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19)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219화
벨기에 병사들의 분투는 분명 대단한 것이었다.
누군가는 리에주 요새에 의존해 이룩한 성과라고 폄훼할지 몰라도 징병제도 시행하지 않는 군대에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벨기에 병사들이 무려 10일이라는 시간 동안 유럽 최고의 육군이라 불리는 독일군을 막아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나폴레옹 시대의 기동전과 대규모 회전이라는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시대의 군대는 요새 뒤에서 화망을 구성한 채로 숨어 있는 적들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돌격, 앞으로! 놈들의 방어선을 돌파하라!”
“와아아악!”
독일 제국에 부여된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해 자진해서 입대한 젊은이들은 공세 첫날만 하더라도 자신들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라는 외침에 들끓는 혈기에서 우러나오는 함성을 내지르며 돌진해 나갔다.
알베르트는 고향으로 돌아가면 참전용사로서의 존중과 존경을 받을 자신을 상상하며 그동안 남몰래 짝사랑해 왔던 옆집 안나에게 고백할 거라 다짐하고 있었다.
그런 알베르트는 갑자기 눈앞에서 땅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며 의아했다.
그리고 그것이 그가 요새로부터 날아온 탄환으로 삶을 마감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리에주 요새로 향하는 언덕은 곧, 수많은 알베르트들로 덮이기 시작했다.
총알을 물 쓰듯 사용한다는 말 대신 사람을 총알 쓰듯 소모한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쌓인 알베르트들은 전장에 있던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요새까지 돌격하는 데 있어 별다른 엄폐물이 없어 고생하던 독일군들에게 이런 알베르트들은 ‘자연 엄폐물’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충분했다.
물론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살아 숨 쉬던 사람을 엄폐물로 사용한다는 것이 독일군의 사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긴 했어도 뭐, 당장 죽을 판국에서 인간의 존엄성은 생각보다 쉽게 무시되곤 했으니까.
“On ne passé pas!(놈들을 통과시키지 마라!)”
“이젠 하도 들어서 외울 지경이군. 개자식들 같으니라고.”
방금 전까지 전우였던 ‘엄폐물’ 뒤에서 몸을 숨기고 있는 독일군들은 시끄러운 전장 속에서도 들려오는 벨기에 측의 함성을 들으며 이를 갈았다.
분명 상부에선 ‘벨기에라는 나라는 마치 무너지기 직전의 집과 같아서 문을 발로 차면서 들어가기만 해도 무너져 내릴 것’이라 했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그들은 거짓말쟁이인 모양이었다.
분명 벨기에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언어는 네덜란드 어였음에도 요새 벽을 뛰어다니는 장교들이나 병사들은 프랑스어로 외치고 있었다.
그들이 익숙한 네덜란드 어 대신 어색한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독일군에 대한 도발의 의미였고 다른 하나는 요새가 함락되기 전 도착할 것이라 믿고 있는 프랑스에 대한 믿음이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독일군의 공세를 막아내고 있었지만, 요새 내에서도 차츰 불안감이라는 감정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알베르의 존재와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노장 르망 덕분에 병사들이 사기는 여전히 높았지만, 리에주의 주변에 있는 소 요새들이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은 희소식이 아닌 게 분명했으니까.
“이대로라면 놈들이 기차역을 장악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요새 내부에 있는 회의실에서는 연일 독일군의 달라진 움직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회의의 마지막은 언제나 한 가지 결론으로 마무리되었다.
“프랑스 측의 지원군만 제때 도착해 준다면……!”
독일군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꿈쩍도 하지 않는 리에주 요새에 대한 공세 집중 대신 그들의 본래 목표인 기차역이 있는 리에주 도심 지역과 요새의 후방과 측면을 보호해 주는 소 요새들만 함락시킨다면 전략적 목표는 이룰 수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후방과의 연결이 끊어진다면 리에주는 더 이상 요새로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 언젠가 말라비틀어질 감옥으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될 테니까.
“이게 무슨 추태인가! 아직도 돌파를 하지 못했다니!”
그러나 여전히 독일 측의 몸은 달아오르다 못해 불타오를 지경이었다. 분명히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미 리에주 요새를 확보하고도 남았어야 하는 시점이었음에도 그들의 위치는 여전히 이곳, 리에주였으니까.
이미 프랑스가 벨기에가 침공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총동원령을 선포한 지 일주일이 넘은 지금, 독일군의 수뇌부는 초조함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미 러시아라는 강적을 뒤에 두고 있는 그들로서는 일종의 타임어택을 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게이머들이 하는 타임어택은 재도전의 기회가 얼마든지 존재하지만, 이들이 하고 있는 타임어택은 재도전의 기회가 없다는 것이었지만.
앞서 말했듯 독일군도 멍청이들의 집단이 아니었기에 별다른 타격을 줄 수 없는 리에주 요새에 대한 공격을 이어나가는 것 대신, 리에주 요새의 주변에 위치한 소 요새들을 공략하는 게 더 확실하게 리에주 도심 지역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이 계속해서 공세를 이어나가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리에주 요새의 상징성과 그 안에 있는 수뇌부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리에주가 항복한다면 소 요새들을 일일이 공격해 점령하는 과정은 거치지 않아도 될 게 분명했으니까.
이런 계산을 마친 독일군은 다음과 같은 정중한 어조가 담긴 항복을 권유하는 서신을 전령의 손에 들려 요새 내부로 들여보냈다.
