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6)
“손님이 오셨군, 들어오십시오.”
세르게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보이는 것은 접수원도 없이 휑한 대기실과 변호사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방의 문이었다.
변호사는 용케도 방안에서 손님이 왔다는 사실을 알았는지 문이 닫혀있음에도 들어오라는 말을 외쳤다.
세르게이가 변호사 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책장에 빼곡하게 꽃혀있는 서적들과 작은 책상 너머로 앉아있는 머리숱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그가 의뢰인들을 위해 준비한 의자에 앉으라고 손짓하자 세르게이는 자신의 농사일로 단련된 육체에 비하면 작아보이는 의자에 착석했다.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터무니없는 폭리를 취하는 지주와의 다툼? 아니면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받지 못한 노동자이신가요? 뭐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상담 및 변론비용은 무료이니 부담은 가지지 마세요.”
아직은 울리야노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변호사는 이 만남을 미리 준비라도 했는지 막힘없이 말을 쏟아내었다. 자신의 사무실에 오는 이들의 대부분이 겪는 문제에 대해 먼저 언급을 함으로서 대화상대와의 친밀감을 쌓으려는 태도로 보였다.
세르게이는 말의 홍수 속에서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았다. 30년이 넘도록 땅만 파먹고 살았던 그로서는 분게가 재무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1886년 개정된 노동법에 따라서 최소한으로 받아낼 수 있는 임금이라느니 만약 자영농이라면 농민 토지 은행에서 받아낼 수 있는 지원 및 공식적으로 정해진 소작세와 같은 법률용어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저, 저는 인민의 의지에 대해 알고 싶어서 이곳까지 찾아왔습니다.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를 기억하라!”
그대로 있다가는 밤새도록 상대방의 장광설을 들어야 할 것 같다고 느낀 세르게이는 그의 말을 도중에 끊으며 외쳤다. 농부인 자신이 변호사라는-자신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높으신 분 같은-사람이 말을 하는 도중 끼어들었다는 것에 부담감을 느낀 그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마을에 있던 선생이 알려준 대로 그의 형의 이름을 말하면 자신을 누가 보냈는지 알 거라고 했지만 세르게이는 레닌이 아무런 말이 없자 걱정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손님이 아니셨군요. 아니 어찌 보면 진정한 손님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불호령이라도 떨어질거라고 생각한 그의 귀에 들려온 것은 부드럽게 변한 레닌의 목소리였다. 방금까지만 하더라도 의뢰인을 접대하는 어투의 목소리였지만 지금은 자신과 가치관을 공유하는 친구 혹은 동료를 대할 때 나오는 태도로 보였다.
“뭐라도 마시면서 얘기를 하는 것이 좋겠군요. 차? 아니면 조금 이르지만 보드카?”
“보드카로 주십시오.”
아직까지 멘델레예프가 보드카의 표준 도수인 40도를 정하지 않았을 때였기에 레닌이 꺼내든 보드카에 적혀있는 알코올 함유량은 35도로 표기되어 있었다.
“그래, 차림새를 보아하면 대학생은 아니신 것 같고 이곳에 위치한 제분소등에서 일하시는 분이십니까?”
“아닙니다. 저는 이곳이 아니라 좀 더 남쪽에 있는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농부입니다.”
“아! 농부셨군요. 이 부패한 제국을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가장 낮은 곳에서 지탱하는 무수히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그리고 그들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이들에게 저주를. 어쩌다가 이곳까지 오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 딸이 죽었습니다.”
세르게이는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말주변이 짧은 그로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제대로 설명했는지 말하면서도 걱정되었지만, 다행히도 레닌은 세르게이의 투박하지만 진솔한 말을 이해한 듯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레닌은 옆에 있던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쳐내며 세르게이를 위로했다.
“그런 일이 있으셨다니 애도를 표합니다. 저 또한 제 형을 압제자들에 의해 잃은 이로써 선생님이 가진 아픔이 얼마나 클지 짐작이 갑니다.”
말을 마친 레닌은 들고 있던 잔을 단숨에 목구멍으로 털어 넣은 후 말을 이어갔다.
“보드카는 어찌 보면 이 거친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있어 축복이자 저주일지도 모릅니다. 고된 노동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전 혹은 집에 있는 작은 탁자에 앉아 보드카 한 잔을 마시면 내일도 버티면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레닌은 자신이 마셔서 비어있는 잔에 보드카를 채운 후 세르게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만 이는 진통제에 불과합니다. 내일도 똑같은 고된 노동을 해야 하고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내 자식 그리고 그 자식의 자식도 나처럼 보드카 한잔으로 자신을 위로하며 살아가리라 생각하면 이 러시아 제국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단 말입니다.”
그는 방금 자신이 채운 잔을 바닥에 그대로 쏟아버린 후 책상 서랍에 숨겨져있던 책을 한 권 꺼냈다.
“선생이 가진 아픔과 의문은 이미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는 그에 대한 해답이 적혀있지요.”
“그…그 책이 뭡니까?”
어느샌가 눈앞에 사내에게 압도당한 세르게이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분명 육체적인 능력으로 본다면 자신이 그를 10초도 걸리지 않고 제압할 자신이 있었지만, 말을 아니 연설을 하고 있는 레닌은 실제보다 3배는 크게 보였다.
그의 말을 듣고 있는 세르게이의 손에 들린 보드카는 처음 레닌이 따라준 상태 그대로였다.
“혹시 게오르기 플레하노프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농부는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는 밀과 귀리의 차이점 그리고 언제 씨앗을 파종하고 몇월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은 자신이 있었지만 레닌이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짐작도 하기 힘들었다.
