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01)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201화
머리 위로 폭음이 들려온다.
때때로 폭음과 함께 쏟아져 내려오는 흙과 돌멩이들은 이내 사내들이 쓰고 있는 철모에 부딪히며 딱딱한 소리로 항의한다.
어째서 인간들의 일로 자신들을 이렇게 귀찮게 하느냐고.
점차 잦아지면서 가까워지는 폭발음과 그에 비례해 길다란 참호에 나란하게 서 있는 남자들의 눈의 떨림도 점점 커져만 간다.
누군가는 기도하고 있었으며 누군가는 마지막으로 포켓에 있는 사랑하는 이의 사진을 바라본다.
조만간 떨어질 신호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도중 옆에서 시큼한 냄새가 풍겨온다.
진흙투성이에 며칠째 씻지 못한 몸에서 나는 악취와 화약 냄새 등으로 무뎌졌다고 생각했건만, 후각은 자신이 그 정도로 제 기능을 못 할 줄 알았냐며 의기양양해하는 것 같다.
제기랄. 이럴 때는 좀 태업을 해도 좋으련만, 아무래도 옆에 있던 신병이 토를 한 모양이다.
별로 먹은 것도 없음에도 신병은 끊임없이 고개를 숙인 채 속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게워내려는 양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액체들을 줄줄 쏟아낸다.
우욱, 우웨엑!
깡!
그를 못마땅한 눈초리로 쳐다보던 고참병이 신병의 뒤통수를 후려갈기자 이내 조금 조용해졌다.
신병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입을 양손으로 막은 채 최대한 소리를 죽이고 있었다.
그런 병아리를 메마를 대로 메마른 미소와 함께 쳐다보던 숙련병들은 이내 조용해지기 시작한 것이 신병만이 아니란 걸 알아차린다.
점차 잦아드는 포격 소리는 한 가지만을 의미했다.
병사들 사이에서 일어난 작은 소란을 흘겨보던 소대장의 눈은 자신이 들고 있는 회중시계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내 가장 늦게 쏘아 올린 포탄마저 모든 물체가 벗어나지 못하는 중력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처박히며 자신의 마지막 단말마를 내지르자 전장을 가득 메운 것은 화약과 강철로 이루어진 기계들의 소음이 아닌 공기와 사람의 폐가 만들어낸 소리였다.
삐이이익! 삐이이익! 돌격 앞으로!
기세 좋게 외치며 군도를 빼 들고 가장 먼저 참호 위로 달려나가던 어제 부임한 소대장은 그저께 은퇴한 소대장의 뒤를 따라갔다.
하루 만에 중위로 진급하게 된 소대장이 참호로 굴러떨어지기도 전에 다른 이들의 발은 참호 밖을 향하고 있었다.
본인이 느끼는 두려움을 몰아내기 위함인지 아니면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 마치 마약을 한 것과 같은 각성상태에 빠진 것인지는 몰라도 병사들의 목에서 나오는 함성은 이미 인간의 그것이 아니었다.
No Man’s Land를 화려하게 불타는 촛불들이 내달린다.
저마다 일생 동안 쌓아 올린 인간관계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촛불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세상을 찢어발길 듯한 폭력의 향연 속에서도 용케 살아남은 추수 기계였다.
하나의 기관총탄을 만드는 데 들어간 시간은 단 몇 분. 생산하는 데 필요한 비용은 동전 몇 개.
하지만 이렇게 만들어진 총알이어도 촛불들을 끄기에는 성능이 충분했다.
철컥.
동맹국과 협상국 모두가 운용하는 맥심 기관총의 공이가 마치 범죄자에게 사형을 선고하는 판사의 망치처럼 한 차례 왕복하자 남은 것은 지극히 건조한 행위였다.
딸깍. 단 몇 센티미터에 불과한 손가락의 움직임에 촛불들이 스러져 간다.
저마다 품은 추억과 아직 못다 한 이야기들을 품은 채 촛불들이 이내 사내의 형상을 한 채로 땅에 몸을 뉜다.
No Man’s Land(무인지대)는 그런 사내들을 아무 말 없이 가슴으로 안아준다. 마치 그들이 고향에 두고 온 어머니처럼.
“……ㅖ하.”
