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34)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 한 문장이 크림반도에서 다시금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그 긴 여정 동안 포베도노스체프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지난 1721년 러시아의 가장 위대한 차르라 불리는 표트르 대제가 모스크바 총대주교좌를 폐지한 이후 황제의 입김이 닿는 신성 통치 종무원을 설립한 것부터?
그로부터 1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 땅을 지배하는 정교회를 통제하고 관리하는 집단의 수장자리에 오름으로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서쪽의 가톨릭에 존재하는 교황과 같은 존재라 여기고 있던 것인가.
비록 가톨릭이 우리 정교회에 비하면 정통성도 교리도 부족한 이단에 가까운 존재들이라고는 하나 교황이라는 존재는 사제의 자격을 갖춘 이임에도 내가 종무원장이라는 자리에 너무나도 취해있었나 보군.
그 누구보다도 종교계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던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했던 거지?
그것도 아니라면 황태자를 아직도 내가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가르치던 10대 소년으로 여기고 있었단 말인가. 나의 말을 곧 진리라 여기며 존경의 눈빛을 보내던 그 아이가 이렇게 음흉한 수작을 부릴 정도로 성장한 것을 나만 몰랐단 말인가?
그 누구보다 황태자를 잘 알고 파악하고 있다고 여기던 내가?
‘너무나도 오만했다…너무나도…’
사실 이번에 벌어진 일은 상식적이라면 일어나지도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다른 나라도 아닌 러시아에서 그것도 다른 인물도 아닌 종무원장이 그런 일탈을 저지르다니?
다만 신기하게도 포베도노스체프는 알렉산드르 3세가 자신에게 얘기하기 전까지는 자신이 행했던 일을 기억 속 깊은 곳에 묻어둔 상태였는지는 몰라도 새하얗게 잊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그의 머리에서는 그날 그가 황태자에게 고백성사를 해줬던 일이 단순한 사제지간의 상담으로 여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알렉산드르 2세부터 황가에 고용되어 알렉산드르 3세의 법학교사를 맡았을 정도로 신임받았던 그는 언제부턴가 자신을 로마노프 황가의 스승이라 생각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대를 이어 1명의 황제와 1명의 황태자를 가르친 자.
지구상에서 가장 드넓은 제국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고 있는 종교의 지도자.
현재 러시아를 지배하는 임시헌법의 초안을 작성하고 그 이전에 작성된 로리스-멜리코프 법안에 사형선고를 내린 사람.
그 누가 보더라도 권력의 핵심인사라고 볼 수 있는 종무원장이었지만, 지금은 그가 지난 시절 저지른 오만의 대가에 대한 책임을 생각하는 한낱 후회와 고뇌에 가득 찬 노인에 불과했다.
사실 그가 알렉산드르 3세에게 찾아갔을 때만 하더라도 그의 머릿속에 있는 니콜라이는 덩치만 커진 10대 청소년에 불과했다.
비록 최근 황태자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긴 했지만 어린 시절 그를 직접 훈육하고 가르쳤던 포베도노스체프에게는 철부지 애송이가 자신이 가진 권력에 취해 세상물정 모르고 날뛰는 것으로만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것에 취해 앞뒤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날뛰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나였단 말인가…’
아무리 후회하고 고민을 해봐도 이 상황을 타개할 만한 마땅한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황태자가 나에게 고백성사를 부탁했다고 밝힐까? 아니야. 그에 대한 증거나 증인이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 날 황태자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만 사람들이 알고있을 뿐 미사가 끝난 후 그 성당에 남아있던 것은 나와 황태자 둘밖에 없었으니…’
종무원장은 마치 자신이 거미줄에 걸린 날벌레 같은 상황이라 생각했다. 어떤 변명을 준비하더라도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이 상황이 자신을 더욱더 옥죄여올 뿐 이 줄을 끊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최대한으로 발버둥쳤을 경우 얻을 수 있는 것은 황태자와 같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정도인가.’
