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
2장 나비의 날갯짓
어젯밤에 부랴부랴 기차를 타고 교토로 온 천황이 나에게 면담을 하기를 원한다는 얘기를 했지만 나는 부상을 핑계 삼아 이틀 후에 보자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지 무엇을 요구해야 미래에 가장 큰 이득이 될지를 결정하지 못하기도 했고 나 스스로가 협상을 할 준비가 덜 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먼저 내가 해야 할 요구사항을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1. 미래에 일어날 러일 전쟁에서 일본의 전쟁 수행 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구사항.
2. 일본이 현재 시동 걸고 있는 근대화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요구사항.
이 두 가지만 충족된다면 내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 벌어진 러일 전쟁이 아예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일본의 최대 은광인 이와미 은광에 대한 지분 요구였다. 비록 지금은 민영화가 되어 이름도 오모리 은광으로 바뀌었지만 독재 정치에 가까운 현재 일본의 상황상 정부의 입김을 무시할 순 없을 테니까.
그리고 동아시아 최대의 구리 산지인 아시오 동광에 대한 지분요구도 검토할 만했다. 현재 일본의 주요 수출품목들은 광물과 같은 자원이고 이러한 자원에 대한 목줄은 일본의 성장력에 타격을 줄 수 있을 테니까.
아니면 20세기 후반까지도 채굴이 가능했던 사도 금광도 고려할 만했다.
물론 이런 자원에 대한 권리요구뿐 아니라 다른 것도 요구하면 좋을 것이다.
현대 한국에서도 말단 경찰이나 군인이 잘못했을 당시에 최고위층들이 책임지는 풍토가 있듯이, 이번 사건에서도 아래의 잘못을 위가 책임진다는 아름다운 풍속에 따라, 앞으로 일본을 이끌어 나가야 할 지도부층을 와해시키는 것도 좋을 것이다.
현재 일본의 수뇌부들이 어떤 평가를 받든 간에 그들의 능력이 어느 정도 유능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메이지 일왕이 군함에 올라탔을 때 납치라도 해버리고 싶지만…….’
사실상 별 의미도 없고 바지사장에 불과한 일왕을 납치해 봤자 일본 민중들을 분노시키는 결과만 가져올 것이 뻔한 악수였다. 아무리 지금 일본이 우리에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왕을 납치한다면 두려움보다는 증오와 분노를 느낄 것이 당연하다.
‘나란 놈도 참…….’
과거 봤던 대체역사물의 주인공들이 빙의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행동하는 것을 보고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냐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막상 그 입장이 되어 소설 속 주인공처럼 행동하는 걸 보니, 나도 마음속으로 이런 상황을 기대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한 건 이번 협상에서 일본을 완벽히 무너뜨리는 것은 무리지만 어느 정도 분명한 타격을 줘야 한다는 건데…….’
일본은 분명히 잠재력이 있는 국가이고 그 잠재력을 바탕으로 열강에 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성장기에 접어들지도 않은 상황에 싹부터 잘라 버리면 아무리 포텐셜이 있다고 해도 그저 그런 2류 국가에 머무르게 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지나치게 희망적인 관측이었으며 나는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간 뒤에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국민 대다수가 문맹이며 교통망도 제대로 깔리지 않은 상황인 러시아의 근대화는 아직 시동조차 걸리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거기에 내가 빙의한 몸의 조부인 알렉산드르 2세가 자유주의자들의 손에 암살당한 이후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3세가 반동정치를 한창 펼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내가 가야 할 길은 험난하기만 했다.
그러나.
‘이번 협상을 토대로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바꾸는 첫 단추를 끼우는 거야.’
니콜라이 2세 무능한 차르이자 헌신적인 아버지였지만 자신의 가족도 지키지 못한 채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자, 로마노프 황실의 마지막 차르라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선 아직까지 넘어야 할 산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이번 협상은 내가 넘어야 할 산 중에서는 가장 쉬운 편이었다. 나는 피해자이지만 가해자보다 월등히 높은 위치에 있는 피해자이니까.
“전하 일왕이 면담을 재차 요청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아직 면담을 할 몸 상태가 아니라고 전하는 게 좋겠습니까?”
“아니. 오늘은 만날 수 있겠다고 전하게. 단 다른 수행원은 없이 통역관만 배석한 상태에서 만나면 좋겠다는 얘기를 전하도록.”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마침내 운명의 물길을 바꿀 첫 발걸음이 시작됐다.
* * *
메이지 천황은 배에 올라타자 속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본래 실제 정치라는 것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극도의 대인기피증을 앓는 그로서는 이런 외교협상 자체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다만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인 현 일본의 내각이 보고한 바에 따르면 상대방은 이런 종류의 협상에 익숙하지 않고 기초적인 제왕학을 배운 적도 없어 보인다는 점이 위안거리였다.
게다가 자신과 16살이나 차이 나는 철부지 황태자라면 본인도 서남전쟁 등의 험난한 길을 헤쳐온 만큼 어느 정도 상대할 자신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번 일로 대일본제국의 앞으로의 행보에 차질이 생겨서는 안 된다.’
