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15)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215화
벨기에라는 나라의 역사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매우 짧다고 할 수 있었다.
나라의 이름들은 바뀌어왔을지언정 본인들의 뿌리가 오랜 시간 이전부터 내려왔다고 얘기할 수 있는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벨기에는 단 1년여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진 벨기에 합중국부터 따지더라도 200년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1831년이 지금과 같은 독립국가로서의 벨기에가 유럽에 처음으로 등장한 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벨기에는 태어난 지 100년도 안 된 젊다 못해 어린 나라라는 표현이 더 어울렸다.
그리고 이런 나라의 왕족인 알베르는 자신의 조국을 사랑했다.
본인의 나라보다 44살이 젊은 그는 비록 탄생은 강대국들끼리의 완충지대 형성과 이해관계의 합산이었을지 몰라도 나날이 발전을 해나가는 고국의 앞날을 걱정하면서도 깊이 애정하고 있었다.
심지어 벨기에의 미래를 위해 그의 피가 필요하다면 기꺼이 흘릴 정도로.
그가 레오폴드 2세에게 먼저 자진해서 리에주로 가겠다고 한 말의 배경에는 이러한 사정이 숨어 있기도 했다.
지금과 같은 시기에 왕족이 전선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에 몸소 가는 것보다 쉽게 사기를 끌어 올리는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피 끓는 20대 초반인 알베르는 내심 기대도 하고 있었다.
자신이 리에주에 도착한 뒤 만일의 사태가 벌어진다면 영웅이 될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물론 그의 이런 생각은 벨기에의 자랑이라 불리는 리에주 요새에 도착한 뒤로 사라졌지만.
사실 벨기에는 여전히 징집제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다른 열강들이 수십 개의 사단을 굴리고 있는 동안 단 6개의 보병사단을 보유하고 있었다.
거기에 그나마 있는 군대도 사격훈련마저 제대로 시키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었다.
현실을 마주한 뒤, 만약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한다면 제대로 막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으로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밤공기를 쐬고 있는 알베르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알베르 저하, 바람이 찹니다. 그만 들어가시는 게 어떠신지요.”
“르망 장군.”
본래라면 수도에 있는 육군 학교에서 학교장을 수행하고 있어야 하는 그가 여기 있는 이유는, 알베르가 리에주 지역으로 가겠다고 하자 레오폴드가 수행무관으로서 그를 붙여줬기 때문이었다.
단순 순방이었다면 르망 정도의 무게를 가지고 있는 인사를 함께 보내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준 전시상황이라고 생각한 레오폴드 2세의 안배였다.
제라르 르망이 벨기에 왕족들의 군사 교관이기도 한 걸 생각해 보면 적절한 인사라고도 볼 수 있었다.
왕족이나 귀족과 같은 고귀한 피가 지휘권을 잡는 게 아직은 당연시되는 시대상 현장에서 명목상 지휘관과 실질적 지휘관 사이의 의견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피해를 본 사례가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었으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계셨는지 알 것 같군요.”
“그렇습니까?”
“예, 제가 학교장으로 있던 육군 학교에서 자주 봤던 눈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르망은 손수 가져온 따뜻한 차를 알베르에게 건네며 말을 이었다.
“육군 학교에 오는 젊은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감에 차 있습니다. 그들 중 몇몇은 독일이나 프랑스가 우리를 집어삼키기 전에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말도 하곤 하지요. 뭐,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자고로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나라는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시점에 이루어지는 필사의 일격을 통해 협상을 이끌어내는 것이 가장 상책이라는 말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말입니다.
노장은 자신의 몫으로 들고 온 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아까보다 낮은 어조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걱정을 하는 것이나 아니면 이러한 상황을 타개해 낼 방법을 알아내는 것은 저와 같은 군인의 몫이지 저하와 같이 군림하는 분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하께서 세세한 병력의 이동을 일일이 파악하실 수 있다거나 아니면 정밀한 작전 계획을 직접 수립하실 수 있다면 물론 좋겠지요. 여태까지 군주의 신분으로 전장 일선에서 놀라운 업적들을 거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러나 저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저처럼 한평생 군복을 입은 사람조차 군사기술의 발전을 따라가기도 벅찰 정도로 말입니다.”
“여기서도 수업을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오.”
알베르는 쓴웃음을 지으며 노장이 가져다준 차를 입에 머금었다.
앞서 르망이 밤바람이 차다고 했지만, 아직 9월의 리에주의 밤공기는 서늘하다는 표현보다는 미지근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알 것 같군.
알베르는 입안으로 중얼거리며 자신을 향해 미소를 보내고 있는 르망을 향해 입을 열었다.
“밤공기가 차니 들어가라는 건 핑계고 내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면 오히려 장병들의 사기가 떨어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했던 말이군요. 하지만 장군, 그러면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우리나라는 사이에 둔 독일과 프랑스, 병사의 숫자만 해도 수십만이 넘어가는 두 나라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입니까?”
현실을 실감한 알베르의 말에는 절절한 감정이 실려 있었다.
그는 분명 유능하면서도 능력이 있는 사내였지만, 아직까지 경험이 부족해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등의 군주들에게 필요한 기술이 부족하기도 했다.
아직은 미숙한 왕족의 질문을 받은 르망은 아무 말 없이 지금도 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이름 모를 병사들을 내려다보다 천천히 대답했다.
“저 아래에 있는 이들에게 믿음을 주십시오. 병사들이 자신의 조국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저하께서 저들에게 희망을 주십시오. 본인은 비록 여기서 죽을지언정 조국은 계속해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희망 말입니다.”
