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40)
내가 오데사에 처음 도착했을 당시 느꼈던 인식은 활기찬 항구도시라는 느낌이었다.
비밀리까진 아니더라도 내가 온다고 해서 거창한 환영식을 할 필요는 없다는 말에 따라 기차역에 마중 나온 몇몇 인원을 제외하고는 일반 시민들은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게 바로 비밀리라고 하는 겁니다, 전하.”
“그런가요? 하지만 이상하네요. 왜 저를 전하라고 부르시는 거죠? 설마 대러시아 제국의 황태자님과 제가 같은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을 제가 호위로 데려온 겁니까?”
“…죄송합니다, 도련님.”
순방 첫날과 둘째 날에는 러시아 제국에서 4번째로 큰 도시인 오데사의 풍경을 구경한다는 일은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바빴다.
이유는 간단했다.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흔히 발생하는 부정부패의 실마리를 잡아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곳까지 온 이유가 트로츠키라는 미래의 거물을 만나보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순방의 공식적인 명목이 오데사에서 곡물 수출과 관련된 정부 방침이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확인하러 왔다는 것이었으므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회계장부에 누락된 건 없는지, 서류상으로는 비어있는 창고가 실제로도 기록된 것과 같은 상태에 있는지 등을 파악하느라 고생 좀 했지.’
물론 내가 일일이 서류를 뒤져본 것은 아니었다. 나와 함께 온 재무부 산하 관료들이 애를 써준 결과였다.
그들이 처음 황태자와 오데사로 출장을 갈 인원을 구한다는 소식을 듣자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는 휴가와 비슷한 여정이 될 거라는 기대에 부푼 상태였다는 것은 비밀로 하도록 하자.
‘기차에서 내가 이 여정에 기꺼이 자원해준 그대들에게 특별한 보상이 있을 거라고 말하자 그 친구들이 지었던 표정은 아직도 생생하네.’
말 그대로 특별선물이긴 했다. 오데사에 머무르는 기간 동안 커피 무제한 무료제공이라는게 보상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물론 출장을 자발적으로 한 이들인 만큼 특별수당이 나올 예정이었지만, 그 과실을 얻기 위해서 지나가야 하는 길이 평탄치는 않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귀족 출신 관료들 사이에서 Kaffe Kantate¹가 유행한다는 소리도 들려오는 것 같던데.’
최근 우리나라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독일의 바흐가 작곡한 곡이었지만, 지금은 커피에 매료된 이들이 종종 자신들의 집에 모여 연주를 듣는다는 소문이었다.
본래 영국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차 문화가 발달한 러시아 제국이었지만 최근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조금씩 커피 문화가 퍼져 나가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직은 미약한 움직임이었지만 분명히 주목할 만한 부분이었다. 장기적으로 러시아 내부에서 차 소비량이 줄어들고 커피 소비량이 늘어난다면 이러한 과정에서 내가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할 테니까.
높으신 분들이 세상의 온갖 피곤함은 다 짊어진 표정으로 있다가도 커피 한잔을 마시면 얼굴이 달라진다는 얘기를 들은 일반 시민들도 최근에는 사모바르²에 커피를 끓여 마시다가 청소를 하는 것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이것과 관련해서는 돌아가서 재무대신과 상의를 해봐야겠군.’
러시아의 화폐 개혁을 위한 세수확보의 노력 중 하나로 보드카 전매제를 시행했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는 제국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가장 많이 필요한 존재인 돈을 확보할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뭐, 일 생각은 이 정도만 하도록 하고.
“그러고 보니 오늘 날씨가 참 좋은 것 같네요. 안 그런가요, 아저씨?”
“그런 것 같습니다만, 걸으실 때는 다른 생각보다는 걷는다는 것에 좀 더 집중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도련님.”
나는 지금 내가 짜놓은 설정에 좀 더 몰입하기로 했다. 난생처음으로 오데사에 놀러 나온 귀족 집안의 철없는 막내아들.
물론 이런 식으로 나온다는 것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본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데다가 최근 잠잠하다고는 하지만 언제 어디서 인민주의자들이 테러를 저지를지 모른다는 반대 의견이 강했으니까.
당장 지금 내 뒤에 서 있는 빅토르도 내가 꺼낸 말에 가장 강하게 반대를 하던 인물이었다.
내가 일본을 순방하던 당시 호위 총 책임자가 돌아온 이후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빅토르는 자신의 직위보다는 내 안전을 챙기는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설득하는 데 애를 먹긴 했지.’
결국에는 내가 꺼낸 필살기인 표트르 대제께서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신념 아래 단신으로 적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들에서 직접 육체노동을 하셨지 않냐는 내 말에 굴복했지만.
‘물론 표트르 대제가 혈혈단신으로 비밀리에 나라들을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지.’
당시 표트르가 가는 나라마다 혹시라도 그의 신변에 이상이 생길까 전전긍긍하며 호위를 겹겹이 붙였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공식적으로 알려진 대제님의 업적을 폄하할 수 없었기에 지금 내가 오데사의 거리를 걸어 다닐 수 있었다.
나는 오늘 저녁에 예정된 세인트 폴 학교 방문 일정 전까지의 짧은 자유를 만끽하기로 했다.
“얼굴 좀 펴요.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입니까. 새들은 지저귀고 꽃들은 피어나고.”
