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03)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203화
삐이익! 삐익! 삑! 삑!
중앙아시아의 고원 지대는 분명 해와의 거리가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이른 아침과 밤에는 날카로운 칼바람과 함께 군인들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인 강추위를 선사하고는 했다.
해가 뜬 뒤에는 그나마 온도가 빠르게 올라가고는 했지만, 지금과 같은 지평선 너머로 태양이 어렴풋하게만 보이는 아침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추위가 군인들로 하여금 저절로 다리를 비비적거리게 만들었다.
그래도 이런 서늘한 날씨이기에 좋은 점도 몇 가지는 있었다.
예를 들자면 방금 허공을 수놓는 호각 소리가 추운 아침 공기를 타고 더 잘 들려온다든가 아니면 말이 조금은 덜 지친다든가, 하는 사소한 장점들 말이다.
삐이익!
“중대장님! 아무래도 저희가 직접 나서서 뜯어말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 친구들 암만 봐도 순순히 서로를 놔주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런 개자식들,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말아야지. 꼭 직접 나서게끔 만들어요. 어이! 1소대!”
아무래도 정정해야 할 것 같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들의 앞에서 서로 이 물길은 자신의 목화밭으로 들어가는 게 맞다고 다투고 있는 농부들이 호각 소리를 듣지 못했을 리가 없는 데도 아무런 상관 없이 싸우고 있는 걸 보고 있자면, 호각은 그저 자신들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정도로만 사용되는 모양이었다.
경작지 인근에서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현장으로 달려온 부대의 규모는 한 개 중대 정도였다.
이른 아침부터 소집되었기에 중대장의 기분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는 걸 느낀 병사들은 그다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방금 호명 당한 1소대도 중대장의 외침과 고개짓만 보고도 자신들이 저 난장판 속으로 들어가 말타기와 농사일로 단련된 투르크인들을 말리러 달려가고 있었으니까.
도대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말들을 서로에게 쏘아대며 당장에라도 손에 들고 있는 농기구를 본래의 목적인 땅을 다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육체를 다지기 위해 사용할 것 같은 살기 등등한 농민들 틈바구니로 달려들어야 하는 1소대는 자신들의 소대장에게 불만을 토해냈다.
“소대장님, 뭐만 하면 1소대, 1소대 이러는 데 아니 저희가 무슨 잡일 담당 소대입니까? 중대장님께 당당하게 말씀 좀 해주십쇼. 예?”
“맞습니다. 그저께도 야간에 긴급출동 걸렸을 때 다른 소대 놈들은 죄다 잠자고 있는데 저희만 출동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설마 소대장님 중대장님한테 뭔가 밉보이신 겁니까?”
“……너희들이 지금 그런 말을 하고도 무사할 수 있는 건 폐하께서 내리신 칙령 덕분이니까 제발 일은 제대로 하자? 응? 어, 어어! 야! 저 새끼 말려!”
사실 농민들끼리의 다툼에 군인들이 출동하는 걸 보고 의아할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현재 러시아가 지배 중인 중앙아시아 지역은 일반적인 행정구역이 아닌 군정 통치 구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치안 업무도 군인들이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기본적인 단위가 씨족제인 중앙아시아의 특성상 각 씨족들 사이에 얽히고설킨 과거의 원한들로 인해 가벼운 다툼도 유혈사태로 발전하는 일이 많았기에 일이 커지기 전에 빠른 해결이 필요했으므로 군대라는 가장 큰 물리력을 지닌 집단의 동원이 필연적이기도 했다.
그렇게 [오늘 네놈 새끼 머리통 안에 든 게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주겠다!]라는 뜻의 말과 함께 상대방의 아침 햇살을 받아 빛나는 이마를 쪼개놓으려는 농민을 겨우겨우 말리고 물길 문제는 법정에서 해결하기로 합의한 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주둔지로 돌아오자 어느새 점심이었다.
중대장은 1소대의 분전으로 소란이 잦아드는 것처럼 보이자 다른 병력들을 이끌고 먼저 주둔지로 돌아갔기에 점심 식사를 가장 마지막에 배식받은 소대 또한 그들이었다.
