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5)
총독과의 면담을 마친 후 오늘 처리해야 할 문서들을 마무리한 나는 식사를 간단히 하기로 했다.
‘오늘도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먹는 것이 낫겠군.’
몇 안 되는 먹을만한 영국 요리라고 칭해지는 샌드위치는 공무에 시달리는 이들을 위해 만들어진듯한 음식이었다.
추운 기후로 인해 음식이 식는 것을 방지하고자 순서에 맞춰서 가져오는 러시아식 식사는 기본 1시간이 넘어갔기에 하루하루가 바쁜 나로서는 이만한 음식이 없기도 했다.
‘실제로도 바쁜 업무에 시달리던 샌드위치 백작이 만들었다고도 하니까.’
원래는 도박을 좋아하던 백작이 트럼프를 하면서 식사를 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연구결과 그것은 반대파들의 모함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비록 전시에는 무능한 양반이었지만 평시에는 업무 능력이 탁월했다고 하니 시대를 잘못 만난 인물이지.’
그리고 내가 샌드위치로 식사를 자주 하는 것은 간편하다는 이유도 존재했지만, 러시아의 황태자인 내가 영국 음식을 자주 즐겨 먹을 정도로 친영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비록 효과는 미미할지 몰라도 아직까지 대다수의 국가에 왕족이 남아있고 신분제가 지켜지는 19세기라는 시대 특성상 고귀한 피들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심이 쏠리기 마련이었으니까.
‘수십 년간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온 나라의 황태자가 자신들의 나라의 음식을 즐겨 먹는다는 신문의 헤드라인처럼 자극적인 것도 드물겠지.’
아직 더 선과 같은 타블로이드 지의 대명사라 할 신문은 없었지만 일반적인 신문사라 할지라도 흥미가 갈 주제인 것은 분명했다.서류를 옆으로 치워놓고 시종이 가져온 소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를 씹으며 나는 어떤 식으로 인민들과 귀족들에게 내가 행할 일들을 납득 시킬지 고민했다.
‘현재까지는 확장주의적인 행보를 멈추겠다고 공론화하지는 않았지만, 어차피 시간문제다.’
황궁에는 귀가 많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도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에 영토 확장과 관련된 선택지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스테로이드를 잔뜩 맞고 덩치를 키운 것이나 다름없는 러시아가 지금과 같은 행보를 이어나간다면 어느순간 한계에 부딪힌다는 미래가 뻔했으니까.
‘다만 그러자면 지금까지 들어간 피와 돈에 대해 태도를 바꾸는 것을 납득을 시켜야 한다. 1차세계대전 이후 독일국민들이 그러했듯 아직까지 살만한데 왜 노선을 바꾸냐는 목소리는 반드시 나올테니까.’
‘매몰비용’이라는 경제학 용어가 존재할 정도로 이미 들어간 비용과 시간에 대한 사람들의 흔히 말하는 ‘본전’에 대한 집착은 상상을 초월했다.
순무의 겨울이라 불릴 정도로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독일 혁명을 일으킬 정도로 자신들이 이미 전쟁에서 패배했다는 것을 독일국민도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유대인 배후 중상설을 신봉하고 나치에 열렬한 지지를 보낼 만큼 대중들의 인식은 왜곡되기 쉬웠다.
‘게다가 지도에 색깔을 얼마나 칠했느냐가 국력의 척도로 보이는 지금은 더더욱 그렇겠지. 심지어 러시아처럼 ‘영토’라는 존재에 욕심이 넘쳐나는 국가의 인민들이라면.’
나는 개혁정책을 진행함과 동시에 극우 진영과 극좌 진영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이 뻔했다. 극우 진영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긴다는 이유로 그리고 극좌 진영은 이대로가면 전제군주정이 유지된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런 공격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 주변을 지켜줄 세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지금은 러시아의 귀족들이 인민들을 경시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촉발된 자유주의 운동에 기겁한 유럽 지도자들이 빈 체제를 만들 정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당장 우리 러시아만 하더라도 인민들에 의해서 나라가 뒤집혔으니까.’
알렉산드르 2세가 개혁을 진행할 당시 붉은 관료라고 칭해지는 친위집단에 가까운 세력을 구성했듯이 나도 할아버지가 행한 일을 본받을 필요가 있었다.
‘다만 나는 내 친위세력을 만드는 것에 있어서 관료집단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현시점에서 가장 쉽게 인민들의 지지를 받는 길은 농촌 개혁과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과 같은 개혁을 실행하는 것이었다.
‘이 중에 농촌 개혁은 비테와 스톨리핀이 열심히 밑그림을 그리고 있겠지.’
실제 역사에서 스톨리핀이 행한 개혁이 사실은 비테가 이미 시행하려다 실패한 정책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고 조금만 덧붙여서 실행했다는 평가도 존재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을 모두 활용하고 있는 나로서는 내가 굳이 섣부르게 손을 대지 않더라도 마치 게임에서 업그레이드 완료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기다리기만 해도 농촌과 관련된 개혁안을 받아볼 수 있으리라 생각됐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산업환경 개선과 같은 노동자들과 관련된 문제인데…’
마음 같아서는 공업 분야에 대한 업무도 그들에게 위임하고 싶었지만 내 마음속에 있는 어느 부분이 그런 짓은 사탄도 울고 갈 일이라며 나를 말리고 있었다.
‘비슈넷그라스키는 화폐개혁을 하기 위한 사전작업을 하느라 바쁘고 분게는 스톨리핀과 농촌 관련 정책을 수립하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이고 비테는 철도 사업과 농촌 양쪽에 모두 신경을 쓰고 있는 상태이니…’
물론 사전에 시행되었던 로리스-멜리코프 법과 같은 개혁안들이 존재하는 만큼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현재 상황에 맞는 수정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존재가 필요했다.
