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37)
4월이 되자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봄기운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겨울에 비하면 따뜻하다는 얘기였지만.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드물어지고 한낮에는 10도 이상의 기온을 유지할 정도로 날이 포근해지자 상트페테르부르크에는 하나의 질병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것도 정부가 처리하는 업무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질병이었기에 황태자에게까지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좋겠냐는 보고가 올라갈 정도였다
이 무시무시한 질병의 이름은 다름 아닌 춘곤증.
작년 가을부터 혹사당한 관료들이 날씨가 풀어짐과 동시에 마치 방아쇠의 공이가 당겨졌다 내려가듯 고개를 꾸벅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황태자의 반응은 간단했다.
“관료들이 커피를 의무적으로 복용하도록 만들게. 그리고 그들에게 커피를 배급하기 쉽도록 프랑스에서 커피를 만드는 기계를 수입하는 것도 고려해보도록.”
그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사비마저도 내놓겠다는 황태자로 인해 관료들은 강제적으로 각성 상태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런 식의 채찍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하급 관리들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비리와 부패를 저지르도록 강제하는 거나 다름없을 정도의 박봉에 대한 개선안이 차츰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도 그들에게 위안을 안겨주고 있었다.
이런 해프닝을 제외하고는 여느 때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날이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툭하면 현재 진행되는 개혁안 작업에 어깃장을 놓으려던 보수파 귀족들이 언제부턴가 조용해졌다는 것이었다.
현재 관료들의 30% 정도도 귀족이었던 만큼 귀족 출신 관료들은 종종 비테나 분게같은 최고위의 눈을 피해 태업에 가까운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들도 지금은 다른이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업무능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남들보다 더 뛰어난 처리능력이었다. 그들이 어린시절부터 받아온 교육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평소처럼 서류에 파묻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말단 직원들은 아직까지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중간관리자급의 관료들로부터는 심심찮게 나오는 말이 있었다.
‘선로 위에 놓여져 있던 커다란 돌 하나가 치워지자 그동안 멈춰있던 기차가 우렁찬 경적 소리를 내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 종무원장이 극동지방으로 영전을 빙자한 좌천을 떠난 후 중앙에서 황태자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될 만한 세력이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지난 시절 모두를 놀라고 분노하게 만든 테러를 저질렀던 ‘인민의 의지’로 대표되는 사회주의 세력들은 알렉산드르 3세를 이어 현재 국정을 맡고 있는 니콜라이 시대에도 이루어지고 있는 철저한 추적과 탄압으로 인해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져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4월의 첫 번째 회의가 열리는 날이었다. 장관 회의나 이제는 공식적인 기구 취급을 받는 기근 대책 위원회가 아닌 황태자와 그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이들만이 참석하는 소규모 회의였지만 어찌 보면 이 자리야말로 현재 러시아를 움직이는 핵심집단이라 할 수 있었다.
회의실에 앉아있는 이들은 단 3명밖에 없었는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본래라면 서로간의 정치적 견해의 차이로 인해 불편한 사이로 알려진 이들이 그들의 주군이 오기를 기다리며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단 말입니다.”
“무엇이 말입니까?”
비슈넷그라스키와 분게는 원래 사이가 좋다고는 하기 어려운 편이었다.
분게가 재무장관 시절 진행하던 개혁 정책에 불만을 품은 보수파들이 그를 밀어낸 후 그 자리에 앉힌 게 비슈넷그라스키인만큼 둘은 필연적으로 서로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마술을 전하께서 부리셨는지 모르겠다는 말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종무원장입니다. 그 종무원장을 이렇게 쉽게 처리하시다니요. 그자가 알렉산드르 2세 폐하 때부터 황실 및 중앙 귀족들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는지는 의장님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고 보니 전하께서 모스크바와 툴라 조병창 순방을 마치시고 돌아온 날 그와 만난 이후로 귀족들이 조용해진 것도 이상하지요. 그 친구들이 이렇게 숨죽이고 있을 리가 없을 텐데 말입니다. 제가 이전에 경험했던 것에 비추어본다면 더더욱 이상하다고 할 수 있겠군요.”
