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85)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85화
63장 찻잔 속의 태풍
저 멀리 극동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이르기까지의 영토를 자랑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나라라고 할 수 있는-어디까지나 식민지를 제외했을 경우-러시아 제국의 지배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당연히 차르 아닙니까?]그가 러시아 제국에 대해 좋지 못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차르가 아닌 스키타이 추장이라는 등의 멸칭이 나왔겠지만, 현재 니콜라이 2세가 러시아 제국의 지배자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었다.
얼마 전 차르의 칙령을 통해 드디어 러시아 제국에도 두마라 불리는 의회가 만들어졌다고는 해도 현재의 국가두마는 차르로 대표되는 행정부에서 벗어나 독립된 입법 권한을 행사하는 기구라고 보기는 힘들었다.
니콜라이가 두마를 만들 때 관료들에게 했던 말대로 현재의 러시아 의회는 독립기구보다는 부족한 행정력을 메꿔주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느낌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정 운영을 하는 주체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개혁이 실시된 이후인 현재도 과거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물론 이는 중앙에서 이루어지는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지와 같은 큰 방향을 잡는 등의 정치에 해당될 뿐 지방에서는 젬스트보와 미르 해체로 대표되는 개혁 등으로 인해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앞서 했던 질문을 약간 바꾸어서 그렇다면 차르를 제외한다면 러시아 제국의 행동 방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 또한 답변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관 회의’ 지난 1801년 알렉산드르 1세에 의해 시행된 러시아 제국의 대대적인 정치 개혁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이 기구는 그전까지 오직 차르만이 행사할 수 있던 강력한 정치적 힘을 나눠 받은 통치기구나 다름없다고 할 수 있었다.
알렉산드르 1세의 개혁 덕분에 러시아 제국은 그 이전까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후진적이었던 행정체계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정부의 틀을 가질 수 있었으며, 주먹구구식이나 다름없었던 국가 운영 또한 체계가 잡혀 나가기 시작했다.
이때의 개혁 덕분에 별다른 능력도 검증받지 못했으면서 귀족이라는 이유로 ‘세나트’, 즉 상원에 소속된 사람들이 국정 운영을 주도하지 않게 되었다.
세나트는 일종의 명예직으로 바뀔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러시아 제국이 무능한 상층부로 인해 제대로 된 조치를 받지 못하고 자신의 덩치에 짓눌려 허덕이는 것을 수십 년 동안은 막을 수 있었다.
그런 만큼 현재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장관 회의 참석자들은 러시아 제국 내에서 본인들의 위에 차르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그야말로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장관 회의에 소속되어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만큼 그들 스스로도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런 감정은 평상시 이들이 보여주는 태도로 나타나곤 했었고.
하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원래라면 차르가 오길 기다리며 서로 잡담이나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의 분위기였겠지만, 오늘은 무언가 있었다.
마치 사람 목에 박힌 가시처럼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들이 회의실 안 군데군데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강력한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의 분위기라고 하기에는 어딘가 경직되었으며 입대 추첨을 기다리는 러시아의 청년들 마냥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정말로 이래도 괜찮을까요.”
불길한 침묵이 감돌던 회의실이었기에 평상시라면 들리지 않았을 속삭임도 마치 벽에다 대고 하는 망치질처럼 방안으로 퍼져 나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 말이 들려온 곳으로 쏠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마치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재빨랐다.
어느 누가 이런 분위기에서 감히 입을 열었느냐는 감정이 담긴 시선을 받은 검은 제복을 입은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은 젊은 사내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사실 장관들이 그에게 이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앞서 말했던 목 안에 걸린 가시와도 같은 존재 중 하나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원래 러시아 제국의 제복 자체가 어두운색 계열인 데다 그들이 입는 양복의 경우에도 검정, 짙은 갈색과 같은 채도가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에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땐 티가 잘 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었지만, 항상 회의에 참석하던 이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엄연히 검은 제복을 차려입은 불청객들이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실 장관들이 불쾌감을 드러내는 만큼 여기에 함께 있는 해군 측 인사들 또한 다른 감정을 나타내고 있었다.
장관들이 괜히 자신들에게 불똥이 튀지는 않을까 혹은 이런 불경한 짓을 한다는 것 자체에 안 좋은 감정을 느끼는 것만큼이나 그들도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내정과 관련된 개혁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그들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들뿐만 아니라 육군에도 추가적인 예산 분배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
극동에서 여러 차례 소란이 일어났을 때 육군만이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을 때도 그들은 참을 수 있었다.
겉보기에는 육군만이 활약했다고 볼 수 있었지만, 자신들도 블라디보스토크에 기항 중인 극동함대를 통해 보급선을 끊는 등 전황에 보탬이 된 데다 차르 또한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며 작전 수행 인원들에게 훈장을 수여했었기 때문이다.
대중들의 관심이 육군에게만 쏠리는 것이 불만스럽긴 했지만 참을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은 알아주지 못해도 차르가 본인들을 기억하고 신경 써주고 있다면 상관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후로 해군 측은 현상 유지나 하면 다행인 예산을 배정받는 것에 비해 육군은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무기 사업과 교리 정립을 위한 추가 예산을 받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이는 해군에 소속된 이들에게 거대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가뜩이나 기술력과 예산 부족으로 인해 185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증기를 이용한 철갑선이 아닌 돛을 이용한 포함이 주력이었던 러시아 제국 해군의 악몽이 되살아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위기감과 분노로 사실상 현재 러시아 제국의 수상이라는 평가를 받는 비테에게 장관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통보를 날린 뒤, 기세등등하게 이 자리에 참석했으나 이내 차르와 대면할 시간이 다가오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재의 차르인 니콜라이 2세가 어떤 인물이던가?
