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42)
관저로 돌아오는 길은 처음 산책을 나섰을 때보다는 자유가 제한되는 여정이었다. 세인트 폴 학교의 교장이 나를 맞이한답시고 학생들을 연습시킨 결과 내가 오데사에 왔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퍼졌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지방에서는 반정부세력에 의한 귀족들이나 고위직들에 대한 테러가 종종 발생했기에 내 안위를 생각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리슐리외 계단¹도 직접 걸어보고 싶었는데 아쉽게 됐군.”
도중에 시청에서 보낸 호위병력과 함께 온 마차를 타고 돌아가던 도중 내가 한 말을 들은 빅토르가 내 표정을 살피더니 교장이 불쌍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전하에게 잘 보이려고 했던 그 친구의 노력이 오히려 역효과로 나타날 것 같군요. 부디 성인들의 가호가 교장에게 임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자네는 때로 나를 너무 악독한 사람으로 여긴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때가 있어. 내가 이런 일 하나로 화를 내는 그런 사람으로 보이나?”
지난번 레닌과 관련된 일을 잘 마무리한 일솜씨와 그동안 해온 업무에 대한 처리능력을 높이 사 곁에 두고 있는 빅토르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이런 신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서로 간에 편한 관계가 흔한 것은 아니었지만, 빅토르 특유의 능글거림과 내 사고방식에 남아있는 21세기 현대인의 인식이 만난 결과였다.
게다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런 관계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도 무시할 수 없었다. 주변의 모든 이들이 신하 아니면 적이라는 상태는 사람의 심리에 어마어마한 부담감을 줄 테니까.
“이 불충한 신하가 또다시 전하에게 무례를 저질렀군요.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이젠 죄를 청하지도 않는단 말이지.”
다행히도 별다른 일 없이 관저에 도착한 후 나는 오늘 저녁 행사에서 말할 연설문의 내용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다.
이미 오후에 있었던 만남을 통해 어느 정도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정복을 입고 머리를 다듬을 시간은 충분했다.
학교에 도착하자 나를 향해 꽃다발을 건네주는 아이들과 군악대가 나를 반겨주었다.
어린이들의 절도있는 행동과 웃는 얼굴로 고정되다시피 한 표정이 그들이 이틀간 어떤 노력을 했는지 말해주는 것 같았다.
‘사단장 이취임식이 떠오르네.’
잠깐의 상념이 지나자 나의 방문을 오매불망 기다린 것처럼 보이는 교장과의 대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러시아 제국의 영광을! 전하께서 저희 학교를 방문하시다니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영광입니다. 학생들이 모인 장소에서도 환영행사가 진행될 예정이니 그쪽으로 모시겠습니다.”
“과분한 환대에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군요. 학생들이 행동하는 걸 보면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 잘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마치 잘 훈련된 군인과도 같다고 해야 할까요? 이 정도로까지 제 방문을 준비해주시다니 고생이 많았겠습니다.”
“하하하,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을 뿐입니다. 전하께서 좋으시다니 제가 더 기쁘군요.”
높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랫사람을 고생시키는 모습은 오히려 19세기이기에 더 잘 나타나고 있었다. 신분제라는 제도가 아직도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었으니까.
다만 그가 간과한 것은 내가 이런 행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몰랐다는 점이겠지.
나는 학생들이 짓고 있는 웃음과는 다른 웃음을 보여주고 있는 교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제 말은 학생들이 고생을 많이 했을 것 같다는 얘기였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의 학생들이 이 정도로 움직일 정도면 상당히 연습을 많이 했겠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내 말에서 위화감을 느낀 듯 교장은 말꼬리를 흐렸다. 사실 내가 가지고 있는 인식은 현시대에서 오히려 소수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당장 영국만 하더라도 어린이의 광산노동이 금지된 지 50년밖에 되지 않은 시대였으니까.
아직도 러시아의 농촌에서는 어린아이=노동력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만큼 이곳에 있는 학생들은 대다수의 어린이들보다는 축복받은 환경에 있다고 할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는 군인과 같은 절도있는 모습보다는 학생다운 모습이 더 잘 어울린다는 말입니다.”
내가 한 말의 뜻을 생각하고 있는 교장을 지나쳐 학생들이 모여있는 장소에 마련된 강단에 오르자 주변이 고요해졌다.