“흠…흠…”
분게의 말을 들은 비슈넷그라스키는 헛기침을 내뱉었다.
분게가 말하는 그때의 일에 있어서 자신도 한 몫 거들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두 분의 사이가 최근 들어서 부쩍 가까워지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 둘을 마주 보고 앉아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있기에는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 직책인 철도국장을 역임하고 있는 비테였다.
이들 중에서는 가장 직책이 낮다고 할 수 있지만, 그를 단순히 현재 역임하고 있는 직위로만 판단하는 사람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차기 황제 자리에 오를 황태자의 측근 중에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분게와 비슈넷그라스키의 능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둘의 나이가 나이인 만큼 조만간 은퇴를 하리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여유로운 은퇴 후의 삶을 위해서는 황태자라는 가장 큰 산을 넘어야만 했지만. 그들로서도 주변에서 생각하는 것만큼 쉽게 은퇴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최근 들어 불길한 예감이 들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었다.“그런데 최근 전하께서 미터법과 관련해 툴라에서 하셨던 말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아무래도 본격적으로 도량형에 대한 개혁도 준비하시려는 것 같더군요.”
분게의 말을 들은 이들의 표정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미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는 다른 이들이라면 하나만 담당하기도 버거워할 정도의 과제였기 때문이었다.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농촌 공동체인 미르에 대한 개혁작업
농업과 관련된 아카데미 회원들과 연관해 아직도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농업 전문학교의 숫자를 어떻게 하면 늘릴지에 대한 작업
극동에서 진행 중인 시베리아 횡단 열차 사업의 일부분인 바이칼 호 노선과 관련된 업무 등등
이름만 댄다고 하더라도 보고서 100장 분량은 거뜬히 나오리라고 생각되는 일들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도량형을 미터법으로 일관화하는 작업은 지금도 자신의 집 대문의 문양이 가물가물해질 정도인 이들에게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었다.
“그런 중요한 업무라면, 아무래도 재무부와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현재 세금을 곡물로 걷는 경우가 많은 만큼 단위를 통일시키는 것은 세수와 관련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비테였다. 비록 그의 앞에 있는 이들이 자신에 비하면 까마득할 정도의 선배라고는 하지만 지금보다 서류의 양이 늘어난다고 생각하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비록 도량형과 관련된 업무가 우리 재무부와도 관련이 있다고는 하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철도를 건설하는 작업을 함에 있어 역 간의 거리에 대한 표기 통일화와 철도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자재의 크기가 일정한 크기로 규격화되는 것 아니겠는가. 게다가 황태자 전하께서 극동 지방 철도에 대해 막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일은 철도 국장이 맡는게 더 사리에 맞다고 생각되네.”
하지만 비슈넷그라스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그도 이번 일은 필사적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침침해져가는 눈과 쑤셔오는 허리와 손목을 생각했을 때 이 이상 업무를 맡는다면 그의 영지로 돌아가기도 전에 이곳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영면으로 은퇴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일이 이렇게 돌아가자 둘의 눈은 분게로 향했다. 물론 최종 결정은 황태자가 하겠지만 그들 사이에서 결정된 합의를 그저 무작정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란 생각이었다.
황태자가 언제나 막중한 업무를 던져주는 리더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합리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이었으니까.
졸지에 두 사람의 열렬한 구애를 받게 된 분게는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제 생각에는…”
자신이 입을 열자 두 사람의 표정이 시시각각 바뀌어 가는 것을 본 분게는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지금까지 공직생활을 하면서 겪어온 다른 각료들과의 대화는 이런 분위기로 진행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친구까진 아니더라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 간의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끈끈한 선으로 이어진 유대감이 그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래도 부관의 도움을 받는 데다가 가장 젊은 비테 국장이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군요.”
분게의 발언이 끝나자 두 사람의 얼굴은 극명하게 대비가 되었다.
“그렇죠. 역시 의장다우신 냉철한 판단이십니다. 허허허.”
