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18)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218화
“폐하?”
“아, 미안하네.”
그는 조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념이 꽤 길었던 모양이다. 거기에 나와 페르디난트 사이의 개인적인 우정을 알고 있는 그로서는 조금은 사적인 걱정도 할 수밖에 없겠지.
“프랑스 측에서도 연락이 왔겠지?”
“예, 물론입니다. 오-헝 제국으로부터 공문이 오기도 전에 프랑스 쪽에서 먼저 전문을 보내왔으니까요. 아무래도 이 친구들도 어지간히 몸이 달아오른 모양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지. 그들로서는 상황이 변했다는 핑계로 우리가 독일 동부 지역에 대한 공세를 취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테니 말이야.”
아무리 19세기~20세기의 유럽 외교가 상황과 힘에 따라 안면 몰수하는 등의 양아치스러운 행위들이 넘쳐났다고는 해도 나는 그 정도로 막돼먹은 짓은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프랑스 입장에서는 혹시라도 러시아가 입을 싹 닦고 모른 척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실제 역사에서도 프랑스나 영국으로 대표되는 연합국이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과 체코 합병을 사실상 묵인, 용납했던 일이 발생했었으니 말이다.
거기에 지금의 유럽에서 겉으로 보기에는 적대적인 관계의 국가와 물밑으로는 비밀 조약을 맺거나 이중 계약을 체결하는 행위는 기본 교양이라고 여겨질 정도였으니 더더욱 그렇게 느낄 만했다.
이렇게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프랑스만 하더라도 세계사 책에 기록된 굵직굵직한 일종의 외교적 배신의 대가이기도 했으니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었다.
뭐, 지금의 유럽은 나로 인해 이미 역사가 꼬일 대로 꼬여 버렸으니 내가 아는 것과 같은 뮌헨의 배신이라든지 아니면 가짜 전쟁과 같은 프랑스와 영국을 믿고 있던 폴란드의 뒤통수를 맛깔나게 후려갈긴 일이 벌어질 것 같진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이와 관련된 지식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화려하기 짝이 없는 영국과 프랑스의 통수 역사를 되짚어보고 있는 동안 람스도르프는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해주고 있었다.
아까 말한 프랑스로부터 온 공문의 내용의 설명을 대략적으로나마 시작하고 있었으니까.
나 또한 그가 자신의 일을 시작함과 동시에 차르라는 본분의 충실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오-헝 제국과 이탈리아 왕국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변하는지와는 상관없이, 러시아 제국이 우리와 맺은 군사동맹에 따른 움직임을 취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라는 내용이라고 정리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프랑스의 신문들이 최근 러시아어 사전에서 명예라는 단어가 사라지는지를 지켜볼 것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람스도르프는 이렇게 말을 끝맺으며 나에게 프랑스 정부가 보내온 공식문건을 내밀었다.
나는 그가 내민 공문을 받긴 했지만, 바로 읽어보는 대신 책상 한쪽 구석에 놓았다. 람스도르프가 정리해준 내용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제 와서 프랑스의 뒤통수를 칠 이유도 그다지 없었기에 나는 이것과 관련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는 앞으로 취할 행동에 대한 방향에 대해 얘기를 하는 게 더 낫다고 느꼈다.
“아직까지 이번 일에 대한 배후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혀진 것이 없으므로 현재 상황에서 러시아 제국의 입장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는 식으로 답변을 하는 게 좋겠군. 다만 만약 실제로 최근 일어난 끔찍한 비극을 사주하거나 아니면 실행자에게 영향력을 끼친 쪽이 밝혀진다면 그에 대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분노와 응징은 정당한 것이라는 말을 추가하게. 그리고 러시아 제국은 합스부르크 황가와의 인연에서가 아닌 적법한 군주국으로써의 합당한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폐하.”
내가 오-헝 제국에게 전하라고 한 내용은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었다.
비록 황제나 귀족과 같은 고귀한 피들의 무게감이 과거보다는 가벼워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시대는 엄연히 이들 ‘푸른 피’의 무게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오-헝 제국의 끔찍하고도 소름 끼치는 일을 사주한 이탈리아에 대한 응징을 기꺼이 지지하며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을 추가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이미 이번 일은 내리막길을 달리기 시작한 브레이크 없는 마차나 다름없었다.
이럴 때는 오히려 약간 거리를 두고 표정관리를 하며 원론적인 입장을 취하는 게 더 나았다.
이탈리아 정부가 본인들은 이번 사건과 연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대낮에 그것도 본인들의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오-헝 제국의 인식은 선전포고나 다름없을 게 분명했다.
“그래도 다행이군요. 이탈리아와 오-헝 제국이 충돌하게 된다면 저희 입장으로서는 전선이 한 곳 줄어드는 것과 똑같으니까요. 독일의 카이저가 지금쯤 엄청나게 후회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벨기에를 침공했을 테니 말입니다. 거기에 여전히 요새 지대를 돌파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더군요. 생각보다 전쟁이 쉽게 끝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람스도르프의 희망 섞인 관측에 대답하는 대신 아까 받아든 황태자의 개인적인 서신의 내용을 떠올렸다.
페르디난트가 나에게 보내온 편지는 어느 정도 감정이 절제된 공무적인 형식의 전문들과는 달리 오-헝 제국의 황태자 이전의 가정을 가진 사내로서의 감정이 숨김없이 묻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의 아내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과 절망감 사이로 보이는 분노는 그가 과연 오스트리아 합중국이라는 개념을 외치며 평화를 중시했던 사람과 동일인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도록 만들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 미치는 데는 단 하루의 재수 없는 날이면 충분하다고 했었나.’
