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28)
2월 중순경 이루어진 로베르트 노벨과의 만남은 시종일관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이전에 그의 조카와의 만남에서 알게 된 정보와 에마뉘엘이 로베르트에게 사전에 내가 그들에게 호의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었는지 만찬장에서 나눈 대화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와의 면담에서 얻게 된 것은 브라노벨사의 수익 중 대부분을 러시아 주립 은행에 입금한다는 것과 로베르트 노벨을 조만간 설립될 노동자들의 근로 환경 개선 및 노동정책 개혁을 위한 산업위원회의 고문으로 초빙한다는 것이었다.
비록 그가 이곳에 상주하면서 내 일을 돕지는 못하지만, 전문으로나마 서로 소통 및 의견 교환을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내가 얻고자 하는 것 그 이상의 결과였다.
그와 함께 온 블라디미르 슈코프와 알렉산드르 바리 또한 브라노벨의 업무에 지장이 가지 않는 선에서 내가 의뢰한 일들을 맡아서 수행하기로 해주었으니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협상이었다.
‘실제 역사에서 기근 중 발생했던 사망자 대다수가 수인성 질병이었던 걸 생각해보면 정비된 상수도관은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슈코프는 이런 정비작업에 아주 뛰어난 면모를 보인 인물이었으니까.’
대신 그들이 나에게 제시한 조건은 록펠러나 로스차일드 가문의 개입 및 방해에서의 안전 보장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요구사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비록 그들이 강대하다고는 하나 러시아 제국이라는 뒷배를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나와 로베르트의 원활한 협상을 위한 다리를 놓아준 것이나 다름없는 에마뉘엘은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상주하며 나와 브라노벨 사이의 연락창구 역할과 현재 맡고 있는 주립 은행 이사직 외에 재무부 고문 및 앞으로 설립될 위원회들의 상임위원을 하기로 약속했다.
‘그의 상업적 재능 및 행정 능력도 뛰어나지만, 공학적 지식도 무시할 수 없지. 제국 과학 아카데미에서도 그가 가지고 있는 자산을 펼칠 수 있도록 해야겠어.’
러시아의 과학계가 무시당하는 경향이 크지만, 현재에도 뛰어난 인재들이 여럿 있었다. 주기율표를 만든 것으로 유명한 멘델레예프를 비롯한 인물들 말이다.
혁신적이었던 멘델레예프 전차를 설계한 아직은 20대도 아닌 어린아이지만 미래가 기대되는 바실리 멘델레예프와 같은 공학자들, 그리고 뛰어난 토양학자이자 농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바실리 토쿠차예프 등을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멘델레예프도 생전에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한데다가 러시아라는 국가 자체도 여러 기초과학 및 산업 기술에서의 발달을 경시한 대가를 치러야 했지.’
대표적으로 미국은 곡물 수출 당시 월등한 기술력과 자본력을 토대로 81.2%를 밀가루로 수출했지만, 러시아는 수출품 중 2.1%만 밀가루로 가공해서 수출했을 정도로 차이가 컸다.
‘미국이라는 사기 국가와 1대1로 비교한 결과이긴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정도로 차이 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기계들을 도입하는 것보다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것이 더 싸게 먹혔기 때문에 러시아의 산업 현장에서 기술자들이 만들어낸 장비들은 외면받았고 그로 인한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이제는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때이지만.’
다만 내가 존재하는 한 앞으로의 이야기는 달라질 것이다.
‘그건 그렇고 이제 그 유명한 레닌을 만날 시간이군.’
지금까지 만나본 그 어떤 역사적 인물보다도 제정 러시아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레닌과의 만남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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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 이후 세르게이와 떨어져서 수감된 레닌은 자신이 이곳까지 오게된 이유를 고민하고 있었다.
이 감방에 들어온 지도 일주일이 지났지만, 당장이라도 대면할 것이라 생각했던 황태자는 자신을 잊어버린 건지 별다른 일이 없었다. 이대로라면 이곳에서 조용히 뼈를 묻게 되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스믈스믈 올라오고 있었다.
‘이미 형님과 같은 길을 걸을 각오는 마친 상태다. 내가 걱정하는 건 이대로 아무에게도 혁명의 불씨를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게 되는 것. 차라리 재판이라도 열린다면 내가 가진 사상과 생각을 사람들에게 알릴 수라도 있을 텐데. 게다가 사상적인 문제만이라면 기껏해야 시베리아 유형 1~2년형에 불과할 것이다. 다만…’
황태자가 오흐라나를 보내서까지 자신을 데려오라 명한 것을 보면 섣부르게 판단할 수 없었다.
“울리야노프, 전하께서 부르신다. 나오도록.”
