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79)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79화
사람들은 말하곤 했다.
19세기가 끝나고 20세기가 되는 것은 단순히 세기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왔던 세상이 전부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했다.
20세기는 단순히 지금까지 세기를 세어올 때 쓰여왔던 ‘1’이라는 숫자가 ‘2’로 바뀌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고.
‘전혀 아닌 것 같은데.’
“주가슈빌리. 내 말 듣고 있는 건가?”
“옛! 물론입니다!”
“그럼 방금 내가 뭐라고 말했는지 한번 얘기해 보게. 내가 자네보고 내일까지 하라고 지시한 사항이 뭐였지?”
“옙! 교육 개혁과 관련해 아직도 교회 소속으로 남아 있는 학교들의 목록 정리 및 그 학교들을 담당할 젬스트보와 관련된 서류를 준비해 오라고 하셨습니다!”
방금까지 허공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부하를 평상시의 건방진 태도도 고쳐줄 겸 혼내기 위해 말을 걸었던 상사였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술술 나오는 말을 듣자니 트집을 잡을 구석이 보이지 않았다.
“크흠, 그래. 잘 듣고 있었군. 그럼 나는 오늘은 미안 퇴근할 테니 내일까지 방금 말한 것들을 다 준비해 놓도록. 알겠나? 내일 내가 출근하자마자 책상 위에 정리되어 있는 서류를 살펴볼 수 있게끔 해놓으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업무, 보고서 작성, 야근, 그리고 다시 업무, 보고서 작성, 야근.
주가슈빌리에게는 자신이 속한 세계가 19세기이든 20세기이든 달라진 게 없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차라리 지난 아프리카 위기 때가 지금보다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되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별다른 긴장감이 맴돌지 않는 상태가 아니었었다.
당시 자신이 받던 교육 프로그램도 정지될 정도로 수도에 있는 모든 관료들이 전시 수준에 버금가는 모습을 보여줬었으니까.
당시만 하더라도 아직 공을 세울 수 없는 소년 상태였던 그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지난 아프리카 위기는 재빠른 러시아 제국의 개입으로 불완전 연소와 같은 결말을 맞이하긴 했다.
그러나 그때 모습을 보였던 불씨는 여전히 본인의 몸집을 키울 계기만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었다.
언제고 무슨 일만 터진다면 단숨에 유럽을 불태울 거대한 불길로 변할 날만을 기다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언제고 공을 세울 기회만 있다면 어떻게든 인생을 역전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겠다고 야망에 불타던 소년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여기 남아 있는 건 과도한 업무와 호시탐탐 자신을 혼낼 기회만을 엿보는 상사에게 찌들어 지쳐 버린 관료뿐이었다.
“아, 야근하기 진짜 싫다. 개 같은 놈 그냥 지가 해도 되는 걸 꼭 나한테 시킨단 말이야. 에라이, 돌아가다가 사고나 당해라.”
“방금 그 말을 스톨리핀 국장님이 들으셨어야 하는데. 아쉽네.”
주가슈빌리는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내뱉은 문장에 대해 등 뒤에서 대답한 걸 듣고 자리에서 뛰어오를 뻔했지만, 이내 방금 대답이 누가 한 것인지를 깨닫고 당황하지 않은 척하면서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언제 봐도 재수 없다고 느껴지는 자신만만한 얼굴로 안경을 쓰고 있는 유대인 소년 아니 이제는 청년이었다.
“와, 방금 너 설마 내가 한 말에 놀라 자빠질 뻔한 거냐?”
“아닌데.”
“아니긴 뭘 아냐. 딱 봐도 그런 거던데. 이야, 주가슈빌리도 완전히 죽었구만. 같이 교육받는 동등한 입장이면서 부하들을 줄줄이 데리고 다니고 언제나 당당한 모습이던 주가슈빌리는 어디 가고 이제는 혹시라도 상사에 대해 험담한 걸 들킬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사회인만 남아 있는 거냐 응?”
십 대 시절 서재에서 나누던 대화 수준에서 별로 발전하지 않은 수준의 말들을 나누는 두 사람이었다.