모두가 내가 입을 열기를 기다리며 침묵을 지키고 있는 순간 한 아이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정적을 갈랐다.
“어!”
“뭐야, 누구야.”
“정숙!”
그 소음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오늘 오후만 하더라도 나와 대화를 나누던 브론시테인이었다.
아무래도 할 일 없는 한량이라 생각했던 내가 황태자라는 것을 알게 되자 자신도 모르게 경악을 한 것처럼 보였다.
그 증거로 오른손이 어깨 위치까지 들려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보아하니 나에게 삿대질을 하기 직전에 머리가 아닌 본능으로 멈춘 듯했다.
“브론시테인이야? 저 녀석 잘난 척이란 척은 다 하더니 저게 뭐 하는 거람.”
아무래도 우리의 친애하는 꼬마 친구에 대한 주변 아이들의 인식은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은 소년이 얼굴이 빨개진 채로 수그러드는 걸 볼 수 있었으니까.
연설을 시작하기 전 발생한 소란을 보고 교장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나는 속아 넘어간 브론시테인을 그만 구제해주기로 했다.
그에게 잘못이 있다면 내가 그에게 정체를 밝히지 않은 것밖에 없었으니 말이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제가 바로 여러분이 살아가고 있는 나라인 러시아 제국의 황태자 니콜라이입니다.”
연설의 시작 부분을 들은 선생들을 비롯한 어른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투가 지나치게 정중했기 때문이겠지.
평범한 귀족도 아닌 황태자가 일반 평민의 자식들도 섞여 있는 이들에게 하는 말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내 말을 들은 이들의 이목이 나에게 집중됨에 따라 우리의 불쌍한 브론시테인에게 쏟아지던 화살과도 같은 눈빛들은 사라졌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있던 소년이 다시금 나를 쳐다보는 것을 확인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제가 이곳 오데사에서 공장도 항구도 아닌 이곳 학교에 온 이유를 궁금해하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여러분이야말로 미래의 우리 러시아 제국을 지탱할 소중한 인물들이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어린이들을 산업현장이나 농업현장에 뛰어들게 한다면 생산량이 두 배는 늘어날지도 모른다고. 다만 이는 근시안적인 시각에 불과합니다.”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단상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좌중을 돌아본 뒤 말을 이어나갔다.
“여러분은 무궁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교육만 받는다면 미래에 생산성을 2배로 늘릴 수 있는 기계를 발명할 수 있는 사람이 단순노동에 동원되어 그 가능성을 잃어버린다면 이 얼마나 큰 손실입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는 공장이나 농장, 물건들을 수입하고 수출하는 항구나 이러한 물품을 운송하는 기차역도 현재의 러시아 제국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그곳이 아닌 이곳 교육 현장의 최전선이라 할 수 있는 학교를 방문하겠다 마음먹은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다만 학생들 가운데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감명받았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치고 있는 이들은 적어 보였다.
대다수는 그저 옆에서 통제하고 있는 선생들의 통제에 따르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나는 손을 들어 화답해준 뒤 좌중이 조용해지자 오늘 진짜로 하기 위해 준비된 말을 시작했다.
“다만, 이러한 이유만이 제가 이 자리에 오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저는 오늘 우리 러시아 제국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 또한 앞으로 이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에 일조할 여러분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여러분들은 포그롬이라는 말을 알거나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내가 포그롬이라는 말을 꺼내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짓는 어린이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움찔거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장 이곳 오데사에도 11년 전에 불어닥쳤던 광풍이었으니까. 그들은 당시 벌어진 일을 아직도 기억하는 이들인듯했다.
“포그롬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본다면 박해라는 뜻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다만 이 단어에 숨겨져 있는 뜻은 그보다 더 음습하고 오래전부터 행해진 일에 대한 진실이 담겨있습니다. 포그롬은 유대인이라는 집단에 대한 폭력을 의미하니까요.”
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브론시테인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확인했다. 다만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어린 시절부터 별로 없었다는 사람답게 엄청난 충격을 받지는 않은 것처럼 보였다.