그런 레닌에게 들려온 간수의 목소리는 오히려 반가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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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서 반갑다고 해야 하나? 우선 자리에 앉도록 하게나.”
처음으로 만나본 레닌 아니 지금은 울리야노프라 불리는 사내에 대한 첫인상은 그를 만나기 전에 마주쳤던 역사 속 인물들과는 뭔가 달랐다. 물론 레닌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낸 결과는 아니겠지만 역사의 흐름을 뒤바꿔놓은 사람답게 풍기는 분위기가 압도적이었다.
‘아직은 미숙한 혁명가라 하기도 힘든 상태인데도 이 정도라니 대단하군.’
그가 조금만 더 성장했다면 이렇게 마주 보는 일이 없었을거라 생각하자 아찔했다. 만약 그가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더 일찍 서유럽으로 떠났더라면? 그를 조기에 붙잡을 기회를 놓친 나는 훨씬 더 힘든 싸움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저 같은 일개 변호사에게 이 러시아 제국을 지배하는 분께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신경을 쓰시는지 모르겠군요.”
돌발사태에 대비해 같이 들어온 근위병만 하더라도 6명이 넘어갔지만, 레닌은 전혀 주늑든 기색이 없었다. 그의 손과 발에 채워져 있는 족쇄마저도 그가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해주는 장치로 보였다.
“일개 변호사라니 겸양이 심하군. 자네의 형 알렉산드르 울리야노프를 벌써 잊어버린건가?”
그의 역린이라 할 수 있는 형의 이름을 꺼내자 레닌의 얼굴 표정에 미미한 변화가 나타났다.
“제 형님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부당한 체제에 맞서 당당히 일어선 사내이자 제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오히려 전하마저 제 형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군요.”“그 형 때문에 자네가 다니던 카잔대학교에서 제적당하고 그 이듬해 복학도 거부당했음에도 말인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사람들을 찍어내는 대학보다는 실제 인민들과 같이 숨 쉬고 일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저는 오히려 대학 총장이 저를 거부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제가 가지고 있던 세상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편협했는지 알게 됐으니까요.”
“그런 것 치고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에 청강을 신청해 변호사 자격을 따기 위해 노력했더군. 뭔가 모순된 것 아닌가?”
“법이야말로 이 모순된 세상에서 유일하게 바르게 나아갈 길을 알려주는 도구라고 생각했으니까요. 비록 제가 현장에서 마주친 ‘법’이라는 존재는 생각과는 달랐습니다만.”
레닌과의 대화는 끊김이 없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던지 간에 그는 즉각적으로 반박하는 말을 내뱉었다. 마치 내가 어떤 질문을 할지 이미 알고 있는 양 말이다. 나는 전략을 바꿔보기로 했다.
“자네가 마르크스주의자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 자네의 책상에서 발견된 서적을 제외하더라도 말이네. 그대가 지금까지 행한 일들을 본다면 인민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알 수 있는데 그대도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무수히 많은 이상주의자들 중 하나인가?”
“그것은 이상이 아닌 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둔 추론입니다. 다만 저는 다수 인민들이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힘을 저절로 깨닫는다는 이론보다는 소수의 음모자들이 혁명을 불러일으킨다는 트카초프의 이론을 더 높게 평가합니다. 비록 지금은 전하께서 승리하셨지만, 저라는 인물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무수히 많은 혁명가들이 언젠가는 이곳 겨울 궁전에 걸린 깃발을 내릴 것이라는 점은 알아두십시오.”
“이런 불경한 놈이!”
“그만.”
그의 말을 들은 근위병들이 발끈했지만 나는 그들을 제지 시켰다. 대신 그의 대답을 듣고 나는 웃음 지었다. 아직은 레닌이 인민들에게 가지고 있는 희망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닌의 인민들이 지닌 자발성과 능력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은 역설적이게도 혁명 이전에 한정되어 있었다. 혁명 이후에 레닌이 말한 것들을 살펴보면 그가 가진 시각의 변화를 엿볼 수 있었다.
“이제 보니 우리 변호사 양반은 나로드니키¹이셨구만. 그런데 이상한 게 하나 있네. 당시 브나로드 운동에서 농촌으로 들어간 이들을 고발하고 쫓아낸 건 다름 아닌 농민들 아니었나? 그에 대한 의견을 묻고 싶군.”
“먼저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들과 동일한 나로드니키가 아닙니다. 물론 당시에 그들은 너무나도 낭만주의적인 시각에 젖어있는 이상주의자였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바입니다.”
“게다가 그대들이 신봉하는 마르크스학의 내용을 살펴본다면 사회주의는 필연적으로 발달 된 자본주의 사회를 기반으로 발전하고 이윽고 자본가들을 거꾸러트린다고 하는데 우리 러시아 제국이 영국과 미국보다도 더 고도화된 자본주의를 시행하고 있다는 말인가?”