교육 프로그램을 각자 1, 2등으로 수료한 브론시테인과 주가슈빌리였지만, 그런 그들도 처음에는 말단 관료부터 시작을 해야만 했다.
이는 차르가 아닌 스톨리핀의 의사가 반영된 결과였는데 지방 보안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그가 본인의 제자들을 말단 관료들의 고충을 모르는 상사로 만들지 않겠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것을 차르가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너무 뭐라고 하지 마라. 어차피 내후년이면 네가 방금 나간 상사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을 텐데. 저 사람으로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지 않겠어?”
“그게 문제라는 거야. 2년 뒤면 본인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사람한테 저렇게 나오는 근시안적인 사고만 가지고 있는 인간이 중간 관리자 역할을 맡고 있다는 거 자체가 문제라고.”
주가슈빌리의 말을 듣자 브론시테인은 그가 단순히 상사가 본인을 못살게 굴어서 짜증이 난 게 아니란 걸 느낄 수 있었다.
현재 차르인 니콜라이 2세가 황태자 시절부터 실시한 개혁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관료의 숫자를 늘리면서 평균 수준 이하의 관료들도 많이 유입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정기적인 업무 능력 평가를 통한 수준 미달의 관료들을 걸러내기 위한 정책 등과 같은 관료계층 자체의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장치를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지만, 당장 실시하기엔 여러 가지 제약이 따르는 게 현실이었다.
당장 협조적으로 나오지 않을 관료들은 제쳐두더라도 만약 이 정책이 시행된다면 당장 현재 진행 중인 업무가 중지될 거라고 하소연하는 부서 책임자들의 숫자도 상당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주가슈빌리도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기에 아직은 자신의 속내를 어느 정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대라 생각하고 있는 브론시테인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두고 보라고. 내가 이런 일들을 처리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르는 날, 내가 세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급여는 꼬박꼬박 받아먹는 도둑놈들은 모조리 짐 싸서 집으로 돌아가야 할 테니까.”
그렇게 미래의 ‘숙청’을 다짐하며 다시금 의욕을 불태우던 주가슈빌리는 이런 주제에 대해 얘기하느라 미처 생각하지 못하던 걸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너는 여유로워 보인다? 오히려 전쟁부 소속인 네가 신성종무원 소속인 나보다 더 바빠야 하는 거 아니냐? 극동에서의 소란이 끝나간다고는 해도 아직 완전히 마무리된 건 아닐 텐데.”
주가슈빌리의 궁금증과 나는 이렇게 바쁜데 너는 다른 부서에 놀러 올 정도로 여유가 있는가 보다 하는 질투가 섞인 질문을 듣자 브론시테인은 웃으며 대답했다.
“청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폐하께서 처음부터 별로 개입할 의지가 없으셨던 데다가 일본과의 문제는 이제 우리 전쟁부보다는 외무부 쪽이 바쁜 부분이니까. 네 말대로 여기 놀러 올 정도로 여유롭다. 어때, 이래도 전쟁부보다 신성종무원이 더 낫다고 생각하냐?”
브론시테인의 말을 듣자 주가슈빌리는 과거 둘이 서재에서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자신은 신성종무원이 과거보다는 못할지언정 여전히 러시아 제국의 핵심권력부서로 남아 있을 거라 말했고 상대방은 지금의 평화는 오래가지 못할 테니 전쟁부가 가장 중요한 권력기관으로 올라갈 거라 얘기했던 그 날.
그 날의 대화를 기억하는 건 본인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뭐, 여유롭다고는 해도 사실 매일 하던 야근이 이틀에 한 번꼴로 바뀐 거 정도지만 말이야. 일본과의 문제는 이제 외무부에서 담당한다고 해도 폐하께서 진행하고 계시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주가슈빌리에게 이리 말하는 브론시테인의 머릿속에서는 최근 자신도 들어가게 된 ‘전차’라는 신무기에 대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미 여러 차례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기관총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있는 이 신무기는 차르가 제시한 몇 가지의 기준을 충족해야만 했다.
