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te the Communist Party! RAW novel - Chapter (46)
“좋아, 계획대로군.”
나는 전국 각지에서 보내져 오는 오흐라나의 보고서를 받아보며 미소지었다.
여러 개가 뭉친 나뭇가지는 부러뜨리기 어렵지만, 단 하나의 나뭇가지는 부러뜨리기 쉽다는 케케묵은 고언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차후 국내에서 문제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는 불씨가 될 수 있는 이들이 분열된 편이 좋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실제로 폭력을 동반한 유혈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할 필요성도 존재했다.
‘괜히 유대인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종무원장이나 아버지께서 1880년 포그롬이 확산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신 게 아니지.’
분명 당시 포그롬에 나선 이들의 명분은 유대인이 암살한 알렉산드르 2세 폐하의 원수를 갚는다는 것이었지만, 모인 대중들의 광기는 언제 어느 방향으로 뻗어 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이런 점에서는 오흐라나의 유능함에 감사해야겠군.’
지난번 포베도노스체프가 아버지가 계신 크림반도로 갔다는 보고를 고의적으로 누락시켰던 플레베는 이후 종무원장이 실각하자 나의 충실한 사냥개로 변모한 후였다.
내무부 부장관이라는 직책에서 오흐라나 실무 책임자로의 강등 이외에는 다른 처벌이 가해지지 않았지만, 그로서는 이 정도로 끝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긴 본인이 모시던 종무원장이 시베리아 벌판에서 죄수들과 노동자들에게 격려나 해주는 사람으로 전락한 걸 목격했으니 어느 정도 당연한 일이군.’
본래 역사에서는 그가 폴란드를 비롯한 여러 지방에 강력한 러시아화 정책을 밀어붙임에 따라 그 지역의 불만도가 높아졌지만, 내가 그에게 지금보다 높은 자리를 줄 생각이 없었기에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특히 폴란드의 경우에는 러시아가 추진하는 산업화 정책에 현재로서는 가장 큰 수혜자라고도 할 수 있으니 현상 유지만 시켜줘도 별다른 불만이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폴란드 인민들의 외면과 무관심 속에서 발생한 1월 봉기의 실패 이후 사라져버린 폴란드의 귀족 계급을 대체한 이들은 바로 부르주아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러시아 제국은 자신들을 탄압하고 지배하는 타도해야 할 대상이 아닌 자신들이 생산한 물건을 팔아먹을 수 있는 물주와도 같은 존재였다.
실제로 1865년~1880년 사이에 폴란드의 산업 총생산량은 무려 3배나 늘어난 데다가 1877년 공표된 러시아 제국의 관세법에 따라 외국 상품이 무려 30%의 관세를 물어야 하는 것에 반해 폴란드는 1851년의 관세개혁 덕분에 무관세로 러시아에 자신들의 상품을 수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식으로 러시아 제국의 품 안에서 달콤한 과실을 영위하고 있는 폴란드 부르주아 계층에게 독립이란 자신들이 벌어들이는 돈의 양이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했다.물론 조만간 비테가 재무장관에 취임하고 러시아 제국 자체의 산업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현재 폴란드에 적용되고 있는 혜택을 줄일 예정이었지만, 그 이후로도 폴란드를 현재 지배하는 이들은 러시아 제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성장을 목격한 이들이 매달릴 곳은 우리밖에 없을 테니까.’
이미 올해 우치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했던 메이데이 총파업을 목격한 폴란드 자본가들의 머릿속에는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감이 깊이 자리 잡았을 것이다.
비록 8만 명의 노동자가 참가해 9일간 이루어졌던 원래 역사보다는 작은 규모로 이루어졌지만,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폴란드 사회당의 지상목표가 자본가들의 이익과는 상충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부를 노동계급을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 분배해 평등한 사회를 이룩해야 한다는 폴란드 사회당이 말하는 민족주의를 통한 독립 국가 건설은 이미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 자본가들에게는 정신이상자의 헛소리나 다름없을 테니까.
‘게다가 이미 우리 러시아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가 절반이 넘는 그들에게 러시아로부터의 독립은 자신들의 파산을 의미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여겨지고 있겠지.’
심지어 비테의 주도로 폴란드 산업에 대한 차별 정책이 시행되기 시작하던 1897년에도 그들은 바르샤바에 방문한 차르에게 열렬한 환영을 보냈었다. 그 정도로 폴란드 자본가들은 로마노프 황가의 충실한 지지세력이었다.
그들이 로마노프에 대한 반대 의사를 내비치게 된 계기가 러일 전쟁에서 패한 러시아가 자신들을 보호해줄 수 있겠냐는 위기의식의 발로라는 것을 감안하면 앞으로도 폴란드 자본가 세력은 나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줄 수 있었다.
‘미래에 기록될 역사책에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했다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나를 대신해 공산주의자들과 싸우며 충실하게 세금까지 납부할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사회에 불만을 가진 자들의 항의도 대신 받아주는 데다가 앞으로 필요할 막대한 재정에 보탬마저 더해주는 이들을 어찌 미워할 수 있겠는가.
