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39)
주가슈빌리는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처음에 황태자가 자신들을 불렀다는 것만 해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집에 도착한 어머니가 하는 행동을 보면 단순히 며칠 동안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허름한 문을 열고 들어간 그의 어머니는 호들갑을 떨며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가져갈 짐과 이곳에 놔두고 갈 물건을 분류하는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주가슈빌리는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이건 챙기고, 이건…음…놔두고 가도 될 것 같고, 이것도 애매한데…”
“어머니.”
“그러고 보니 그곳에 가서 전하를 뵙게 될 걸 생각하면 최소한 깔끔한 옷은 필요할 텐데. 출발하기 전까지 사놔야겠어.”
“어머니!”
“아이고, 깜짝이야. 왜 소리를 지르고 그러니 놀라게. 아 참, 너도 그러고 있지 말고 어서 네가 가져갈 물건들을 챙기려무나. 너무 많이 챙기지는 말고 짐이 많으면 이동하는 데 있어서 힘들테니까.”
“저희가 그곳으로 이사라도 가는 건가요? 왜 이렇게 호들갑이신 거에요.”
소년의 의문은 당연했다. 황태자가 자신들을 무슨 이유로 초대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마치 이사라도 가는 양 행동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참, 그러고 보니 내가 설명을 안 해준 것 같구나.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면…”
소년은 자신의 모친이 해주는 말을 듣자 자신이 아직 꿈 속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충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자신이 최근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실제로 존재하는지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던 신이 자신을 굽어살폈다고 느껴질 만큼.
“그러니까, 지난번 저희 아버지가 한 행동에 대해서 저희를 도와주셨던 사제분들과 지역 유지분들을 통해 그 일이 황태자 전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 거라고요?”
“그렇단다. 게다가 이런 일이 전국 각지에서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신 자비로우신 전하께서 마음 아파하시며 우리 같은 이들을 초대해주셨다고 하더구나. 게다가 너 같이 가정 형편으로 인해 배움의 길을 걷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은 직접 만드신 교육기관에서 배울 수 있게끔 해주신다고 하셨단다.”
거기에 어린이들만 불러오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그 가족들도 살 곳과 일자리를 상트페테르부르크 근교에 마련해준다는 것이 그녀의 설명이었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오늘이 자신의 인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날이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13살의 어린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18살의 청년마저 부하로 부릴 정도로 권력이라는 특성의 본질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소년에게 이번 기회는 말 그대로 하늘이 내려준 것처럼 보였다.
‘황태자 전하께서 직접 불렀다고는 하지만 그곳에서 내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지금보다 약간 나아지는 생활 정도만 누리게 될 거야. 정신 똑바로 차려, 주가슈빌리. 이번 일은 너뿐만 아니라 지금껏 고생만 하신 어머니를 호강시켜드릴 기회야.’
대놓고 주가슈빌리만을 초대하면 주변에서 얘기가 나올 것을 염려한 니콜라이가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아이들을 초대함으로서 이번 일의 본질을 흐리기 위한 연막으로 사용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한 행보의 일환으로 실시한 것이었다는 것을 제외하면 맞는 말이었다.
니콜라이가 그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더라도 널리고 널린 빈곤층인 그것도 러시아인이 아닌 조지아인 꼬마를 어떤 근거도 없이 등용한다면 뒷말이 나올 것은 분명했으니까.
소년은 지금껏 자신의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낀 적이 없었지만, 오늘만큼은 약간의 고마움의 편린이나마 마음속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자에 자신과 어머니에게 툭하면 폭력을 행사하며 학대하지 않았다면 자신에게 이런 기회가 오지 않았을 테니까.
‘단 그건 그거고 그동안 진 빚은 언젠가는 갚아드리겠습니다, 아버지.’
하지만 그동안 소년의 마음속에 새겨진 상처와 분노는 쉽사리 사라질 존재가 아니었다. 마치 강철판에 생긴 흠집이 시간이 지난다고 해도 무뎌질지언정 없어지지 않듯이.
하나 다행인 것은 주가슈빌리에게 공부란 그다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가 최근 공부에 흥미가 사라지던 이유는 성적이 안 나오거나 어려워서가 아니라 노골적으로 러시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요하는 교사들과 신학교 특유의 분위기였으니까.
그러나 오늘만큼은 그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들고 있었다. 비록 강압적이었다고는 하나 자신이 그곳에 가서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의 근거를 만들어 준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든지 러시아인이 되어주지. 그럼 되어주고말고.’
소년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가지고 있는 부채감은 다른 또래들과 비교해도 월등했다.
다른 집의 어머니들은 남편이 행사하는 폭력에 순응할지언정 그녀처럼 아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겠다는 집념 하나로 사제와 관리들을 발품을 팔면서 찾아다닐 정도의 직접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았으니까.
조지아인이라는 정체성마저도 자신이 받은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헌신짝처럼 집어던질 준비가 되어있을 정도로 소년은 자신의 어머니를 사랑했다.
여전히 짐을 챙기느라 여념이 없는 모친을 바라보는 주가슈빌리의 눈에는 눈물이 차올랐다.
