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9)
‘다만 문제가 되는 게 있다면.’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행동이 자칫하면 월권행위로 보여질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였다. 현재 국정 운영을 내가 주체적으로 하는 것은 맞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작년부터 발생한 국내의 위급상황으로 인한 권한일 뿐 아직까지 러시아 제국의 실질적으로나 명목상으로나 지배자는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3세였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나에게 주신 권한 중 외국과의 외교에 대한 것은 없었으니까.’
물론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아버지가 이번 기회에 나에게 후계자 교육 및 승계 작업을 하신다는 것은 확실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신중해질 수 밖에 없었다.
‘권력을 앞에 둔 사람들에게 있어 혈육의 정은 쉽게 무너질 수 있으니까.’
명색이 사학도인 나는 권력 앞에서 무서울 정도로 비정해진 사례를 너무나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 사례 중 많은 경우가 정당한 후계자와 그의 아버지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지배자였던 사람들에게 자신이 권력을 잃는다는 현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었으니까. 아무리 자신의 권력이 넘어가는 상대가 자신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아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조금 늦어진다 해도 확실하게 아버지의 허락 혹은 최소한 미리 내가 준비한 것에 대한 의견이라도 여쭈어보고 실행하는 게 낫겠어.’
아직은 점심시간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시간이었기에 나는 조금 있다가 아버지를 찾아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정리해야 할 서류도 아직 존재했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검토도 필요했다.
‘이렇게 살다간 과로로 죽은 황태자로 역사서에 기록될 수도 있겠군.’
나는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 한 나라의 그것도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닌 국가의 황태자로 살아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나와 융합되어 살아가는 니콜라이의 영향이 없었다면 아마 쉴 새 없이 몰아치는 행사의 물결로 인한 부담감으로 익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요새는 좀 잠잠하네.’
니콜라이의 영향을 받은 감정 기복의 변화가 최근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가장 최근에 그의 실체를 느낀 것이 작년 8월경 처음으로 참석한 장관 회의였으니까 최소 5개월 이상 니콜라이가 잠잠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뭐 그만큼 내가 잘하고 있다는 얘기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비추어봤을 때 그와 나는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파트너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그렇지? 니콜라이.’
내 안에 있을 니콜라이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
오후 4시경이 되자 회의실을 떠나 아버지를 뵙기 위해 길을 나선 나에게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인물과의 만남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 황태자 전하 아니십니까. 요전번 만남 이후로 이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아, 종무원장. 오랜만입니다. 이전에 한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합니다. 그대도 알다시피 내가 요즘 워낙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았거든요. 그로 인해 종무원장이 나를 기다렸다면 미안하다고 하고 싶군요.”
“아닙니다, 전하. 국정 운영에 대한 일로 종일 일하시는 분에게 저 같은 중늙은이와의 만남보다 중요한 일이 얼마나 많은지 잘 알고 있습니다. 신경 쓰지 마시지요.”
“배려 감사합니다, 종무원장. 그럼 나는 이만…”
형식적인 대화만을 나누고 발길을 옮기려던 나에게 종무원장의 이어지는 말은 쉽게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었다.
“다만 최근 전하의 행보에 대한 우려가 섞인 시각이 많다는 것만은 전해드리고 싶군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종무원장,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고개를 돌려 쳐다본 종무원장은 흔히 볼 수 있는 인자한 할아버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증스러운 양반 같으니라고.
“이런, 또 제 입이 주책이었나 봅니다. 전하께서 공사가 다망하신 줄 알면서도 전하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말을 하다니요. 아무래도 오늘도 주님께 속죄하는 기도를 드려야겠습니다.”
능구렁이처럼 본론을 얘기하지 않고 말을 빙빙 돌리는 종무원장을 보고 있자니 러시아 귀족사회의 단점, 아니 그냥 귀족사회의 단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아니, 그냥 본론부터 얘기하면 어디가 덧나는 건가?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종무원장에게 다시금 물어보았다.
“제가 부족해서 종무원장께서 하시는 말씀이 무슨 내용인지 짐작하기 어렵군요. 부디 스승 된 이로서 저같은 길잃은 양에게 나아갈 길에 대한 조언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종무원장은 내가 자신을 낮추면서 조언을 구하자 자신이 원하던 말을 들은 듯했다. 그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더 진해진걸 보면 아마 맞는 것 같았다.
“전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다니, 제가 주제넘은 말은 한 듯합니다. 다만 최근 전하의 행보가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전하도 아시다시피 지난날 자유주의자들의 그 천인공노할 일에 대한 분노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이 많지 않습니까?”
“저의 할아버님에 관한 말씀이라면 저 또한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역적들은 감히 그들에게 먼저 자비로운 손길을 내미신 저의 조부이신 알렉산드르 2세에게 폭탄이라는 물건으로 대답했지요. 그대들이 무엇을 염려하는지는 나도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최근 제가 미사에 소홀한 것도 분명 얘기가 나왔겠지요?”
“맞습니다, 전하 역시 현명하시군요. 분명 전하께서 가지고 계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다는 것을 제가 이미 알고 있지만 몇몇 주교를 비롯한 사제들이 전하께서 최근 미사에 참석하지 않는 것을 두고 불경한 말을 하더군요. 물론 제가 그들에 대한 징계를 내렸습니다만, 전하께서도 모자란 이들에게서 괜한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러시아 제국의 종교적 광신은 같은 기독교 계열을 믿는 유럽인들에게도 충격적으로 다가왔었다. 러시아로 파견을 왔던 다른 나라의 외교관이 자신의 기록에 ‘이들은 하루 종일 기도를 하는 것이 틀림없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였으니까.
