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30)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아직 날씨가 풀리기에는 이른 3월 초였지만 지금 이 시간만큼은 겨울 궁전에 봄이 조금이나마 더 일찍 온 듯했다.
여느 때와 같이 오전 업무를 하기 위해 집무실 책상에 앉은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광오하기 짝이 없는 도전장이었다.
감히 대러시아 제국의 황태자에게 불경하기 짝이 없는 도전을 신청한 것은 나의 남동생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였다.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종이 자체는 3쪽 정도의 긴 내용이었지만 핵심을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이 궁전 어딘가에 있는 나 잡아봐라. 내가 준비한 문제들을 풀 수 있다면.’
비록 10대 초반인 남동생이었지만 황가의 일원인 만큼 쪽지의 어휘나 문제의 수준은 높은 편이었다.
‘어디까지나 10대의 수준에서는 말이지.’
그리고 위와 같은 이유에서 나는 합법적으로 오전 일과를 남동생과의 친목 도모로 소비할 수 있었다. 궁전 내에 돌아다니는 근위병이나 하녀들도 우리 형제의 숨바꼭질에 자주적으로 협력해주고 있었다.
…자주적으로 해주는 게 맞겠지?
기본적인 숨바꼭질의 틀은 내가 1번 문제를 풀어낸 다음 그 문제의 해답이 가르키는 곳에 도착하면 그곳에 2번 문제가 존재하는 형식이었다.
처음에는 보물찾기라도 하는 듯한 기분이었지만 어느새 2시간이 지나가자 나는 슬슬 이 녀석을 잡은 후 어떤 식으로 발칙한 도전에 대해 응징을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도중에 궁전 내에 상주하는 이들을 동원해 남동생을 찾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혼자만의 힘으로 귀여운 반란을 진압하기로 결심했다.
‘이게 니콜라이 이 녀석이 원하는 바이기도 하고.’
자신의 삶에서 가족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니콜라이는 이런 식으로 가족과의 유대감을 쌓는 행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모처럼 느껴지는 그의 존재에 나는 어느 정도 박자를 맞춰주기로 했다. 현대에서 남동생이 없었던 나에게도 이런 놀이가 즐겁다는 것도 영향을 주었지만.
그래도 숨바꼭질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쪽지에 적혀있는 내용을 신뢰한다면 이번 문제가 마지막이었으니까.
‘아버지의 반들반들한 머리가 특히 더 빛나게 된 장소로 오시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언제 집무실로 돌아간 거지.’
아무래도 내 동생은 내가 쪽지를 발견하고 자신을 찾아 나온 사이에 내가 업무를 진행하는 집무실로 몰래 잠입한 것 같았다. 과거 아버지의 빛나는 머리가 물에 홀딱 젖은 장소는 집무실이었으니까.
과거 아버지가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 후 담배를 피우는 시간에 맞춰 위층에서 양동이에 든 물을 부어 버린 게 바로 내 동생이었으니까.
나는 집무실이 가까워지자 문 앞에 서 있는 근위병에게 조용히 하라는 표시의 제스쳐를 취한 뒤 말 그대로 살금살금 걸어갔다.마지막만큼은 나를 고생시킨 동생을 놀라게 하기 위해서였다.
최대한 소리를 죽인 채 집무실 문 앞에 도착한 나는 숨을 들이마신 뒤 웃음을 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근위병에게 날 따라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 뒤 있는 힘을 다해 문을 열고 소리쳤다.
“반역도가 있는 곳이 여기냐!”
과거 영화에서 본 것처럼 박진감 넘치는 등장은 아니었지만, 최선을 다한 진입 후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동생이 아니라 아까 전과 비슷하게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종이 한 장이었다.
“창밖을 내다보시오?”
이전과는 달리 단 한 줄만이 적혀있는 쪽지를 보자마자 정원에서 동생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바로 창가로 달려가려 했지만, 순간 뇌리에 스친 아버지의 모습이 내 발걸음을 세웠다.
