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17)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217화
68장 파국
멀어져가는 의식 속에서 페르디난트가 느끼는 감정은 걱정과 안도였다.
테러의 대상이 본인이 분명할 테니 아내에게는 별다른 위해가 가지 않을 것이라는 데에 대한 안도감과 가뜩이나 황실 내에서 공식적인 황태자의 아내 대우조차 받지 못하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걱정이 뒤섞여 있었다.
여태까지 오-헝 제국이라는 국가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차 있던 황태자의 마지막 생각은 바로 가족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페르디난트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말한 내용 또한 아내와 자식에 관한 말이었다.
-조피! 부디 마음 굳게 먹으시오. 내가 없더라도 아이들을 부탁하오.
이때만큼 자신과 조피가 결혼하기엔 급이 맞지 않는다며 아내에게 수여되었던 호엔베르크 공작 직위가 고마웠던 적이 없었다.
거기에 요제프 황제의 성격상-비록 자신과는 여러 방향에서 맞지 않았지만- 계승권은 없다 하더라도 황실의 피가 섞인 아이들을 모른 체할 리가 없다는 것도 위안이 되어주었다.
‘고지식하고 보수적인 만큼 품위와 명예를 중요시 생각하시는 분이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이렇게 마지막 걱정까지 덜어놓고 이제 남은 건 하느님의 품 안에 안기기 위한 마지막 재판뿐이라 생각하고 있던 페르디난트 귀에 평온한 잠을 방해하는 소음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하께서 의식을…….”
“폐하께 말씀…….”
페르디난트가 피습을 당한 지 이틀이 지난 뒤, 의식을 되찾았을 때 본인의 눈앞을 가득 메운 콧수염을 보고 비명을 질렀을 때 주변에 있던 인물 중 이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보고도 웃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잠깐의 소란이 있은 후 아직까지 최대한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따라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페르디난트 황태자, 그리고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의사와 간호사 한 명만을 있는 방안에서의 대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황제와 죽을 고비를 넘긴 황태자 사이의 대화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제가 지금 천국에 있는 건 아닌 모양이군요. 비단 어깨에서 느껴지는 통증을 제외하더라도 여기가 지상이라는 건 알 수 있겠습니다.”
“당연하지 않느냐. 너에게 부여된 의무도 수행하지 않은 채로 천국에 가겠다니. 그거야말로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죄인 직무유기를 저지르겠다는 말과 똑같다고 할 수 있지.”
“폐하께서 이리 건재하신데 괜찮지 않겠습니까. 황태자로서의 의무만을 부여받고 가족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저에게는 버거운 짐일 수도 있겠지요.”
훈훈한 감정이 담긴 말들이 오고 가며 서로 간의 감정을 소모했다.
황태자는 의식을 찾은 후로 계속해서 가장 궁금했던 아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보려 하다 입을 닫았다.
아까 방안을 채우고 있던 수많은 검정 제복 사이에서도 본인의 아내인 조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 대신 페르디난트는 요제프 황제가 방금도 입에 담았던 황태자로서의 의무를 먼저 수행하기로 했다.
뭐, 아마 자신이 피습당했다는 것에 놀란 아이들을 달래주기 위해 자택에 가 있는 게 분명했으니까.
어쩌면 이번 일도 신분상의 차이를 들먹이며 황제가 간호 대신 집에 머무르고 있으라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그렇다면 꽤 많이 화가 날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래서 슬라브계입니까, 아니면 헝가리계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다른 소수민족입니까?”
“너를 암살하려 했던 놈 말이냐?”
“예.”
황태자가 생각하기에 이번 일은 십중팔구 민족주의 광풍에 영향을 받은 한 미치광이 민족주의자가 돌발적으로 실행했거나 혹은 그런 미친놈들이 모인 단체의 입김을 받은 게 분명해 보였다.
황제와 가벼운 말다툼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페르디난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만약 그런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면 이는 그가 그토록 피하고자 했던 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는 일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황태자는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급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순방 뒤 수도로 돌아온 저에 대한 환영 인사가 총알이었지만, 보시는 바와 마찬가지로 저는 멀쩡한 상태입니다. 그러니 우선 섣부른 지레짐작 대신 철저한 수사를 통해…….”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을 것 같구나.”
“폐하.”
“이번 일은 일종의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일이다. 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향해 총을 발사하면서 본인들은 전쟁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 말을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느냐. 거기에 이런 식의 중대한 일을 당했는데도 강력하게 나가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 누가 우리 제국을 우습게 여기지 않을 수가 있겠냐는 말이다.”
그가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이 점점 다가오는 듯했다.
아마 슬라브계가 했다면 얼마 전 발칸 반도에서 꽤나 큰 규모의 테러를 저질렀던 것으로 알려진 검은 손이라는 조직이 개입됐을 텐데.
그러고 보니 그놈들이 세르비아 육군과 관련이 있다고 했던가. 만약 그렇게 된다면 세르비아 정부에 책임을 물으려고 하실 테고 그러면 러시아 제국이…….