장군의 말은 겉보기엔 아직 혈기가 앞서는 왕족에게 건네는 따뜻한 조언이었지만, 그 내용은 마치 한겨울에 불어오는 바람처럼 싸늘했다.
르망의 평상시 얼굴이 마음씨 좋아 보이는 할아버지 같았기에 더욱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이는 저들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가 마무리되고 밤하늘로 흩어져가는 찻잔의 김만이 피어오르던 때 알베르는 고민했다.
과연 르망이 말한 내용을 자신이 실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마음속에서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가 하고 있는 걱정은 의례 이러한 의문이 그러하듯 실제로 그 상황이 닥쳤을 때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좋은 쪽의 해소일지 아니면 나쁜 쪽의 해소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저하! 수도로부터 급보가 전해져왔습니다!”
“아무래도 좋은 소식은 아닐 것 같군요.”
르망은 아직까지 남아 있던 차를 단숨에 마신 뒤 알베르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방금까지 나눈 대화를 기억해 주십시오, 저하.”
* * *
“그 사람은 괜찮을까요?”
페르디난트는 아내가 자신을 향해 질문한 ‘그 사람’이 누군지 잠시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의 아내는 본인들의 마지막 순방지였던 사라예보에서 발생했던 불상사에 휘말렸던 사내에 대해 말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괜찮을 거요. 병상에 누워있던 그 친구를 직접 만나보기까지 하지 않았소. 그 정도로 강인한 사내라면 분명 조만간 회복해서 자리에서 일어나겠지.”
“그렇겠지요?”
“물론이지.”
점점 높아져만 가는 오-헝 제국 내 소수민족들의 민족주의를 달래기 위해 황태자가 직접 나서서 진행한 순방은 원활하게 진행된 편이었다.
마지막 순방지였던 사라예보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페르디난트 황태자와 그의 아내인 조피가 카퍼레이드를 하기 전날 현지 경찰과 군인들에 의해 이루어진 체포 작전에서 ‘검은 손’이라는 테러 단체와 교전하던 도중 사상자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그 소식을 들은 황태자가 부상당한 이들을 방문하는 것으로 일정을 바꿈으로써 이번 일로 가뜩이나 악화되어 가고 있는 민족 갈등을 조금이나마 봉합하는 데 성공했지만-부상당한 쪽이나 체포당한 쪽이나 모두 세르비아 계였기 때문이다-, 이는 오-헝 제국 내의 민족주의 운동이 계속 심각해져 가고 있다는 걸 의미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역으로 페르디난트 황태자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합중국을 좀 더 확실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것과 이번 대전에서 오-헝 제국은 한발 물러서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옳다고 느껴졌다.
미국의 대통령 중 한 사람이 말한 것처럼 분열된 집안은 바로 설 수 없을 테니까.
‘돌아가는 대로 폐하를 뵈어야겠군. 독일이 지금도 이번 전쟁에 협력하라고 압박을 넣고 있을 텐데 서둘러야 한다.’
다행히 발전된 교통기술은 그의 급한 마음을 충족시켜 줄 정도의 빠른 속도로 페르디난트를 오-헝 제국의 수도로 옮겨주고 있었다.
옆에서 여전히 그날 병원에서 만난 경찰들을 걱정하고 있는 아내의 손을 꽉 잡아주며 황태자는 다짐했다.
삼국동맹은 상호방위조약에 가까우므로 독일의 선제공격에 꼭 협력할 이유는 없다는 핑계를 대서라도 적극적으로 참전해서는 안 된다며 황제를 설득해야겠다고.
“황태자 저하, 이제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환영행사가 준비되어 있으니 슬슬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수행원 중 하나가 조만간 빈에 도착할 거라 얘기하자 조피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번 순방 동안 아이들과 떨어져 있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페르디난트도 잠시나마 아이들을 떠올리며 무거운 생각들을 떨쳐낼 수 있었다.
“벌써 말인가요? 드디어 우리 아이들을 만날 수 있겠군요.”
“예, 그럼 두 분 모두 다시 이 방탄조끼를 입어주시겠습니까?”
“그걸 또 말인가요? 꼭 입어야만 하나요?”
“두 분의 안전을 위해서입니다. 조금 답답하시겠지만…….”
사실 현대에서도 방탄조끼는 그다지 편안한 착용감을 제공하지 못하는 물건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 시대에 방탄조끼는 그야말로 최악의 착용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조피는 순방 기간 동안 계속해서 이 물건을 입고 있던 것에 지긋지긋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황가에서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황태자비라 할지라도 수행원들에게는 까마득하게 높으신 분이었기에 그들의 표정은 점점 난처해져만 갔다.
“뭐, 별일 있겠나. 여기가 다른 곳도 아니라 빈인데 한 번만 봐줬으면 좋겠군.”
황태자는 자신들을 향해 방탄복을 내밀고 있는 수행원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건 페르디난트의 배려이기도 했다.
자신의 아내와 수행원 양쪽을 위해서 자신의 의지로 방탄복을 입지 않겠다고 한 것이었으니까.
“알겠습니다, 저하. 그럼 도착하는 즉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주면 고맙겠군.”
수행원이 방탄조끼를 들고 사라진 뒤 얼마 지나지도 않아 기차는 오-헝 제국의 수도인 빈에 도착했다.
역사에는 순방을 마치고 돌아온 황태자를 환영하기 위한 인파로 가득한 상태였다.
경찰들이 역 내를 통제하려 애쓰고 있었지만, 지나치게 많은 사람들로 인해 제한을 겪고 있었다.
이내 우렁찬 군악대의 연주와 함께 페르디난트가 조피와 함께 열차에서 내려 준비된 꽃다발을 받아드는 찰나 한 사내가 인파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탕! 탕!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폭음이 울려 퍼지자 역사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