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197)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197화
65장 부조리극
독재자라는 타이틀은 때로는 로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 나라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욕망을 충족할 수 있다는 것 아니겠냐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보다 독재자들의 삶은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욕구를 충족하면서 즐기는 해피 라이프가 아니라 서류와 서명으로 점철된 과로가 일상인 회사원의 삶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일은 자신을 통해야만 하며 측근들 또한 쉽게 신뢰할 수 없는 독재자의 특성상 하루의 대부분을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서류들을 처리하는 데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은 뒤로한 채 말초적인 욕구를 충족하는 데 더 중점을 두는 독재자들 또한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의 말로는 대체로 더 일찍 찾아오곤 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전제군주국의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1세 또한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상을 보내야만 했다.
자신의 아내인 비텔스바흐 에르자베트 황후가 암살당했다는 소식도 다름 아닌 업무를 보던 도중 서류 사이에 끼워져 있던 문서를 통해 알았을 정도로 요제프 1세는 하루의 대부분을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이러한 황제의 헌신 덕분에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라는 다른 민족끼리 통합함으로써 세워진 오-헝 제국이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었지만,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는 법.
황제와 휘하 관료들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오-헝 제국은 차츰 안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다.
처음부터 오-헝 민족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 소수민족들이 섞여서 세워진 다민족 국가에 민족주의라는 사상은 독이나 다름없었다.
‘갈라질 수도 없고 분리될 수도 없다’라는 오-헝 제국의 표어와는 달리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 된 것처럼 보였던 제국은 점차 자신이 속한 민족의 권리를 확대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 인해 태생적인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다.
“헝가리 귀족들이 또 말썽인가 보군. 그래, 이번 요구사항은 뭐라고 하던가?”
문화와 예술의 도시라 불리는 빈 한복판에 있는 화려하기 그지없는 궁전, 호프부르크 내에 있는 집무실에서 요제프 황제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관료들에게 물었다.
대타협을 통해 본인이 헝가리 국왕직 또한 겸직하게 되었다고는 해도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조금 독특했다.
외교나 국방과 같은 매우 중요한 업무를 제외한 다른 업무를 담당하는 관료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두 나라가 서로 따로 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국의 황제는 한 명이지만 내부의 통치기구는 두 개인 기묘한 상황은-오스트리아 측이 우위를 가지고 있기는 했지만- 때때로 잡음을 만들어내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인 모양이었다.
요제프의 질문에 오-헝 제국의 총리직을 역임 중인 칼만 셀은 조심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
“제국 내의 헝가리인들의 인구 비유를 생각해 봤을 때 군대의 공용어를 독일어로만 사용하는 것은 불공평하지 않느냐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거기에 헝가리 의회에서는 최근 헝가리 어의 도입 없지는 더 이상의 헝가리 군인은 없을 것이다. 라는 말까지 공공연하게 나오는 상황이라 뭔가 대책을 세워야만 할 것 같습니다.”
“마자르 인들은 말로만 나를 왕이라 부르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하는 행동들을 보면 나를 왕으로 생각하는 지도 궁금해진단 말이지.”
요제프의 신경질적인 말에 관료들은 침묵을 지켰다.
사랑하는 황후의 죽음을 집무실에 앉아서 접했던 황제는 그날 이후로 때때로 이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곤 했다.
황제의 불만은 어느 정도 이유가 있기도 했다.
국방이나 외교와 관해서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같은 기조를 유지한다고는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원칙도 잘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헝가리 의회가 보유하고 있는 경찰-사실상의 군대나 다름없는-조직은 오스트리아의 통제가 아닌 헝가리 측의 통제만을 받고 있었으며, 이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를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무력이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실제로 사용된 적은 없었지만, 이는 진정한 제국으로의 통합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거기에 슬로베니아 지역에서의 움직임도 심상치가 않습니다. 비단 이 지역뿐만 아니라 슬라브계 주민들이 대다수인 지역에서도 자치권 확대와 같은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분리 독립을 외치는 이들은 아직까지 별다른 지지를 받지 않고 있지만, 무언가 조치를 취할 필요성이 보입니다.”
“러시아 제국의 니콜라이가 주장하는 국가주의를 좀 사용해 보는 건 어떻겠나.”
총리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황제는 ‘어떤 민족이든 차르에게 충성하면 러시아인’이라고 말하는 니콜라이의 주장을 우리도 써먹어 보는 건 어떻겠냐 물었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먼저 러시아 제국 내에서 국가주의가 먹혀들어 가고 있는 건 역설적이지만, 러시아 제국이 그만큼 낙후된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최근 들어 교육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이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국가이기에 별다른 의구심 없이 차르가 말하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인 걸로 저희는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러시아 제국의 농노들이 무식했기에 가능했다는 말이었다.
“흐음, 우선은 헝가리 친구들의 주장부터 해결해 보도록 하지. 다음 의회가 열릴 때 헝가리 주민들의 참정권을 확대하자는 내용이 담긴 투표법 개정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넌지시 흘리게. 그들이 그렇게도 끔찍하게 생각하는 노동자나 농민들이 투표권을 가지게 될 거라고 말이야. 아마 이런 소문이 퍼지는 즉시 헝가리 친구들은 조용해질 걸세. 내 장담하지.”
