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96)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96화
“준비는 다 한 거냐?”
“형, 내가 10살짜리 애도 아니고 한 번만 더 물어보면 다섯 번째야. 준비할 것도 없다니까. 돌아가는 길도 이쪽에서 다 해준다고 했는데 챙길 게 뭐 있겠어.”
“그래, 알았다. 그래서 준비는 다 끝난 게 맞단 얘기지?”
“……어. 다 했어.”
연회 다음 날 윌버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동생에게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둘 다 30이 넘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다른 가족이 없는 윌버는 때때로 4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동생을 이런 식으로 어린애 취급하기도 했다.
“조심해서 다녀오고 그럼 다시 보는 건 한두 달 뒤가 되겠구나. 다른 형제들에게도 안부 전해다오.”
“알았어, 형.”
잠깐의 작별을 얘기하는 인사를 나눈 뒤 방을 나서려던 오빌이었지만, 그의 발걸음은 문고리를 잡는 순간 잠시 멈췄다.
그러고 보니 어제 말하려다가 시간이 나질 않아 물어보지 못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아 참, 그러고 보니 형.”
오늘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일정에 맞추기 위해 전날 열린 연회에 말 그대로 참석만 했다가 숙소로 돌아온 동생이었기에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연회장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밤에 그렇게 자면서 신음을 낸 거야? 악몽이라도 꾼 것 같던데.”
윌버는 자신을 걱정하듯이 묻는 오빌의 질문을 받자 잠시 동안 침묵하다 이내 대답했다.
“……그것도 다녀오면 다 말해주마. 다시 한번 말하지만, 아무리 제국에서 여비와 여정을 책임져 준다고는 해도 무엇보다 너 스스로가 본인 몸을 잘 챙겨야 한다는 걸 잊지 말…….”
“아오! 알았다고. 그럼 다녀와서 봐.”
동생의 질문을 잔소리 신공으로 무마한 윌버는 오빌이 이내 지긋지긋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문을 닫고 나가자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사실 자신의 동생은 한 가지 오해를 하고 있었다.
본인이 어젯밤 악몽을 꾼 것 맞지만, 그 이유는 연회에서 있었던 일과는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인류가 하늘을 정복하는 걸음마를 시작하도록 만든 사내는 차르와 나눈 대화를 회상했다.
-창피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제가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왔던 전문을 받았던 날이 생각나더군요. 그날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침부터 자전거 회사로 날아온 저주가 담긴 편지들을 일일이 읽어봐야 했습니다. 읽지 않고 태울 수도 있겠지만, 그것들 가운데에 사업과 관련된 편지가 있을 수도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들 가운데서 폐하께서 보내주신 전문을 발견할 수 있었지요. 처음에는 사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너무 형편이 좋은 이야기였으니까요. 거기에 미국 내에서도 믿어주지 않는 저희들을 다른 나라에서 믿어준다니. 솔직히 잘 믿기지 않았습니다.
차르는 다소 두서없게 들리는 그의 말을 중간에 끊거나 아니면 본론부터 말하라고 할 수 있는 입장이었음에도 조용히 윌버의 얘기를 들어주었다.
그는 반쯤은 알코올에 취해 나머지 절반은 자신의 감정에 취해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그런 답장을 보냈던 겁니다. 혹시라도 이게 사기가 아니더라도 지금 우리가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성사 직전에 계약이 취소되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선을 긋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괜히 이루어지지 않을 희망에 손을 뻗다가 더 크게 다치느니 처음부터 조그마한 상처 하나만 떠 안는 게 더 나을 거라고도 생각했습니다. 거기에 솔직히 건방지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지금 하고 있는 법정 싸움에서 지지 않을 거라 확신하고 있기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조국에서도 저희를 인정해 줄 거라는 믿음도 가지고 있었으니까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했나? 랭글리와의 법적 다툼에서 승리할 거라고 확신했던 이유가 궁금하군.
차르가 질문을 던지자 윌버는 실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그의 믿음은 태양은 동쪽에서 떠오르고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거 아니겠습니까. 랭글리 그 얼간이가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비행기는 날지 못하는데 저희 형제가 만든 비행기는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녔으니까요.
윌버의 당당한 대답에는 차르 또한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기도 모르게 뿜었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의 말을 듣고는 터져 나온 웃음을 수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
-푸핫, 크, 크흠. 그, 그렇군. 만약 자네들이 그 멍청이의 결과물을 베꼈다면 랭글리가 만든 비행기 또한 비행에 성공할 테니 말이네.
-예, 그렇습니다. 하여튼. 그런 답장을 보내고 잠시 동안 법정 싸움으로 폐하께서 보내주신 전문을 잊고 살던 찰나 도착한 내용은 놀랍더군요. 이미 그런 일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상관없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는 솔직히 눈물도 찔끔 흘러나왔습니다. 그래서 제 동생과 전격적으로 방문하기로 결정했던 거고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르더니 손에 들고 있던 잔에 담긴 내용물을 단숨에 마셨다.
아무래도 본인이 생각하기에 자신의 치부라고 생각하는 부분을 꺼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후, 한결 났군요. 저도 사람인지라 욕심에 앞서 걱정이 생기더군요. 만약 우리가 가진 기술만 빼앗기고 내쫓기면 어떻게 하지? 와 같은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조국에서는 저희를 보고 사기꾼에 연구 윤리도 모르는 파렴치한이라고 하면서도 어떻게서든 저와 오빌이 만든 비행기의 기술을 알아내려는 놈들이 넘쳐났습니다. 본인이 기자라고 하면서 어떻게든 엔진이나 설계 사진은 찍어내려는 친구들도 있었지요. 그래서 그렇게 방어적인 태도로 나섰던 겁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으로요.
