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35)
종무원장과의 대화를 앞둔 나의 상태를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걱정된다거나 긴장된다는 느낌이 없었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만남 중에 가장 긴장되고 어려웠던 것은 레닌과의 대화였던 것 같군.’
레닌이 손과 발에 족쇄를 차고 주변에 나를 호위하는 근위대들도 잔뜩 있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만남이었지만 그와의 대면은 무언가 다른 느낌이었다.
분명히 내가 압도적인 우위에 있음에도 까딱 잘못하면 그가 원하는 대로 흘러갈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순간도 존재했다.
플레하노프와 만나고 자신의 마르크스학에 대한 배움의 깊이와 넓이를 한층 발전시킨 이후의 레닌이 아니었음에도 그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면 아마도 내 가장 뼈아픈 실수가 되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시간이었다.
불세출의 사상가이자 선동가의 씨앗은 언제고 피어날 토지와 환경만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로 인해 채 싹이 트기도 전에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원래대로라면 나의 가장 큰 적이 될 인물 중의 하나였으니까 그랬던 것일지도.’
비록 아직 미숙하고 뒷배가 되어 줄 수 있는 세력을 구성하는 기반조차 없던 레닌이기에 조기에 처리할 수 있었지만, 그와의 대화는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었다.
당시 나눴던 말들과 내가 느꼈던 심정을 생각하자면 비록 지금 순방에서 돌아와 피곤한 상태였지만 종무원장 정도의 인물이라면 충분히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됐다.
‘게다가 지금까지도 내가 움직여줬으면 하는 쪽으로 행동해왔던 자인 만큼 내가 그에 대해서 두려움이나 걱정을 가질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저 내가 준비한 대로만 나아가면 될 뿐.’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집무실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샌가 문 앞에 도착해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수십 번도 넘게 봐온 문이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른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목적이 업무를 보기 위함이 아닌 다른 것이었으니까.
로마노프 황가가 살아남고 적색기가 휘날리는 미래가 오지 않도록 하기 위한 여정에서 반환점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하였다.
“잠시 뒤로 물러나 주십시오, 전하. 문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아니, 괜찮네. 내가 열도록 하지.”
나는 문을 열어주려는 근위병을 제지하고 내 손과 내 힘으로 직접 문을 열어젖히기 시작했다.
내가 원하는 방향과 속도로.
—
끼이익
본래라면 항상 황궁 내의 시설을 관리하는 인원들의 최우선 관리 목표 중 하나이기에 부드럽게 열리는 문이었지만 종무원장의 귀에는 황태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오래되고 관리가 안 되어있는 문에서 나는 불쾌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포베도노스체프의 눈에는 자신이 직접 문을 열어젖히며 당당한 발걸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황태자가 마치 뇌제 이반처럼 보였다.
‘차르의 개’, ‘러시아의 악몽’이라 불리던 오프라나치크를 몰고 다니며 러시아를 공포로 몰아넣기도 했지만 때로는 선정을 베풀어 역사서에서도 전혀 예측할 수 없다고 불리었던 인물.
심지어 그가 오프라나치크를 이끌고 저질렀던 학살이 자신의 절대권력을 세우기 위한 계산된 만행이었다는 평가마저 나올 정도로 광기 속에 숨겨진 철두철미함을 가졌다고도 여겨지는 사람.
단순한 미치광이라고도 부르는 자들도 존재하지만, 지금 그들이 살아가는 러시아의 기틀을 다져놓았다는 평가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자.
물론 황태자가 그와 같은 정신이상자 혹은 폭군의 기미를 보인다는 얘기는 아니었다.
단지 그가 느끼기에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에게 말 그대로 신성불가침인 정교회와 관련된 예식마저도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용하는 니콜라이가 무서워졌을 뿐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문을 열고 닫는데 방해가 되는 녹슬어버린 경첩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인물이기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그리고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감히 자신의 논리로는 파악할 수 없는 존재라 느끼는 황태자에 대한 공포도 깔려있었다.