요제프는 멋들어진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국적으로 국가주의를 홍보하는 게 무리라면 우선 제국 내 가장 낙후된 지역에만이라도 국가주의를 통한 교육을 실시하는 방향으로 해보지. 슬로베니아나 다른 슬라브 민족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들 대부분이 낙후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우선은 그런 방향으로 실시해 보도록 하고 사태가 수습될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그때 가서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걸로 하게.”
사실 오-헝 제국 내 슬라브 민족들에 대한 차별은 그 뿌리가 깊었다.
수백 년간 유럽의 중심을 차지해 온 합스부르크 가문이라는 무게감과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국에 소속된 이후의 경제 성장 덕분에 아직은 제국 내 소수민족들이 무력투쟁을 통한 분리 독립이라는 길보다는 제국 내에서의 자치권 및 지위 향상이라는 길을 택했지만, 이 또한 앞으로는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었다.
자신의 명령을 받은 관료들이 저마다 할 일을 하기 위해 집무실을 떠나고 이내 다시금 혼자 남은 요제프는 자신이 과거에 했던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만약 그때 왈라키아 지역을 점령하지 않았더라면 무언가 좀 달랐을까.’
그럼으로써 러시아 제국의 뒤통수를 날리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제국의 서부와 동부 그리고 내부에 이르기까지 적을 만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번 시작된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모범적인 황제일지는 몰라도 아버지이자 가장으로서는 0점에 가까운 그는 먼저 자살로 세상을 떠난 루돌프 황태자와 암살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떠올렸다.
그리고 이 둘에 대한 후회는 이내 현재 황태자인 페르디난트에 이르렀다. 자신의 조카이면서 위의 황위 계승자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는 바람에 황태자가 된 그는 요제프 자신이 보기에 본인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인물이었다.
시녀를-시녀라고 해도 백작 영애였지만, 요제프가 보기에는 거기서 거기였다-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는 행동부터 한평생 자유주의와 싸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바친 본인과는 다르게 자유주의적 관점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정치 성향까지.
‘……못난 놈 같으니라고.’
요제프가 속으로 중얼거린 말의 대상이 페르디난트인지 아니면 자살한 아들에 대한 것인지는 아마 본인만이 알 것이다.
오-헝 제국의 황제가 아닌 고민과 후회에 빠진 한 명의 인간이 집무실에 있던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오늘도 처리해야 하는 서류는 끝이 보이질 않았다.
* * *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가!”
독일 제국의 가장 중요한 부서라 불리는 제국해군청의 장관인 티르피츠 제독은 인생이 뭣 같다는 게 무슨 말인지 요즘 절찬리에 실감하고 있었다.
“영국이 저런 상황에서도 새로운 전함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자네는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도 아직도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게 말이나 되냔 말이야!”
빌헬름이 평상시에는 주머니에 넣어 숨기는 짧은 팔마저도 꺼내 휘두르면서 티르피츠를 힘들게 만들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새로 만들어진 전함이었다.
황제에게 있어 새로운 전함이 공개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다는 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영국이 만든 전함으로 인해 독일 제국이 여태까지 영국을 따라잡기 위해 만들어낸 군함들이 싸그리 고철상으로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으니까.
“폐하, 외람되지만 영국 측에서 새로운 전함을 만들어냈다는 얘기는 저희에게도 이전보다 훨씬 적은 노력으로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그래! 다시 말해 오히려 저들이 새 전함을 만듦으로써 우리와 영국의 점수 차이가 단 1점으로 줄어들었다는 건 이미 몇 번이나 들어서 나도 알고 있네. 그런데 그 1점 차이를 아직도 따라잡지 못했다는 걸 문제 삼고 있는 거 아닌가!”
사실 이번 질책이 처음이 아니었다.
영국이 드레드노트를 건조했다는 소식을 접한 빌헬름이 호들갑을 떨며 우리 또한 저 전함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국해군청을 닦달한 게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오늘도 티르피츠를 상대로 실컷 짜증을 낸 이후에는 자신의 비밀스러운 성 취향-마조히스트적 성향-을 충족시켜 줄 창녀들을 침실로 부르겠지.
거기에 티르피츠도 이미 알고 있었다.
빌헬름이 지금 자신을 당장에라도 해임할 것처럼 미쳐 날뛰고 있지만, 본인을 자를 일은 절대 없다는 것을.
제독은 현재 본인이 처한 상황이 마치 삼류 연극과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미 결말도 알려질 때로 알려진 데다 결말을 알고서도 보러 갈 만한 가치가 없는 삼류연극의 주연 배우가 된 듯한 심정은 농담으로라도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 이런 상황에 빠져 있는 걸 관객의 입장으로 본다면 부조리극을 보는 심정으로 낄낄거릴 수라도 있겠지만, 자신이 무대 위에서 당사자가 된 것과는 다른 얘기였으니까.
다만 티르피츠도 빌헬름의 말 중 한 가지에는 동의하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영국이 완성해 낸 전함을 본인들 또한 보유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영국이 이러한 전함을 만들기 시작한 게 러시아 때문이라는 걸 생각하면 독일 제국은 양쪽으로, 이제는 바다로까지 포위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