“…”
비테가 말없이 침울해지자 분게는 이 상황이 자신의 책임이 아님에도 그를 격려해줘야겠다는 책임감이 들었다.
물론 그가 업무에 대한 의욕을 잃는다면 가장 먼저 피곤해지는 것이 자신이라는 사실도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지만.
“너무 상심하지 마십시오, 국장. 앞서 말했듯이 그대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유능한 부관이 있지 않습니까. 최근 장관회의에서도 국장의 부관인 스톨리핀에 대한 칭찬이 자자합니다.”
“그렇습니까? 그것 참 감사한 얘기군요. 스톨리핀…스톨리핀이라…하하하.”
그의 격려가 어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켰는지는 몰라도 비테의 마음속에서 이번 사태의 책임은 스톨리핀에게로 넘어간 것처럼 보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며 두 사람은 영문도 모르고 업무를 처리하고 있을 젊은 부관의 명복을 빌어주기로 했다.
세 사람이 찍고 있던 자그마한 시트콤의 막은 그들이 이 자리에 모인 이유인 황태자가 등장하면서 내려졌다.
—
러시아의 광활한 영토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곳.
시베리아.
러시아가 이 척박한 땅을 차지한 것도 수백 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이곳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부분은 너무나도 넓었다.
정부가 지속적으로 농민들에게 당근을 내밀며 이곳으로 이주하라는 정책을 폈지만 아직까지도 효과는 미미했고 결국 정부는 다른 방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거기! 빨리빨리 안 하나! 네놈들이 지은 죄를 차르께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곳에서 속죄하라고 보내주셨거늘 감히 게으름을 부려?”
그 방법은 수많은 죄수들을 동원해 시베리아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작업의 종류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벌목, 채굴, 철도건설과 같은 육체노동이 주가 된 노역은 강제노동이라는 특성상 효율은 아무래도 떨어졌지만, 그래도 투자 대비 산출은 중앙에서 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여느 때보다 빨리 노역이 마무리가 된 운 좋은 날 중 하나였다.
노역을 하던 이들은 어리둥절했지만, 평상시보다 건더기가 많은 스프에 톱밥 섞인 빵이 아닌 진짜 빵이 나오자 환호성을 질렀다.
“이게 어찌된 일이래?”
“내가 저 치들이 말하는 걸 엿들었는데 높으신 분이 오늘 이곳에 왔다고 하더구만.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서 설교를 한다나 뭐라나.”
그들에게는 진수성찬이라 할 수 있는 식사가 끝나고 죄수들을 한 자리에 모은 현장 책임자는 오늘 이 분에게 설교를 듣는 것을 영광으로 알라는 식의 훈계를 하고 물러났다.
‘이런 자리에서 연설을 하게 될 줄은 몰랐군.’
그 높으신 분의 이름은 포베도노스체프였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연설 장소였다.
연설대는 찾아볼 수도 없었으며 그나마 쌓아놓은 나무상자가 그가 서서 설교를 할 장소였다.
‘그래도 전하에게 저지른 일에 대한 속죄를 조금이라도 할 수 있다면.’
지난번 면담이 그에게 미친 영향은 황태자의 생각보다도 막대했다.
상호 간의 만족스럽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이 지나고 다른 유형자들이 일하는 장소로 가려던 포베도노스체프에게 한 노역자가 다가왔다.
경비병들이 그를 제지하려 했지만, 종무원장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방금 설교시간에도 대부분의 이들이 졸고 있었지만 지금 다가오는 이는 그의 이야기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듣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제님, 부디 천국에 있을 제 딸아이를 위해 기도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의 부탁을 들은 종무원장은 웃을 뻔했지만, 그의 필사적인 얼굴을 보자 웃음이 저절로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대신 그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사제가 아니라네. 그래도 자네의 딸을 위한 기도는 드릴 수 있으니 말해보게나. 자네와 딸아이의 이름이 뭔가?”
“제 이름은 세르게이라고 합니다, 나리.”
그는 사마라에서 레닌과 함께 체포되었던 사나이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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