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31)
오늘은 모처럼 실제로는 전혀 작지 않지만, 날이 갈수록 좁게만 느껴지는 집무실을 벗어나 외부순방 일정을 하는 날이었다.
전제 군주정인 만큼 주요 서류의 최종 책임자는 나라고 할 수 있었지만, 오늘만큼은 본래라면 현재의 직위가 명예직이라 할 수 있기에 별다른 업무가 없었지만 최근 늘어만 가는 일거리에 한숨을 내쉬던 장관 회의 의장 니콜라이 분게가 나의 대리인으로서 고생해주기로 하였다.
들려온 바로는 오늘과 내일 원래라면 내가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맡아서 수행해줄 이를 찾는다는 얘기가 나오자 분게와 비슈넷그라스키, 비테 사이에서 온갖 설득과 회유 그리고 암투가 오고 갔다고는 하지만 아마 세간에 떠도는 소문에 불과할 것이다.
모처럼 서류작업에서 벗어나 기차를 타고 툴라로 가는 나의 마음은 원래라면 가볍기 그지없었지만, 열차에 타기 직전 들어온 보고로 인해 약간의 불쾌감을 안고 길을 떠나야만 했다.
‘종무원장이 크림반도로 어젯밤 떠났단 말이지.’
본래대로라면 늦어도 오늘 아침 일어났을 당시에 들어와야 했을 보고였지만 내무부 부장관이자 오흐라나의 국장을 맡았던 바체슬라프 플레베가 영향력을 행사한 듯했다.
‘사람은 유능한데 말이야.’
플레베가 비밀경찰의 국장으로 있던 80년대 수많은 ‘인민의 의지’의 하부조직들을 와해시킨 실적이 있을 만큼 그는 나의 적을 물어뜯는 사냥개에 적합한 최고의 인재였다.
‘러시아 제국에 대한 충성심은 확실한 사람이니 앞으로 내가 어떻게 써먹느냐가 더 중요하다.’
민족주의적인 성향과 그가 내무부 장관에 취임한 이후 비테와 충돌을 거듭했던 것을 생각하면 쉽사리 써먹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그에게 내려질 권한과 직책을 경찰 국장 정도로 제한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가 내무장관으로 재임할 당시인 1903년 벌어진 포그롬을 막기 위한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 반유대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시오니즘의 창시자인 테오도르 헤르츨과도 접촉하고 협력했던 것을 고려하면 단순하게 판단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다.’
비록 이번 일은 조금 괘씸했지만, 조만간 그들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종무원장을 날려버릴 계획을 수립하고 마무리 작업 중에 있던 나에게는 참을 수 있는 일이었다. 플레베에 대한 견책이나 질책은 그에게 배정될 업무의 양으로 대신할 수 있었으니까.
‘우두머리를 잃어버린 무리만큼 요리하기 쉬운 집단도 없지.’
단순한 집단이 아니라 국가라 할지라도 지도자를 잃은 후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쉽게 무너진 사례가 넘쳐날 만큼 소위 말하는 ‘참수 작전’의 효과는 막대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뭐, 참수 작전이라고 해서 종무원장을 실제로 암살하거나 하지는 않을 거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의 암살은 너무나도 시끄럽고 지저분하게 진행될 것이 뻔했다. 게다가 비록 아버지가 나를 신뢰하고 지지해주신다고는 하나 종무원장 정도의 거물을 내 독단으로 암살과 같은 과격한 행동을 통해 치워버린다면 개입하실 게 불 보듯 뻔했다.
게다가 그의 위치와 영향력을 고려해본다면 자의로 물러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다. 마치 현대 정치에서 스캔들에 휘말린 장관이 사실은 윗선의 명령을 받고 사퇴하는 것을 자진 사퇴로 포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번 싸움은 누가 더 아버지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느냐, 혹은 더 잘 설득시키느냐로 결판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은 본질적으로 내가 아직 제위를 물려받지 않은 상태이기에 벌어지는 일이기도 했다. 내가 정당한 러시아 제국의 후계자에다가 차르로부터 정식으로 권력을 이양받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아직 대리인에 불과했으니까.
‘다행히 아버지에게 종무원장과 관련된 전문을 보내놓은 상태라 다행이야. 하마터면 내가 더 늦게 움직일 뻔했군.’
혈연관계라는 어마어마한 우위를 제외하고도 나는 종무원장을 옭아맬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기는 사실 그 스스로가 나에게 쥐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포베도노스체프 종무원장, 아니 법률 교수. 정교회의 수장이라는 종무원장이라는 직책에 너무 오래 앉아있던 것인가?’
보수적이고 엄격하기로 유명한 러시아 정교회 사회에서 그가 행했던 일은 어마어마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일이 이슈화가 된다면 나도 어느 정도 타격을 입을 수도 있겠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정상참작을 위한 변명거리들이 존재하지.’
차라리 내 입장에서는 그가 한시라도 빨리 아버지와 만남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마음마저 들 정도였다. 막 나가는 황태자를 자제시키겠다는 비장한 마음을 가진 그가 아버지와 대면했을 때의 얼굴이 궁금해질 정도였으니까.
‘뭐, 종무원장과 관련된 생각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이번 순방에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해보자.’
그 순간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오는 나였지만 슬슬 업무와 관련된 작업을 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앞으로 어느 정도 후면 모스크바에 도착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 주변에 있던 승무원에게 물어보았다.
“앞으로 어느 정도면 모스크바에 도착하지?”
“예, 현재 모스크바와의 거리는 대략 374 베르스타¹가 남았으므로 약 다섯 시간 정도 남은 상태입니다, 전하.”
“…미터법으로 부탁하네.”
“대략 400km입니다, 전하.”
“고맙군.”