그리고 군대에서의 마지막 배식은 보통 그렇듯이 남아 있는 음식이 적다는 걸 의미했다.
“아니, 이 개자식들아! 우리가 가장 힘든 일 하고 왔는데 왜 밥은 가장 조금 먹어야 하냐고! 우리 몫은 미리 퍼 놔주든가! 그게 그렇게 어려웠냐? 아오! 내가 그날 이놈의 저주받을 당첨만 안 됐어도!”
그들을 통솔하는 소대장인 보리스 샤포쉬니코프¹도 병사의 말에 동의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 또한 입영 절차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지기 직전에 영장이 날아와 추첨을 통해 군 입대가 결정되는 일을 겪어야만 했던 마지막 세대였으니까.
그나마 병사들은 조금이라도 쉬면서 모자라게나마 식사를 할 수 있었지만, 샤포쉬니코프는 밥도 먹지 못한 채로 지휘관 회의에 참석해야만 하는 입장이었다.
보통이라면 소대장인 그가 회의에 참여할 일은 없었겠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자신이 소속된 중대가 출동한 데다가 실질적으로 상황을 정리한 것이 본인의 소대였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회의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발을 옮기는 짧은 시간 동안 샤포쉬니코프는 입대 이후 그가 처음으로 가게 되었던 모스크바 군사 학교를 떠올렸다.
오렌부르그 코자크 출신이었던 아버지가 자신에게 틈만 나면 당신의 경험을 얘기하시며 겁을 주곤 하던 기병대에 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입교 첫날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차르가 직접 군대 내 부조리를 뜻하는 데도브시나를 최대한 줄일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말과 칙령을 내렸긴 했다.
하지만, 그가 입대할 때만 해도 많은 수의 부조리들이 이건 가혹 행위가 아니라 신병의 몸과 정신을 군인으로 만들기 위한 ‘적절한 조치’라는 명목으로 남아 있었다.
사실 그건 지금도 과거에 비해 완화되었을 뿐 여전히 군대 내의 데도브시나의 잔재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지만.
조교나 그들을 가르치는 교수는 물론이고 자신들의 선배들로부터도 생도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명목으로 온갖 부조리들을 당하다 보니 군사학교 교육을 통해 자랑스러운 대 러시아 제국의 장교로 복무하게 되었다는 두근거림은 교정을 본 직후에나 존재했던 이미 멸종해버린 감정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교육을 받던 시간이 모두 회색빛으로만 점철된 잊고 싶은 기억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랬기에 동기들끼리 더 뭉칠 수 있었으며 지나간 시간은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게 마련이었으니까.
‘그래도 카리바노프 그 자식은 아직도 기억나네.’
이런 힘겨운 시간을 겪으면서 샤포쉬니코프의 동기들도 두 부류로 나뉘어지기 시작했었다.
대다수의 동기들이 포함된 부류는 자신들이 당한 만큼 똑같이 되돌려주겠다는 입장이었고 그가 포함된 소수의 인원들은 그래도 이런 부조리의 연쇄를 끊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하고는 했다.
그의 소대가 아까 아침과 같이 꽤 나 자유로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이런 샤포쉬니코프의 신념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물론 아직도 가끔가다 출몰하는 튀르크 노예 상인들과의 실전이 발생하면 방금과 같은 분위기가 아닌 명령과 복종만이 존재하는 전형적인 군대로 탈바꿈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샤포쉬니코프는 무능한 지휘관이 아니었으니까.
다행히 그가 이런 분위기로 소대를 이끌 수 있을 정도로 러시아 군대 내의 분위기가 유해진 것은 차르의 칙령이 점차 녹아들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대대장님, 샤포쉬니코프 중위가 도착했습니다.”
“들어오라 그래.”
이런 과거 회상과 함께 길을 걷다 보니 어느새 지휘관 막사 앞까지 도착한 모양이었다.
