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10)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210화
“노동자의 죽음을 외면하고 부르주아들의 편만을 드는 무능하고 사악한 내각은 총사퇴하라!”
“프랑스의 정신을 짓밟고 제대로 된 수사도 진행하지 않고 있는 정부는 각성하라!”
“전쟁은 정치인들이 선포하지만, 전쟁터에서 흘리는 모든 피는 노동자들의 것이다!”
파리에서는 여느 때와 같은 풍경이 보이는 듯했다.
지난 드레퓌스 사건 이후로 마치 일상과도 같은 시위가 열리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이런 식의 노동조합들이 주도하는 시위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고운 눈초리를 받지는 못했어도 열렬한 지지자들이 나타나곤 했다.
드레퓌스 사건도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이제는 사건 자체의 본질보다 이것을 정치 쟁점화, 진영에 따른 대결 구도로 변질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분위기는 뭔가 조금 달랐다.
“저놈들은 도대체 언제까지 저렇게 방해만 해대려고 하는 거지?”
“외곽 지역에 있는 군수 공장들이 제대로 운영을 못 한 지도 벌써 2주가 넘어간다고 하던데 독일 놈들이 저렇게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저놈들은 언제까지 매국노 짓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군.”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파리 시민들로부터 우호적이지 않은 말들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본래라면 이보다 더 많은 인파를 자랑했어야 할 시위대의 규모도 한창 사태가 정점이던 시기와 비교하면 한없이 적어진 상태라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국경에서 독일의 위협이 현실화된 이후 내각이 내건 애국주의적 호소가 분위기를 180도 바꿔놓았다.
프랑스인들이 아무리 시위와 파업의 민족이라도 당장 눈앞으로 다가온 전쟁이라는 이벤트는 당파적 논리를 초월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시위대에 속해 있는 이들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당장 그들과 연결된 정당인 프랑스 사회당마저도 다가오는 전쟁에 대해 당이나 진영과는 상관없이 전적으로 협력하겠다는 결의문에 서명을 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가장 강성한 태도를 나타낸 노동조합인 ‘노동자의 힘’도 엄밀하게 따지자면 프랑스 사회당의 하부조직이었던 만큼 이들도 당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이만 해산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시위 지도부에서도 아무래도 다른 방식의 투쟁 노선을 취해야겠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지만, 오늘은 이들이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밤을 지새워야 할 모양이었다.
삐익! 삑!
지금까지는 드레퓌스 지지 측 세력의 크기도 작지 않았기에 시위를 진압하는 데 있어서도 소극적인 방어로만 일관했던 경찰들이 오늘은 작정한 듯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회주의자 새끼들. 그동안 아주 자기들 세상인 것처럼 날뛰었는데 오늘은 다를 거다.”
그렇게 전성기와 비교했을 때 한 줌 정도의 규모에 불과한 시위대는 경찰의 본격적인 진압 앞에서 무력하게 해산되었다.
그들이 목소리 높여 외치던 구호 중 민족과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노동자들끼리 단결하자는 말이 있었지만, 막상 이에 해당하는 독일인 노동자들의 대다수가 전쟁에 뜨거운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이는 너무나도 공허한 외침이었다.
그나마 이러한 실상을 알지 못하는 게 이상주의자들에게는 축복이었을 것이다.
오히려 지금 감옥에 감으로써 앞으로 다가올 지옥도를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더욱.
“이제야 저 시끄러운 놈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겠군.”
“매국노나 다름없는 녀석들 당장 국가에 위기가 닥쳤는데 내부 총질이나 하는 놈들이야!”
이번 위기에 임하는 프랑스 국민들의 모습도 독일인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독일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전쟁에서 승리했기에 좀 더 여유로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프랑스는 패배함과 동시에 알자스-로렌 지역이라는 핵심지대를 빼앗겼기에 좀 더 필사적인 모습과 함께 조금의 불안감도 가지고 있다는 게 달랐다.
알자스-로렌, 독일어로는 알자스-로트링겐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이 지역은 기나긴 두 나라 사이의 악연만큼이나 복잡하면서도 기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동프랑크 왕국부터 신성 로마 제국 그리고 프랑스의 영토로 편입된 뒤 다시금 보불 전쟁을 통해 독일 제국의 영토로 된 이 지역은 지배자의 변천 과정만큼이나 현지 주민들에게 당신의 국가적 정체성은 어디에 더 가깝냐고 물었을 때의 대답도 다양했다.
프랑스령으로 편입된 지 100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독일어를 사용하는 인구의 숫자가 무시할 수 없었을 정도였다.
그리고 역으로 다시금, 독일 제국의 영토가 된 뒤 이에 거부감을 느끼고 프랑스로 이주한 사람들의 숫자가 무려 25만 명이나 될 정도로 복잡한 지역이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곳은 역사적 중요성만큼이나 자원 그리고 군사적인 중요성 때문에 두 나라 사이에서 높아져 가는 긴장감의 최전선이라는 점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지난 전쟁의 굴욕을 씻고 다시금 알자스-로렌에 자랑스러운 우리 프랑스의 국기가 휘날리도록 만들어야 해!”
이러한 프랑스 국민들의 인식은 마지막 수업과 같은 문학 작품으로도 표출되곤 했다.
그러나 프랑스도 독일로부터 알자스-로렌 지역을 빼앗은 이후로 독일계 주민들에게 프랑스화를 강요했던 걸 생각하면 이 요충지와 관련해서는 누가 선이고 악인지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 개자식들이 본래라면 우리의 것인 철광석과 석탄을 훔쳐가고 있는 거나 다름없다고! 조만간 총동원령이 내려지면 나도 자원입대를 신청할 생각이네. 자네도 함께하겠나?”
