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08)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208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권력 이양은 그저 몇 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이벤트로 여겨졌다.
선거가 이루어지기 1년여 전부터 각 정당별로 후보를 선출하고 TV나 신문, 인터넷 등에 광고 등을 도배하고 길거리에서 트로트를 기반으로 한 선거 송이 울려 퍼지는 이벤트 말이다.
어떤 정치학자는 말했다.
선거는 정권 이양을 총과 칼을 통해 피를 흩뿌리며 했던 것을 투표용지와 도장을 통해 평화로운 과정을 통해 진행되도록 만든 것이라고.
그의 말대로라면 선거는 일종의 피를 흘리지 않고 절차와 규칙에 따라 이루어지는 내전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라면 본래의 권력 이양 과정에서 동원되었던 병사는 선거 운동원으로 서로 대의와 명분은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던 징조나 예언은 공약집으로 땅 위에 흩뿌려지던 피는 어마어마하게 쏟아붓는 돈으로 치환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일대일은 아닐지언정 동일한 일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권력 이양이 이렇게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면서도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대부분의 경우에는- 행해지게 된 것은 사실 그렇게 오래되었다고 보기는 힘들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대부분의 권력 이양 사례는 피와 칼을 동반하곤 했으니까.
이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혈육 관계에 있는 권력자와 후계자 사이에서도 종종 일어나곤 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신이 자연스럽게 권력을 승계받을 사람들에게도 본인의 아버지가 손에 움켜쥐고 있는 ‘권력’은 너무나도 달콤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랬기에 아버지들도 아들을 따뜻한 눈으로만 바라볼 수가 없었다.
군주국에서 현재 왕위에 올라 있는 군주의 가장 큰 라이벌은 다름 아닌 자신의 아들이라고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핏줄을 직접 이은 것도 아닌 후계자를 어쩔 수 없이 선정해야만 했던 황제는 황태자에게 과연 좋은 감정을 가질 수 있겠는가?
“다음 달 네가 지방 순방을 좀 다녀와야 할 것 같다.”
프랑스에서 한창 드레퓌스와 관련된 재판이 진행되고 있던 시기, 오-헝 제국의 상징과도 같은 황제 프란츠 요제프는 자신의 집무실로 부른 페르디난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선언했다.
이는 명령도 아닌 선언이었다.
하다못해 황제의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시종들에게 간단한 지시를 내릴 때에도 보고 있던 서류에서 고개를 들고 시선을 주면서 말을 하건만, 황제는 자신의 후계자인 황태자에게 말을 하면서도 눈은 서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달 말씀이십니까?”
“그래, 요즘은 잠잠해졌다고는 하지만 헝가리계를 비롯해 여타 다른 민족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건 너도 알고 있을 게다. 특히 최근에 헝가리 의회에서 발칙한 일을 하려 했던 것도 들었을 테고.”
다민족국가이기에 사용하는 언어만 하더라도 다섯 가지가 넘어가는 오-헝 제국이었지만, 군대에서만큼은 의사소통의 원활함이 필수적이었기에 오-헝 제국군의 공식 언어는 독일어였다.
그리고 이에 불만을 가진 헝가리 의회에서 헝가리어도 독일어와 함께 군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도록 해달라는 요구를 헝가리계의 투표권을 확대하겠다는 협박으로 무마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헝가리 귀족들에게 자신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는 의회에 비천한 피를 가진 족속들이 들어올 수도 있다는 말은 농담으로도 하기 힘든 끔찍한 악몽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유럽의 정세가 불안정한 만큼 외부에서의 불안으로 인해 동요할 도 모르는 신민들을 안심시키고 이때를 틈타 내부에서의 혼란을 일으키려는 자들에게 우리가 건재하다는 것도 드러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내린 결정이니 자세한 사항은 내무장관에게 듣도록 해라.”
둘 사이에서 나누어지는 말의 형태는 대화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걸 옆에서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게 대화가 맞냐는 물음에는 고개를 저을 가능성이 컸다.
이건 대화라기보다는 자동 응답기가 말하는 대로 버튼을 누른 것에 대한 대답이 나온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내가 죽은 소식마저도 본인에게 올라온 서류들을 처리하던 도중 서류 더미 사이에 끼워져 있던 전보를 통해 알았던 황제인 만큼, 황태자가 방안으로 들어오기 전부터 보고 있던 보고서들에 서명을 써내려가는 손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자동응답기에 미리 준비된 것처럼 보이던 응답이 모두 끝난 것처럼 보이자 황태자는 몸을 돌려 방을 나서려 했다.
여기에 더 오래 머무는 것은 자신에게도 그리고 황제에게도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니었으니까.
“그 시녀도 함께 갈 생각인 게냐?”
황태자는 고개를 다시금 황제에게로 향했다.
방금 그가 들은 말은 자신이 황제에 집무실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듣게 된 사람과의 대화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페르디난트는 황제의 말에 희미하게나마 ‘감정’이 섞여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황태자 본인이 느끼기에는 말에 섞여 있는 감정이 경멸과 분노에 가까웠지만.
“물론입니다.”
“…….”
페르디난트는 집무실 안을 가득 메우던 황제의 서명 소리가 사라진 것을 알 수 있었다.
사각거리던 소리마저 사라진 방 안에는 유럽 대륙에서 가장 고귀한 핏줄이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의 숨소리와 함께 불편한 침묵만이 맴돌았다.