봄마다 도로가 진창이 되는 현상인 라스푸티차 도중에도 어느 정도의 기동력을 갖춰야만 했으며 중포는 무리더라도 기관총에 대해서는 방호 성능이 충족되어야만 했다.
그러면서도 상대방 진지에 대한 공격 능력까지 갖추어야 하며 되도록 현장에서도 수리할 수 있도록 최대한 간단한 구동원리를 가져야만 했다.
‘차라리 자체적인 동력을 지니고 하늘을 날면서 상대방을 공격할 수 있는 물건이나 아니면 단 한 척만으로 여태까지 나온 전함들을 고철로 취급할 수 있도록 만드는 물건을 만드는 게 더 쉽겠는데.’
다만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분야는 철저한 기밀이었기에 아무리 주가슈빌리라 해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를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비밀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지키기 쉬운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브론시테인도 아직은 알지 못했다.
자신 말고도 전쟁부 내에는 방금 본인이 농담처럼 얘기한 사항에 대한 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다른 팀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자원도 한정된 데다 공업적인 기술도 부족한 러시아로서 이 3가지를 전부 실현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지 몰라도 우선 기초적인 개념은 세워놔야 한다는 니콜라이의 생각이 반영된 결과였다.
“그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는 당연히 안 알려주겠지?”
“그럼.”
“어떻게 부탁해도 말이야, 그렇지?”
“잘 알고 있네.”
“진짜 그동안에 인연을 생각해서 추론할 수 있을 만한 단어 하나만 알려달라고 해도 무리겠지?”
“물론이지. 역시 주가슈빌리야. 내가 말 안 해줘도 이미 알고 있잖아. 다른 동기들도 네 반만 따라갔으면 좋겠는데.”
여전히 안경을 쓰고 다니는 시건방진 유태인 청년의 말을 들은 조지아 청년은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이야, 이제 보니 다른 놈들한테도 돌아다니면서 자랑질을 한 모양이네. 나는 이렇게 여유로운데 너희들은 오늘도 열심히 일하는구나. 정말 애쓴다. 힘내라. 뭐 이러면서 순회공연이라도 하고 있는 모양이지? 그 와중에 나는 좀 중요한 사실을 알고 있지만 니들한테는 말해줄 수가 없다는 우월감도 조금씩 드러내면서 말이야.”
“뭐, 그런 목적도 없잖아 있긴 했지.”
브론시테인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나오자 할 말을 잃은 건 주가슈빌리 쪽이었다.
이 재수 없는 녀석은 아무래도 같이 교육을 받던 소년 시절보다 더 얼굴이 두꺼워졌으며 가뜩이나 없었던 싸가지는 멸종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이놈의 인성 속에서 아무래도 멸종해버린 모양이었다.
뒤이어 이어지는 말만 아니었어도 아마 가차 없이 그에게 축객령을 내렸으리라.
약간의 물리적인 설득이 포함된 축객령 말이다.
“여태까지는 말이야. 이봐, 주가슈빌리.”
갑자기 아까까지의 장난기는 어디로 갔는지 브론시테인은 동기들 중 본인이 유일하게 인정한 사내에게 진지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이번 극동에서의 소란이 겉보기엔 아주 쉽게 마무리가 되었지만, 우리 전쟁부 안에서는 꽤 우려하는 목소리가 컸다는 걸 말이야.”
이놈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항상 대화의 방향을 본인이 주도하지 못해서 안달이 난 듯했다.
지금만 해도 별다른 의미 없이 온 것처럼 자신을 살살 자극하다 어느샌가 주도권을 잡은 것만 봐도 브론시테인이라는 사내는 모든 일의 중심에 본인이 있어야 한다고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놈하고 아직도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걸지도.’
성장배경, 성격, 행동 등등 모든 면에서 마치 정 반대에 위치한 것 같은 둘이었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서로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그건 말해줄 수 있는 사항인가 보지?”
주가슈빌리는 이번에도 그의 악우(惡友)와 어울려주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