“물론이지. 조국이 위험에 빠졌는데 나 혼자 파리에 남아 있을 수가 있겠나.”
하지만 그런 역사적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대다수 프랑스인들에게 알자스-로렌 지역은 우리 프랑스의 것이었던걸 독일이 빼앗아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라는 사실이었으니까.
드레퓌스 사건과 이로 인한 사회 혼란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인해 높다고는 할 수 없었던 내각의 지지율은 역설적으로 외부로부터의 위협이 현실화되어가자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 이미 프랑스 사회당마저도 전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초당적인 협력을 약속한 이상 프랑스 사회 내부의 혼란은 빠르게 가라앉을 가능성이 컸다.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프랑스의 분열을 틈타 공세를 취할 생각이던 빌헬름의 생각이 바뀔 가능성도 컸지만, 문제는 이미 이번 일로 인해 양 국가의 국민 여론에 불이 붙었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베를린에서 하루가 다르게 전쟁을 부르짖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처럼 프랑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에게 독일이 지금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우리의 위기를 기회 삼아 공격하려 드는 비겁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누군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프랑스 대혁명 이후 혼란스러운 정국을 틈타 다시금 왕정을 복고하려 들었던 외세에 침략에 비유하기도 할 정도로 프랑스 내부의 여론도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정부 혹은 황제나 왕이 아닌 국민들이 나서서 전쟁을 외치고 국가가 이에 끌려가는 형태의 독특하면서도 기묘한 상황이 벌어질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때가 되면 양 국가의 지도부는 둘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할 것이다.
국민의 여론에 따라 전쟁을 선포하든지 아니면 자신들이 조장한 분노에 잠식된 대중들의 손에 본인들부터 쫓겨날지를 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직은 국내 상황을 통제할 여력이 있는 프랑스와 독일 양국 모두 총동원령을 내린다면 더는 돌이킬 수 없는 분기점을 넘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서로 간에 눈치싸움만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 * *
현재 유럽 대륙에서 가장 철도망이 잘 구성되어있는 나라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답은 독일 제국이었다.
독일 내에 구성된 철도망들을 보고 있자면 독일인들의 편집증적인 집착마저 느껴질 정도였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독일 제국의 지정학적 위치와도 관련이 있었다.
서쪽으로는 프랑스, 동쪽으로는 러시아라는 잠재적인 적국이면서도 거대 열강인 두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독일 제국의 상황상 병력의 빠른 이동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으니까.
나폴레옹 전쟁 이래로 지휘관들은 병력의 이동속도는 즉 전투력을 의미한다는 사고방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의 결정체인 철도와 열차는 지휘관들이 목말라하던 기동력의 혁명과도 같았다.
철도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는-그들이 생각하기에- 열차의 군사적 가치는 무한대에 수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독일 제국의 이러한 조밀하면서도 정밀한 철도 체계는 지금도 유감없이 그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지금 운행 중인 이 열차에 타고 있는 승객들이 누구인지만 봐도 알 수 있었으니까.
“야, 한스! 네가 졌으니 주둔지에서 설거지 담당은 너다? 알겠지?”
“어우, 앞으로도 내가 카드놀이 판에서 만나는 상대는 전부 한스 같은 실력을 가지고 있으면 좋겠는데!”
분명히 조만간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지역으로 가는 열차였지만, 여기에 탑승하고 있는 병사들의 분위기는 낙천적이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카드놀이도 본래라면 군기 상 용납되지 않을 것이었음에도 장교들의 묵인 하에 이루어지고 있었을 정도였다.
“에잇, 젠장! 야, 너희들 혹시 짰냐? 짠 거지!”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한 병사의 고함 위로 그게 무슨 소리냐며 시치미 떼는 병사들과 구경꾼들의 웃음소리가 덮어졌다.
이런 분위기만 놓고 봤을 땐 군사 열차가 아닌 휴가를 떠나는 통상적인 열차처럼 느껴졌다.
여전히 동료들이 자신에게 속임수를 쓴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병사와 그를 놀리는 다른 이들의 농담과 웃음이 지나가고 나자 남은 건 조만간 마주하게 될 상대방에 대한 폄하와 깔봄이었다.
“그러고 보니 프랑스 새끼들은 군가로 양파 어쩌고 하는 노래를 부른다면서? 그딴 노래나 불러대니까 그렇게 허약한 건가?”
“파리에 있는 여자들은 오히려 기대하고 있다는데? 프랑스 남자 같은 비실비실하면서 나약한 놈들 대신 우리와 같은 진짜 남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라고 말이야!”
남자들이 모인 공간이었기에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러운 음담패설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런 농담은 프랑스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거기에 멍청한 러시아 놈들은 머리에 이상한 솥뚜껑 같은 걸 쓰고 다닌다고 하던데! 아직도 중세시대인 줄 아는 거 아냐?”
“그 자식들은 농노 해방도 한 지 얼마 안 된 미개한 놈들이니 그럴 수도 있지. 동부 전선으로 간 놈들이 부러워지는데.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강철 갑주를 입은 기사들을 두 눈으로 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그의 말대로 동부 전선으로 간 병사들은 강철로 된 갑옷을 입은 기사들을 마주할지도 몰랐다.
다만 그 기사는 건초를 먹는 말 대신 기름을 먹는 엔진과 네 개의 다리 대신 무한궤도를 가지고 있는 모습이라는 게 그의 예상과는 달랐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