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86)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86화
음, 딱 봐도 뭔가 한바탕한 모양인데.
회의장에 들어오자마자 내가 느낀 분위기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이렇게 나타낼 수 있었다.
회의 장소 군데군데에 검은색 옷으로 본인들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앉아 있는 해군 인사들은 마치 맛좋은 쿠키에 박혀 있는 건포도처럼 보였다.
생각해보니 쿠키에 건포도를 넣는다는 끔찍한 생각은 도대체 누가 떠올린 걸까.
다행히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러시아 황실 요리사들이 그런 말도 안 되는 음식이라 할 수도 없는 음식을 만들어내지는 않겠지만.
비테가 나에게 개인적으로나마 이번 일을 미리 얘기하며 대놓고 해군 인사들을 솎아내는 것은 아닌지 걱정했던 게 괜한 걱정은 아닌 모양이었다.
현대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바다 생활은 쉬운 게 아니었다.
대영제국마저도 해군 병력을 충당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술 취한 주정뱅이나 오갈 곳 없는 거렁뱅이를 강제적으로 입대시킨 게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닐 정도였으니까.
그런 만큼 영국보다도 더 좋지 못한 환경 속에서 해군으로 일해온 이들이, 거친 파도와 악천후 앞에서도 당당함을 유지하던 이들이 마치 순한 양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은 신선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평상시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수록 보통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로제스트벤스키가 오히려 눈에 띄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를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지켜보는 스톨리핀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와 내가 도착하기 전에 부딪힌 인물이 로제스트벤스키인 모양이었다.
평상시에도 할 말은 한다라는 태도를 고수하는 그의 성품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그와 스톨리핀이 충돌한 일은 그다지 놀라운 건 아니었다.
중장으로 진급하면서 현재 해군성의 2인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로제스트벤스키는 최근에 해군 내에서 일어났던 가벼운 소란의 당사자이기도 했었기 때문이다.
‘설마하니 새로 신설된 초급장교 양성 과정을 마치지 않은 사람은 출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임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얘기할 줄이야.’
말이 출신 신분 고하를 가리지 않고서이지 사실상 귀족 출신의 능력도 증명되지 않은 데다 최소한의 군 관련 능력을 키우기 위한 과정도 밟지 않은 이들은 해군에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중앙 귀족은 물론이고 각지의 지방 귀족들 또한 그의 방침에 불만을 품었겠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사실 단순히 귀족 출신이라고 해서 고위직으로의 임용이 보장되는 흐름이 차츰 옅어진 것은 이미 행정부와 지방 행정 조직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해군은 용케 아직까지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서 비켜나 있었다 해도 로제스트벤스키가 한 것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기보다는 물꼬를 튼 것과 비슷한 행위였다.
다시 말해.
‘그런 시대 흐름을 만든 게 다름 아닌 나인 만큼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한다는 건 나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다고 공식적으로 말하는 거나 다름없는 행위지.’
여태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귀족들은 두 가지 부류라고 할 수 있었다.
하나는 나에게 협력적인 태도를 보이는 부류, 다른 한쪽은 지금의 상황이 그다지 달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이 앞장서서 무언가를 할 정도의 배짱은 없는 부류.
이 두 가지에 해당하지 않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런 이들은 지금쯤 황실의 일원이자 로마노프 황가의 대공인 나의 삼촌을 시베리아에서 수행한다는 막중한 업무를 수행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오늘따라 이 회의실이 더 꽉 찬 것처럼 느껴지는군. 내무장관이 최근 들어 솜씨 좋은 요리사를 고용했다고 하더니. 그것 때문인 건가? 어쩐지 요즘 중앙 관료들이 소모하는 식재료의 양이 증가하는 속도가 심상치 않다고 비테 장관이 앓는 소리를 하던데.”
나는 짐짓 회의에 참석한 해군 인사들을 모른 척하겠다는 식의 말로 회의를 시작했다.
평상시였다면 가벼운 웃음소리들이 들려왔겠지만, 지금의 회의실 안에서는 한 호흡 정도의 짧은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음, 요즘에 농담을 하도 하지 않아서인지 아무래도 내 유머 감각이 좀 녹슨 모양이구만. 전쟁 장관!”
“예, 폐하.”
“오늘 이 회의에 추가적으로 참석한 인원의 숫자가 몇 명이나 되나?”
“사전에 비테 장관에게 들으셨겠지만, 총 7명의 해군성 인원들이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습니다.”
“7명이라…… 제법 많군. 내가 본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들의 참석을 허가하겠다고 재무 장관을 통해 말하긴 했어도 7명이나 되는 제국 해군의 제복을 입은 장성들을 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나와 쿠로파트킨이 나누는 말을 듣는 해군 측 인사들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지금까지 러시아 제국 사회 고위층들 사이에서 돌았던 나에 대한 소문을 그들이라고 해서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귀족 사회 뒤편에서는 내가 하느님인지 아니면 악마인지는 몰라도 불가사의한 힘을 통해 자신들의 비밀과 약점을 줄줄이 꿰고 있는 의문의 힘과 정보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말도 돌고 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솔직히 내가 그 정도로 나쁜 놈은 아닌 거 같은데.
별수 있겠는가.
이전까지 해온 게 있으니 업보다 라고 생각해야겠지.
그리고 꼭 나쁘게 작용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좋아. 여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하는 나라의 봉급을 받는 이들 가운데 시간이 남는 사람이 없다고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바쁜 시간 들을 쪼개어 이렇게 우르르 몰려왔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각오를 했다는 얘기겠지. 거기에 본래 계획에 없던 자네들의 이야기를 듣느라 소모될 나와 장관 회의 구성원들의 시간까지 생각한다면 오늘 나눌 얘기가 그에 상응할 정도는 되겠지. 그렇지 않은가? 설마하니 제국의 바다를 지키는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인들이 본연의 업무도 뒤로 한 채 왔다면 그런 중요한 이야기일 게 분명하니까 말이야. 어디 한 번 얘기해보게나.”