또 어젯밤 부랴부랴 교토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내각회의의 회의결과로 나온 협상전략을 보고 받은 천황은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이 전략이라면 20대에 불과한 황태자가 자신들의 제안에 숨겨진 비밀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황태자 전하께서 들어오시라고 하셨습니다. 단 통역을 담당할 인원 한 명만을 대동하라는 명령입니다.”
“알겠소.”
자신을 따라온 실무진들이 항의하려는 것을 가벼운 손짓으로 자제시킨 뒤 메이지 천황은 수행원 한 명만을 데리고 철부지가 기다리는 방으로 향했다.
어느샌가 불편하던 속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아 있었다.
* * *
본래라면 나와 천황 단둘이 있어야 할 회담장에는 두 사람이 더 배석해 있는 상태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일본어를 못하고, 상대방은 러시아어를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사진으로만 봐왔던 메이지 일왕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의외로 평범했다.
그리고 역사책에서 나오는 등장인물을 실제로 본다는 설렘도 잠시뿐, 얼마 전만 하더라도 평범한 사학도이던 내가 국가 간 협상을 주도한다고 생각하니 속이 불편했다.
지금부터 하는 협상은 국가 간의 약속이 될 것이며 역사책에 한 줄이나마 기록이 되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내 머릿속에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무엇이 러시아 제국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정신을 잃으셨었다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하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하나님과 차르께서 굽어살펴 주신 덕분인지 괜찮습니다. 다만 귀국의 경찰이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마주 볼 필요도 없었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내가 불쾌하다는 티를 팍팍 내며 대답하자 상대방의 표정이 굳어가는 것을 보는 기분은 꽤나 유쾌했다.
생각해 보면 메이지 유신으로 일본의 근대화의 문을 열어젖히고 미래의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을 건설하는 밑바탕을 세운 인물을 내 뜻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대답을 한 후 침묵을 지키며 상대방을 노려보고 있자, 상대방 측의 통역사가 점점 죽을상이 되어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 모습을 보니 마치 한국 대통령과 미국 대통령 사이에서 식사를 하던 한국 군인이 생각나 실소가 나올 뻔했지만, 몰래 허벅지를 꼬집는 등의 노력으로 근엄한 표정을 유지하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이번에 발생한 불행한 사고에 대해서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저희 측에서는 할 수 있는 모든 조치와 배상을 할 터이니 부디 노여움을 거둬주시지요. 현재 흉수인 쓰다 경관은 저희 측에서 확보한 상태입니다만 원하신다면 바로 신변을 양도해 드리겠습니다. 또한 일본 각지에서 황태자 전하의 쾌유와 건강을 비는 전보가 들어오고 있으며…….”
“전보로는 내가 겪은 일을 없던 걸로 할 수도 없고 내가 입은 상처를 치유할 수 없지. 안 그렇소?”
“물론 그렇습니다만 이번 사고가 저희 일본국의 정부와 국민들의 황태자 전하를 향한 인식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려 드리고자…….”
“이런 말을 하긴 좀 미안하지만 귀국의 태도나 인식이 어떤지는 상관없소. 중요한 건 내가 귀국의 경관에게 피습당했다는 거요. 그것도 호위를 담당하던 경관에게 말이오. 이는 우리 러시아가 귀국에게 선전포고를 할 수도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소.”
나는 통역관이 상대방에게 통역을 하는 동안 옆에 놓여 있던 물을 마시고 다시금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번 일로 전쟁이 발생한다면, 물론 우리 러시아 제국의 승리는 불 보듯 뻔하지만 불필요한 우리 인민들의 피가 흐를 것을 염려해 귀국의 성의를 먼저 검토해 보겠다는 게 내 입장이오.”
메이지 천황은 내 입에서 전쟁이라는 말이 나오자 사색이 되었지만, 이내 내가 협상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하자 어느 정도 안도한 듯 안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물론입니다 전하. 전쟁이라는 비극 없이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먼저 과거 1875년에 가라후토-치시마 교환조약…… 크흠, 실례했습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으로 저희가 소유하게 된 쿠릴열도에 대한 기준선을 다시금 1855년 기준선으로 돌려 드리겠습니다. 또한 러시아 제국 해군에게 쓰시마 섬에 대한 조차권 또한 검토할 수 있다는 게 저희 입장입니다.”
얼핏 들으면 매우 달콤한 제안이다. 2020년까지도 영토 분쟁의 원인이 되는 쿠릴열도를 확보할 수 있고 또한 러시아가 그토록 바라던 부동항까지 한 번에 확보할 수 있는 제안.
하지만 그들이 내민 제안에 독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자신들의 보상을 얘기한 메이지 천황이 어느 정도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면 아마 내가 이 제안을 덥석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는 거겠지.
나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천황께서는 내가 바보인 줄 아는 모양이군.”
끝
=======================================
*****************************************************
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