“이런 폭력의 역사는 그 뿌리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넓습니다. 물론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유대인들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집단인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그런 것을 핑계로 포그롬을 정당화하지는 않겠습니다. 이는 저 혼자만의 의견이 아닌 저의 아버지와 종무원장 또한 생각을 같이하는 주제이니까요.”
실제로 1881년 4월부터 12월까지 남부지방에서 포그롬이 대대적으로 발생하자 당시 아버지와 종무원장은 이를 수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물론 그들이 유대인들에게 온정적이어서가 아닌 이러한 폭력의 분출이 언제 방향을 틀어 정부를 향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었지만.
그 결과로 당시 여름 포베도노스체프는 남부지방의 성직자들에게 유대인들에 대한 폭력을 단속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아버지 또한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이그나티예프의 입을 빌려 당시 포그롬의 발생 원인 중 하나였던 ‘차르가 유대인을 죽이라고 명하셨다.’라는 소문이 사실이 아니라고 밝히셨다.
“지난 1881년 발생했던 포그롬은 저 간악한 인민주의자들의 사주를 받은 이들이 일으킨 것이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바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일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이유가 단순히 누군가가 사주해서 혹은 우리가 유대인들을 미워하기에 일어나는 것일까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현대에서 포그롬의 원인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짐에 따라 여러 가지 복합적인 사정이 작용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그중 하나만을 강조할 생각이었다.
때로는 사실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보다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을 선택해서 얘기하는 태도도 위정자에게는 필요했으니까.
“여러분들 중에서는 유대인들과의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고 생각합니다. 사고방식이 다르기 때문이 아닌 말 그대로 언어가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우리 땅에서 살아간 지도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들 중 대다수는 러시아어가 아닌 자신들의 언어 이디시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실제로 1897년 이루어진 조사에서도 러시아 내에서 살아가는 520만 명의 유대인 중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10만 명에 불과했다.
“또한 자신의 집이 아니라 세를 들어서 살아가는 이들조차 집주인이 정한 규칙을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리와 융합되어 살아갈 생각보다는 자신들의 안식일과 같은 전통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해보면 혹자는 유대인은 우리 러시아인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틀렸습니다.”
나는 다시금 물을 마시며 의도적으로 말을 멈췄다.
때로는 연속적인 말의 폭풍보다 약간의 침묵이 더해진 연설이 더욱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러시아 땅에서 살아가며 차르에게 충성을 바친다면 그들 또한 러시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을지언정 국가에 충성하고 자신들의 의무를 다한다면 유대인들도 우리 자랑스러운 러시아 제국의 일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폭력이 아닌 여러분과 같은 학생을 대하듯 차분히 인내심을 가지면서 사회로의 동화를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말하고 있는 내용은 국가주의에 가까운 말이었다. 민족주의만큼이나 폭주한다면 위험한 사상이라 할 수 있었지만 러시아 제국의 특성상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었다.
민족주의를 선택한다면 우리의 영토 중 핀란드나 폴란드는 물론이고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중동 지방도 뱉어내야 할 판이었으니까.
‘게다가 민주주의와 같은 정치체계는 현재 러시아 제국의 상태로 비춰봤을 때 아예 말이 안 되는 선택지고.’
민주주의에 필수적 요소라 할 수 있는 시민계급이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연설이 퍼져 나갔을 때의 파급효과는 섣부르게 예상할 수 없었다.
당장 러시아의 지식인들 사이에서의 논쟁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 사상을 어떻게 생각할지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다행인 것은 가장 격렬하게 반응할 종교계와 귀족들을 이미 내가 통제하에 넣었다는 점이었다.
“우리는 계속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저 극동지방부터 이곳 오데사를 비롯한 러시아 전역에 있는 이들과 함께 전진할 것입니다. 차르에게 충성을 바친다면 그 사람은 러시아인이라 할 수 있다는 자세를 견지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가 어떠한 인종이나 아니면 어떠한 종교를 가지고 있다해도 말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우리가 나아간 길 뒤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잠재우는 일이라는 미래의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위와 같은 말을 마지막으로 연설을 마쳤지만, 아까와 같은 박수는 터져 나오지 않았다. 정적만이 흐르고 있던 순간.
짝…짝…짝…
멍하니 서있는 사람들 사이로 브론시테인만이 홀로 박수를 치고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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