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26)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226화
그로즈만은 지금이 그다지 길다고는 할 수 없는, 자신의 인생 중에서 가장 운이 좋으면서도 이 이상 나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그는 오늘날까지 본인이 제법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끓어오르는 혈기에 몸을 맡긴 채 친구들과 함께 모병소의 문을 두드렸을 때, 그로즈만을 비롯한 몇몇만이 입대를 허가받을 수 있었다.
이 시대에 군대에 들어간다는 것은 곧 이성 관계에 있어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말과 같았다.
빵집의 둘째 딸인 앙케를 사이에 둔 애정 싸움에서도 그로즈만은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녀를 두고 다투던 경쟁자는 입대를 하지 못한 패배자라는 점이 그가 생각하기에는 가장 큰 승리의 원인이었다.
거기에 다른 동기들이 흉흉한 소문이 떠도는-군 내에서는 우리가 연전연승 중이라고 하지만- 서부전선으로 발령이 날 때 그로즈만은 이곳 동부전선으로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기들로부터 오던 편지의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동안 그는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소규모 포격이나 전투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일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자신이 부여받은 보직인 기관총 부사수로서의 임무를 이번 전쟁이 끝날 때까지 수행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장밋빛 전망까지 할 정도였다.
“이 새끼가 정신 못 차려? 탄! 탄통 들고 오라고!”
“예, 옙!”
자신의 사수인 요한으로부터 불호령을 동반한 따귀를 한 대 맞은 뒤 변변찮은 대답과 함께 달려나가는 그로즈만은 그래도 본인이 여전히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비록 사수라는 작자가 서부전선에서 그다지 좋지 않은 이유로 전출을 온 개망나니라고는 해도 그가 자신을 데리고 재빠르게 대피하지 않았다면 그로즈만도 다른 이들처럼 한 줌의 핏물로 화해 땅을 적시고 있었을 테니까.
거기에 툭하면 짜증과 폭력을 휘두르는 최악의 사수였지만, 지금은 그저 든든하기만 했다.
자신을 향한 폭언과 욕설은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 빠르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여겨졌으며 툭하면 날아오는 주먹과 발길질은 실전을 무수히 겪은 베테랑의 거친 행동으로 포장되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탄약 장전 똑바로 해라. 기관총만 멀쩡하면 저 새끼들이 암만 날고 기어봐야 여길 절대로 통과할 수 없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로즈만이 사수의 말에 다시 한번 든든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요한도 현재 이 상황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분명 이전에 교육받기로는 프랑스군보다도 뒤떨어진 것이 러시아군이었는데, 방금 경험한 포격은 그의 기억이 잘못되었거나 교육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걸 의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두려움보다는 분노와 허탈감을 더 크게 느끼고 있었다.
본래 부대에서의 따돌림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벨기에에서 얻은 귀중품에 월급의 일부까지 상납하면서 동부전선으로 전출을 왔건만, 요한이 도착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었으니까.
‘개 같은, 엿 같은, 빌어 처먹을…….’
그래도 맥심 기관총을 만지는 그의 손길은 거침이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정확한 포격에 놀라긴 했어도 방금 자신이 말한 대로 이 물건만 제대로 사용한다면 자신과 그로즈만 둘만으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다는 걸 믿고 있었다.
이건 그 자신이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전투의 사선을 넘어오면서 깨달은 전쟁의 진리 중 하나였다.
아무리 용감하고 훌륭한 병사라 할지라도 기관총의 총구 앞에선 한낱 고깃덩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요한은 강제로 알게 된 것이다.
거기에 점차 방어선의 진지들을 다시금 점령하기 시작하는 아군의 움직임은 신병과 베테랑이 다시금 마음을 다잡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쿠웅…… 쿵…….
이윽고 포탄이 자신의 짧은 생애를 땅과의 조우로 마무리하는 소리가 잦아지자 전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함에 휩싸였다.
방금까지의 격렬한 포격으로 인한 흔적들이 남아있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준비해라.”
그로즈만은 자신의 귓가로 들려오는 요한의 말을 듣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렇게 긴장되는 건 입영 전날 총각 딱지를 떼던 그 순간 이후로 처음인 것 같았다.
“아까 말한 거 명심해. 너만 제대로 일하면 저 새끼들이 우리가 서 있는 이 땅까지 올 수도 없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요한은 신병의 긴장감이 역력한 목소리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포연으로 흐릿한 대기와 가늠자 너머로 보이기 시작하는 희뿌연 물체들의 형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탄약을 확보하긴 했어도 지금부터 사격하는 건 득보다 실이 많을 게 뻔했다.
놈들이 조금 더 다가오면, 그때 저 건방진 농노들을 땅에 눕혀주는…….
쿠르르릉! 쿠르릉!
가늠자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던 요한의 귀에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한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러시아 놈들이 무식하게도 아군 머리 위로 포탄이 떨어지는 걸 감안하면서까지 포탄 사격을 다시 실시한 줄 알았지만, 그의 군인으로서의 경험이 이 굉음은 포격 소리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거기에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하는 땅의 진동은 그가 처음으로 경험하는 현상이었다.
처음에는 지나친 긴장으로 인해 어지러움을 느끼는 게 아닌가 싶었지만, 조그마한 흙 알갱이들이 떨리는 걸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땅이 실제로 흔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요, 요한 상병님. 저, 저게 대체 뭡니까……?”
기관총을 움켜쥐고 있는 그의 옆에서 신병이 조심스럽게 물어보고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요한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의 진지 앞으로 태어나서 처음 보는 물체가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지금의 진동과 소음은 저 물건이 원인인 모양이었다.
