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06)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206화
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
법을 담당하고 있는 여신인 유스티티아가 눈을 감고 있는 것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상대방의 신분이나 재력에 상관없이 공평한 재판을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실 법 앞에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말이 나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귀족들은 몸 안에 흐르는 피의 색깔마저 다르기 때문에 감히 ‘붉은 피’가 흐르는 미천한 것들과 같은 취급을 받을 수 있겠냐는 말이 사회적으로 통용된 시간이 인류 전체의 역사를 통틀어 살펴보자면 훨씬 길었으니까.
이러한 통념에서 벗어나 최소한 법 앞에서는 모든 이들이 공평하게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 바로 이곳.
프랑스에서 나온 인권 선언에서 기초한다는 역사적 사실은 프랑스 국민들에게 하나의 자존심과도 같았다.
비록 프랑스 대혁명으로 왕을 몰아낸 뒤 새로운 왕을 모셔오거나 나폴레옹이라는 영웅이자 독재자가 제관을 스스로 쓰는 것에 동의하는 등 제헌국민회의가 만든 인권 선언에 역행하는 모습들도 보이긴 했어도 이는 프랑스야말로 자유주의와 인권보장의 선봉장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게 만들기에는 충분했으니까.
그리고 이런 자부심은 대위로 복무하던 드레퓌스의 마음속에도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그가 증거 같지도 않은 증거로 인해 독일을 위해 일하는 첩자라는 누명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모든 사람은 범죄자로 선고되기 이전까지는 무죄로 추정되는 상태이다.’
드레퓌스는 프랑스인들이 자랑스럽게 외우곤 하는 인권 선언의 9조를 생각했다.
현대 법체계에서 무죄 추정의 원칙이라는 대전제의 근간이 된 이 문장은 슬프게도 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미 재판에 넘겨지기도 전에 언론이나 대중들에게 드레퓌스라는 이름 네 글자는 저 증오스러운 독일의 스파이로 확정이 된 것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나마 요즘 들어서는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사건 초기에 벌어졌던 언론의 집중포화는 드레퓌스의 마음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었다.
“피고는 자신의 직업과 이름을 말하도록 하시오.”
직업? 그는 분명히 자랑스러운 프랑스의 그랑드 아르메(대 육군)에서 복무하던 포병 대위였다.
하지만 이러한 자신을 공개적으로 불명예 전역시키고 온갖 모욕을 주었던 주체 또한 바로 그랑드 아르메였다.
“피고?”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자신은 무엇인가? 불명예 전역 처리가 된 이상 드레퓌스의 군적은 말소된 거나 다름없었다.
그럼 직업을 묻는 재판관의 말에 죄수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가?
아니, 아니다. 비록 조국은 그를 모욕하고 짓밟았을지 몰라도 드레퓌스는 자신을 깔아뭉갠 조국을 아직 사랑하고 있었다.
“……제 이름은 알프레드 드레퓌스. 직업은…… 명예로운 조국 프랑스를 수호하고 보호하는 군인입니다.”
프랑스를 반으로 쪼개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기의 재판의 마지막 공판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 *
“항소합시다.”
현재 드레퓌스를 지지하는 측을 들여다보면 크게 3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걸 가장 먼저 고발한 피카르 중령을 중심으로 한 소수의 군인들, 에밀 졸라의 명문인 ‘나는 고발한다’가 실렸던 신문의 편집장인 조르주 클레망소를 중심으로 한 언론인과 지식인들 그리고 이번 일이 일종의 계급 간 갈등이라고 이해한 노동자 계층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중 가장 강성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건 바로 방금 항소하자는 말을 꺼낸 노동자들이었다.
드레퓌스의 목에 올가미를 걸지 못해 안달이 난 이들의 대부분이 극우적 성향을 지닌 보수파라는 걸 생각하면 이번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자신들의 패배를 의미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고 법정에서 결과가 나왔는데 어디에 항소를 한단 말입니까. 거기에 최근 독일 쪽 국경의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습니다. 얼마 전에는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지만, 실탄을 사용한 훈련까지 진행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다만 조르주 중령을 비롯한 군인 측 인사들의 반응은 항소하자고 부르짖는 노동자들과는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들도 자신들의 군 경력을 걸면서까지 이번 일에 나설 만큼 각오가 부족한 것은 아니었지만, 민간 측에서 받아들이는 최근 독일과의 국경 지대의 분위기와 현직 군인들의 입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다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총선에서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정당이 승리하는 걸 노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사건에 대한 재수사와 더불어 드레퓌스 씨의 복권을 위한 재판도 다시 열 수 있을 테니까요.”
“도대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벌써 사건이 일어난 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에 투쟁과 싸움에도 불구하고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 또 훗날을 노리자고요? 당신네들은 아무래도 겁을 먹은 모양이군요. 그렇게 죽음이 두렵습니까?”
정치적 수단을 생각해 보자는 클레망소의 말에 노동자 측 대표가 다음과 같이 맞받아치자 분위기는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그의 말은 에밀 졸라의 전철을 밟는 게 무섭냐고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역린과도 같았다.
이들이 이렇게 충돌하게 된 이유는 바로 재판 결과 때문이었다.
이번 사건이 프랑스 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알고 있는 재판부는 법리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최대한 양측 모두를 덜 자극하기 위한 정치적인 부분도 고려할 수밖에 없었다.
