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2)
처음으로 마주한 스톨리핀에 대한 첫인상은 단순한 행정관료라는 느낌보다는 한 자루의 잘 벼려진 칼을 보는 듯했다. 그를 직접 보고 싶다는 얘기를 한 후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걸려서 만난 스톨리핀은 내가 역사책에서 본 사진보다는 젊어 보였다.
전공서적에 실려있던 사진과는 다른 머리 부분에서 나는 그에게 앞으로 닥칠 시련을 예상할 수 있었다.
코브노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먼 길을 달려온 그였지만 지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보고서가 지방정부에서부터 중앙행정부를 거쳐 내 책상까지 올라온 데다가 내가 그를 이곳까지 부른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 듯한 그는 자신감에 차 보였다.
올해로 30살밖에 되지 않은 젊은 관료였지만 현재 차기 재무부 장관으로 촉망받는 세르게이 비테와 러시아 제국의 지배자인 나를 앞에 두고도 그다지 주눅 들지 않은 모습은 스톨리핀이 어떤 사람인지를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그래, 자네가 이 문서를 작성한 사람이로군. 어떤 근거를 토대로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하게 됐는지 말해볼 수 있겠나?”
나는 그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스톨리핀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40대에 러시아 제국의 총리라는 자리에 오른 그와 현재 30살인 그의 차이를 알고 싶었다.
스톨리핀은 공손하지만 비굴하지 않게 그리고 조용하지만, 듣는 이가 귀를 기울일 만큼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올해도 기근이 닥쳐오기 이전에 작년 겨울부터 나타났던 징조와 비슷한 자연 현상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게다가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에 기근의 확산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라니?”
“전하도 알고 계시다시피 과거 알렉산드르 2세 폐하께서 시행하신 개혁으로 인해 농민들은 농노라는 사슬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경작하고 소유할 수 있는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허나 거기에는 큰 문제점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점 말입니다.”
시작부터 세게 나오는데. 30살에 불과한 말단에 가까운 관료가 이전이라고는 하지만 황제가 시행한 정책에 문제점이 있다고 돌직구를 날리는 모습을 옆에서 목격한 비테는 얼굴색이 달라졌다. 그러면서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는데 나는 걱정하지 말라는 의미로 그에게 괜찮다는 눈빛을 보냈다.
아니, 그런데 왜 비테의 얼굴이 더 창백해진 거지? 나는 의아했지만 스톨리핀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내 조부께서 시행하신 정책에 대한 평가를 이 자리에서 듣게 될 줄은 몰랐지만 흥미롭군. 자네가 생각하는 바를 말해주면 고맙겠네.”
“예, 전하. 분명 알렉산드르 2세 폐하께서 시행하신 정책은 혁신적이며 말 그대로 자비로운 어버이 차르라는 명칭에 걸맞는 일이었으나 실무적인 면에서는 행정적인 한계로 인해 부작용들이 나타났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우리 러시아의 농촌공동체인 미르에서 발생한 문제점들이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서유럽이 자영농을 육성하고 있는 지금도 저희는 공동 농업을 실시하고 있으니까요.”
스톨리핀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리 자신감에 넘치는 그로서도 아직까지 제위를 양위 받진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러시아 제국을 지배하는 나의 앞에서 그의 조부의 가장 큰 업적이라 평가받는 일에 대한 비판은 부담이 가는 듯했다.
“평균적으로 농민 한 가정을 유지하는데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땅의 넓이는 10~14헥타르였지만 그들이 실질적으로 받게 된 것은 2~3헥타르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땅을 받게 되는 대신 높은 상환금을 부담해야 했으며 매달 지불 해야 하는 이자도 내기 버거울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은 당시 제국 정부에서 자신들이 땅을 매입하는데 사용한 비용을 과대산정함으로서 재정적 부담을 농민들에게 미룬 결과였습니다, 전하.”
이제 스톨리핀 옆에 서 있는 비테의 얼굴색은 사람의 것이라고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색이었다. 하긴 자신이 그를 데려올 때 내 앞에서 주의할 점을 말해줬을 텐데도 황제 앞에서 ‘너희 할아버지가 시행한 정책이 사실은 농민들에게 사기 친 거나 다름없다.’라고 말하는 후배를 바라보는 심정이 어떨지는 짐작이 갔다.
다만 그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실제로 제국 정부에서 땅을 매입한 것보다 2배 이상의 비용들을 농민들에게 청구한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게다가 공동 농업이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결과로 증명된 바였다.
아, 그러니까 19세기인 지금 말고 내가 살고 있던 21세기 말이다.
나는 얼굴이 푸르죽죽해지다 못해 창백해져 가는 비테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기로 했다.
“철도국장은 이만 나가봐도 좋네. 나는 이 친구와 좀 더 심도깊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군.”
“…알겠습니다, 전하. 도중에 저에게 물어볼 것이나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불러주십시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겠습니다.”
비테가 집무실 밖으로 나간 뒤 홀로 남은 스톨리핀은 눈동자를 굴리며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가 자신과 1대1로 면담하면서 방금 본인이 한 무례할 정도의 언사에 대한 추궁을 하려한다고 착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분위기를 환기도 할 겸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러면 방청객도 없어졌겠다, 아까보다 더 진솔한 대답을 부탁하겠네.”
