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92)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92화
다행스럽게도 내가 보게 된 물건은 툭 하고 건드리면 부서질 것 같은 거대하면서도 얇은 바퀴와 중심을 잡기 위해 후방에 위치한 보조 바퀴를 가진 실전성이라고는 보드카를 싫어하는 러시아 사람만큼이나 찾기 힘든 차르 전차와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직접 눈으로 보았던, 그러니까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러운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면서 보았던 전차의 생김새와도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전차의 먼 친척 정도는 되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폐하께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소개해 드립니다. 바로 차르 트랙터입니다!”
이 물건을 내게 설명해 주는 사람은 브론시테인이 아니었다.
그가 나에게 관련된 소식을 전하러 오긴 했지만, 경력이 부족하다 보니 이번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앞에서 나에게 열심히 정보를 전달해 주는 관료 또한 이 일을 총괄할 정도로 유능했기에 설명에는 막힘이 없었다.
“송구스럽습니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폐하께서 관련된 지시를 내리신 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건만, 현재까지 생산된 차르 트랙터는 지금 보고 계시는 이것 한 대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죄송하다는 듯 말하고 있었지만, 이것만 해도 대단한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4년이 지났다고는 해도 애시당초 미국 업체와 연계해 현지에 공장을 짓는 데만 2년이 넘게 걸렸으며 도중에 관련된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연간 생산량에 맞도록 자재들을 들여오느라 재료를 구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거기에 협약을 맺었다고는 해도 본인들의 사업 밑천인 만큼 기술적 지식이나 운용 노하우 등을 넘기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미국인 기술자들을 또다시 구워삶아야 했으며, 그 과정에서 정보가 새어나가는 것을 다시 막기 위해 오흐라나 친구들은 무던 애를 써야만 했다.
그가 내 앞에서 송구스럽다고 하는 것도 겸양의 일종으로 봐야 하는 게 옳았다.
엄밀히 따지면 트랙터라는 토양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지만, 거기서 전차라는 나무를 만들어내는 것은 이들이 오롯이 본인들의 힘으로 이룩해야만 했으니까.
“아니네. 자네와 같은 관료들을 비롯해 기술자들이 고생이 많았겠군.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현재 수도 인근 모처에 모두 같이 안전하게 머무르도록 하고 있습니다. 오흐라나인 플레베 청장이 조언해주길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을 거라고 하더군요. 안전을 위해서든 아니면 기밀이 새어나가는 걸 막기 위해서든 말입니다.”
사실 내가 오늘이 장소에 온 것도 공식적으로는 농업용으로 사용될 트랙터를 생산하는 공장을 견학하고 현장에서 지도한다는 이유였다.
이런 식의 방법들을 사용한다 해도 언젠가는 다른 나라들이 러시아 제국에서 무언가 요상한 것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알게 되겠지만, 그 시기를 늦추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할 가치가 있었다.
어차피 세상에는 영원한 비밀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영구적이지는 않아도 다른 이들보다 앞서나갈 정도의 시간만 벌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 종무원장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내 사람이 된 플레베는 여전히 그때와 같은 자리에서 본인의 몫을 다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내무부 부장관에서 오흐라나 청장으로 강등됐음에도 국가에 헌신해주고 있는 그를 생각하자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사실은 눈에 먼지가 조금 들어간 거였지만.
오흐라나는 최근 들어 임무의 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었다.
그들 본연의 업무인 인민주의자들을 때려잡는 거야 여전히 매일같이 하고 있었지만, 아무래도 과거에 비해 항상 같이 놀던 친구들이 점점 줄어나가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잉여 자산을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는 듯했다.
이런 식으로 국내에서 진행 중인 기밀을 필요로 하는 사업이나 아니면 비정치적 수단이 필요할 때마다 도와주고 있었으니까.
“그들이 머무는 데 있어 다른 불편함은 없도록 각별하게 신경 써줘야 할걸세.”
“물론입니다, 폐하.”