‘안 그래도 빈약한 러시아의 자본가 계층에서 조언가를 구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지. 게다가 그들이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노동자들을 착취하는데 열중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말이야. 잠깐…그러고보니?’
그 때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존재했다. 대규모 기업을 이끄는 만큼 산업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면서 노동자들에게 적대적이지도 않고 게다가 보수적인 귀족 세력과의 커넥션도 미약한 사람말이다.
‘지금 아제르바이잔에서 정유회사인 브라노벨을 설립하고 경영하고 있는 노벨 형제야말로 내가 찾던 인물들이잖아?’
노벨상을 만들고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한 것으로 유명한 알프레드 노벨에게는 두 명의 형이 존재했다. 발명가인 아버지를 닮아 각자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소질이 있던 형제는 자신들의 능력을 펼쳐나갔는데 그 중 루드비히 노벨과 로버트 노벨은 유정을 개발하고 시추하는 것에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휴머니스트로 유명한 이들인 만큼 현재 러시아에서 가장 선진적인 노동환경을 만들고 유지하고 있는 그들에게 노동자들과 관련된 개혁안에 조언을 구한다고 한다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일 게 분명하다. 게다가 사업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준다고 하면 버선발로 이곳까지 올 게 확실하지.’
현재 미국의 스탠더드 오일과 경쟁을 하며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만큼 나라는 든든한 후원자의 등장은 그들로서도 뜻하지 않은 행운일 것이다.
이미 1888년 아제르바이잔 바쿠 지역에서 생산되는 원유의 양이 미국의 생산량을 앞지른 만큼 그들을 휘어잡는다면 나로서도 소위 말하는 오일머니를 짭짤하게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 수익금을 미국과 같은 외국에 존재하는 은행 말고 이곳 러시아에 남겨놔야겠지만.’
실제 역사에서도 브라노벨 덕분에 니콜라이 2세가 많은 돈을 벌어들였지만, 그 수익금을 미국과 같은 멀리 떨어진 외국에 위치한 대형은행들에 입금하는 바람에 정작 필요할 때 꺼내쓰는 것에 대해서 어려움을 겪었다. 게다가 러시아 혁명 이후로는 주인 잃은 돈으로 전락했고.
‘로스차일드 은행의 간섭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한다면 그들로서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겠지.’
노벨 형제에게 경영권의 자율성을 보장해주는 대신 한 명은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남아 조언가 역할을 담당하며 벌어들이는 수익금의 일부를 러시아 중앙 은행에 예치시키는 조건을 제시한다면 앞으로 금본위제를 토대로 한 화폐개혁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돈과 인재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군.’
나는 계획을 정리하며 노벨 형제에게 보낼 전보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
1892년 1월 말 짐승들은 추운 날씨를 피해 봄에 피어날 새싹을 기다리며 겨울잠에 들고, 농민들은 올해는 작년과는 다르게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시간, 한 사내가 눈이 내리고 있어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걷고 있었다.
사내가 걸친 누더기에 가까운 옷은 그의 경제적인 형편이 그닥 좋지 못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마치 이 드넓은 러시아 제국 어디를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나 토지 상환금에 허덕이는 농부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다만 그의 눈빛만은 사내가 단순한 부랑자나 농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마저도 그가 품고 있는 다짐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요소일 뿐 남자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다만 그 걸음걸이에서는 더이상 잃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특유의 불안함도 엿보이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세르게이.3달 전 유일한 혈육인 딸을 차디찬 땅속에 묻었지만, 아직 가슴 속에 묻지는 못한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 아직은 익숙한 사내였다.
그가 자신이 살던 마을을 떠나 사마라 시내까지 온 이유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마라 남부지방에 있는 시골까지 내려온 이들과의 대화였다.
그는 자신의 집에서 누군가 들을까 조심스레 나누었던 대화를 회상했다.
‘그러면 선생님 같은 이들이 아직도 각지에 존재한다는 말입니까?’
보기에는 세르게이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사내였지만 그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다. 과거 압제자인 차르를 오체분시시킨 조직의 일원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탄압을 피해 이곳까지 왔다고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의 말에 따르면 아직도 폭압을 일삼는 전제군주정을 무너뜨리기 위한 자신과 같은 이들이 이 드넓은 러시아 제국 영토 곳곳에 숨어있다고 했다.
‘그래, 그리고 그들 중에는 나처럼 쫓기는 이들 말고도 아직 양지에서 지내고 있는 자들도 존재하지.’
선생은 세르게이에게 사상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비록 자진해서 자신들과 같은 길을 걷겠다는 결심을 밝혔어도 농노로서의 삶에 익숙한 세르게이는 언제든지 차르와 같은 지배계급이 떠벌리는 달콤한 말에 홀릴 수가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사마라로 간다면 그를 찾아가게. 비록 그의 형이 지난번 거사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처형되었지만 아직은 그 친구에 대해서 그 씹어먹을 오흐라나 놈들이 상시감시하고 있다는 정보는 없었으니 아마 안전할 거야.’
딸을 잃은 슬픔에 혁명의 길로 들어선 세르게이에게 선생이 말하는 모든 말은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자신의 딸이 세상을 떠난 것도 소수의 인간들이 대다수의 부를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르게이는 그가 말한 이의 사무실 앞에 어느샌가 자신이 도착한 것을 깨달았다.
-울리야노프 변호사 사무실-
겉보기엔 허름해 보였지만 문 앞에 붙은 명패는 이 사무실의 주인이 꽤나 먹물을 먹은 사람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세르게이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자신의 눈앞에 있는 나무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기 이전의 자신과 그 이후의 자신은 다른 사람이 될 것이라는 점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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