‘직접 확인하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나는 나와 함께 집무실로 들어온 근위병에게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내 남동생이 함정을 파놓은 것 같군. 쌍두독수리 깃발에 황가의 일원들을 보호하겠다고 맹세한 근위대로서 지금이야말로 의무를 수행할 때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아무래도 근위병도 남동생과 공범인 모양이었다. 그는 내가 한 말을 듣고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이내 체념한 듯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었다.
—
오전의 소란이 끝난 후 오발탄을 쏘아 올린 남동생에 대한 응징을 위한…아니 우애를 다지기 위한 시간을 보낸 뒤 점심을 같이한 후 업무로 돌아온 나는 다시금 서류의 산에 파묻힌 조난객이 되었다.
‘조만간 도쿠차예프와도 만나야겠군. 바빌로프는 아직 6살도 되지 않은 어린아이니 당장은 논외로 치고 멘델레예프도 조만간 불러야겠어. 그리고 내 개혁 정책에 도움이 될 만한 세력을 더 키우기 위해서라도 한 번 모스크바에 가야겠군.’
서류들을 처리하며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생각하던 나에게 조금 특이한 보고서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문서들은 최소 10장 정도의 내용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이것만큼은 단 한 장이라는 간략하다 못해 성의가 없을 정도의 분량이었다.
하지만 이내 내용을 확인한 나는 조용히 문서에 불을 붙였다. 단 한 장, 그리고 그곳에 적힌 것은 단 한 줄의 글귀였다.
‘Съ нами Богъ.’
써 내려가는 데는 10초, 읽는 데는 1초도 안 걸릴 단순한 문구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그 무엇보다도 무겁다고 할 수 있었다.
역사의 가장 커다란 톱니바퀴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의 퇴장과 그 결과가 미칠 영향을 섣부르게 예측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내가 내렸던 결정을 후회하기 않기로 결심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은 그 주사위의 눈이 가져올 일을 어떻게 하면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뿐.’
나는 종이가 다 불타 없어진 후 밀려있던 서류작업을 다시금 재개했다. 서명을 해나가는 내 손 움직임은 이전보다는 힘이 들어간 상태였다.
—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모처 야심한 시각에 날씨는 쌀쌀했지만, 종무원장의 집으로 모이는 이들의 발걸음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한 방문객이 아니라 공통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모인 이들 이었다.
이런 식의 공개적인 모임은 자칫하면 불경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그들의 태도는 매우 당당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이런 사실을 황태자가 알기를 바라는 듯했다.
그런 점에서는 오늘 밤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그들이 가진 모임은 일종의 시위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아직까지 공개적으로 황태자에게 반기를 들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단순히 친목 도모를 하기 위해 오늘까지 모임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이들은 없을 테니까.
“최근 황태자 전하의 행보에 대한 우려의 시각을 보내는 귀족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소. 오늘만 하더라도 저번보다 10명 가까이 더 모인 것을 보면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소리요.”
“전하께서 내리신 칙령으로 인해 손해를 본 지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듣자하니 전하께서는 미르의 해체와 새로운 공동체를 설립하는 정책을 세우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게 무슨 소리요. 미르를 해체하다니. 그게 해체된다면 그 수많은 농노들을 어떻게 다 제어한다는 말입니까.”
농노라는 존재가 사라진 지도 어언 30년이 넘었지만, 그들은 서슴없이 농민들을 농노라는 호칭으로 불렀다. 사실 이들에게 있어 농민과 농노의 차이점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굳이 다른 점을 찾아본다면 그들이 내는 세금의 명칭이 달라졌다는 것뿐이었다. 과거에는 소작세가 주된 명칭이었지만 지금은 토지취득세라는 이름의 세금을 납부하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지방에 설립된 학교들의 소속을 교구가 아닌 젬스트보로 넘기려고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아니 그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야 할 이유가 존재합니까? 그들은 그저 어디까지나 독실하고 온순한 양과 같은 존재로서 남아있어야 합니다. 놈들의 머리에 든 게 많아질수록 반항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전하께서는 모르시는듯합니다.”
농민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 없다고 소리 높여 주장하는 이의 이름은 이반 델랴료프였다. 현재 장관 회의에 소속되어 있는 그의 직책은 역설적이게도 신민들에 대한 교육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 국립 계몽성 장관이었다.