하지만 모든 촛불이 그렇게 사그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포격으로 인해 사람이 익사할 정도로 물이 깊이 차오른 웅덩이들을 지나 피아구분 없이 시신들이 마치 빨래처럼 걸려 있는 철조망까지 통과한 몇몇 이들이 이내 상대방의 참호선에 도착한 것이다.
제식 병기인 총검과 개머리판, 군화와 군모, 주먹과 이빨, 야전삽과 철조망을 둘둘 두른 나무각목 등.
마치 하나의 거대한 살육공장과도 같았던 현대의 전장은 일순간에 몇 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벌어지곤 했던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보며 펼쳐지는 백병전으로 변모했다.
마치 조그마한 구멍이 뚫린 댐이 무너지듯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한 명의 도착도 허용하지 않을 것만 같던 방어선은 처음 도착한 이들의 뒤를 따라 참호로 뛰어든 입에는 거품을, 눈에는 핏대를 세운 사내들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리고 펼쳐진 것은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며 합리적인 존재라 주장한 스피노자의 사과나무를 베어내다 못해 불태우는…….
“……폐하!”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허리와 목이 뻐근한 걸 보니 아마 집무실에서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나 보다.
창밖을 보니 이미 어둑어둑해진 걸 알 수 있었다.
“지금이, 크흠, 흠, 지금이 몇 시인가?”
목구멍이 마치 지난 대기근 때 가뭄으로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밭처럼 말라 있었기에 나는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제대로 말할 수 있었다.
“벌써 새벽 1시가 넘었습니다.”
“아, 그렇군. 고맙네.”
나는 걱정스레 나를 바라보는 람스도르프 장관을 안심시키기 위해 가벼운 미소를 띠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지난번 프랑스와 관련된 소식이 들어온 뒤 열렸던 장관 회의에서는 이렇다 할 대책이 나오지는 않았다.
프랑스와 독일은 물론이고 다른 유럽 열강들의 움직임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는 것과 현재 진행 중인 사업들에 속도를 좀 더 빠르게 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이야기 정도로 끝났으니까.
사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섣부르게 무슨 행동을 취한다면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었다.
이전처럼 프랑스 내부에 있는 인민주의자들을 우리 입맛대로 움직이기에는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있었다. 유럽 각국에 파견되었던 오흐라나 요원들의 대다수도 이미 본국으로 돌아온 지 오래였고 가폰과 같은 이들도 이제는 얼굴이 지나치게 많이 팔려 있었다.
물론 헐리우드 영화 중에는 누구나 한번 보면 잊을 수 없을 정도의 잘생긴 얼굴과 마주치는 사람마다 본명을 알고 있는 비밀요원들이 나와 왜인지는 몰라도 적대적인 관계의 사람들만은 그들의 신분을 모르는 상태에서 미션을 계속 수행해 나가지만, 현실은 좀 달랐으니까.
“괜찮으십니까? 아무래도 좋지 않은 꿈을 꾸신 것 같습니다만,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시는 게 좋을 거라 생각됩니다.”
“아니야, 나는 정말 괜찮네. 그건 그렇고 자네야말로 이런 시간에 올 정도라면 아무래도 추가적인 소식이 들어온 모양이군.”
내가 요즘 들어 야근을 자주 한다고 하지만,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에 차르의 집무실에 장관급 인사가 방문했다는 것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건 확실했다.
그 일이 우리에게 좋은 소식일지 나쁜 소식일지는 아직 알 수 없었지만.
외무장관은 내 말을 듣자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전문을 내게 내밀며 얘기했다.
“방금 공사관을 통해 들어온 정보입니다. 드레퓌스가 프랑스 정부에서 제안한 사면안에 대해 거절 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람스도르프의 말을 들은 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이 또한 내가 한 행위의 나비효과가 불러온 결과라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래라면 기나긴 수형 생활과 그동안 억울하게 뒤집어쓴 누명으로 인한 마음고생으로 너무나도 지친 드레퓌스가 프랑스 정부의 사면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사면안에 동의한다는 건 얼핏 보면 좋은 일로 보일지도 모른다.