내 말이 끝나자 회의실은 침묵에 휩싸이…… 지 않았다.
방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입을 연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발언권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예, 그렇습니다. 방금 폐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오늘 저희가 이런 실례를 저지르게 된 데는 매우 중대하면서도 시급한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 자리에 참석한 해군 측 인사가 7명이라고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배짱을 가진 사람은 그 혼자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저마다 자리에 앉아 부끄럽다는 듯이 시선을 피하고 있었으니까.
로제스트벤스키는 본인과 함께 온 일행들의 상태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태연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최근 들어 전통의 해군 강국이자 압도적인 전력을 가지고 있던 영국이 주춤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와 영국 사이의 관계가 그다지 나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양국 간의 해군력의 격차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제들께서도 해군력의 중요성을 미리 알아차리시고 황공스럽지만, 지속적으로 투자를 해주심으로써 과거에 비해 격차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우리 제국 해군은 태생적으로 여러 가지 단점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그의 말의 시작에는 여태까지 제국 해군이 러시아를 위해 무엇을 해왔고 지난 전쟁에서 무슨 공훈을 세웠으며 육군과 비교하더라도 꿀리지 않는다는 등의 구구절절한 과거 미화와 감성팔이식 정보가 들어가 있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동과 서로 지나치게 긴 국토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국 또한 세계 각지에 가지고 있는 식민지로 인해 해군력이 분산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거꾸로 말하자면 그것은 지구 곳곳에 본인들이 기항할 수 있는 항구를 확보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서쪽에 모항을 둔 함대는 극동에서 지원이 필요할 경우 남의 항구들을 빌려 가며 기나긴 여정을 떠나야만 합니다. 그것도 대부분의 경우에는 영국의 입김이 닿아 있을 항구 말입니다.”
그는 책상 위에 깍지를 끼고 있던 손을 풀고 오른손의 검지만을 펼치며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에야 영국의 영향권 안에 있는 항구라 하더라도 별다른 문제 없이 기항한 뒤 보급을 하는 등의 행위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약 영국과 어떤 문제가 생길 경우 아마 함대는 기나긴 고난의 여정을 나서야만 하겠지요. 이런 식의 지원이라도 할 수 있다면 다행일지 모릅니다. 흑해에 주둔하고 있는 함대의 경우에는 이마저도 제대로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콘스탄티노플이 튀르크 인들의 손아귀에 있는 이상 흑해 함대는 코르크 마개 속에 갇혀 있는 보드카나 다름없으니까요.”
그의 말대로였다.
실제로 러일 전쟁 당시 극동에 주둔하고 있던 러시아 제국의 함대는 실질적인 전력이라 할 수 없는 구형 함선들이 대부분이었다.
괜히 당시 러시아 제국의 수뇌부가 저능아 집단이라 발틱 함대에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항해를 명령한 것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당시 발틱 함대의 사령관이었던 로제스트벤스키 입으로 관련된 얘기를 들으니 감회가 새로운데.’
거기에 그가 말한 대로 시작부터 도거 뱅크 해역에서 어업 중이던 영국 어선을 일본 해군으로 착각한 발틱 해군이 발포해 민간인 사상자를 내는 바람에 극동으로 가는 동안 제대로 된 보급도 받지 못하게 되었던 걸 생각하면 그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겨울이 되면 해군의 제대로 된 활동이 힘들어진다는 것 또한 현재 저희 해군이 가진 문제점 중 하나입니다만, 그것은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말씀드릴 사항은 아니기에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사항에 더해…….”
“잠깐만 기다려 보게나.”
나는 그의 말을 잠시 멈추게 만들었다.
지금부터 내가 할 말은 일종의 시험과도 같은 행위였다.
“지금까지 자네가 한 말을 들어보면 선제들께서 해오신 해군에 대한 그 모든 투자가 별로 소용이 없었다는 것으로 들리는군. 내가 알기로는 열강들 가운데 우리가 보유한 해군 함정의 배수량이 3번째로 많다고 하던데 내 말이 틀린가?”
“……아닙니다, 폐하.”
“그렇다면 자네는 지금 세계 3위의 해군을 가지고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불평불만을 토해내고 있는 건가? 말해보게. 세계 3위씩이나 되는 규모의 해군을 가지고도 우리는 별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장성을 내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말이야.”
실제로 이 시점에서 러시아 해군의 규모는 영국과 프랑스를 이어 세계 3위의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로제스트벤스키가 말한 것과 같은 약점을 러시아 제국의 다른 이들이라고 모를 리 없었기에 아버지를 비롯한 이전의 차르들도 해군을 확충하는 데 여러 공을 들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내가 질문한 내용에 대해 로제스트벤스키가 어떻게 답변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내 생각도 결정될 예정이었다.
그와 함께 온 해군 측 인사들은 그에게 눈빛을 통해 지금이라도 사죄드리라는 등의 의미가 담긴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지만 로제스트벤스키는 오직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길게만 느껴지던 시간이 지나가고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방금 폐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예, 맞습니다. 현재 러시아 제국 해군은 세계 3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아직 자세히는 알지 못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해군 제독의 눈은 말 그대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들 중 대다수가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구형 함정이라는 걸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로제스트벤스키의 말이 끝나자 장내는 마치 시베리아의 겨울처럼 얼어붙었다가 포탄이라도 떨어진 듯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다채로운 품격있는 단어로 포장된 욕설들이 난무하고 있는 그 순간.
내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