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41)
트로츠키, 아니 브론시테인이 자신의 유모에게 허락을 받겠다고 한 이유는 간단했다. 부모님과 현재 떨어져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농이면서 자식의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브론시테인의 부모님은 그가 교육을 받을 나이가 되자 오데사에 있는 모친의 사촌이 거주하는 아파트로 보냈다.
그들은 아들이 시골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수학하며 많은 것을 보고 넓은 시야를 가지는 것을 바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걸 듣기도 전에 아는 척을 한다면 안 되겠지.’
어디까지나 지금 그에게 나는 학교에서 행해지는 쓸데없는 일을 피해 나와 있는 동안 우연히 마주친 자신처럼 할 일이 없어 보이는 한량 귀족으로 생각되고 있을 테니까.
나 자신 또한 트로츠키를 만나기 위해 교육 현장을 보고 싶다는 핑계로 그가 다니는 학교를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이런 식의 만남은 예상외의 일이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어떠한 운명의 힘이 우리 둘을 이 자리에서 만나게끔 만든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손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이미 준비되어있는 자들뿐이지. 자신의 노력과 능력이 없다면 수없이 많은 기회가 다가와도 자신에게 행운이 다가왔다는 것도 모르고 보내버릴 테니까.’
그리고 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지금 내게로 온 이 순간을 헛되이 날려버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다만 브론시테인이 내려오기 전까지 가지게 된 의문 하나를 먼저 해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빅토르, 내가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요.”
“예, 도련님.”
“나 말입니다. 아저씨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요?”
아직 24살이라는 나이이지만 나는 괜히 앞머리를 매만졌다.
분명 아직은 로마노프 황가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M자형 탈모가 심하게 오지 않았다고 느끼고 있었지만, 괜시리 휑하게 바람이 통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제 생각입니다만, 아무래도 도련님의 외모보다는 풍기는 분위기나 하는 말씀의 어투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도 때때로 도련님이 24살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때가 있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다행입니다. 하긴 이 정도로 잘생겼으니까.”
“물론, 정말로 어른스러운 분이시라면 이런 식으로 밖을 돌아다니시진 않았을 거란 생각도 합니다.”
아무래도 나와 융합된 니콜라이의 습관이나 분위기로 인해 액면가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듯했다.
비록 그가 러시아 혁명으로 인해 폐위될 때까지도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다고는 해도 50살의 중년이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게다가 나와 합쳐지면서 그가 행했던 일들에 대한 평가도 받아들인 것 같고.’
내가 노안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튼 니콜라이 때문이라고 책임을 전가하며 빅토르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보니 오늘의 주인공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내셨다.
“유모가 한두 시간 후에는 학교로 가야 한다니까 그때까지는 여기서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어요?”
“너희 집에서 말이니?”
“예. 들어오시겠어요?”
“그럼, 물론이지. 다만 원래대로라면 내가 널 대접한다고 했으니 이 약속은 우리 사이에 달아두도록 하자. 아무리 늦어도 내일까지는 약속을 지키마.”
내가 브론시테인에게 장담했지만, 그의 얼굴에서는 나에 대한 신뢰가 그다지 느껴지지 않았다.
소년의 뒤를 쫓아 들어간 집은 정갈했다. 화려함이 묻어나오지는 않았지만,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세간살이와 바닥은 이 방의 주인이 어느정도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아저씨의 저택에 비하면 누추할지 몰라도 들어오세요.”
“고맙구나, 그런데 혹시 종종 친구들로부터 말이 직설적이라는 얘기를 듣지 않니?”
“친구요? 같은 반에 있는 녀석들은 죄다 바보밖에 없어요. 서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답답한 걸 못 참겠던걸요.”
“그러면 선생님과 같은 어른들에게 상담을 해보는 게 좋지 않았을까?”
내 말을 들은 브론시테인은 한숨을 내쉬더니 나에게도 별로 기대를 안 한다는 눈빛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라고요. 제가 무언가 말만 하면 어린애 취급에 저는 아직 알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기만 하는데 뭘 상담할 수 있겠어요.”
아무래도 성격이 나쁘기로 유명했던 트로츠키는 어린 시절부터 떡잎이 남다른 것처럼 보였다.
당장 자신의 입으로 내가 귀족이라는 걸 알아차렸다는 것을 말해놓고도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흠…그랬구나. 그럼 혹시 다른 어른들이 그런 식으로 말한 게 무엇인지 나한테 알려줄 수 있겠니?”
물론 나에게는 그가 다른 어른들에게 불만을 가지는 만큼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라는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지만.
내 질문을 받은 브론시테인은 조금 망설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오늘 처음 만난 나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궁금증을 풀기에는 부담이 있는 것 같았다.
“오히려 나이기에 네가 가지고 있는 호기심을 해결해줄 수 있는 열쇠가 있지 않을까? 다른 어른들은 너를 오랜 기간 봐왔지만 나는 오늘 처음 만났기에 너에 대한 선입견이 없잖니.”
내 설득에 용기를 받은 듯 소년은 자신이 몇 번이고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았다가 비웃음에 가까운 반응만을 얻었을 질문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제가 여기에서 직접 보고 느낀 것과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다른 것 같아서 의문이에요. 학교에서는 하나의 민족으로 뭉친 국가야말로 진정으로 나아갈 길이며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수단도 동원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느낀 건 오히려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 나라일수록 강력하다는 느낌이었어요. 다양한 이들이 다양한 생각을 가진 나라여야 마주친 장애물도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장 여기 오데사만 하더라도 다양한 민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도시잖아요.”