이놈의 고유 도량형, 이번 순방의 목표 중 하나는 군 병기의 단위를 통일시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비록 도량형을 바꾸는 것을 단숨에 시행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외국에 생산을 외주를 맡기는 물품에 대해서만이라도 그들이 사용하는 도량형으로 발주를 넣어야 하지 않겠는가?
러시아 제국의 걸작 소총인 모신나강 또한 아르신이라는 러시아 고유 도량형으로 작성된 설계도를 바탕으로 외국에 생산을 맡겼기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체트베르티²라는 부피 단위는 곡물의 종류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만큼 러시아의 고유 도량형은 쓸데없는 행정적 낭비를 발생시키는 데 일조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한다면 모든 단위를 미터법으로 통일하는 게 가장 나은 선택이다. 비록 어려운 일이겠지만 관료들의 헌신과 노력을 바탕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순방에서 돌아가자마자 도량형의 통일이라는 업무를 비테를 위시한 관료 집단에게 맡긴다는 것은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지만 언젠가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를 비롯한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율리우스력을 그만 버리고 다른 나라들이 사용하고 있는 그레고리력으로 바꾸는 일 또한 필요했다.
‘다른 나라와 13일의 차이가 발생하는 바람에 1차 세계대전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생각하면 한시라도 빨리 수행하는 것이 낫겠지.’
다만 이러한 개선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에 존재하는 서류뿐만 아니라 지방 행정조직에 존재하는 서류들에 대한 광범위한 재작성 및 관료를 비롯한 신민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했기에 지금 당장 수행할 수는 없었다.
이미 중앙 행정조직이 수행하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업무들과 관료들에게 걸려있는 막대한 과부하를 고려하면 그들이 기계가 아닌 사람이라는 점을 배려해줘야만 했다.
‘사람은 혹사시킬수록 효율이 떨어지는 존재이니까. 어느 정도의 휴식과 보상은 필수적이다. 너무 몰아가기만 한다면 사상 최초로 관료들이 너무 힘들어서 못 하겠다면서 파업을 선언할 수도 있겠어.’
아직은 열악하다고 할 수 있는 지방 관료를 비롯한 말단 관료들의 처우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랬다. 그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조만간 발표될 계획이 있는 만큼 채찍이 아닌 당근을 통한 관료 조직에 대한 통제도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다만 앞으로 확대될 초등교육정책과 지방에서 교구 소속으로 성경과 복종에 관한 내용만을 주로 배우는 학교를 젬스트보 소속으로 바꾼 뒤 시행할 교육과정에서 미터법에 대한 교육을 시행한다면 도량형을 바꾸는 과정에서 벌어질 혼란을 수습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되었다.
‘문해율이 30%도 되지 않는 국가인 만큼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다.’
발트 3국과 핀란드가 있는 북유럽과 같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러시아 제국의 문해율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비록 의무교육이라는 개념이 등장한 지 100년도 안 된 시대였지만 러시아는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심한 수준이었다.
‘군대에 입대하는 신병들을 대상으로도 초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최소한 그들이 상자 안에 들어있는 물품이 탄약인지 음식인지 아니면 폭약인지는 알 수 있어야지.’
그리고 이러한 교육정책이 지방에서도 원활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젬스트보들과의 협력이 필수적이었다. 다행히도 이번 순방 과정에서 각 지방의 젬스트보들의 리더라고 할 수 있는 모스크바 젬스트보의 의장인 드미트리 시포프도 만날 예정이었지만.
‘툴라 병기창이 모스크바와 가까운 곳에 있어서 다행이군. 이런 시간을 자주 낼 수 없는 만큼 이번 순방에서 최대한으로 얻어갈 수 있는 것들은 얻어가야만 한다.’
원래 역사에서는 극좌와 극우 진영 양쪽에서 치여 별다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던 그들이었지만 이 세계에서는 얘기가 다를 것이다.
‘아니지 원래 세계에서는 나와 충돌까지 한 이들인 만큼 이들을 내 세력으로 끌어들임으로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본래의 전제정치 신봉자인 니콜라이 2세로서는 입헌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는 시포프와의 협력은 말도 안 되는 얘기였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니까.’
당장 입헌군주제로의 개혁을 할 생각은 현재의 나로서도 눈꼽만큼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미래를 생각해봤을 때 온건 개혁주의자들을 육성시키는 것은 혹시라도 일어날지도 모를 내 사후의 공산혁명을 비롯한 로마노프 황가에 대한 공격을 막아 내는 것에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지방 교육 및 행정 작업에 들어가는 중앙정부의 노력을 줄이는데도 한몫을 할 게 분명했으니까.
‘적어도 아이들에게 글자를 자발적으로 가르쳐주던 귀족 여성이 체포되는 우스꽝스러운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분명 과중한 업무에서 벗어난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떠난 순방이었건만 시간이 갈수록 내 머릿속은 복잡해지기만 했다.
‘그나마 이번 순방에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이상이라는 점에 감사해야겠군. 게다가 순방 이후 종무원장과 만남을 생각하며 힘을 내야겠어.’
멈추지 않고 모스크바를 향해 달려가는 열차처럼 러시아 제국의 개혁을 위한 움직임은 계속해서 이루어져야만 했다. 그리고 그 원동력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의지와 행동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계속해서 자신을 밀어붙여야만 했다.
다른 이들에게 모든 업무를 맡기고 나는 그 과실만을 누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 본인은 편안한 침대에 누워 보고만 받는다면 그 누가 나를 믿고 따를 수 있겠는가.
‘보스가 아닌 앞장서서 이끌어 나가는 리더가 되야한다. 간단한 말이지만 이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빠르게 스쳐 지나갈수록 내 가슴에서 요동치는 심장 소리도 커져만 갔다.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