“창피하게도 처음 들어봅니다.”
“아, 죄송합니다. 제가 선생님을 배려하지 못했군요. 조만간 닥쳐올 미래를 말하는 예언가이자 이 썩어빠진 제국이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스승입니다. 저 또한 그분의 서적 및 이론을 듣고 닫혀있던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레닌은 세르게이가 물어본 책에 손을 얹고 방금 전 그가 한 질문에 대답했다.
“이 책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셨죠? 이 서적은 과거 마르크스라는 사람이 쓴 자본론입니다. 자본주의라는 사회 구조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자 앞으로 다가올 이상사회를 엿볼 수 있게끔 해주는 책이기도 하죠. 저는 조만간 마르크스 학의 전문가인 플레하노프 선생을 만나기 위해 서유럽으로 떠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 길에 선생이 함께해주신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군요.”
“저야말로 그 여정에 저를 초대해주신다니 너무나도 영광입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세르게이의 눈에 비추어지는 레닌은 이제 단순한 변호사가 아닌 그의 인생을 이끌어줄 영도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의 대답을 들은 레닌은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자신의 잔을 다시금 채운 뒤 건배를 제안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같은 길을 걷는 동료이자 형제입니다. 잔인한 압제에 종지부를 찍을 그 날까지 우리는 나아갈 것입니다. 이미 먼저 간 동료들을 추모하며 건배하도록 하지요. 그들을 위하여.”
삐걱 삐걱 삐걱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며 건배를 하려던 그들의 귀에 얇은 나무판자를 밟을 때 들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일반적인 성인이 밟았을 때 나는 소리보다 훨씬 날카로운 것으로 보아 덩치가 크던가 아니면 중무장을 한 사람들이 사무소를 찾아온 듯했다.
소리로 짐작해 보았을 때 한 두명이 아니었다.
레닌은 방금까지만 해도 짓고 있던 웃음을 지워버린 채 세르게이에게 물었다.
“혹시 동행자가 있습니까?”
세르게이는 급변한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그에게 되물었다.
“동행자라니요?”
“이런 멍청한! 미행이 붙은 것도 몰랐다니 당신…”
레닌의 말은 문 밖에서 들려온 목소리로 인해 중단되었다.
“블라디미르 일리치 울리야노프 선생 당신을 보고자 하는 분이 계십니다. 서로 피곤하게 총질을 하는 것보다는 순순히 나오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뭐 선택은 선생의 자유입니다만 나라면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을 겁니다.”
순박한 농부는 지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친절하기 그지없던 변호사 선생은 이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는 듯 악귀 같은 얼굴을 짓고 있었고 문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위압감이 넘치고 있었다.
레닌은 책상 서랍에 있던 권총을 꺼낸 뒤 총알을 확인하다 이내 포기한 듯 권총을 다시금 서랍 안으로 넣었다.
“마음 단단히 먹으십시오. 그들이 당신을 회유하려 들 텐데 이곳을 찾아왔을 당시의 마음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이라니 누구 말입니까?”
아직까지 혁명가보다 변호사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레닌은 굳은 얼굴로 모든 혁명가들의 공포이자 주적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오흐라나.”
—
루드비히 노벨에게 보낼 편지를 작성한 나는 잠시 미뤄두었던 보고서들 중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
[흑해라는 코르크 마개로 잠겨있는 병에 갇혀있는 러시아 제국 해군에 대한 건의]쉽게 말하자면 콜라 반도를 개발해 그곳에 항구와 도시를 건설하자는 얘기였다. 노르만스크를 비롯한 미래의 러시아 북방 함대의 모항이 되는 세베로모르스크 같은 부동항이 존재하는 만큼 매우 매력적인 이야기였다.
‘다만 현재로서는 실현할 수 없는 계획이기도 하지.’
이 보고서를 실현하기 위해서 들어갈 자본과 인력을 제하더라도 현시점에서 이 계획을 시작할 수 없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껏 영국에게 친하게 지내자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데 그들이 거품물고 발작할 만한 일을 할 필요는 없지. 아직까지는 말이야.’
게다가 콜라 반도에 철도가 개통된 것이 1915년이고 그 지역 자체가 개발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깡촌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었다.
‘게다가 최근 보수파 귀족들이 종무원장을 중심으로 회동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것이 먼저다.’
지난번 대화에서 포베도노스체프 종무원장은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최근 내가 점점 친영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사회 전반적인 부분에 대한 개혁을 준비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관망하던 태도를 바꾸어 자신과 의견을 같이하는 이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다행히도 내가 일일이 청소하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서 한 곳에 모여주시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어.’
그들로서는 자신들이 뭉치면 내가 보수파의 목소리를 쉽게 무시하거나 간과할 수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그들의 수장이라 할 수 있는 이가 지난번 저지른 아주 큰 실수를 알고 있었다.
‘포베도노스체프 당신은 종무원장이라는 직책에 너무 취해있었어. 당신과 다시 만날 그날이 기다려지는군.’
개혁에 방해되는 이들의 구심점을 날려버릴 계획을 정리하고 있는 나에게 문 밖에서 부관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급하게 보고드릴 것이 있는데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도록 하세요.”
빠른 걸음으로 들어온 부관은 상기된 얼굴로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귓가에 속삭였다.
“검은 까마귀로부터의 보고입니다. 전하가 감시 및 특이사항이 발생하면 즉각 체포하라고 명령하셨던 ‘볼가 강의 사나이’를 붙잡았다는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그와 함께 있던 신원이 확인된 농부와 함께 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압송 중이라고 합니다.”
빙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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