“폐하, 이 사건은 제가 당사자이니 제가 해결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만약 세르비아 군부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가 나올 경우 제가 가지고 있는 니콜라이와의 친분을 이용해 세르비아를 함께 압박한다면 별다른 군사적 움직임 없이도 깔끔한 마무리가 가능할 겁니다.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러시아와 프랑스를 양쪽으로 상대하는 것은 현재 저희의 군대로서는 무리입니다.”
페르디난트의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요제프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명백한 거절의 뜻이었다.
그 행동을 본 페르디난트가 별로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요제프가 차마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구나. 먼저 첫 번째 나 또한 네가 가지고 있는 차르와의 우정을 모르는 게 아니다. 하지만 현재의 유럽은 왕족들 간의 친교만으로 전쟁이 벌어지지 않는 곳이 아니게 된 것 같구나. 그리고 두 번째 이건 아직 확실하지 않다만 현재까지 범인과 세르비아 군부 사이의 관계는 확인되지 않았다. 거기에 이건 지금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만…….”
황제는 말끝을 흐렸다.
페르디난트는 어리둥절했다. 범슬라브주의와의 충돌도 아니라면 요제프가 아까 말한 전쟁까지 불사할 듯한 태도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황태자의 머릿속에 벼락과도 같은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아까부터 내심 고려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무시한 일이기도 했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아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신을 향해 총을 발사한 것이 아니라 황태자 부부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고.
평상시 조피를 황태자비로 인정하지 않던 황제가 어쩐 일인지 조피를 황태자비로 인정하는 것 같은 말을 한 것이었다.
페르디난트는 손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고 있었다.
하지만 퍼즐을 완성해 간다는 성취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예정된 비극을 맞이하는 듯한 비탄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요제프 또한 페르디난트의 반응을 보며 황태자가 스스로 본인이 현재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 또한 자신의 아내를 암살로 잃은 당사자였기에 지금 페르디난트가 무슨 심정인지를 알 수 있었다.
황제는 난생처음으로 황태자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잃은 사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미안하구나. 방탄복만 입었어도 무사했을 텐데. 하필이면.”
황태자가 누워 있던 병실 문 밖으로 외마디 비명과 함께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 *
국가를 운영하다 보면 때로는 개인적인 감정은 접어두어야 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하곤 한다.
예를 들자면 자신이 사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을 능력상의 이유로 좌천시키거나 해임해야 하는 일이 생기거나 아니면 형제나 자식, 친척 등과 같은 혈연이 이어진 사람도 나의 감정이 어떤지와는 상관없이 ‘정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번 삼촌을 시베리아로 보내드린 건 개인적인 감정도 조금은 섞여 있는 일이긴 했지만, 아무튼 황제라는 자리는 생각보다 자아실현을 하기에는 그다지 좋은 자리가 아니었다. 개인으로서의 자신과 황제로서의 자신이 꼭 일치한다고 볼 수가 없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 또한 그다지 유쾌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독일과 프랑스의 충돌이 기정사실화된 이상 아직은 부족한 시간을 좀 더 확보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시행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폐하, 오-헝 제국으로부터 공문이 도착했습니다. 이번 황태자 부부 피습사건과 관련해 지지를 요청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건, 페르디난트 황태자의 개인적인 서신입니다.”
“알겠네, 읽어보도록 하지.”
지난번 수공업 지구인 세르기예프 단지에서 처음 만난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개인적으로 호감이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처음에야 만약 1차 세계 대전이 벌어진다면 러시아의 제2 전선이 될 갈리치아 방면에서의 충돌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교류가 어느샌가 이 사람과의 대화를 좀 더 이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어 갔으니까.
지난 시절 적극적으로 인민주의자들을 유럽의 각국으로 수출한 결과 사회당으로 대표되는 유럽 대륙의 사회주의자들은 내가 아는 역사보다 좀 더 극단적이고 과격해진 것 같았다.
런던 코뮌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프리카 위기를 중재하기 위해 유도했던 프랑스나 독일의 공업 지역에서의 폭동도 조금의 계기만 줬음에도 내 예상보다 더 강하게 불타올랐었으니까.
다만 그 이후로 인민주의라는 단어에 노이로제가 걸린 각 나라들이 감시의 눈길을 강화하는 바람에 파견되었던 오흐라나 요원이나 내가 생각하고 있던 계책들이 몇 가지 무력화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각 나라들에서 쫓겨난 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2개였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으로 가든지, 아니면 아직은 인민주의자들에게 저렇게 데여본 적이 없는 나라로 가든지.
그리고 이탈리아는 인민주의자들이 숨어든 나라 중 한 곳이었다.
거기에 오흐라나 요원을 통한 선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했다.
독일군이 이미 뫼즈 강을 넘었다는 정보가 입수된 이상 프랑스와 독일은 이미 전시상태에 돌입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러시아 또한 삼국협상에 의거해 독일의 뒤통수를 후려갈길 준비에 들어가야만 했다.
물론 그 이전부터 휴가나 주둔지 재발령 등의 핑계로 독일의 첩보망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의 병력이동이 있어왔지만, 본격적인 공세작전을 펼치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많았다.
황태자 시절부터 미흡한 철도망들을 보완하기 위해 무딘 애를 써왔지만, 러시아 전역에서 총동원령을 실시하는 데는 최소 1달에서 1달 반이 걸릴 거라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동프로이센 방면에 위치한 주둔군과 요새지대뿐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