“이번 순방은 어디까지나 황태자의 공식적인 지방 순회가 아닌 휴가를 위한 여행일 테니까요. 제 아내도 함께 데려가도록 하겠습니다.”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아내가 있었지만, 아내가 없는 것과도 마찬가지인 상태였다.
대부분의 부부가 그렇겠지만, 사람이 결혼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해서인데 페르디난트는 대를 이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성적으로 불능이라거나 아니면 페르디난트의 아내인 조피가 불임이라는 게 아니었다.
이 둘 사이에서 나온 아이는 황태자의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헝 제국의 제위를 이을 수 없었다.
‘귀천상혼’이라는 유서 깊은 규정으로 인해서 말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황태자가 공식적인 지방 순방을 나선다면 오히려 우리가 지방의 소요를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큰 만큼 이번 행사는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사유로 이루어지는 형태를 가질 것이지 않습니까?”
페르디난트가 이번 순방이 공식 행사가 아니라고 거듭 얘기하는 이유도 바로 그의 아내 때문이었다.
귀천상혼을 한 결과 황태자와 조피는 공식 석상에서 함께 있을 수가 없었으니까.
“……아무리 사적인 휴가라 하더라도 네 현재 위치가 위치인 만큼 호위에는 신경 쓰도록 하여라.”
그다지 좋다고는 할 수 없는 둘 사이의 관계였지만, 안전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프란츠의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나오는 듯했다.
아들이었던 루돌프 황태자가 자살한 이후로 관계가 망가지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자신의 아내를 암살로 잃은 황제였기에 더더욱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폐하.”
다시금 방 안에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페르디난트는 이제 정말로 ‘대화’가 끝났다는 걸 깨닫고 다시금 집무실 문을 열고 나가려 했지만, 순간적인 충동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고 말았다.
“폐하, 방금 전에 조심하라는 말은 폐하의 조카인 저를 걱정해서 하신 말씀이십니까, 아니면 제국의 뒤를 이을 수단에 대한 걱정이 담긴 말씀이십니까?”
황태자는 말을 내뱉자마자 후회했다.
방금 전에 대화가 끝났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프란츠 황제는 페르디난트가 무어라 말했는지 듣지도 못한 것처럼 서류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황태자는 이미 대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을 던진 것을 후회했다.
그가 방을 빠져나온 뒤, 내무장관을 만나러 가는 길에 떠오른 것은 희한하게도 이번 일과 관련해 황제와 가볍게 충돌까지 하게 된 이유인 자신의 아내가 아니라 적성국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 제국의 차르, 니콜라이였다.
‘그 친구가 부럽군. 항상 그랬지만, 지금은 더더욱.’
페르디난트가 보기에 니콜라이는 황위를 위해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그 흔하디흔한 권력자인 아버지와 후계자인 아들 사이에서 일어나곤 했던 충돌도 없었으며-페르디난트가 느끼기로는- 오히려 선제인 알렉산드르 3세가 아들을 위해 본인의 스승이자 친구마저 숙청한 일은 그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지난 시절 러시아 제국의 초청을 받고 세르기예프 수공업 단지를 방문했을 때 만난 것을 계기로 여전히 서신을 주고받으며 개인적인 친분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니콜라이가 보내오는 편지 내용은 쏟아지는 일 때문에 제 명에 살지 못하고 죽겠다는 푸념이 대부분이었지만, 자신의 친우가 부러웠다.
때로는 가벼운 질투심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니콜라이의 아버지도 보수적이기로는 그 누구와 비교하더라도 지지 않을 정도였으나 결국에는 자식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본인의 정치 성향을 이길 정도라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슬슬,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야만 하겠어.’
페르디난트가 떠올린 계획은 앞서 언급한 황제와 황태자들 사이에서 벌어지곤 했던 암투와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현재와 같은 제국 운영 방식으로는 미래에 다가올 파국을 막을 수 없다고 생각한 황태자가 자신 나름대로 어떻게 하면 제국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대책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시대의 오-헝 제국은 유럽 대륙 내의 다민족 국가 중 가장 너그러운 소수 민족 포용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그 속에서도 슬라브 족에 대한 공공연한 차별 정책과 같은 암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러시아 제국의 경우에는 이보다 더한 사례들이 널려 있었으니까.
니콜라이가 황제가 된 뒤 과거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해도 이는 관용보다는 국가주의를 통한 통합에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다만 그의 아이디어는 원 역사의 오-헝 합중국이라는 청사진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아무래도 서신을 주고받게 된 니콜라이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아이가 황위에 오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제국은 계속 이어져야만 한다.’
그와 프란츠 황제의 사이가 좋지 않다 하더라도 어찌 됐건 페르디난트는 현재 오-헝 제국의 적법한 후계자였으며 유일한 후계자였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프란츠 요제프마저도 말이다.
분명 오-헝 제국은 느리지만 꾸준하게 자신의 내부에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들을 찾아 나가고 있었으며 미래의 황제가 될 인물의 문제 인식 또한 정확하다고 할 수 있었다.
이 늙은 공룡은 천천히나마 바뀌어가는 세상에 적응해 나가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과연 세계가 이 공룡이 새로운 세상에 완벽히 적응할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느냐였다.
자연은 자비로운 어머니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냉혹한 심판자로 군림하기도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