현대인으로서의 기억 한구석에 있던 만화책에서 읽은 기억이 있는 문장이 떠올랐다.
페르디난트가 미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까지의 그는 사라지고 새로운 사람이 태어난 것이라 볼 수 있는 지금 상황을 그것보다 잘 설명해 주는 문장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벌컥!
“아버지! 이것 보세요! 저 이제 군복이 딱 맞는다구요!”
“여보, 아니, 폐하, 죄송합니다. 알렉세이! 지금 폐하께서 공무를 보고 계신 데 이게 무슨 짓이니! 어서 나오렴!”
“……아니오, 부인. 오, 정말이구나! 이제 어엿한 군인이라고 봐도 될 정도인걸.”
갑작스레 찾아온 손님은 바로 아들인 알렉세이와 아내였다.
나는 달려오는 알렉세이에게 두 팔을 벌리면서 람스도르프에게 이만 나가도 좋다는 눈빛을 보냈다.
외무장관은 실력 좋은 외교관답게 인사와 함께 자리를 비켰고 이내 집무실 안에는 나와 아내, 그리고 알렉세이만이 남아 있었다.
아내의 얼굴은 처음에는 약간의 걱정이 섞여 있었지만, 나와 알렉세이가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자 이윽고 안심한 듯 가벼운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아마 그녀의 눈에는 알렉세이를 무릎에 앉힌 채 정다운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 내가 이상적인 아버지로 보이고 있겠지.
체벌이 아이들을 교육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지던 시대임에도 손찌검 한번 없이 이런 식으로 아들을 대하는 건 흔하지 않은 사례였으니까.
한 사람의 가정을, 그것도 친분이 있던 사내의 가정이 파괴되는 것에 관련이 있는 나로서는 이 두 사람의 미소를 똑바로 마주 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말이에요. 제가 요전에 잡은 곤충을 가져다줬더니…….”
여전히 내 무릎 위에서 밝은 태도로, 자신이 여동생에게 곤충을 가져다줬더니 기겁을 했다는 등의 이야기를 재잘거리고 있는 아들을 보고 있자니 이런 감정 또한 지금의 모습을 지키겠다는 다짐 앞에서 사라졌지만, 여전히 내 혀끝에는 약간의 씁쓸함이 감도는 듯했다.
다른 사람의 가정을 파괴해 놓고 본인의 가족은 지키겠다는 내 모습에 대해 욕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러한 욕을 먹는 것으로 이들을 보호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먹어주도록 하겠다.
“그런데 아버지, 지금 손에 들고 계신 종이는 뭔가요?”
“아, 이것 말이냐.”
나는 페르디난트의 편지를 쥐고 있는 손의 반대 손으로 알렉세이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대답했다.
“네가 알기에는 아직 이른 것이란다.”
내 아들이 최소한 이런 일을 감당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전에는 세상의 더러움을 몰랐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담아서.
* * *
쾅! 콰쾅! 쾅!
“엄폐! 모두 엄폐하라!”
수도로부터 독일이 프랑스가 벨기에를 침공하려 한다는 조짐이 보이고 있으니, 독일군이 이를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국경을 통과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전문을 보내왔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리에주 요새에는 포탄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모두 준비해라! 포탄이 떨어지는 간격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지금까지처럼만 하면 된다!”
다행히 벨기에라는 나라의 모든 역량이 집중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요새답게, 독일군의 포격에도 리에주 요새는 자신의 본 모습을 굳게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끔찍한 것은 따로 있었다.
삐이익! 삐이익! 삐이익!
희뿌연 포연 저 너머에서 날카로운 호각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오기 시작하자 리에주 요새를 지키고 있던 벨기에 병사들은 끔찍하다는 듯이 몸서리치기 시작했다.
“저 개자식들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군. 독일놈들은 밭에서 자라난다더니 그게 정말인가?”
“그래도 조준을 대충 해도 무조건 한 놈은 맞으니 이득 아닌가?”
“탄약수! 서둘러! 놈들이 돌격해 온다!”
“착검! 착검해라! 이전과 동일하다! 저 새끼들을 자기들이 태어난 땅으로 되돌려 보내주자!”
독일군이 공격을 해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벨기에 군인들은 입으로는 불만을 토해내면서도 행동은 어느샌가 숙련된 병사의 그것이었다.
이는 독일군 상층부에서 나오던 농담인 ‘벨기에의 병사들은 초콜릿으로 만들어진 병사나 다름없다’와는 정 반대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리에주 요새라는 든든한 방어시설이 있긴 했지만, 압도적인 수의 독일군 앞에서도 전의를 유지할 수 있는 데는 한 가지 요소가 더 있었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돌진밖에 없는 저 멍청이들에게 벨기에가 우습지 않다는 걸 알려주자!”
“저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
일선에서 뛰어다니는 알베르의 존재는 현장에 있는 벨기에 병사들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런 그를 지켜보고 있는 장교들의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지만, 일선 병사들의 입장에서는 귀하게만 자란 왕족께서 안전한 요새 내부가 아닌 벽 위에서 자신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전의가 오를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다가옵니다!”
“적군의 보병이 돌격해 오는 동안에는 상대도 포병 사격을 할 수 없다! 독일 놈들의 사격 실력이 형편없다는 건 귀관들이 누구보다 잘 아는바! 저 자식들에게 사격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내려줘라!”
이걸로 몇 번째인지도 모르는 공세였다.
이번 전쟁이 펼쳐지는 내내 마주치게 될 참호전의 모습이 이곳, 리에주 요새에서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