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44)
주가슈빌리에게 조지아어로 인사를 건낸 것은 별다른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그저 초창기 시절에는 민족주의자로서의 성향을 나타냈다는 그에게 좋은 첫인상을 남기기 위해 가벼운 마음으로 행한 인사였을 뿐인데.
내가 말한 안녕이라는 조지아어를 들은 주가슈빌리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을 보고 나는 당혹스러웠다.
발음이 안 좋았나? 아니면 사실은 이 말이 조지아어로 욕설을 뜻하는 것이었나?
원인을 생각하던 나를 앞에 두고 갑자기 소년이 무릎을 꿇자 나는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얘 왜 이러는 거야?
“전하께서 저에 대해 어떤 말씀을 들으셨는지는 몰라도 저는 그루지야인이 아닌 러시아인입니다!”
다소 발음이 어색해 딱딱하게 들렸지만,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분명히 러시아어였다. 주가슈빌리가 필사적으로 외치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아무래도 우리는 서로 오해가 있었던 모양인 것 같았다.
나는 역사책에 기록되어있던 스탈린만을 생각하며 내 눈앞에 있는 아이가 스탈린의 어린 시절의 가치관과 동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고 있었고, 주가슈빌리는 자신이 학교에서 러시아어를 강제로 사용하라고 하던 제도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나타내던 것을 내가 비꼬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나는 우선 그가 가지고 있는 오해를 해소시켜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자네가 나의 아버지인 알렉산드르 3세 폐하께 충성을 바치는 신민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네. 아무래도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군.”
내가 직접 무릎을 꿇고 있는 아이를 일으켜주자 주변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시종과 같은 이들도 놀란 눈치였다. 나는 그런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루지야어로 인사를 건낸 것은 별다른 의미가 있던 게 아니야. 그저 자네가 그루지야 지방 사람이기에 보다 편하게 사용할거라 생각한 말로 우리의 첫 만남을 부드럽게 만들려고 한 거지. 나는 그대가 러시아인이라는 사실을 부정한 적이 없네.”
아무래도 공식적인 자리에서 행해지는 대화인 만큼 어린 소년과의 대화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딱딱한 말투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게다가 이런 자리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러시아인이라고 규정짓는 경계는 무엇인가?’에 대한 장광설을 펼칠 수도 없었으니까.
다행히도 주가슈빌리의 얼굴에 서려 있던 근심은 어느 정도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내가 직접 일으켜준 데다가 확언에 가까운 말까지 해주니 자신이 생각한 것이 아무래도 잘못되었다고 느낀 것 같았다.
“물론입니다, 전하! 제가 가지고 있는 러시아 제국과 차르에 대한 충성심은 그 누구보다도 크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하하하, 당연히 그래야지. 앞으로 받게 될 교육 과정에서도 자네가 가지고 있는 애국심에 비례하는 성과를 내줄 거라 기대하지. 그대의 어머니가 보여준 교육에 대한 열정과 자식을 향한 사랑은 매우 인상적이었어. 부디 어머니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게나.”
“물론입니다! 결단코 전하가 실망하시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전하께서 주신 이 기회가 어떤 의미인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까요.”
나는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나와 인사하기를 기다리는 다음 사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주가슈빌리와의 대화만 지나치게 한다면 주변인들이 부자연스럽다고 여기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다른 아이들이 황태자에게 특별 대우를 받은 아이에 대한 질투심과 시기심으로 따돌림을 행할 수도 있으니까.’
물론 고향 땅에서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이도 휘하에 있는 무리에 넣었던 주가슈빌리가 쉽게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불필요한 충돌은 발생하지 않는 게 더 낫지 않겠는가?
‘다만…’
무릎을 꿇는다는 행위로 이미 이목을 끌어버린 소년에게 주변인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눈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흥미가 대부분이었지만, 몇몇 눈치 빠른 아이들은 주가슈빌리가 내게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는 것을 파악한 것처럼 보였다.