자신이 가르쳤던 황태자와 지금의 황태자가 동일인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마저 가끔 들었지만, 그는 이런 불경한 생각을 그만 멈추기로 하였다.
“이것 참, 제가 종무원장님과 같은 분을 기다리게 만들다니 죄송합니다. 요즘 하도 바빴기 때문이라 양해를 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황태자가 자신의 눈앞에서 싱글거리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아닙니다, 전하.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나라와 관련된 일을 최우선으로 여기시는 게 당연하지요. 저야말로 최근 전하의 심기를 어지럽히기만 한 것 같아 송구스러운 마음뿐입니다.”
“하하하, 우선 앉으시지요. 차? 아니면 제가 생각하기에는 지금의 종무원장에게는 술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보드카로 하시겠습니까?”
“배려는 감사드립니다만, 저는 괜찮습니다.”
종무원장의 대답을 들은 황태자는 그에게 앉으라고 손짓한 뒤 선반에 놓여져 있는 스미노프 보드카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뭐, 종무원장이 괜찮다면야. 그럼 저 혼자 마셔도 되겠습니까?”
“저 같은 존재가 전하가 하시겠다는 일에 어찌 감히 참견하겠습니까.”
종무원장의 말을 들은 황태자는 보드카를 잔에 따르려던 자세에서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잔을 채우며 대답했다.
“말에 뼈가 있는 것 같군요.”
니콜라이는 싱긋 웃은 뒤 자신의 잔을 들어 올린 뒤 유쾌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스미노프 보드카가 황실에 납품하도록 허가해주신 아버지에게 경의를 바치며.”
“…”
종무원장은 이 시간이 너무나도 불편했다. 그가 생각했던 황태자와의 만남은 이런 식의 분위기가 아니었다. 좀 더 거칠고 자신에 대한 책임추궁이 이루어졌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귀족들 특유의 본론을 꺼내기 전 상대방의 피를 말리게 하는 행동을 그가 직접 당해보니 지금까지 자신이 아랫사람들에게 해왔던 일들에 대한 미안함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는 이런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겪고 있자니 차라리 자신이 직설적으로 나가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건방지다고 여겨질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자신의 목을 보이지 않는 손이 점점 조여오는 듯한 느낌은 해소되지 않겠는가?
“전하. 연극은 이 정도만 해주…”
“그만.”
그런 종무원장의 두려움을 무릅쓴 결심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그라들고 말았다.
다시금 조용해진 그를 바라보던 황태자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손에 든 채로 집무실을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저 또한 그대가 가진 궁금증이 무엇일지 충분히 짐작합니다. 언제부터 이런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는지, 아니면 그대에 대한 처분이 어떤 것일지, 혹은 과연 이번 사건을 나와 아버지 그리고 종무원장을 제외한 누군가 다른 사람도 알고 있는지. 그렇지 않습니까?”
종무원장은 대답하려 했으나 순간 오랫동안의 황궁 생활로 다져진 본능이 그에게 경고를 보냈다. 지금은 가만히 듣고 있는 것이 낫다고 말이다.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대와 나,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지금까지는 말입니다.”
‘지금까지는’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종무원장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속으로 내쉬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태자는 여유로운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언제부터 이 일을 꾸몄냐고 물어본다면, 흠 그건 답변해주기 어렵겠군요. 다만 내가 저 극동지방에서 벌어진 사건 이후로 새로운 눈을 뜨게 되었다는 말로 대답해주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황태자가 생사가 오고 간 경험을 하고 난 뒤 많은 것을 느낀 것이 틀림없다고 종무원장은 생각했다. 큰일을 겪은 사람이 이전과는 달라지는 일을 그도 종종 보곤 했으니까.
“마지막으로 종무원장 그대에 대한 처벌은 꽤나 고민을 하게 만든 문제였습니다. 당신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벌을 내리면 귀족들은 물론이고 사제들이 도대체 그대가 어떠한 죄를 지었길래 그런 처분을 받았냐고 의구심을 가질 게 뻔하니까요. 그건 우리 둘 모두에게 달갑지는 않은 일 아닙니까. 그렇지요?”