[피고 알프레드 드레퓌스의 건강이 매우 악화되어 있으며 정해져 있는 수형 기간을 채우기가 실질적으로 어려운 상태이기에 본 법정은 피고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형집행정지를 선고하는 바이다. 또한 피고가 건강을 유지하지 못하고 이렇게 심신이 약해진 데에는 형기를 별문제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관리해야 하는 국가 측의 책임이 있으므로 본 법정은 형 집행 정지 기간 동안 국가가 피고의 치료비와 같은 여타 부수적인 비용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말이 형 집행 정지였지 사실상의 석방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라는 전제조건이 붙어있긴 했어도 구체적인 기간을 명시하지 않은 데다 다시 형을 수행하는 것에 대한 판단은 드레퓌스 측에서 선정한 의사의 진단서가 필요하다는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불명예 전역으로 연금이 끊긴 데다 주변에서의 질시로 인해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힘들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족들에게도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드레퓌스를 도와주는 이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긴 했어도 이런 식의 지원과 보상금은 다르게 느껴질 테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드레퓌스는 지쳐 있었다.
비록 에밀 졸라의 죽음이 그로 하여금 사면이라는 제안을 받지 않게 만들기는 했지만, 지난 시절의 고된 수감생활은 드레퓌스의 몸과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겨놓았다.
그의 머리는 새하얗게 새어버렸으며 상태가 최악이던 시절에는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할 정도였다.
“여러분, 나는…….”
아까 전의 말로 발생한 감정싸움이 점점 격해져 가는 면회장을 바라보며 드레퓌스가 입을 열었다.
* * *
“프랑스 재판관들이 머리를 좀 썼군.”
이들이 내린 판결문은 사실 큰 위험 부담이 있는 판결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양측 모두의 눈치를 본 결과물이 애초에 계획했던 것처럼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기보다는 둘 다 화를 내는 결말이 나오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까.
다만 이번에는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다행스럽게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성공한 모양이었다.
산발적인 충돌을 제외하고는 걱정했던 대대적인 폭동이나 시위는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오히려 저는 드레퓌스가 이번 판결을 별다른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는 게 더 의아하더군요. 지난 사면령도 거부했던 만큼 이런 식의 사실상 유죄 인정을 해야 하는 결말은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내게 관련 소식을 가져온 람스도르프는 지난번 에밀 졸라의 죽음 이후 드레퓌스가 보였던 태도와 이번 판결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에 의아한 모양이었다.
사실 그럴 만도 했다.
프랑스의 양심과도 같았던 에밀 졸라가 극우주의자의 총탄에 유명을 달리한 이후, 그의 죽음을 짊어진 드레퓌스가 이번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게 좀 이상해 보이기는 했으니까.
“아마 드레퓌스 그자도 군인이었던 만큼 현재의 안보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모양이군. 아직 독일 측에서 우리에 대한 항의 서한은 보내오지 않은 상태인가?”
“예, 말씀하셨던 대로 중앙아시아 지역이나 여타 잉여 병력들이 있다고 판단되는 곳에서 서부 쪽으로 이동을 시키고 있지만, 최대한 은밀하게 기만책들을 사용해 가며 실행한 결과 아직은 독일 측에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드레퓌스가 그 정도로 아직도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애국심이라니?”
“프랑스와 독일 국경에서 최근 독일이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는 건 전해졌겠지만, 자신을 그런 식으로 취급한 조국을 위해 명예 회복이나 지금까지의 시간도 포기할 정도로 드레퓌스가 여전히 프랑스를 사랑할까요?”
사실 람스도르프처럼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국가에 대한 헌신을 바친 충직한 군인에 대한 보답이 이런 식이라면 아무리 굳센 애국심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도 흔들리는 게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드레퓌스라는 사람의 행적을 아는 나로서는 다른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 역사에서 그는 자신을 버렸던 조국을 위해 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고된 수감 생활로 후유증을 앓고 있는 몸을 이끌고 다시금 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었으니까.
“프랑스가 부럽군. 저런 일을 당하고도 변함없는 충성을 바치는 군인을 가지고 있다니.”
“……그렇군요. 그럼 폐하, 병력들은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도록 할까요?”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건 그렇고 이번 일이 이런 식으로 해결됐으니 서부로 이동시켰던 군인들도 다시금 원래 주둔지로 돌려보내야겠지.
군대의 규모가 규모인 만큼 이런 식으로 전투 기동이 아닌 단순한 이동만 하더라도 들어가는 재화의 양이 만만치 않았지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던 조치였던 만큼 일이 해결됐으니 다시금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게 만드는 게 나아 보였다.
아직은 독일이 눈치를 채지 못했다고는 해도 국경 지대에서의 긴장이 올라가는 건 그다지 좋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독일이 프랑스와의 국경 지대에서 훈련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프랑스 측에서 우리 쪽에 무력시위를 부탁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처럼 부드러운 마무리는 없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러도록 하지. 이제는 외무부가 아니라 전쟁부가 제일 바쁘게 일해야 되겠어. 서부 쪽으로 다양한 사유를 붙여 이동시켰던 병력들을 다시금 티 나지 않게 원대 복귀시키려면 꽤 나 힘들 테니까.”
다가올 총력전에 앞서 철도의 군사적 이용을 연습해 봤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얻는 게 있다는 식의 정신승리는 가능했다.
이렇게 유럽 전역을 들썩이게 만들었던 드레퓌스 사건은 생각보다 싱겁게 불완전 연소로 끝나는 것 같았다.
다음 날 들어온 소식은 찝찝할지언정 평화가 조금이나마 더 유지될 것이라는 희망찬 관측을 박살 내는 것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