그의 신념에 따르면 고귀한 신분의 어린이들과 하층 계급의 어린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서로 섞이지 않고 자라야만 했다. 그리고 이러한 의지가 표출된 것은 1887년 그가 발표한 김나지야 선언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김나지야에 입장할 수 있는 이들은 매우 제한되어 있었으며 요리사, 세탁소, 중소상인을 부모님으로 둔 어린이들은 김나지야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었다.
현실 역사에서 레닌의 유명한 어록 중 하나인 ‘요리사도 국가를 경영할 수 있다.’라는 말의 어원이 된 선언은 델랴료프가 평상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정책이었다.
“그뿐인 줄 아십니까? 전하의 휘하에 있는 그 애송이 관료 놈들의 콧대가 높아져 가는 걸 보면 제 속에서 열불이 올라올 지경입니다. 전하께서 뒤에 있다는 것 하나만 믿고 까불어대는 놈들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차츰 커져만 갔지만, 오늘 이 모임이 열리는 저택의 주인이자 그들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포베도노스체프는 조용히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황태자에 대해서 유감이 있는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반역을 위한 모임이라기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국정 방향을 움직이기 위한 자리였으므로 이 자리에 모인 귀족들이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들을 표출함으로서 어느 정도 불만을 해소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종무원장께서도 하실 말씀이 있지 않으십니까?”
“맞습니다, 종무원장께서는 전하의 어린 시절 교육을 맡지 않으셨습니까. 스승으로서 방황하는 제자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바른길로 인도하실 생각이신지요?”
그런 그였지만 귀족들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자 침묵을 고수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우선…”
종무원장이 입을 열자 그들이 모인 방안의 소란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잦아들었다. 황태자의 가정교사이자 현재 황제인 알렉산드르 3세가 가장 총애하던 신하의 말에는 그만한 무게감이 존재했다.
“크림반도에서 요양 중이신 폐하에게 의견을 구하고 행동에 나서는 것이 제일 좋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하긴…알렉산드르 3세 폐하라면…”
“맞는 말입니다. 비록 전하께서 현재 국정 운영을 하고 계신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폐하의 대리인이라는 자격으로서 통치하고 있을 뿐 어디까지나 지금 러시아 제국의 차르는 알렉산드르 3세이시니까요.”
“게다가 폐하께서 수립해놓으신 정책을 전하가 마음대로 바꾸려 한다는 것을 아신다면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으실 것이 분명합니다.”
종무원장의 말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알렉산드르 3세라면 폭주의 기미를 보이는 니콜라이 황태자의 행보를 좋게 보지 않으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들의 말대로 아직 황태자는 대리인일 뿐 대관식까지 끝마친 황제가 아니었으니까.
종무원장은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귀족들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보수파의 거두이자 구심점인 그의 영향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폐하에게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사정을 알려드려야 할 텐데 그 역할은 누가 하는 게 좋겠습니까?”
“비록 제가 나이가 들었다고는 하나 기차여행 정도야 가뿐합니다. 이 얘기를 꺼낸 것이 저인 만큼 제가 직접 크림반도에 계시는 폐하께 다녀오도록 하지요.”
“종무원장께서 직접 다녀오신다니 너무나도 안심이 됩니다. 부디 저희들의 의견을 폐하께 잘 전해주십시오.”
“걱정하지 말고 오늘은 이만 자리를 마무리하도록 합시다. 저도 폐하께 드릴 말씀을 정리하기도 해야 하고 여행 준비도 해야 하니까요.”
귀족들을 돌려보내고 그들의 불만과 의견을 정리해나가던 포베도노스체프 종무원장의 머릿속에 있는 황태자는 아직도 그가 교육을 하던 어린애에 불과했다.
비록 지금은 젊은 혈기로 인해 탈선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그가 정성을 다해 훈육한다면 다시금 올바른 길로 돌아오리라 여기는 그의 생각이 옳았는지는 조만간 알 수 있을것이다.
‘조만간 있을 만남이 기대되는군요, 전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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