어찌 된 일인지 스톨리핀도 방금 방을 나간 비테와 비슷한 표정을 짓게 되었지만.
—
스톨리핀과의 대화는 매우 유익했다.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한 지적이나 아니면 내가 작년부터 시행했던 정책들에 대한 보완점도 들을 수 있는 매우 영양가 있는 시간이었다.
대화를 마치고 비테를 다시 부른 나는 스톨리핀을 그의 보좌역으로 임명한다는 명령을 내린 후 직전까지 나눴던 대화를 되짚어봤다.
‘그렇다면 자네의 말은 내가 내렸던 곡물 수출 금지령이 너무 극단적이었단 말인가?’
‘아닙니다, 전하. 그 조치는 필수적이었으나 실무진들이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너무 과격했습니다. 분명 지엄한 명령을 어기고 밀무역을 하는 자들에 대한 처벌은 필요한 것이었으나 오흐라나를 동원해 상인들을 탄압한 것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 할 수 있는 저희 러시아 제국의 상공업을 위축시킬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아직까지 부르주아라는 계급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러시아 제국이었기에 부담 없이 시행했던 명령이었지만, 스톨리핀의 시각으로 보았을 땐 빈약한 상공계층에게 차르가 자신들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심어줄 수 있는 정책이라 여겨질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건 채찍보다는 당근이라는 말도.
이외에도 알렉산드르 2세가 시행했던 개혁의 미흡한 부분이나 농지개혁을 비롯한 농촌에 대한 정책들에 대해서 스톨리핀이 그리고 있는 청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현재 완숙한 면모를 가졌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젊고 혈기가 넘치기에 낼 수 있는 정책들도 존재했다.
‘그대는 마치 저 유명한 ‘붉은 관료¹’들과 유사한 정책적 논조를 가지고 있군.’
‘전하께서 현재 시행하시는 정책들을 보자면 앞으로는 그들과 비슷한 관료들이 우대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생각에 너무 깊게 잠겨있었는지 비테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나를 부르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전하, 그렇다면 방금 전하와 대화한 보안관이 제 보좌관이 된다는 말씀인지요.”
“맞습니다, 국장. 앞으로 그에게 많은 가르침을 부탁합니다. 중요한 인재이니까요.”
내가 한 말을 들은 비테는 걱정스러운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내가 자신에게 문제아를 떠넘겼다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제가 수행하는 업무에 대한 실습도 포함되는 것인지요?”
정정해야겠다. 비테는 자신이 맡고있는 업무를 스톨리핀과 같이 수행해도 되는지가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교육은 교육대로 자신의 업무는 업무대로 한다면 일이 2배로 늘어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물론입니다, 철도국장. 조만간 영전할 수도 있는데 국장의 일을 내가 2배로 늘릴 리가 있겠습니까. 실전은 언제나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톨리핀에 관한 것은 국장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를 어떻게 교육할지에 대한 방침은 그대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하세요.”
내 대답을 들은 비테는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 같이 퇴근을 하지 못하고 좁은 집무실에서 서류와 함께 밤을 새는 늘어난다고 해도 기쁠 텐데 자신의 부사수가 생긴 것과 다름없었으니까.
“전하께서 만족하실 만한 인재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맡겨만 주십시오.”
비테의 얼굴에 걸린 미소는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미소였다.
“물론입니다, 국장에게 거는 내 기대가 크다는 것만 알아두도록 하세요.”
물론 내 얼굴에 걸린 미소도 점점 짙어졌지만.
—‘아무래도 너무 과감했던 것이 아닐까.’
황태자와의 면담을 마치고 비테를 불러오라는 명령을 받고 집무실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스톨리핀은 자신의 방금 전 행동을 후회하고 있었다.
‘전하께서 조금 관심을 보이신다고 해서 자제하지 못한 내 잘못이겠지. 다시 코브노로 돌아가서 보안관이나 하게 되겠군. 어쩌면 황실모독에 대한 책임을 져야할 수도…’
그가 자신의 앞날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을 이어갈 때 비테가 집무실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스톨리핀의 예상대로라면 무례한 자신에 대한 질책을 국장에게 했을 것이었으므로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마치 자유주의자들을 보는 귀족과도 같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국장의 얼굴은 매우 밝아 보였다. 거기에 그가 자신을 바라보며 내뱉은 말은 스톨리핀의 예상과는 정 반대의 말이었다.
“오늘부터 자네는 내 보좌관 역할을 하게 될 걸세.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일하게 됐다는 말이지. 자네도 이제 러시아 제국의 심장부에서 이 나라를 지탱하는 일원 중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하니 자부심을 가지게나.”
“그 말씀은…”
“전하께서 자네와의 면담이 매우 감명 깊었다고 내게 말씀하셨네. 게다가 자네를 앞으로 중요하게 쓸 거라는 말씀까지 남기셨으니 앞날은 탄탄대로겠구만. 축하하네.”
자신의 말을 듣고 얼굴이 환해지는 스톨리핀을 보는 비테의 눈빛에는 연민이 담겨져 있었지만, 하늘을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가진 미래의 총리는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앞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국장님! 전하께서 보내주신 기대에 부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래…당연히 그래야지…”
방금 전 만 하더라도 자신의 일을 나눠서 할 부하를 얻었다는 생각에 싱글벙글한 비테였지만, 막상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앞날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스톨리핀을 보자니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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