“제 앞에 계신 분이 조금만 더 자신의 위치를 생각해주신다면 한결 마음이 편할 것 같군요.”
“러시아 제국에서 저만큼 자신이 어떤 자리에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티격태격하며 걷고 있자니 어느샌가 포코프스키라는 거리까지 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잠깐, 포코프스키? 어디서 들어본 거리 이름인데…
기시감에 젖어있는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분명 학생들은 학교에 갈 시간임에도 거리에 있는 한 명의 꼬마였다.
“도련님, 오늘은 이만하시고 돌아가시죠.”
“잠깐만요.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소년이 거리를 방황하는 것을 그냥 보고 지나칠 수는 없지요. 이런 아이 하나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이들 위에 군림할 수 있겠습니까?”
뒤에서 따라오던 빅토르가 한숨을 쉬는 게 들려왔지만, 내 관심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내가 지금 느끼는 기시감의 열쇠라고 여겨지는 소년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얌전해 보이지만 어린아이 특유의 자신감과 어른들을 바보라고 생각하는 자만심이라는 단어가 형상화한 것처럼 생긴 꼬마였다.
“안녕?”
“?”
최대한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지만 돌아오는 것은 호기심 어린 시선뿐이었다. 내가 건넨 인사를 무시하는 것을 본 빅토르가 꼬마를 훈계하려고 나서는 것을 제지하며 나는 재차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은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어야 하는 시간이 아니니? 혹시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학교 수업 시간이 달라진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학교에 가도 수업을 받을 수 없으니까 그렇죠.”
소년의 퉁명스러운 대답은 내 예상 밖이었다. 기껏해야 ‘오늘은 학교 갈 기분이 아니다.’ 정도의 말이 되돌아올 거라 생각했건만 학교에 가도 수업을 받을 수 없어서 이곳에 있다는 대답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니?”
“오늘 저녁에 황태자 전하께서 오신다는 얘기를 들은 학교 선생님들이 어제부터 수업 대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 연습만 시키시는데 학교에 갈 필요가 있나요? 저는 어제 제가 군인이라도 된 줄 알았다고요.”
아이의 말을 들은 나는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듯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학교에도 내가 방문한다는 이유로 별다른 행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를 했건만, 아무래도 선생들이 과잉 충성을 한 모양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학교가 아닌 거리에 나와 있는 이 소년은 진정한 모범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수업을 듣고 싶다는 이유로 반항을 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지난 생에서 사단장이 부대를 방문한다고 할 때마다 벌어졌던 일을 기억하는 나로서는 앞에 있는 이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높으신 분들이 좋은 마음으로 방문한다고 해도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으니까.
“어, 그것 참 유감이구나. 그래서 여기에 나와 있는 거니?”
“네, 그런데 아저씨는 누구세요? 아저씨도 직장이 있다면 일하고 계셔야 하는 시간 아닌가요?”
소년의 눈에 서린 경계심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상태였다. 이 친구의 말처럼 나도 다른 이들이 한창 노동하고 있는 시간에 하릴없이 거리를 떠도는 한량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아저씨도 너처럼 가장 필요 없는 일에 몰두하는 바보들을 피하려고 도망쳐 나온 참이지.”
“아저씨처럼 귀족인 높은 분들도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거로 고민하나요?”
내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얘기하자 꼬마는 약간 경계심을 누그러뜨린 것 같았다.
“그럼, 오히려 높으신 분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피곤한 일들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인물들이지. 그런데 높은 분이라니? 나 말하는 거니?”
“이 시간에 그런 좋은 옷을 입고 호위까지 데리고 다니시면서 ‘나 높은 사람이요.’라고 광고하고 있으면서 사람들이 모를 거라 생각하고 계셨던 건가요?”
어쩐지 내가 거리를 걷는 도중 나만 보면 사람들이 길을 비켜준다 싶었더니 아무래도 황태자로서의 삶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가장 기본적인 것을 간과한 것 같았다.
자신만만하게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나요?’라는 얼굴을 하는 소년에게 나는 더욱더 큰 흥미가 생겼다. 아무래도 오늘 순방은 이 꼬마와의 면담으로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런, 들켜버렸네. 그런 의미에서 오늘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걸 알려준 너에게 보답을 하고 싶은데 혹시 괜찮겠니?”
“먼저 유모한테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모르는 어른이 주는 걸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고 했어요.”
어린아이다운 대답이 돌아오자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아무리 어른스러운 척을 한다고 해도 아이는 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물론이지. 여기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거니?”
“네, 바로 여기가 제가 지내는 곳이니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나는 자신이 앉아있던 계단에서 일어나 허락을 받으러 가는 소년의 등에 대고 물었다.
“그런데 혹시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알려줄 수 있을까?”
“제 이름은 브론시테인이에요.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시테인.”
그 말을 남긴 채 소년이 문 안으로 사라지자 나는 이 거리의 이름을 보았을 때 느낀 기시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소년의 이름을 듣자마자 그대로 굳어버린 나를 보고 빅토르가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지만 내 머릿속은 온통 방금 들은 이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브론시테인, 트로츠키의 본명. 게다가 그가 오데사에 있는 학교에 다니던 때 살던 거리의 이름이 포코프스키잖아?’
아무래도 오늘 산책을 나오기로 한 결정은 틀리지 않은 듯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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