내 당부에 사내는 당연히 그렇게 하고 있다는 듯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옆에서 얼어붙은 채로 서 있는 거나 다름없는 중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안 그래도 기술자들 또한 폐하가 베풀어주신 은혜를 갚겠다며 난리입니다. 오늘만 하더라도 이 자리에 함께하겠다고 너도나도 자청했지만, 안타깝게도 사람이 많아지면 자리가 혼란스러워지는 터라 가장 선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친구만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자세한 공학적인 부분이나 성능적인 면에 있어서의 설명은 이 자가 해드릴 겁니다.”
“마,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폐하!”
사내가 소개해 준 기술자는 나에게 경례하며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자세는 뻣뻣했지만, 각이 잡혀 있는 게 아무래도 군 복무 경력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 고맙군. 혹시 육군에서 복무한 적이 있나?”
“예! 그, 그렇습니다! 폐하의 선친이신 알렉산드르 3세 시절 영광스러운 제국 육군에서 복무했었습니다!”
저런, 아무래도 이분은 젊은 시절 그다지 운이 없던 모양이었다.
사실 아버지 시대까지는 러시아 제국이 운용하던 징병제는 흔히 현대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징병제와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운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와 같이 입대할 예정이었던 친구들은 모두 현역이 아닌 예비역으로 편입됐었지만, 저는 약간의 행운에 힘입어 다행히 국가와 폐하에게 봉사할 수 있는 현역으로 입대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말을 듣자니 아무래도 나는 지지리도 운이 없는 사내를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러시아 제국이 운용하던 징병제는 다름 아닌 추첨제였기 때문이다.
징병 대상자인 사내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자신의 행운을 시험하는 그 추첨제 말이다.
‘그러고 보니 현대에서 태국이 운용하는 징병제도 추첨제였던가.’
군인으로 써먹을 수 있는 입대 자원이 충분히 많은 러시아 제국이었기에 가능한 방식이기도 했다.
징집 대상 남성들은 모조리 끌고 가는 게 아닌 추첨제로 하고 있음에도 러시아 제국 육군의 숫자는 다른 어떤 열강과 비교하더라도 많았으니까.
넘쳐나는 입대 자원과 대비해 그들에게 지급할 보급품을 생산할 능력은 부족했지만, 이 또한 빠른 속도로 군대에서 요구하는 수요를 충족할 수 있을 정도로 늘리고 있었다.
“군대에서의 6년은 제게 인생에 있어 전환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이나 사용하는 기술들은 다 그곳에서 배운 것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감사드립니다, 폐하!”
지금은 군제 개혁을 하는 과정에서 입영 절차도 바뀌어 내 앞에 있는 기술자와 같은 입대 장소에서 천국과 지옥이 갈리는 사례는 일어나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안쓰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 또한 한국인이던 시절 신체검사 등급이 나오는 모니터에 선명하게 나와 있던 현역 입영 대상자라는 글자를 봤을 때의 심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그의 두 손을 맞잡았다.
“그대와 같은 애국자가 있기에 러시아 제국이 유지될 수 있는 거네. 자네의 헌신에 감사를 표하고 싶군.”
“폐, 폐, 폐하!”
기술자가 갑작스러운 일에 잠시 패닉을 일으켰던 가벼운 사고가 지나가고 이내 침착함을 되찾은-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말이다.
그는 여전히 시선이 오갈 데를 찾지 못한 채로 움직이거나 손이 떨리는 등의 증상을 보이고 있었다.-그는 상세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저희는 폐하가 말씀하신 대로 기관총의 화력 앞에서 보병들을 보호하면서도 주기적으로 라스푸티차등이 찾아오는 관계로 그다지 좋지 못할 기동 환경 속에서도 원활하게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을 만드는 데 중점을 뒀습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신 보조적인 화력 지원 역할 수행도 할 수 있도록 해보려고 했습니다만, 그렇게 하자면…….”
“현재로서는 기술적으로 무리인가 보군.”
“송구스럽습니다. 저희의 능력이 부족해서 폐하께서 말씀하신 요구사항을 모두 충족하지는 못했습니다.”