“사회라는 형태를 섣부르게 정의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걷기 이전에 뛰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사실 내가 한 질문은 이 당시를 살아가는 인민주의자들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본 문제였다.
그리고 그들은 러시아가 자본주의라는 과정을 건너뛰어서 사회주의라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러시아는 이미 미숙하게나마 자본주의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러시아에는 노동자라는 새로운 계급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인민주의자들이 주목했던 농민이라는 계급이 아닌 노동자라는 계급에 그들은 더 집중해야 했던 것이다.
“다만 브나로드 운동이 벌어졌던 당시와 지금의 상황은 다르다는 말씀은 드리고 싶군요.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기근으로 인한 인민들의 분노가 팽배한 상태이니까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한 후 책상 서랍에 쌓여있던 무수히 많은 편지와 전보들을 꺼내들었다.
“아무래도 대다수의 인민들은 자네와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작년부터 이어진 기근을 수습하기 위해 시행한 필사적인 대책 덕분에 나에게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인민들의 감사편지는 셀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대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어째서 내가 자네에게 관심을 가졌는지도 알려주도록 하지.”
나는 지난번 순방에서 만난 이반이 보낸 편지를 꺼내 들어 그 내용을 읊어주었다.
‘전하께서 보여주신 자비와 관용에도 불구하고 제 친구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어 이렇게 편지를 올립니다. 세르게이와 최근 만나는 사람의 대화를 들었을 때 울리야노프라는 자의 이름이 자주 언급되었으며…’
레닌은 내가 편지를 읽어내려가자 표정이 일그러졌다. 비록 그가 농민계몽론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라브로프의 인민주의보다는 혁명은 소수의 엘리트 지도자들이 이끄는 폭력으로 완성된다는 트카초프의 인민주의에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할지라도 막상 마주친 현실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아 보이는 듯했다.
“물론 이와 같은 편지만으로 자네를 처벌할 수는 없겠지만 그대의 책상에서 발견된 공산주의 서적과 이번 만남에서 나눈 대화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은데. 어찌 생각하나?”
“정식 재판과정을 밟게 해주십시오.”
“오, 그건 안될 말이지. 자네가 가진 사상과 이론을 대중들 앞에서 떠들 수 있는 무대를 내가 직접 마련해준다니. 나는 이래 봬도 그대를 매우 높게 평가하고 있거든.”
사실 레닌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위와 같은 과정은 불필요하긴 했다. 막말로 밤중에 총을 들고 있는 오흐라나를 보내는 일이 훨씬 간편했으니까. 다만 이것은 내가 그에게 보내는 존중의 표시였다.
‘게다가 내가 이렇게 레닌과 1대1로 논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지금이기에 가능한 일이지. 5년만 더 지났어도 대화에서 손발이 묶인 채로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건 나였을거다.’
지금과 같은 상황은 미래를 알고 있는 나, 그리고 아직은 미숙한 레닌, 압도적인 사회적 위치의 차이로 말미암아 가능한 일이었다.
불세출의 연설가이자 병상에 누워서도 스탈린이 꼼짝도 못하게 만든 레닌은 아직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그대도 이미 짐작했다시피 내가 자네에게 내릴 판결은 동토에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는 유배형이네. 그대의 노동력으로 부디 이 러시아 제국을 부강하게 만드는 데 일조해주게나.”
정식으로 재판을 받을 수 있게 해달라는 레닌을 내보낸 나는 그를 시베리아까지 데려갈 임무를 맡은 책임자를 불렀다. 단순한 유배형으로 그를 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이었으니까.
“부르셨습니까, 전하.”
“그대도 알다시피 이곳에서 시베리아까지는 매우 멀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불행한 사고도 엄청나게 일어나는 것으로 아는데 내 말이 맞나?”
“맞습니다, 전하. 그곳까지 가는 길에서 불행한 사고를 맞이하는 죄인들이 세기도 힘들 정도입니다.”
“내 생각에는 저 변호사가 그런 상황에 처할 것 같은데 자네가 이송 총괄 책임자로서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부디 신경 써주게.”
내 말을 들은 사내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이해한 것 같았다.
“물론입니다, 전하. 각별하게 신경쓰겠습니다. 이 문제로 전하가 더이상 고민하실 일은 없을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이런 경험은 몇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나는 내 생명과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이런 결정을 반복할 각오는 이미 마친 후였다.
이송 책임자도 내보낸 나는 레닌과 함께 잡혀 왔다는 농부의 처분과 관련된 서류에 서명한 뒤 좀 이르지만, 오늘의 업무는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이런 날에는 술이 필요하단 말이야.’
홀로 안주도 없이 마시는 술은 여느때보다 쓰게 느껴졌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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