심지어 알렉산드르 3세에 들어와서는 가톨릭을 믿는 이들에 대한 차별적 정책을 통해 정교회로의 개종을 강요하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런 시대착오적인 횡보는 안 그래도 다양한 민족과 종교로 인해 시끄러운 러시아 제국의 내부를 한층 복잡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것들은 내가 바로 잡아야 하는 수많은 장애물 중에 하나였다.
비록 정교회가 지금의 내가 하는 일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해도 이들을 당장 숙청할 수는 없었다. 러시아 제국 인민들의 뇌리와 생활 속에 깊숙이 박혀 있는데다가 이들의 존재가 황실의 존립에 도움을 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내가 나중에 실시할 개혁에 방해가 될 수도 있었지만 내가 제위에 올라 어떻게 행동하냐에 따라서 이들이 가진 러시아 제국 구석구석까지 뻗어있는 영향력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만큼은 종무원장의 말에 맞춰주기로 했다.
“종무원장의 말이 저에게 큰 가르침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 제가 종무원장에게 배움을 사사 받았을 때부터 종무원장은 저에게 항상 깨우침을 주시는군요. 안 그래도 최근 제가 하느님과의 만남을 소홀히 한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번 주일에는 기꺼이 예배에 참석하기로 하지요.”
그리고 나는 미끼를 던지기로 했다. 아직까지 나를 애송이로 보며 자신이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통할지도 모르는 미끼.
“그리고 그 때가 된다면 고백성사를 드리고 싶군요.”
“주님도 기뻐하실 겁니다.”
“종무원장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이런것을 부탁드릴 분은 제 스승이신 종무원장님밖에 없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주시지요.”
그는 처음에는 당황한 표정이었지만 이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전하. 기꺼이 전하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서 만족하는 듯한 종무원장을 뒤로 한 채 나는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그와의 만남은 항상 불유쾌했지만 아직까지는 그를 이용해야 했다.
러시아 황실을 비롯한 정부 내에 존재하는 보수파의 거두인 종무원장을 지금의 나로서는 숙청할 수 없었으니까.
‘다만 조만간 그 날이 온다면 꼭…’
나는 다시 한 번 마음속으로 맹세했다.
불쾌한 만남을 뒤로 한 채 이루어진 아버지와의 만남은 잔소리로 시작되었다.
“그러고 보니 최근 포베도노스체프 종무원장이 너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더구나. 최근 신앙생활에 소홀해졌다고 하던데 이번 주일 미사는 꼭 참석하도록 하거라.”
“안 그래도 오는 길에 종무원장과의 대화를 통해 제가 그동안 부족했던 점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이번 미사 이후에 사제에게 고백성사도 하기로 했구요.”
“그래, 마땅히 그래야지. 잘 했다.”
독실하기로 유명한 아버지였기에 내가 종무원장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는 것에 흡족한 눈치였다. 하긴 이 시대의 러시아 황실 사람 중 독실한 정교회 신자가 아닌 사람이 없었지만.
심지어 이미 가톨릭을 믿고 있는 사람도 로마노프 가문으로 시집을 오기 위해서는 정교회로 개종을 해야 했다. 이러한 풍습이 러시아 제국 황실 일원들의 결혼에 미친 영향도 존재하지만 이건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얘기하도록 하고.
“그나저나 아버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만.”
“안 그래도 나 또한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아무래도 아버지도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모양이었다. 잔소리를 제외하고도 전하실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봤지만, 쉽사리 떠오르지 않았다.
“내 건강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헤라클레스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건강한 아버지였지만 지난 열차사고가 남긴 상처는 그의 몸속에 남아 영향을 주고 있었다.
열차가 전복됐을 당시 무너지는 열차 천장을 자신의 몸으로 받침으로서 황실 일가의 목숨을 구했지만, 그때 입은 허리 부상과 그로 인한 신장병은 지금의 의학기술로는 치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주치의와 상담을 해본 결과 나에게 필요한 것은 요양이라고 하더구나. 너도 알고 있을게다. 지난날 크림반도로 떠난 휴가에서 발생했던 사고가 아직도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아버지…그 말씀은…”
“물론 지금 당장 너에게 제위를 물려주지는 않을 거다. 기대했다면 미안하구나.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생전에 제위를 양위하는 것에 대해 쓸데없는 말들이 많이 나올 텐데 그로 인해 네가 피곤할 걸 생각하니 이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더구나.”
아버지는 장난스레 미소를 지으시며 말을 이어나갔다.
“비록 크림반도와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가깝다고는 하나 나라의 지도자가 자리를 비우면 국정 운영에 차질이 생길 것은 당연한 일. 따라서 내가 휴가를 즐기는 동안 네가 원래라면 내가 해야 할 일을 도맡아서 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난 여름부터 너를 계속해서 지켜본 결과 내린 결론이니 너무 억울해하지 말 거라.”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는 나에게 아버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덧붙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네가 대리인이라는 자격으로 국정을 운영해나가는 만큼 내가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명심하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래, 자 그러면 나는 이만 휴가준비를 하러 가봐야겠다. 지난 만찬 이후로 네 어머니가 나에게 가진 불만도 풀어줘야 하거든. 명심하거라. 나라를 다스리는 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아내를 마음대로 다스리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을.”장난스레 말을 마무리하는 아버지를 보자 나는 목이 메이는 것을 느꼈다. 원 역사대로라면 2년 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역사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아버지, 부디 건강하셔야 합니다.”
“원, 사내 녀석이 눈물을 흘리려고 하다니. 그렇게 내가 할 일을 너에게 미루는 것이 억울했느냐?”
“그게 아닙니다.”
“그렇다면 오늘 밤 일정이라도 비워두거라. 모처럼 부자간의 대화도 할 겸.”
“술은 안 됩니다, 아버지.””이 녀석이, 그래 알았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하루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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