저게 가까워질수록 굉음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있었으니까.
실제로는 사람이 걷는 정도의 속력에 불과했지만, 그로즈만과 요한에게 의문의 물체는 마치 해일과도 같은 속력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저게 뭔지는 정확하게 몰라도 저쪽에서 오고 있는 걸 보면 적군의 물건인 게 분명했다.
거기에 저 물건 뒤로 보병들이 몸을 숨긴 채 다가오고 있는 것까지 확인하게 되자 요한은 자기도 모르게 방아쇠에 걸려있는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투타타타타타!
독일군 진영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격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저마다 지금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물건이 뭔진 몰라도 이 이상 접근하도록 두는 건 그다지 좋은 결과를 불러오지 않을 거란 본능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
수냉식 기관총인 맥심은 자신의 성능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그로즈만의 서포트에 힘입어 탄통 하나에 들어있는 탄약을 순식간에 다 소모했음에도 총열이 휘어지거나 하는 현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철컥!
“재장전!”
“옙!”
이 정도의 화력이라면 러시아 놈들이 준비한 저 요상한 물건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완료했습니다!”
“좋아 다시 사격한…… 세상에.”
쿠르르르르.
재장전 작업을 끝마치고 다시금 정면을 바라본 요한은 할 말을 잃었다.
자신들의 앞에 펼쳐진 광경은 방금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달라진 건 한 가지 있었다.
아까보다 적이 더 가까이 다가온 상태였으니까.
“요한 상병님?”
옆에서 자신을 부르는 신병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요한은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두 눈에 들어오고 있는 풍경은 오늘까지 그가 쌓아왔던 상식과는 반대되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방금까지 기관총탄을 쏟아부었건만 저건 도대체 무엇이길래 아무런 손상도 없이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다는 말인가?
사실 그가 생각한 것처럼 러시아 측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은 건 아니었다.
트랙터를 급하게 개조한 임시 전차 중에서는 기관총의 화력을 버티지 못하고 기능 고장을 일으키거나, 장갑판을 뚫고 들어온 총탄들로 인해 승무원이 몰살당한 채 제자리에 멈춰 서 있는 것들도 있었다.
거기에 기관총으로 인한 기능 고장이 아니더라도 자체적인 엔진 고장이나 궤도 이상으로 인해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한 채 가만히 서 있는 전차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
공업 능력의 부족함으로 인한 현상이었다.
냉정을 찾고 전장을 천천히 살펴본다면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었으며 전차가 무적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지만, 요한과 그로즈만을 비롯한 대다수의 독일 병사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도,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저게 대체 뭐란 말입니까!”
상대적으로 더 심약한 성격의 그로즈만이 적전 도주를 입에 담았지만, 이를 질책해야 할 요한은 평상시처럼 신병의 뺨을 올려붙이기보다는 자신도 모르게 그 말에 내심 동조하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후방으로 가서 행동 지침을 하달받아야…….’
쾅!
가장 정면에서 다가오고 있던 전차가 폭발음과 함께 불길에 휩싸이지 않았다면 요한은 방금 생각한 핑계를 대며 그로즈만과 함께 도망쳤을 것이다.
방금 전의 포격에서 용케 살아남은 독일군 측 야포가 조준 사격을 한 결과였다.
그리고 이 광경은 독일군에게 전차가 무적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아직까지 야포까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장갑판을 만드는 건 러시아 제국에 있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뭐 하고 있는 거야! 계속 사격해야 하니 탄약 더 가져와!”
“옙!”
눈앞에서 전차가 터져 나가는 걸 확인한 요한은 다시 아까의 태도를 되찾았다.
저 물체의 정확한 정체는 여전히 알지 못했지만, 포병으로 깨부술 수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더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아까의 충격에서 벗어나 다시금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 독일군이었지만, 그들이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분명 방금 아군의 야포가 전차를 파괴했음에도 추가적인 사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걸 말이다.
적의 공격 이전에 실시된 대대적인 포격에서 아무리 아군의 포병대가 피해를 입었다고는 해도 지나칠 정도로 잠잠하다는 것도 이상한 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은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엿본 독일군들에게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 아까까지 화력을 쏟아내던 기관총 진지들의 일부가 침묵하고 있었지만, 이를 전달할 전령들마저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알고 있지 못했지만, 이미 독일군의 참호 내부로 샤보슈니코프가 이끄는 특임 소대를 비롯해 이들과 유사한 임무와 장비로 무장한 러시아군이 진입한 이후였기 때문이다.
통신선도 두절 된 데다 전령들마저도 하나둘 쓰러지기 시작한 독일군은 이제 전투가 아닌 사냥을 대비해야 할지도 몰랐다.
아무리 임무형 지휘체계를 통해 방어를 실행한다 하더라도 허리 역할인 부사관들마저 사라진다면 경험 없는 신병이 대다수인 독일군은 순식간에 무너져내릴 게 분명했다.
“이 망할 놈은 탄약을 어디서 만들어오는 건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돌아오지 않는 그로즈만을 향한 불만을 허공에 내뱉은 요한의 등 뒤로 누군가 달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걸쭉한 욕설 한 사발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채 뒤를 돌아본 그를 맞이한 건, 신병이 아닌 산탄총을 들고 있는 의문의 사나이였지만.
“넌 뭐야 이 새…….”
탕!
총성과 전차의 기동 소음으로 뒤덮인 전장에 산탄총 특유의 총소리가 울려 퍼졌다.
확실한 건 산탄총이 울부짖을 때마다 기관총의 소음이 하나씩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