비록 황태자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격이 없는 이에게 고백성사를 받았다고 얘기하더라도 종무원장이 최대한으로 지저분하게 끌고 간다면 황태자에 대한 문제제기도 나올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성향은 다를지언정 종무원장 또한 러시아 제국과 로마노프 황가에 충성을 바치는 인물이었으니까.
게다가 황태자가 물러난다면 그 이후의 황위를 물려받을 이가 고작 14살밖에 되지 않은 미하일 알렉산드로비치 대공과 21살이지만 몸이 병약한 것으로 유명한 게오르기 알렉산드로비치 대공¹이라는 점도 문제였다.
그가 직접 눈으로 본 바로는 현재 차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알렉산드르 3세의 건강 또한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직은 외부활동이 가능할 만큼 건강해 보인다고는 하나 오랫동안 서로를 지켜봐 온 포베도노스체프였기에 느낄 수 있었다.
‘현 유럽 정세와 국내 정세를 고려하자면 앞으로 제위에 오를 분은 정력적이고 유능하셔야만 한다. 비록 지금은 좀 잠잠하다고는 하나 국내와 국외를 가리지 않고 현재 상황은 끓고 있는 솥 위에 커다란 돌을 하나 얹어놓은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비록 자신의 상황과 황태자에 대한 판단은 실수했을지언정 포베도노스체프도 정세를 읽는 능력은 있었다.
단순히 무능하기만 한 자가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온갖 권모술수가 벌어지는 황실에서 살아남았으리는 없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하께서 이 상황을 다른 이들에게 알리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내가 조용히 물러나는 것을 바라시는 모양이군.’
어느샌가 황태자의 자비에만 매달려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우습기도 했지만, 이 지경이 되자 오히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탐욕과 오만이라는 사람들의 눈을 가리는 존재에게서 벗어나니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만약 전하께서 나의 피를 원하신다면…’
그 순간이 다가온다면 자신이 어떠한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황태자를 만나기 이전까지 어떠한 것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
툴라 조병창이 나의 방문으로 몸살을 앓았지만, 나에게는 그만한 가치가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높은 사람이 온다는 소식에 환경미화 작업이나 각종 상황에 대한 대처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내가 아니었으니까.
이게 사단장이나 군단장들이 휘하 부대를 툭하면 방문하는 이유인 건가?
일개 사단장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지휘하는 부대에서는 신과 같은 권력으로 산을 옮기라는 명령도 내릴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나는 그 사단장이라는 존재보다도 훨씬 높은 자리에 있는 인물이었기에 기술자들과의 대화에 약간 조심스럽게 임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전문적인 지식 없이 대략적으로 기억하는 것으로만 무기의 설계나 어떤 장비를 생산하라고 한다면 부작용이 나타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모신 소총의 길이를 줄이는 게 좋지 않겠냐고 말했지만 우선 일선 기술자들과 충분한 검토 후에 시행하도록.’
다만 모신 소총과 유사한 구조를 가진 다른 나라들의 비슷한 시기에 나온 소총 길이를 생각해보면 어느 정도는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 우리의 친애하는 섬 친구들이 최근 맥심 기관총이라는 물건을 미국으로부터 구입하고 있다던데 우리도 발주를 넣는 게 좋다고 생각하네.’
개틀링으로 시작되는 기관총의 위엄이 남북전쟁을 참관했던 유럽 각국의 관전 무관들로부터 전해졌지만, 이 가공할 무기를 국가 간의 전면전에서 어떤 식으로 사용할지에 대한 교리나 생각은 아직까지 미흡한 상태였다.
‘그리고 발주를 넣은 초도 생산량의 일부를 이곳 툴라 조병창으로 보낼 테니 모신 자네는 맥심 기관총의 작동 원리와 설계를 낱낱이 파악해서 우리가 생산할 수 있는지, 아니면 언제쯤이면 생산할 수 있을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도록.’