서신의 내용은 아직까지 귀족적인 풍습이 남아 있는 시대상을 반영해 품격 있는 문체와 정중하게 돌려 말하는 문장들로 인해 편지지 3장 분량의 길이를 자랑하고 있었지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하니 이만 항복하길 바란다. 지금 항복한다면 귀관들의 용기에 대한 찬사와 존중을 담아 정중한 대우를 할 것을 약속한다.”
그에 대한 벨기에 측의 답장은 간결하면서도 자신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었다.
단어 1개만이 적혀 있었으니까.
“Merde.(X까.)”
나폴레옹의 친위대가 그의 마지막 전투이던 워털루 전투에서 항복을 종용받을 때 했던 대답의 재림이었다.
다만 이런 식의 당당한 발언과는 달리 리에주 요새의 수뇌부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수도로부터 프랑스 측의 지원군은 아무리 빨라도 한 달은 더 기다려야 할 것이라는 전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리에주 요새가 그때까지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이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었다.
요새 자체는 함락되지 않을지 몰라도 독일군이 도심 지역을 장악한다면 전략적으로 패배하는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알베르를 제외한 요새 수뇌부의 생각은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
리에주 지역을 지켜내지 못할 것이 분명해지는 지금, 적어도 알베르만큼은 여기를 빠져나가게 만들어야 한다고.
그가 이 계획을 받아들일지 아닐지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 * *
영국의 수도인 런던을 서에서 동으로 관통해 흐르는 템스강은 불결함의 상징과도 같았다.
과거에야 대표적인 연어 어장이라 꼽힐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곳이었지만, 산업혁명 시기를 거치면서 이제 이곳은 강물이라고 하기엔 뭔가 걸쭉하고 악취가 나는 액체가 흐르는 장소로 변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템스강의 주변에서는 피치 못해 지나가야 하는 사람들 외의 다른 목적을 지닌 사람들을 찾기는 힘들었다.
현대인이라면 흔히 떠올리곤 하는 강가에서의 조깅이나 산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여유가 있는 사람도 드물었지만, 그런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악취를 맡으며 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템스강에 손님들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독일이 벨기에를 침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이전 런던 코뮌 이후로 차츰 회복하고 있던 런던의 주식시장은 바닥이 없다는 듯 폭락하고 있었다.
그리고 런던의 흉물이라 할 수 있는 장소를 굳이 찾아온 이들은 바닥이 없는 주식시장 대신 바닥은 있는 템스강을 선택한 모양이었다.
전 재산이 날아간 것에 비관하며 주식투자자들이 자신들 삶의 바닥을 템스강의 바닥으로 정하고 있던 그때 웨스트민스터 또한 이들과 비슷한 분위기에 빠져 있었다.
“독일군이 연일 리에주 지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해 나가고 있는데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구경만 하고 있자는 겁니까? 만약 그런다면 앞으로 그 어떤 나라가 우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건 이익과 손해를 따지기 이전의 마땅히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의회에 입성한 젊은 초선의원의 외침은 공허했다.
사실 영국 정치계에서는 이미 지금 유럽 대륙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관련된 대응 방침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이후라고 할 수 있었다.
독일군이 벨기에 국경을 넘은 지 벌써 열흘이나 지났음에도 영국이 한 일이라곤 외무부를 통해 사안을 매우 엄중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요식행위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 초선의원이 하고 있는 말은 이미 영국 의회에서 잊힌 거나 다름없는 글래드스턴의 도덕 정치의 편린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과거 대영제국이 다른 열강들에 비해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 있던 시기에는 귀를 기울이고 그들이 말하는 것에 박수를 쳐주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불의의 일격을 맞고 서서히 쇠퇴해 가고 있는 지금은 현실도 모르는 철부지라는 말을 듣기에 딱 좋은 이상주의자들의 외침이었다.
사실 지금 발언을 하고 있는 초선의원은 그 누구보다 이상주의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지만, 노쇠한 의원들은 그가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그다지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얘기에 별다른 반응도 보이지 않는 의원들을 바라보며 초선의원은 다시금 발언을 이어나가려 했지만, 그의 행동은 의장에 의해 저지되었다.
발언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종료되었다는 제지를 받고 다시금 본인의 자리에 앉은 그는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장내를 둘러보았다.
도대체 언제부터 대영제국이 이리도 무기력하고 약해졌단 말인가?
그가 생각하기에 위대하지 않은 대영제국은 더 이상 대영제국이 아니었다.
이윽고 절차상 행위에 지나지 않는 몇몇 의원들의 발언이 끝난 이후, 이번 일과 관련해 독일제국이 벨기에 영토에서 철수하지 않는다면 군사적 행위도 불사한다는 내용이 담긴 결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루어지려 하고 있었다.
의장이 투표를 시작하겠다는 말을 하려던 순간 벌어진 이 일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결의안은 십중팔구 부결되었을 것이다.
현재 대영제국의 섭정직을 맡고 있는 조지가 자신의 호위병들과 함께 회의장으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현재 자리에 계시지 않는 엘리자베스 여왕 폐하와 나의 아버지이신 에드워드 황태자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묻겠소. 내가 이 자리에서 발언을 해도 괜찮겠소?”
본래 영국의 국왕에게 부여된 권력은 명목상의 권한만이 대부분이었지만, 섭정을 역임하고 있는 조지는 지금까지의 그 어떤 국왕과 비교하더라도 강력하다고 할 수 있는 권력을 손에 쥐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의회가 이러한 상황을 용납하지 않았겠지만, 런던 코뮌 이후 껍데기만 남은 거나 다름없는 영국 의회는 그러한 조지를 견제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의장이 허락한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에게서 등을 돌린 조지는 다음과 같은 말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의 모습이야말로 현재 영국 내 정치 권력이 누구에게 집중되어 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