소년이 막힘없이 쏟아낸 문장은 이 아이가 얼마나 이 문제로 생각을 했는지 가늠할 수 있게 해주었다.
소중한 용기를 내어 본인이 가진 고민을 나에게 털어놔 준 브론시테인을 보고 있자니 나는 처음 가졌던 생각을 약간 수정할 필요를 느꼈다.
이 집에 들어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12살에 불과한 꼬마를 설득도 아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지만.
‘나 또한 다른 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가졌던 것이 아닐까?’
짧게 반성한 나는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소년에게 대답을 해주기 위해 먼저 질문을 던졌다.
“흥미로운 생각이구나. 일리가 있어. 국가라는 집단이 마주하는 문제에 대한 해답이 하나라고 정해진 게 아닌 만큼 다양한 집단에서 나오는 다양한 생각이 답을 도출해내는 것에 도움이 될 수도 있지. 하지만 다른 시점에서 보면 오히려 바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급한 상황에서는 오히려 장애물이 되지 않을까?”
“어떤 상황을 말씀하시는거에요?”
브론시테인은 처음으로 자신이 말한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주는 어른을 보자 신이 난 것처럼 보였다.
“예를 들어 전투가 한창 벌어지는 와중에 네가 내릴 명령을 수행해야 하는 병사들이 자신들의 생각은 다르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이건 매우 극단적인 예이니까 넘어간다고 치자. 하지만 요즘과 같은 혼란스러운 시대에 다른 나라들이 빠른 속도로 국론을 하나로 통합해 행동하는 와중에 우리나라는 기나긴 토의과정을 거쳐야만 한다면 때로는 매우 불리한 상황에 빠지지 않을까?”
내 질문을 받은 아이는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나도 다양한 집단이 가지는 가치를 모르는 건 아니란다. 다만 그들을 하나로 묶어줄 테두리가 필요하다고 여기는 거지.”
“그러면 아저씨가 생각하시는 그 테두리가 뭔가요?”
나는 소년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려 웃은 뒤 대답했다.
“물론 차르에 대한 충성심 아니겠니? 학교에서 말한 것처럼 다양한 민족이 가진 특수성을 러시아 민족이라는 것으로 덮어씌우는 것보다는 당신이 누구이던 아니면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던 차르에게 충성한다면 당신은 러시아인이오. 라고 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단다.”
내가 말한 내용은 자칫 잘못하면 위험한 방향으로 폭주할 수 있는 사상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러시아를 빠른시일 안에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폭풍에도 견딜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취해야 하는 태도이기도 했다.
“음…”
내 대답을 들은 브론시테인은 바로 반응을 보이지 않고 내가 한 말을 곱씹어보는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내가 한 말이 민족주의 관점으로만 보았을 경우 해석되지 않기에 아직 12살의 그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이들을 위한 정책도 필요하겠지. 네가 말한 대로 사람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무시되어지는 목소리도 존재할 테니까. 다만 이런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건 나의 몫이 아닌 미래에 러시아를 이끌어 나갈 너와 같은 세대의 몫이 아닐까 싶구나.”
산업화와 개혁, 듣기에는 좋지만, 이 두 단어를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인민들의 피와 눈물과 같은 희생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가 피를 먹고 자라듯 한 국가의 체질을 바꾼다는 것에 대가가 존재하지 않을 리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와 같은 희생은 나와 같은 위정자들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짐이었다.
남들보다 부강한 나라를 내 세대에 건설할 수 있을지언정 모두가 혜택을 받는 나라, 모두가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다음 세대에도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그저 공산혁명을 막고 살아남는 것이 나의 목적이었지만, 이 몸으로 살아가는 날이 길어질수록 러시아라는 나라에 가지게 되는 애착이 강해져 갔다. 이런 영향은 단순히 니콜라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다.
‘사마라에서 이반과 만난 그날부터 맹세한 일이니까.’
다만 아직 12살의 소년에게는 위와 같은 내 말에 숨겨진 의미보다는 내가 자신을 인정해줬다는 것이 더 크게 다가온 것처럼 보였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요. 어른들에게 부족한 점이 있다면 제가 채워드리는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말만 들어도 든든한걸? 그럼 그거 말고 다른 질문은 없니?”
“혹시, 포그롬이라는 단어를 아세요?”
이 질문을 받자 나는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그롬.
러시아 제국뿐이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를 상징하는 말.
다만 내가 이 질문에 답을 해줄 시간은 조금 뒤로 밀려난 것 같았다.
“정말 죄송합니다만, 나으리. 이제 학교로 가야 할 시간이 되어서요.”
“아,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요.”
“벌써요? 그래도 제 질문에 답해줄 만큼의 시간은 있겠죠?”
나를 붙잡는 브론시테인이었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 후 빅토르가 가져다준 겉옷을 입으며 얘기했다.
“미안하지만, 나도 이만 가봐야겠구나. 네가 보기엔 내가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보여도 이래 봬도 러시아 제국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에 하나거든. 다만 한가지 약속은 더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뭔데요.”
나는 불만에 가득 차 있는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오늘 저녁 너희 학교에 나도 갈 예정이거든. 못다 한 얘기는 그때 하자.”
꼭 이에요! 꼭! 이라고 외치는 아이를 뒤로 한 채 문을 나서자 빅토르가 나에게 말했다.
“도련님의 악취미는 때로는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런 일도 즐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답답한 생활을 견딜 수 있겠나.”
나는 오늘 저녁 브론시테인이 지을 표정을 상상하자 웃음이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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