‘이런 맛에 독재자들이 휘하에 있는 인물들이 충성경쟁을 하는 모습을 즐겼던 건가?’
휘하 관료들이 나에게 충성경쟁을 하느라 행정력을 낭비하는 것은 용납할 생각이 없었지만, 이 정도의 귀엽다고 할 수 있는 해프닝까지 내가 일일이 개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이런 것까지 내가 손을 댄다면 더 역효과가 나겠지.’
어김없이 내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는 소년을 앞에 두고 나는 지난번 오데사에서 했던 연설이 러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가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얘기했던 내용에는 얻을 수 있는 것과 그로 인해 잃게 될 것들이 확연하게 드러나 있었다.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건 복잡하기 짝이 없는 발칸반도 문제에서 어느 정도 물러날 수 있다는 점이지. 그 과정에서 발칸으로 인해 발생할 막대한 재정적 부담도 일부분이나마 해소할 수 있을테고.’
21세기에도 세계의 화약고라 불렸던 발칸반도는 현시점에서는 비스마르크가 평가했듯이 언제고 온 유럽을 파멸로 이끌지 모르는 연기를 내뿜고 있는 활화산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던 사라예보 사건의 원인 중 하나가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였으며 1차 세계대전의 전조 격이라 할 수 있는 발칸 전쟁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가장 크게 잃게 될 것도 발칸반도에 있는 3국에 대한 영향력의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점이란 말이지.’
1892년이라는 이 시점에 대표적인 발칸반도에 위치한 국가인 불가리아, 세르비아, 루마니아에 대해 미칠 수 있는 러시아의 영향력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비해 밀리고 있는 상태였다.
‘불가리아에 대한 내정 간섭과 오-헝 제국이 옹립한 페르디난트에 대한 인정을 아버지가 안함으로서 관계가 불편해진 데다가 스테판 스탐볼로프가 불가리아 수상으로 있는 한 관계 회복은 요원하지. 그는 반러주의자에 민족주의자니까.’
원 역사에서는 1894년에 페르디난트가 스탐볼로프를 사임시키는 등 화해의 손길을 먼저 내밀어 관계가 회복되었지만, 이번에도 그대로 진행될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었다.
이미 내가 일본에서부터 지금까지 행한 일들로 인해 잔잔하던 호수에 일렁거리는 파면이 퍼져 나가고 있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원래대로 역사가 진행될 거라 낙관하는 것은 좋지 않았다.
‘세르비아는 지난번 발생했던 세르비아-불가리아 전쟁에서 오-헝 제국의 지원을 받음으로써 합스부르크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고 있고 루마니아도 1885년 동루마니아에서 발생한 반란에 대해 우리가 지원을 해주지 않음으로써 러시아에 대한 실망감을 가지고 있는 상태이지.’
또 이미 사회에 퍼져 나간 지 오래인 범슬라브주의에 강하게 영향을 받은 극렬민족주의자들의 반발도 생각해야 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차르에게 충성을 바친다면 러시아인이다.’라는 내 말이 게르만족의 피가 섞인 로마노프 황가이기에 가능한 말이라고 여겨질 테니까.
‘게다가 내가 한 말에 반발할 민족주의자들이 슬라브주의자들만 있는게 아니라는 것도 문제군.’
러시아 제국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수민족들에게도 내가 한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생각하면 갈 길이 멀어 보였다.
사라예보 사건의 원인 중 하나가 오스트리아 합중국이라는 시대를 앞서나간 계획을 세운 황태자가 황제로 등극한다면 영영 독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이 과격하게 나선 거라는 평가가 있을 정도였으니까.
‘최소한 앞으로는 오데사에서처럼 경호원 한두 명만 대동하고 돌아다닐 수는 없겠군. 내 목숨을 노리는 이들 목록에 인민주의자뿐만 아니라 각 소수민족의 극렬 민족주의자들도 추가될 테니까.’