그런데.
윌버는 말끝을 웅얼거리더니 시선을 내린 채 아까보다는 낮은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솔직히 폐하께서 그 말씀을 해주신 순간, 처음으로 전문을 받았던 순간부터 여기에 오기까지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습니다. 거기에 제가 구독하던 신문에서 폐하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까지도 말입니다. 언론에서는 폐하를 그다지 현명하지 못한 분으로 묘사하더군요. 금이 넘쳐나는 알래스카를 헐값에 넘긴 선조처럼 나무나 금과 같은 자원은 요구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르는 석유를 요구한 미국의 가장 큰 친구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도 과거에는 비슷한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거기에 러시아 제국에서 저에게 흥미를 가진다는 소식이 흘러나가자 윈체스터 사는 은근슬쩍 폐하를 모델로 삼았던 광고를 내리기까지 하더군요.
그의 말을 통해 현재 니콜라이가 미국인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비추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자리에서 말하기엔 적절치 않다는 걸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윌버는 취해 있는 모양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알 수 있는 건 그가 취기에 의해서이건 용기를 내서이건 간에 지금 그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외람스럽게도 저는 그때 폐하와 동질감을 느꼈습니다. 언론들로부터 무수한 공격을 받는다는 점에서 말입니다. 불경일 수도 있고 실례일 수도 있지만,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폐하께 너무나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언론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 내린 것을 신뢰하는 폐하를 보고 있자니 내가 이런 분에게 어떤 실례를 저지르고 있는 거지라는 창피함 말입니다. 그 창피함을 느끼고 있자니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더군요.
-자네 좀 많이 취한 것 같군. 아마 내가 자네라면 내일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라겠네. 술이 깬 후에는 지금까지 느꼈던 그 어떤 부끄러움과 창피함보다 강렬한 감정을 느끼게 될 테니 말이야. 얘기 즐거웠네. 연회는 더 즐겨도 술은 그만 즐기는 게 더 좋을 것 같군. 강렬한 감정에 더해서 강렬한 두통까지 느끼기 싫다면 말이야.
윌버의 말을 듣던 차르가 조그마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지금까지 말한 내용 중에 자칫 불경죄로도 여겨질 수 있던 문장들을 없던 것으로 해주겠다는 태도를 보이면서 대화가 마무리되었지만, 그의 말대로 윌버는 아침이 되자 몸부림을 쳐야만 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그가 밤새 꾼 악몽의 이유는 없었다.
처음으로 플라이어 1호를 타고 하늘을 날던 날 윌버는 달성감과 함께 무한한 자유의 기쁨을 느꼈었다.
뉴턴이 중력이라는 존재를 발견한 이래로 본인들을 땅에 구속하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는 알았을지언정 이를 극복하지 못했던 인류가 처음으로 승리를 거둔 날이었으니까.
윌버가 꾼 악몽도 그날의 기억과 맞닿아 있었다.
채 몇 분도 날지 못한 그 날의 비행과는 달리 완전히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는 꿈을 꾸고 있을 때만 하더라도 어젯밤의 꿈은 그 무엇보다도 달콤했다.
그래, 갑자기 거대한 차르가 나타나 자신을 땅으로 쳐박고 쇠사슬로 구속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도대체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군.’
그가 오빌에게 악몽과 관련해 얼버무렸던 이유 중에 하나는 본인도 왜 그런 꿈을 꿨는지 잘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차르를 처음 본 순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니콜라이의 눈빛을 마주할 때마다 몸에 오한이 들고 소름이 돋아오른 일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악몽을 꿀 정도로 관계가 좋지 않은 건 또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그냥 개꿈 같은 거겠지.’
윌버가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은 그와 동생인 오빌이 비행기를 발명하는 데 성공한 데는 치밀한 계산과 연구도 한몫했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직관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랭글리 박사를 비롯한 경쟁자들이 이미 하늘을 날고 있던 새들이나 아니면 기구와 같은 데 주목한 반면에, 그는 오히려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배와 부력에 대해 주목했다는 점이 그들이 가장 먼저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해준 부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윌버의 직감은 주인이 아직 알지 못하고 있는 부분을 꿰뚫어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오빌이 미국에서 돌아와 시연을 마친 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순간, 그들 형제는 차르와 쌍무적인 계약관계가 되는 것이었으니까.
어쩌면 직감은 몸의 주인이 앞으로 할 고생을 막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차라리 법정 다툼이 더 쉽다고 느껴질 정도의 앞날을 막기 위해서 말이다.
연회 당시 윌버가 보지 못했던 것은 자신을 바라보던 다른 관료들의 눈빛 또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과 협상 당시 언성을 높이며 논쟁했던 당사자들조차 본인을 안쓰러운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는 걸 파악하지 못한 게 그의 실책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래도 이번 계약이 타결되면 더는 경제적인 부분에서 걱정할 필요는 없겠군.’
자신이 여우를 피해 호랑이 굴로 들어왔다는 걸 아직 모르고 있는 윌버의 모습을 비테가 보았다면 이렇게 말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도망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