드레퓌스가 그동안 처해야만 했던 불합리한 상황에서 벗어난다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를 자세히 살펴보면 드레퓌스가 한 행위는 그동안 본인들의 사회적 경력과 심지어는 목숨까지 위협받으며 자신을 옹호해 온 이들을 배신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은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해왔건만, 막상 그들이 무죄라고 주장한 드레퓌스 본인이 자신은 유죄라고 인정한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원 역사에서는 그래서 드레퓌스와 그때까지 그를 위해 싸워온 이들 간의 사이가 거의 절연에 가까울 정도로 악화되었지만, 아무래도 에밀 졸라의 죽음이 모든 것을 바꿔놓은 모양이었다.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한 조국을 위해 1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할 정도의 참군인이었던 만큼 본인 때문에 목숨까지 잃은 사람을 배신할 수 없었겠지. 이렇게 된다면.’
사실 내가 한숨을 내쉬기는 했어도 어느 정도 예상이 되기는 했다.
문제가 되는 거라면 이번 일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에 대한 예측이 잘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공은 프랑스 최고 재판소로 넘어가게 되었군.’
아마 지금의 나만큼이나 이번 재판을 담당하게 된 판사들의 머리도 아플 것이라 생각하자 그나마 기분이 좀 나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니, 다시금 기분이 나빠졌다.
그놈들이 처음부터 이번 일을 제대로 처리했다면 내가 이렇게 골머리를 앓을 일도 없었을 테니까.
나쁜 놈들.
* * *
지난 몇 달간 파리는 유럽에서 가장 시끄러운 도시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기에 충분한 모습을 보여줘 왔다.
거리마다 펼쳐지는 시위와 충돌은 물론이고 그나마 조용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다가도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이번 일과 관련된 말을 들은 누군가가 결투를 신청하는 등의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벌어져 왔기 때문이었다.
-이 새끼! 드레퓌스를 옹호하다니 사회전복을 노리는 유대인의 하수인인 게 분명하구나! 내 오늘 위대한 조국 프랑스를 위해 위험 분자 하나를 줄이겠다!
-뭔 개소리야! 그러는 네놈이야말로 되지도 않는 음모론을 지껄이면서 자유, 평등, 박애 정신을 가진 우리 프랑스를 더럽히는 놈이로구나! 오냐! 기꺼이 받아주겠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오늘도 역시 거리를 가득 메운 군중들은 존재했지만, 이전과 같은 극렬한 충돌은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드레퓌스를 지지하는 측이든 아니면 그를 경멸하는 측이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서로를 노려보며 가벼운 말다툼을 할지언정 본격적인 몸싸움은 벌이지 않고 있었다.
두 집단이 극적으로 화해를 했다는 그런 아름다운 이유였다면 좋았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아니었다.
이들은 조만간 다가올 하이라이트를 위해 힘을 아껴두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오늘이 바로 드레퓌스의 재심 첫 공판이 열리는 날이었다.
별다른 언덕도 없이 평평한 지대를 자랑하는 파리였기에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은 양쪽 모두에게 공평하게 햇빛을 내리꽂아 주고 있었다.
그렇게 불편한 동거가 얼마나 진행이 되었을까.
“저기! 온다!”
누군가의 숨죽인 고함과 함께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눈이 일제히 돌아갔다.
현재 프랑스 공화국에서 가장 뜨거운 사나이라 할 수 있는 드레퓌스가 탄 죄수 수송 마차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이 기다리던 마차가 나타났음에도 군중들은 때를 기다렸다.
반대 측은 드레퓌스의 모습이 보였을 때 야유와 저주를 보내기 위해, 옹호 측은 그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이내 마차가 법정 앞까지 와 멈춘 뒤 에밀 졸라 사건 이후 좀 더 삼엄해진 경호와 감시를 동시에 하는 경찰들이 마차를 에워쌌다.
마침내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드레퓌스가 마차 밖으로 나오자 군중들은 일제히 본인들의 목적에 맞춰 함성을 지르려 했지만, 이 소란은 단 몇 초간만 지속되었다.
마차 밖으로 나온 드레퓌스는 머리가 새하얗게 세어버린 데다 지난 시절 걸렸던 말라리아로 인해 마른 몰골의 중년에 불과했다.
그를 저주하던 측은 지금까지 들어왔던 비밀 유대조직의 핵심 멤버이자 프랑스를 전복하려는 악당이라기엔 너무나도 나약한 모습에, 그를 옹호하던 측은 프랑스 공화국이 가진 양심의 상징이자 지성의 상징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초라한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본인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드레퓌스는 자신의 눈으로 내리쬐는 태양 빛을 수갑을 든 손으로 막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자, 들어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