수염과 함께 지난 시절의 고단함을 증명하는 이마 주름이 인상적인 기술자는 본인들의 능력 부족이라고 하고 있지만, 사실 이건 기술자들의 실력이 모자란 게 아니라 현시점에서의 엔진 기술과 공업력이 낮았기 때문이었다.
보조적이나마 화력 지원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차 차체에 포탑이나 기관총을 실어야 할 테고, 이를 운용할 인원을 추가적으로 탑승시켜야 할 것이다.
거기에 적을 향해 쏘아낼 포탄이나 탄약도 실어야 할 텐데 이렇게 되면 차체나 엔진이 버티지 못하고 퍼질 수가 있었다.
아니면 기동이야 하겠지만, 잦은 포격으로 거대한 구덩이들이 곳곳에 있는 데다 진흙으로 뒤덮여 있어 미끄럽기 그지없는 상대방의 참호까지의 무인지대(No Man’s Land)를 돌파할 기동력이 없어질 테고.
“자네들의 헌신은 익히 알고 있으니 죄송할 것 없네. 그보다는 지금 완성한 물건에 대한 설명을 더 듣고 싶군.”
이유야 대충 짐작 갔으니 나는 다른 변명보다는 그나마 얻어낸 결과물에 대해 듣고 싶었다.
“예, 현재 보고 계신 차르 트랙터는 2개의 휘발유 엔진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각 엔진은 최소 100마력의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이 엔진을 통해 차르 트랙터는 최대 시속 4㎞로 움직일 수가 있습니다.”
시속 4㎞라 현대인의 관점으로 봤을 때는 느려 터졌다고밖에 안 보이는 속력이었지만,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이것도 대단하게 느껴졌다. 다른 열강들보다 부족한 공업력을 가진 나라에서 4㎞/h로 움직이는 전차를 처음으로 만들어 내다니.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이었다.
“또한 말씀하신 것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하신 방호력에 있어서는 현재 저희가 보유한 툴라-토카레프 기관총을 비롯한 맥심 기관총과 같은 다른 열강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관총에 대해서도 일반 탄약에 대해서는 승무원에게 충분한 방호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 야포와 같은 포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그는 또다시 말을 흐렸다.
하긴, 이 시대에 포탄에 대해서도 방호력을 제공하는 전차를 만들라고 하면 그건 양심도 없는 놈이겠지.
“일반적인 탄약에 대해서는 방호력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그럼 철갑탄의 경우에는 뚫릴 수도 있다는 얘긴가?”
나는 이루지도 못할 포탄에 대한 방호력에 대해 묻기보다는 실질적인 문제에 대해 질문하기로 했다.
아마 상대방이 전차에 대해 알게 된다면 빠른 시일 내에 나오게 될 대전차소총에 대한 방호력은 지금 언급하기 이를지 몰라도 기관총 등에서 날아올 철갑탄에도 구멍이 숭숭 뚫리게 되는 건 곤란했으니까.
“철갑탄의 경우에는 전면장갑에 한해 일반 탄약과 비슷한 수준의 방호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만, 측면이나 후방 그리고 상부 장갑의 경우에는 철갑탄에 대해 전면장갑만큼의 방호력을 보유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무게 때문이겠지. 사실 전차라는 물건의 개발역사는 설계자들과 무게와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무기를 막기 위해 ‘장갑을 늘리자!->전차의 덩치가 커짐->무게가 늘어남->엔진의 성능이 더 요구됨->연료가 더 필요함’이라는 환장할 알고리즘과 싸워야만 했기 때문이다.
복합장갑이라는 물건이 나오고 나서야 조금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차의 설계 과정에서 전차의 무게는 고민의 대상이었다.
#작가의 말
사진은 영국 보빙턴에 있는 탱크 박물관에 있는 리틀 윌리라는 MK시리즈 이전에 만들어졌던 전차입니다.
실제로 세계 최초의 전차라고 불리운 MK시리즈는 시속 5㎞, 그보다 먼저 만들어졌던 리틀윌리 라는 전차는 시속 3㎞ 정도였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