‘어머니, 제가 한 가지만은 약속드리겠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하의 눈에 들어 출세한 뒤 호강시켜드릴 겁니다. 그때까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소년의 맹세는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그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새겨졌다. 자신의 짐을 챙기기 위해 움직이는 소년의 움직임을 따라 마룻바닥에 방울방울 물방울이 떨어졌다.
—‘과연 하나의 민족만으로 구성된 나라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나라보다 우월한 것일까?’
12살짜리의 아이가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었지만 최근 들어 소년의 생각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두였다.
여러 민족이 부대껴서 살아가는 이곳 오데사에서 3년 전부터 학교를 다니는 그에게 민족이라는 존재는 오히려 크게 와닿지 않는 개념이었다.
차라리 서로 간의 접촉이 거의 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에게 널리 퍼져있는 각 민족적 특성이라는 정보에 매몰되어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생활하며 만난 이들과 이런 주제로 말을 하기 전에는 다른 민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이 소년이 이런 생각을 품게끔 만들고 있었다.
다만 이런 인식은 소년이 처한 상황의 특수성도 고려해봐야 했다.
부유한 유대인 가문에서 태어나 별다른 고생 없이 자라온 그는 다른 하층 계급에 속해 있는 유대인들이나 이슬람과 같은 종교를 가진 이들이 겪는 일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보면 철이 들기엔 어린 부잣집 도련님의 이상주의적인 몽상이라고도 여겨질 수도 있었다.
이 소년의 이름은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시테인, 미래에는 트로츠키라 불리며 처음에는 손에 총을 들고 있는 노동자나 농민이나 다름없던 붉은 군대를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드는 존재로 창조해냈으며 레닌의 후계자로 여겨졌지만, 스탈린과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 망명한 멕시코에서 얼음송곳에 찔려 생을 마감한 시대의 풍운아였다.
‘어른들은 내가 이런 말만 하면 웃기만 하고 제대로 된 반응은 보여주지 않는단 말이야.’
하지만 지금은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어른들이 진지하게 반응해주지 않는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 소년이었다.
오늘도 세인트 폴 스쿨이라는 러시아계가 아닌 독일계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브론시테인은 자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푸는데 어려움을 겪고있는 수학 문제를 푸는 도중에 어제 저녁 식사 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사건의 발단은 어른들 간의 대화 도중 나온 단어와 관련되어 있었다. 어머니의 사촌인 스펜서가 근심 어린 얼굴로 말한 포그롬이라는 단어의 뜻을 물어본 것이 문제였다.
‘너는 아직까지 알 필요가 없는 단어란다, 라니 흥! 나도 알 건 다 안다구요.’
학교에서 매번 1, 2등을 다툴 정도의 성취를 나타내고 있는 소년에게 어른들이 항상 자신에게 보이는 태도는 불만의 대상이었다.
어린애 취급, 너는 알 필요 없단다, 흥미로운 생각이지만 아직 어린 티가 나는구나.
자기가 무슨 의견을 표명하거나 궁금증을 보일 때마다 그들이 보여주는 태도는 일관되어 있었다.
어제만 하더라도 단어 하나의 뜻만 물어봤을 뿐인데 스펜서가 보여준 모습은 단어를 모르고 있는 자신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알고 있는 것을 칭찬하는 게 아닌 모르는 것을 칭찬하는 어른, 소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수업을 진행할 때마다 문제의 해답을 모르는 아이는 야단을 맞고 아는 자신은 칭찬을 받았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소년의 의문을 더욱 증폭시킨 것은 사전에서 찾아본 포그롬의 뜻이었다.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는 소년이 펼친 책자에서 포그롬이라는 단어의 뜻은 단순히 박해라고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브론시테인이 평상시 사용하고 듣고 있던 러시아 말에서 박해라는 뜻을 가진 단어는 포그롬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른들이 왜 이 단어에 그런 태도를 보이셨던 걸까?
소년은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어른들이 이 영특한 아이에게 단어의 뜻을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까지는 소년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상처를 받는 경험을 한 적이 없었지만, 언젠가는 경험하게 될 순간을 최대한 뒤로 미뤄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제국이라는 나라는 유대인들에게 그다지 친절한 국가가 아니었으니까.
러시아 제국 내 유대인 정착 한계선이 존재할 정도로 유대인들은 이곳에서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물론 거의 전부라 할 수 있는 유럽국가들이 그들을 반기지 않았지만.이런 어른들의 배려심을 모르는 소년으로서는 불만의 대상이었지만 이런 노력이야말로 브론시테인이 아직까지 세상의 풍파를 맞지 않고 이상주의적인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보호해주는 울타리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런 보호가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는 만큼 언젠가는 소년이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충격을 받을 수 밖에 없겠지만.
그들에게는 다행스럽게도 단어의 뜻을 알게 된 브론시테인에게 포그롬이라는 단어에 숨겨져 있는 의미는 탐구의 대상이 아니었다. 다만 그가 가지고 있는 어른들은 때때로 이상하다는 인식을 강하게 만들어줬을 뿐.
이런 소년에게 러시아 제국을 지배하는 로마노프 황가의 황태자가 비록 미국이 곡물 시장에 뛰어든 이후 이전보다는 위상이 내려갔지만, 여전히 러시아 제1의 식량 수출 항구인 오데사를 방문한다는 일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로 여겨졌다.
이전보다는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실효중인 곡물수출과 관련된 정책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는 이유였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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