황태자 시절부터 선제인 알렉산드르 3세와 본인의 스승이었던 포베도노스체프를 어떤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날려 버렸으며 미르 해체로 인해 들고 일어났던 반동 세력들을 처절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으깨어버린 사람이었다.
거기에 황제 본인은 부정한다고 하지만 황태자 시절 자칫하면 거대한 반란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안디잔 반란을 사전에 예언에 가까운 예측으로 분쇄했으며 그 어떤 러시아의 황제도 이룩한 적 없었던 위업인 영국의 심장인 런던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군대를 입성시킨 업적을 이룩한 사람이기도 했다.
이런 니콜라이에게 최근에 있었던 자신의 삼촌인 알렉산드로비치 대공을 시베리아로 보내버린 일은 이젠 저녁 식사 자리에서 다 식은 보르시(러시아식 수프)를 들이켜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오늘따라 폐하께서 늦으시는 것 같군요.”
차르의 이전 행보를 떠올리며 자신들이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아닌지 후회하고 있는 해군 인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태연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지노비 로제스트벤스키 중장이 아니었다면 아마 차르가 오기 전에 다들 회의장에서 빠져나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본래라면 아직 소장 지위에 머무르고 있어야 할 그였지만, 차르의 명령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해서인지, 아니면 이전부터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는 ‘단순히 그가 귀족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장교로 채용하는 것은 유능한 인재를 뽑을 수 없도록 만든다’라는 말을 공공연히 해대던 성격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귀족이 아닌 의사였던 아버지를 둔 본인의 배경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로제스트벤스키 중장은 철저히 본인의 실력으로 이 자리까지 올라온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평상시 해군 내에서도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정확하게 2개로 나뉘어 있었다.
그를 격렬하게 추종하던가. 아니면 그를 맹렬하게 증오하던가.
다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이 자리에 있는 해군 인사들의 마음속에서만큼은 로제스트벤스키야말로 러시아 제국 해군의 구원자나 다름없었다.
“러시아 제국의 차르이신 만큼 신경 쓰실 일이 워낙 많으시니 때때로 이렇게 늦으시고는 합니다. 중장께서는 장관 회의에 참석하시는 게 이번이 처음이실 테니 잘 모르실 수도 있겠지만요.”
그런 그에게 날 선 반응을 보인 것은 다름 아닌 스톨리핀이었다.
재무장관인 비테의 그늘에서 벗어나 황제 직속 관료나 다름없는 생활을 보내고 있는 그로서는 가뜩이나 할 게 많아 죽겠는 지금 이렇게 우르르 찾아온 해군 인사들이 추가적인 일거리를 가지고 온 원수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습니까? 이것 참. 제가 뭘 모르고 실례를 저질렀군요. 행정부에서 처리하는 그 많은 일들 중에 우리 해군과 관련된 것도 있었다면 참으로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저 같은 일개 장군이 이런 식으로 찾아와 무례를 저지르며 실수를 할 일도 없었을 테고요.”
로제스트벤스키의 말에도 날카로운 비수가 숨어 있었다.
그렇게 일거리가 많다고 죽는소리를 내면서 러시아 제국을 지탱하는 양대 기둥인 우리 해군과 관련된 사업 하나 하지 않는 게 말이나 되느냐는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사실 그들의 불만도 일리가 있었다.
이전 전쟁 장관인 반노프스키 또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러시아 제국의 동맹은 육군과 해군 단 2가지뿐’이라고.
거기에 해군이야말로 열강의 국력을 가르는 척도라는 의식이 팽배한 지금 러시아 제국 해군으로서도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나마 영국은 자신들 내부에서 터진 문제로 잠시 주춤하고 있다고 하지만, 독일이 이때를 놓칠세라 무서운 속도로 해군력을 증강시켜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프랑스 또한 독일이 해군력을 증강시킴에 따라 본인들 또한 새로운 함선을 발주하고 건조하느라 여념이 없는 상태였다.
프랑스와 러시아가 지금은 동맹이라고 하지만 유럽 역사에 있어 동맹은 ‘당장 눈앞의 적을 상대하고 난 뒤에 남을 적’이라고도 부를 수 있었으니까.
병사들 사이에서 ‘미친개’라고 불릴 정도의 성격을 가진 로제스트벤스키의 성격에 걸맞은 말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중장. 말을 하는 데 있어 좀 주의를 하는 게 좋을 것 같군. 자네의 방금 발언은 그렇다면 행정부를 총괄하는 폐하께 불만이 있다고 봐도 되겠나?”
“……그건 아닙니다, 장관님.”
스톨리핀과 로제스트벤스키 사이에서 벌어지던 신경전에 끼어든 것은 다름 아닌 현재 전쟁 장관을 역임하고 있는 쿠로파트킨이었다.
“그렇다면 전쟁 장관으로서 가지고 있는 권한으로 명령하지. 이번 회의가 끝난 이후 자네의 경솔한 발언에 대한 징계가 있을 거네. 인지하고 있도록.”
“알겠습니다.”
쿠로파트킨의 이런 태도는 가혹하다고도 할 수 있었지만, 역으로 그가 이런 식으로 나왔기에 오히려 로제스트벤스키를 보호하는 것이기도 했다.
방금의 말은 해석하기에 따라 제국과 황실에 충성해야 하는 군인이 공개적으로 황제에게 불만을 드러냈다고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벼운 소란이 지나가고 이제는 태풍의 시간이었다.
현재 러시아 제국을 송두리째 휩쓸고 있는 태풍, 차르의 도착을 알리는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