‘걱정이 있다면 극동 지방인데…’
아무리 오흐라나가 유능하다 하더라도 제한된 인원과 예산을 가지고 있는 만큼 넓디넓은 러시아 제국의 전역을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지금은 서부지방에서 내가 한 연설로 인해 촉발된 논쟁들을 물밑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가진 능력 이상의 일들을 해내고 있다고 할 수 있었기에 엄청난 공간적 장애물이 사이에 있는 극동에 대한 정보수집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 비슈넷그라스키가 말한 바에 따르면 교토조약으로 분기마다 지급되어야 할 배상금의 기댓값과 극동지방에서 수령했다고 보고되는 양의 차이가 존재한다고 했는데…’
일본과 러시아의 광산 채굴 및 개발을 위한 합작회사가 설립된 후 원칙대로라면 각 광산마다 우리 측 공사관에서 파견한 인원이 상주해야 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파견할 수 없는 곳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파견 인원이 있는 곳에서 채굴되는 광물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이익에 대해서는 일본이 장난을 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외의 광산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일본이 실제와는 다르게 보고되는 기록에 대해 누락을 하고 있다는 심증이 존재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가장 빠른 방법은 재차 군사행동을 통해 일본에게 압박을 넣어 제대로 조약을 이행하라고 하는 것이었지만, 기근도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의 출병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조만간 이루어질 개혁과 시베리아 횡단철도에 대한 투자도 생각한다면 지금은 돈을 써야 하는 순간이 아닌 돈을 모아야 하는 때였다.
‘다행히 특정 물품들에 대한 전매제도나 재정정책 면에서의 개선을 통해 원래 역사보다 빨리 8억 루블 정도의 금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일본 친구들이 하고있는 장난질에 대해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군.’
게다가 러시아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발생하고 있는 관료제의 고질적인 병폐인 부패한 관료들로 인한 손실까지 계산에 넣어 산출한다면 지금 우리가 수령하고 있는 금액은 원래보다는 적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개혁들이 산적한 가운데 한 푼이라도 아쉬운 지금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새어나가는 돈을 줄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번에도 현실적인 장애물이 내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로 믿고 보낼 만한 유능한 재무관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게나 비슈넷그라스키는 이런 장거리 여행을 한다면 건강에 무리가 갈 나이였고, 비테와 스톨리핀은 도량형 통일과 그레고리력으로의 변경 작업을 수행하느라 시간이 없었다.
괜히 어중이떠중이를 보냈다가는 그들도 매수되어 본전도 찾을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기에 나는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로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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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블라디보스토크로군.”
기차에서 내린 노인이 감개가 무량하다는 반응을 보이자 옆에서 그를 수행하던 건장한 사내가 양손에 들고 있던 짐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비하면 작은 도시지만, 확실히 활기가 넘치는 것 같습니다.”
“네가 수도에 가본 적이 있단 말이냐? 아니 농사일을 한다던 녀석이 밭을 일구지는 않고 놀러 다니기 바빴던 모양이구나.”
노인의 핀잔이 돌아오자 사내는 창피하다는 듯이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은 놀러 간 것이 아니라 제가 방황하던 당시 만났던 자와 함께 체포되어 이송되던 때에 본 경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농사일을 했다고 자부하는 제게 놀러 다녔다니요. 억울합니다.”
겉보기에는 사제와 그를 수행하는 제자로 보이는 이들의 정체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위세를 자랑하던 종무원장이었던 포베도노스체프와 사마라에서 레닌과 함께 체포됐었던 세르게이였다.
사형 직전 황태자의 자비로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왔다고 생각하는 세르게이의 마음속에는 이전처럼 세상에 대한 분노가 들어있지 않았다.
되찾은 삶에 대한 소중함이 그 빈자리를 채웠지만, 자식을 잃은 아버지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세상을 떠난 하나뿐이던 딸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을 달랠 수단을 찾던 세르게이에게 지난번 유형지에서 있었던 만남은 다시금 그의 인생에 전환점이라 할 수 있었다.
권력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자신의 지난 행적을 되돌아보던 종무원장에게도 세르게이와의 만남은 의외의 곳에서 마주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사람과의 조우였다.
그가 과거에 농부와 같은 대다수의 인민들에게 가지고 있던 그들은 감사할 줄 모르며 구제하기 어려운 족속들이라는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세르게이였다.
서로 다른 위치에서 다른 이유로 시베리아라는 공간에서 만나게 되었지만, 둘 사이에는 공통점이 존재했다. 바로 황태자가 아니었다면 둘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점이었다.
비록 둘은 알지 못했지만, 현재 두 사람이 보여주는 사제지간에 가까운 관계에는 황태자의 영향력이 짙게 묻어있었다.
이전보다는 위세가 현저하게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포베도노스체프가 가지고 있는 종무원장이라는 이름이 가진 무게에는 세르게이 한 명쯤은 본인이 데리고 다닐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황태자가 종무원장이라는 직책을 회수하지 않은 이유에는 자신이 추진하는 일에 대한 종교계의 불만을 포베도노스체프에게로 돌리려는 목적도 존재했다.
자신이 임명한 새로운 종무원장이 그들에게 항의를 받는 것보다는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바지사장인 그를 내세워 책임은 그가 실권은 자신이 가지는 것이 나았으니까.
두 사람은 그 후로 유형지를 돌아다니며 유형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러시아 제국에 대한 충성심을 복돋우는 여정을 계속해나가다가 이곳 러시아의 극동에 대한 관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과 타는 이들로 붐비는 기차역을 둘러보던 종무원장은 먼저 시청으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이 도시에서 할 활동에 대해 미리 얘기를 해야 할 필요성도 존재했고 충실한 러시아 제국의 신하로서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방문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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