아직 소총도 외국에서 수입하는 러시아 제국인 만큼 당장 기관총이라는 물건을 카피생산하기는 무리겠지만 지금부터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했다.
‘토카레프 권총이나 맥심 기관총의 러시아 버전인 맥심-토카레프 기관총을 설계한 바실리예비치 토카레프도 현재 코사크 연대에 있을 때군.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한다면 그 친구도 군 기술 학교에 집어넣는 게 좋겠어. 아무리 천재적인 총기 기술자라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공학 지식과 교육은 받게 해야지 그가 가진 능력을 펼칠 수 있을 테니까.’
실제 역사에서는 단 39살의 나이에 모신나강 소총을 반자동 소총으로 개조하고 그에 대한 군의 공식적인 테스트를 받을 정도의 능력을 지닌 토카레프였지만 지금은 그저 일선에서 구르고 있는 21살의 군인에 불과했다.
‘비록 그가 공산혁명 이후 볼셰비키 정부에 협력했다고는 하지만 단순한 병사인 그가 지금 시점에서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했다고 볼 수는 없다. 게다가 거의 평생을 러시아 제국군에 몸담았다는 점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보는 게 맞겠지.’
그에 대한 나의 지원이 더해진다면 토카레프가 가지고 있는 재능이 원래의 역사보다 더 빨리 펼쳐질 수 있었으므로 서두르는 게 좋았다. 조만간 러시아가 휘말리게 될 전쟁이 한 두 개가 아니었으니까.
‘다만 걸리는 게 있다면…’
아무리 좋은 무기를 생산하고 보급한다 하더라도 러시아 제국군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실전에 들어갔을 때 상대방보다 우수한 전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승리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귀족 출신 장교들과 일반인 출신 병사들간의 사이를 개선시킬 방법이 필요하다.’
광범위한 징집제를 적용하고 있는 러시아인 만큼 군대의 규모는 어마어마했지만, 막상 내부를 살펴보면 여러가지 문제점이 존재했다.
‘18세기 당시의 러시아군이 다른 나라의 군대는 가지지 못했던 국민군의 특성을 가지고 있던다는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군.’
당시에도 낙후되어 있던 러시아가 가장 선진적인 문화-선형전술에만 의존하지 않으며 병사들이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을 가진-를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중세적인 국가였기 때문이었다.
‘병사들의 출신이 농노들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
다만 지금은 농노라는 존재가 사라진 후였으며 아직까지는 표면적으로 터져 나오지 않았지만, 일선 병사와 장교들 간의 갈등은 쌓여가고 있는 상태였다.
‘이에 대한 대책도 조만간 수립해야겠어.’
이뿐만 아니라 해군을 비롯한 포병에 대한 개선방안 그리고 분명 그들이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잊어버린 남북전쟁 당시의 전훈들을 러시아 군대에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비록 1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전선은 서부전선과 같은 참호전보다는 기동전이 주로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기차를 통한 빠른 병력 수송과 같은 총력전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한 가지 일을 다 끝마치지도 못했건만 연달아 계속해서만 나오는 과제들을 보고 있자니 대학원생들의 심정이 이해가 갔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들은 지도교수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하다면 나는 수없이 많은 이들에게 평가받는다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오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휴식을 취해야겠다고 다짐한 나였지만 들려오는 말은 하늘이 내가 쉬는 것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얘기하는 듯했다.
“전하, 종무원장이 어제부터 전하를 뵙게 해달라고 있습니다. 오늘은 순방에서 돌아오셔서 피곤하니 내일 다시 오라고 할까요?”
다만 이와 같은 일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었다.
“아니, 종무원장같은 인물을 그렇게 기다리게 할 수는 없지. 내 집무실로 오라고 전하게.”
내 명령을 받은 수행원이 그를 불러오기 위해 문을 나서자 나는 내가 계획했던 일이 생각한 대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거짓 사제를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써먹을 수 있을지에 대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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