“…그렇습니다, 전하.”
종무원장은 지금 이 공간에서 자신이 입을 열 수 있는 순간은 황태자가 허락해준 순간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계속 생각을 해 봤습니다. 과연 종무원장과 나, 그리고 다른이들의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잘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대가 평상시에 자주 하던 말이 생각나더군요. ‘정교회의 깃발 아래에서 하나로 뭉쳐야 한다, 성경의 말씀에 따라 검소하게 살아가야 한다. 우매한 민중들을 교화시키고 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은 종교뿐이다.’”
순간 포베도노스체프의 뇌리 속에 스쳐 지나간 것은 중앙아시아 지방이었다. 아직도 이슬람을 믿는 현지인들과의 충돌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곳이자 알렉산드르 3세 시절에도 개종을 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지만,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곳.
‘전하는 내가 그곳에서 선교와 병사들에 대한 위문을 상주하면서 하시기를 바라는 것인가?’
의아한 것은 자신이 알기로는 현지 총독인 알렉산드르 남작이 황태자와 불편한 관계에 놓여 있다는 점이었다.
과연 자신과 충돌했던 이를 황태자와 껄끄러운 사이에 있는 총독이 관리 중인 지역에 보낼 정도로 황태자가 무르다는 말인가? 불평분자들을 한자리에 모아둘 만큼?
아니나 다를까 그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지역이 황태자의 입에서 튀어나왔다.“그래서 나는 그대를 시베리아 동쪽 지역과 극동 지방에 있는 오늘도 시베리아 횡단철도를 건설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그곳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비록 국가에 죄를 저질렀다고는 하나 유형을 통해 속죄하는 이들에게도 따뜻한 관심을 보여주기를 기대하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점이 있다면 지금 말해보도록 하세요.”
아무래도 황태자가 지금까지의 차르들보다도 더욱 극동 지방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사실인 듯했다. 단 그러자면 한 가지 의문이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전하, 제가 현재 역임하고 있는 종무원장 직책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제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아니지만 종무원장 정도의 인물이 극동으로 추방을 당한다면 귀족들이 궁금증을 품을 게 분명합니다.”
“추방이라니 무슨 말입니까, 종무원장. 조만간 폐하의 칙령이 나올 겁니다. 그대를 극동지방 선교 및 교구 책임자로 세운다는 내용입니다. 이건 일종의 영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군요.”
종무원장은 황태자가 생글거리면서 말하는 내용을 듣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영전이라니?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수천 베르스타나 떨어진 극동으로 가는 것이 어찌 영전이란 말인가?
그가 맡게 될 직책은 명칭만 번지르르하고 실권은 쥐꼬리만한 자리일 것이 분명했다.
다만 이런 눈 가리고 아웅식의 처리 방식이야말로 그가 리더로 있는 보수파에게 궁금증 대신 두려움을 심어줄 수 있는 처벌이었다.
종무원장 정도의 인물이 이런 좌천을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본 그들은 황태자에게 공포심을 느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약점을 쥐고 있길래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들이 지니고 있는 약점도 어느샌가 황태자의 손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져 나가는 순간 그들이 현재 소속된 집단의 붕괴는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그렇게 된다면 니콜라이는 침몰하는 배에서 탈출하는 쥐떼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요리할 수 있을것이다.
“다만 종무원장의 나이와 몸 상태를 고려해 그대를 시중들 인물들도 내가 미리 준비해 놨습니다. 이 정도는 과거의 스승에 대한 제자의 배려라고 생각해주시죠.”“…감사드립니다.”
황태자가 자신의 팔과 다리를 자르고 감시인까지 붙이겠다는 얘기를 하자 종무원장은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런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황태자는 그가 업무를 보는 책상 옆에서 멈춘 뒤 잔을 내려놓고 말을 이어나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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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