그가 천막을 걷으며 안으로 들어가자 평상시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가 맴도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난 안디잔에서 발생한 소요사태-사실상 반란이었지만, 공식적인 명칭은 소요사태였다- 직후에나 있었을 법한 어딘가 긴장감이 맴돌고 날카롭고 예민한 감정들이 둥둥 떠다니는 듯했다.
자신을 질투심 어린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는 중대장의 시선을 제외해도 말이다.
“샤포쉬니코프 중위.”
“예! 대대장님!”
이 부대로 전입할 때 이후로 얼굴을 보기 힘들었던 대대장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샤포쉬니코프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야전에서의 경력이 긴데다 중앙아시아 진출 초창기 영국군이나 튀르크 인들과 총알을 나누며 생활했다는 대대장이 자신에게 흥미를 나타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보니 귀관은 상당히 우수한 인재였나 보군. 모스크바 군사학교도 5위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이수하고 말이야. 거기에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도 귀관의 소대만으로 별다른 일 없이 잘 마무리했다고 하는데. 사후 처리는 어떻게 했나?”
“옙! 먼저 중대장의 명령대로 목화밭에 댈 급수원을 사이에 둔 다툼을 저와 제 소대원들을 통해 방지한 뒤 통역병을 통해 이번 분쟁은 이번에 열릴 순회 법정에서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저희 소대의 감시하에서 서로 급수원을 공평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하였습니다. 또한 재판 이전에 이와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와 협력 관계에 있는 이슬람 율법 학자를 통해 양쪽 씨족 모두에게 앞서 말한 대로 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내용이 담긴 공증서를 작성했습니다.”
“무난하지만 깔끔하게 처리했군. 때로는 무난한 게 가장 어려운 법이지.”
“감사합니다! 다만 중대장의 지휘에 따랐을 뿐 모든 걸 제 능력만으로 한 것은 아닙니다!”
샤포쉬니코프는 대대장의 칭찬에 황급히 대답했다.
사실 그의 소대원들이 말했듯 자신과 중대장 간의 사이가 그다지 좋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중대장이 샤포쉬니코프를 일방적으로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게 맞겠지만.
아마 자신이 막사에 들어왔을 때 중대장이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낸 것도 이번 일 때문일 거라 생각했기에 나온 대답이기도 했다.
인사권에 막대한 영향을 가진 상급자의 인정은 하급자라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그의 예상은 빗나간 모양이었다.
샤포쉬니코프가 이렇게 대답했음에도 중대장의 시선은 누그러들지 않았으니까.
“그런가? 흠, 알겠네. 하지만 자네가 겸손하게 굴어도 저 위에 있는 분들의 생각은 좀 다른 모양이군. 귀관처럼 우수한 부하를 뺏긴다는 게 그다지 달갑지는 않지만, 뭐 어쩌겠나. 군인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샤포쉬니코프 중위. 오늘부로 귀관은 투르키스탄 제1 소총 대대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니콜라예프 참모 학교로 소속이 변경되었네. 이건 방금 내려온 인사명령이고.”
대대장이 말을 마치며 자신에게 내민 종이를 받아 들은 샤포쉬니코프는 어안이 벙벙했다.
니콜라예프 참모 학교라니? 거기는 제국군 내에서도 가장 우수한 인재들만이 간다는 곳이 아니었던가?
이제야 중대장이 자신에게 보냈던 시선의 의미가 이해가 됐다.
니콜라예프 참모 학교를 간다는 건 앞으로 샤포쉬니코프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진급을 한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하지만 왜일까. 분명 기쁜 소식임에도 중위의 마음속에는 기쁨만큼이나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이 올라오고 있었다.
사실 이 두려움은 비단 이번 인사명령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실 그가 지금 속해있는 투르키스탄 소총 대대는 원래 규정상 편제되어야 하는 인원의 4분의 3은 밑돌고 있었다.
이는 병력 자원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얼마 전부터 이 부대뿐만 아니라 중앙아시아 전역에서 조금씩 병력들에 대한 이동 명령이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이동 명령에 적혀있는 사유는 훈련이나 휴식, 병력 교대 등 다양했지만, 행선지는 단 한 곳이었다.
제국의 서쪽. 유럽 방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