다만 그 과정 속에서 극단주의자들은 자연스럽게 배척당할 거라는 것이 내 예상이었다.
앞서 말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의 모임인 검은 손도 이런 식의 포용 정책이 이어진다면 자신들의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적어질 것을 우려해 사라예보 사건을 일으켰으니까.먹고 사는 문제와 자신들이 받는 차별이 해소된다는 희망이 생기면 사람들은 극단적인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마련이니까.
사회가 유지되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판단이 선다면 과격한 폭력조직을 멀리하는 선택을 할 것이 분명했다.
‘그 과정에서 조만간 온 유럽에 불어닥칠 광적인 민족주의 바람에 휩쓸리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만.’
극단적인 민족주의는 현재 유럽에 위치하고 있는 국가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어느 정도는 각 정부들이 조장하기도 했지만, 이런 광기가 몰고 올 비극을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광기 어린 우리 민족이 우월하며 다른 민족들을 지배할 운명을 타고났다는 사상이 가져온 홀로코스트 이후에야 민족주의에 대한 경계 어린 시각이 받아들여졌으니까.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콘스탄티노플에 대해 러시아 제국이 가지고 있는 이상할 정도의 집착도 어느 정도는 사라지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비록 오스만 제국이 지금처럼 겉보기만 거대한 러시아 제국에게도 한 끼 식사가 담긴 도시락 상자와 같은 존재로 전락했다고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외부로의 진출보다는 내부 규합과 내실을 다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분명 이 몸에 빙의한 후 몇 개나 되는 관문을 통과하고 장애물을 넘어왔다고 여겨왔지만, 내 눈 앞에 펼쳐진 길을 보고 있자면 한숨만이 나왔다.
게다가 조만간 한반도에서 벌어질 청나라와 일본 간의 충돌에서 우리가 취할 전략에 대한 옵션들도 미리 준비해놔야 했다.
원 역사와 그대로 청일전쟁이 벌어진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한반도를 둘러싼 청나라와 일본의 충돌은 필연적이었으니까.
가뜩이나 부족한 재정이 나로 인해 더더욱 궁핍해진 일본이 취할 행동은 다른 나라를 통해 자금을 수급하는 것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애신각라 황실의 정신적 고향이자 심장부인 만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한반도를 청나라가 자신들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묵인할 리도 없었기에 설사 동학농민운동이 없었다 할지라도 두 나라 간의 대결은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청나라를 지원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일본을 이기고 기고만장해진 청나라가 우리가 제시하는 요구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고려해봐야 했다.
청나라가 러시아에 만주 철도 부설권과 같은 권리를 내준 배경에는 청일전쟁 패배 이후 믿을 만한 동맹을 찾아 헤매던 청나라의 필사적인 노력도 존재했으니까.
게다가 지금 청나라가 러시아에 가지고 있는 인식이 워낙 나빴기 때문에 지금 청나라에 접근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우리가 제시하는 조건을 선뜻 받아들일지도 미지수였다.
‘가장 좋은 일은 두 나라 간의 충돌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닌 최대한 길게 늘어지며 상대방이 먼저 항복하기만을 바라는 상태로 소강 되는 건데…’
아니면 제3의 길로 조선에 대한 지원을 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했다. 고종이 현재 조선에 있는 러시아 영사인 카를 베베르와 친한 데다가 극동지방에서 러시아의 이익을 대변할 챔피언을 육성한다고 생각하면 구미가 당기는 옵션이었다.
‘다만 이렇게 된다면 일본을 자신들의 챔피언으로 생각하고 있는 영국이 개입할 게 분명한 데다가 미국도 가만히 앉아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문제군.’
이미 목표로 삼았던 주가슈빌리도 만났겠다, 흥미에서 멀어진 만남 행사였기에 부담 없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지만, 내가 가진 고민은 해소되기는커녕 점점 커져만 가는 느낌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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