혹시라도 제 아들에게는 그런 불행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싶지만, 아버님이나 로마노프 황가를 지탱해오신 차르분들의 초상화를 보고 있자면…….”
그녀가 말을 끝마치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아내는 시늉을 하자 나로서도 반응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크흠, 흠!”
“풋!”
내가 헛기침을 하자 그녀도 차마 참을 수 없었던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입 밖으로 비져 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
딸아이를 안고 있어서 박장대소를 하지는 못했지만, 방 안에 감도는 분위기는 방금 전보다 훨씬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렇게 가벼운 웃음이 방 안을 데우고 지나간 뒤 예카테리나는 다시금 딸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러니 너무 그렇게 자책하시거나 아니면 저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혼자서만 무리하시지 마세요. 저 또한 로마노프 황가의 일원이며 러시아 제국의 황후로서 해야 할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이렇게 잠깐이나마 폐하가 가진 고민이나 생각을 저에게 털어놓으심으로써 마음을 가볍게 하시는 데라도 도움을 드릴 수 있고요.”
“……고마워요, 부인.”
그녀의 말을 듣자 나는 아까까지 갖고 있던 이토에 대한 생각이나 아니면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부담감이 한결 나아진 걸 느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다짐하고 또 결심했지만, 거기에 이제는 익숙해졌다고도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철인은 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이런 모습이 더욱 더 고마웠다. 이런 고마움을 담아 그녀를 바라보고 있자 예카테리나는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아까 제가 황후로서 할 일을 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는 했지만, 둘째를 낳은 지 하루도 안 돼서 벌써 황후에게 가장 중요한 일을 하기에는 힘들 것 같은데요, 폐하.”
“아니, 그건!”
내가 당황하며 대답하자 다시금 입을 가리며 웃는 그녀를 바라보자 나는 또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알렉세이의 장난기는 내 동생인 샤샤로 대표되는 로마노프 황가의 피뿐만이 아니라 그녀의 영향도 강한 모양이었다.
“조금만 더 참아주세요. 그건 그렇고 이제는 이 아이에게 폐하께서 이름을 붙여주시지 않겠어요? 첫째인 알렉세이는 제가 생각한 이름으로 결정했던 만큼 우리의 첫 딸아이는 폐하께서 직접 작명을 해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예카테리나의 말이 끝나자 내 머릿속에는 이전부터 생각했던 이름이 떠올랐지만, 과연 그 이름을 딸아이에게 붙여도 될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고민도 잠시. 나는 이내 이 이름을 붙여주기로 결심했다.
“아나스타샤. 아나스타샤가 좋을 것 같군.”
“아나스타샤…… 예쁜 이름이네요.”
그녀는 내가 말한 이름을 몇 번 입안에서 되내이더니 이내 딸아이를 내려다보며 부드럽게 소근거렸다.
“네 이름은 아나스타샤란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우리 곁에 와줘서 고맙다, 아나스타샤.”
딸아이에게 미소지으며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얼마나 오랜 시간이든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나는 이내 그 유혹을 떨치며 문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모들을 불렀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할게요. 휴식도 중요하니 푹 쉬도록 하고 그리고…… 정말 고마워요.”
내 말에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잠시 동안 더 바라본 뒤 나는 이내 문밖으로 나섰다.
그녀와의 시간이 내게 있어 치유와 휴식의 시간이었던 것은 확실하지만, 이제는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었다.
딱딱하고 간결한 문체로 건조하게 오늘은 어느 지역에서 얼마만큼의 사람이 죽었으며 내일 누군가를 ‘정리’해야 하는 일에 대해 허가 명령을 내려달라는 등의 문서에 서명을 하는 일상 말이다.
그리고 조만간 유럽에 불어닥칠 폭풍은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의 내용이 담긴 문서에 밥 먹듯이 서명과 첨언 명령을 해야 할 나날이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사람의 목숨은 단순히 종이 위에 적힌 숫자로만 평가가 될 것이며 어떻게 하면 우리 측의 숫자를 적게 소모하면서 상대방의 숫자의 수를 크게 낮출지에 대한 문서 말이다.
하지만 그날이 온다 하더라도 오늘의 기억은 나를 지탱해 주는 등대의 불빛과도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그리고 이 등대가 있는 한 내가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